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사춘기 소녀와 아줌마의 싸움의 진짜 피해자

by 고카


초등학생 4학년과 매일 대치하는 와이프와의 날선 신경전의 마지막은 늘 나에게 비수로 날아온다. 밖에서 돈 벌어오고 집에 오면 처자식 눈치 보는 불쌍한 40대 아저씨가 되어가는 게 정말 서럽고 억울하기도 하다. 그래도 언제부터인가 삐지면 말이 없어지는 딸아이를 보며 속이 터지지만 거기에 휘말리면 나만 답답한 상황이 되다 보니 최대한 상황을 원만하게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의 삶의 고초를 이미 겪은 친구들이나 선배들은 늘 입을 모아 하는 말이 “그냥 지나갈 거니 그냥 믿어주는 수밖에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하하 호호하며 조용히 지나가는 날 없이 매일 지지고 볶는 삶이 일상이다. 그런 작은 각개 전투를 치르는 삶 속에서 나만의 여유와 자유를 찾기 위해 오늘도 새벽에 조용히 일어나 달리기를 하러 갔다. 각자가 피해자라고 이야기하면서 서로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그렇게 초등학생 4학년 딸아이는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기가 죽어가는데 반대로 와이프는 따복따복 말하나 지지 않고 계속 가슴을 후벼파는 말 공격에 스트레스를 받아 타이레놀까지 먹어야 하나 하며 서로가 가장 힘들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 둘의 대치 생황의 영문도 모른 채 하루 종일 업무에 멍부(멍청하고 부지런한) 상사에게 시달리다 집에 왔는데 이 더운 날에도 집안의 분위기는 참다랑어가 돌덩이처럼 차가워질 정도로 냉랭한 분위기는 평온과 안식을 향해 달려온 나의 퇴근길의 발걸음이 무색하게 다시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게 만든다.


그렇다고 나는 “이런 인생 너무 짜증 나요 힘들어요”라기 보다. 그저 나는 어서 냉동고 스위치가 꺼졌으면 하고 마음속에 사리를 쌓으며 얼른 밥을 먹고 첫째를 달래며 숙제를 하거나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편의점행은 나에겐 매일 한두 캔의 맥주를 마시는 알코올중독을 선물해 주었고 딸아이에겐 그래도 그 시간은 재잘재잘 오늘 하루의 이야기를 나에게라도 털어놓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첫째를 달래고 집으로 돌아와 재우고 안방에 침대 위에 휴대폰 불빛을 보고 나면 다시 숨이 턱 막힌다. 그래도 오늘 한바탕하느라 수고했다~ 고생했다며 위로의 멘트를 날리지만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어떨 땐 그 말을 고마워도 하는데 그 또 다른 어떤 날은 여전히 대답조차 하지 않고 휴대폰에 고정된 시선 속에 엄지만 까딱까딱하는 모습을 보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다시 나에게 힐링이 되어주는 새벽 달리기를 위해서.


나는 그 둘의 싸움에 진짜 피해자다.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가끔은 서운하기도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우리네 아버지들의 삶이 이렇게 가장의 무게와 함께 조용히 외롭게 묵묵히 나가야 하는 숙명인 것을. 그래도 내일은 주말 인덕에 새벽 산행을 갈 수 있다. 산에 가서 그간 쌓인 복잡한 생각도 정리하고 오랜만에 산의 기운과 정기를 얻을 생각에 벌써 신이 난다. 그래서 아버지들이 ‘나는 자연인이다‘를 그렇게 애청하셨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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