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순시대의 실상(2/3)

부끄러움 각 문화권의 활용

by 자루

앞글 요순시대의 실상에서 https://brunch.co.kr/@gojeme/52 부끄러움이라는 원초적인 도덕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다. 이 부끄러움이라는 것이 인간의 근본에 자리 잡고 있는 무엇이라면, 문화권이나 지역을 초월하여 상관없이 그 누구라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추론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은 숫자가 많이 줄었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는 각 지역마다 화교들의 자녀만 다니는 화교학교가 있었다.

내 기억에 학교 건물 중앙에 상시 염치廉恥라는 단어가 교훈처럼 걸려있었다. 이 구절의 염은 청렴 정직을 의미하고, 뒤의 치는 부끄럽다는 의미이다. 일단 뒤의 단어인 치가 사람에게 있어야 청렴이든 정직이든 발현이 된다. 요순을 시작으로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사마천이 활동하던 한대에 이르면 지도자뿐 아니라 그 당시 임용된 관리에게도 기본으로 요구되던 가치였다. 이런 전통이 근대 현대를 지나 해외에 진출해 있던 학교에 염치廉恥라는 가치가 학교에 교훈으로 걸려있다고 생각한다.


유교


우리는 흔히 염치가 있어야지, 염치가 없어라고 쉽게 쉽게 이야기하곤 하지만, 염치가 없으면 그 순간 뭐든지 상상하면 그대로 되는 엉망인 세상이 된다. 논어에서 "부끄러움을 알면 욕심이 제어되고, 어질지 못함을 경계한다."라고 하고 부끄러움은 도덕적 자기 규제의 출발점이자, 사회적 안정과 질서를 위한 윤리적인 근거가 된다.


기독교


성경에도 수치심(Shame)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되는데 죄의식, 회개를 촉발하는 감정으로 이해되고 도덕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고, 신과의 관계 회복, 공동체 윤리를 강화하는 시작으로 이해된다. 예를 들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후 벗음을 부끄러워했고, 즉 죄를 알고 부끄러워하고 회개하는 마음의 시작이 된다.

이 부끄러움을 신약에서 양심으로 확장되고, 적극적인 성령 활동의 증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철면피로 살던 사람들에게 양심에 화인 iron stamp 맞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불교


불가에서 수치심이야 말로 올바른 행위와 비도덕적 행위를 자각하는 시작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부끄러움은 도덕적 수행뿐만 아니라 업을 인식하고(Karma), 번뇌를 제거하는 기능을 한다. 열반경 범망경등에서 부끄러움은 수행자의 심리적인 보호막으로 역할을 한다. 인간의 선행으로 부끄러움을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당연히 남는 것은 겸손함이 된다. 도덕적 수행의 출발점이자 자기 정화와 내적 각성을 유도한다고 할 수 있다.


도교


노장 사상의 시조 노자의 도덕경에 부끄러움은 정의나 언급도 필요 없고 강요되는 사회는 이미 이 부끄러움이 없어지거나 사라져 가는 단계에 이른 것이라 말하고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작동하는 기본윤리로 강조했다.

본래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자기 조절 감각이 있고 그것이 사회적 강요가 아니라 무위(無爲) 상태에서 드러나고 진짜 염치는 외부 평가가 아니라 내면의 조화감에서 나온다고 했다. 후에 장자로 넘어가면 타인의 영향 법 정치 등으로 염치가 세워진다면 자기 다운 염치가 사라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이라면 가져야 할 감정: 부끄러움


부끄러움을 창피하다 정도로 사용하는 세상에서 살다 보니, 오랜 시간 잊었던 가치가 아닐까 한다. 거창하고 위대해 보이는 인의예지, 성령, 구원, 해탈 열반 및 신선이 되는 꿈만 꾸었지 그 바닥에 있었던 부끄러움을 걸러내 버린 세상에서 산 것이 아닌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부끄러움을 상실한 그다음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 그냥 사상누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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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순시대의 실상(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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