세 아이를 키우며, 동행하며

by 자루

[세 아이를 키우며, 동행하며]

나는 동기들에 비해 모든 것이 늦었다. 한글 빼고는 산수, 음악, 영어, 수학... 무슨 배짱으로 상경계 대학을 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2 지망이었다. 자율신경 리듬이 민감하다는 얘기를 최근에 들었다. 그 이유로 어려서부터 감기를 달고 살았고, 알레르기성 비염, 아토피성 피부염, 기관지 천식까지... '알레르기 행진'이라는 단어를 최근에야 알았지만, 그것은 항상 내 인생의 기본값(Default)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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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면이 내 성격을 지나치게 내성적으로 만들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입만 살아서 조잘조잘 떠들고 남들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적성에 맞았다. 이해가 가는가? 활달해 보이는 내향성 소유자라는 사실이. 나도 이 두 가지 성향이 최근에야 이해되었다. 겉모습은 밝아 보여도 결정적인 순간에 움츠러드는 나를 보며, 나도 당신도 제삼자도 이해 못 할 행동들에 스스로 실망하곤 했었다.


결정장애를 딛고 대학을 졸업해 뒤늦게 취업 전선에 뛰어드니, 출발선이 늦어도 보통 늦은 게 아니었다. 대기업 금융권에 당당히 다니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간신히 중소기업에 늦깎이로 들어가 저임금 노동으로 젊은 시절을 다 보냈다. 결혼도 늦어서 남들 초등학교 보낼 아이가 있을 때 이제 돌잔치를 준비하니, 아내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부지런히 아이 셋을 낳았다. 아들, 딸, 아들을 보았고 30대 중반부터 40대 초반까지 기저귀를 갈며 살았다. 취직은 늦었지만 직장 생활의 끝은 길지 않았고, 이른 나이에 퇴직하여 자유직으로 살았다. 그사이 아이들은 무럭무럭 커주어 큰애는 대학에 입학했고, 둘째는 예체능 전공으로 하루 8시간씩 꼬박 그림을 그린다. 막내는 형과 누나를 보며 안정된 정서로 중3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늦음'으로 인해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권위적인 부모님 밑에서 힘들기도 했고, 철없는 형 때문에 형제간의 정은 별로 기억에 없으며, 질병에 치여 건강하게 사는 게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 그러다 작년, 내 인생에 대형 쉼표를 찍을 일이 터졌다. 신부전 진단을 받고 1년간 대인기피와 극심한 우울감으로 바닥까지 내려갔다. 부모님이 아직 돋보기 없이 생활하실 정도로 건강하신데, 내게 신부전이라니. 여태껏 좋은 일은 늘 늦더니, 퇴직은 빨랐고 '강제 쉼표'는 너무나 일찍 찾아왔다. 아버지의 "폐인이 되었다"는 말씀에 죄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주 3일, 하루 4시간을 병원에 누워 지내며 하던 일도 90% 이상 강제로 줄여야 했다.


4시간 동안 누워 있는 시간은 벽처럼 암울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벽 틈새로 햇빛이 들기 시작했다. 누워 있는 시간에 무수히 많은 생각을 했다. 문득 공개된 장소에 글을 써보자는 결심을 했다. 이전엔 재미로 썼고 부끄럽기도 해서 주저했지만, 이젠 두려울 것도 없어졌다.


그 생각의 길목마다 나를 응원해 준 것은 불평 없이 살아준 아내와 사고 없이 커준 자녀들이었다. 아이들과의 대화가 깊어졌고, 아이들의 필요를 채워주려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 사이가 나쁘지 않아 정말 행복하다. 폭력 없는 형제 관계를 위해 나부터 동의 없는 무정한 매질을 하지 않은 것이 도움이 되었고, 부모로서 관계 사이를 빠르게 파악하는 능력이 어느새 장착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브런치에서 나눌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운 좋게도 순간순간이 사진과 기록으로 남아있어 내가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기에 충분했다. 쉼표가 찍히지 않았다면 무시하고 넘어갔을 소중한 것들이다. 이제 큰아이와 미래를 논의하고, 동생들은 오빠와 형을 존경한다고 말한다. 이제 육아와 양육을 넘어 '동행'의 단계로 진입했다. 아내가 이 큰 과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주어, 고맙다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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