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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카 Oct 01. 2024

자유남편 6화 _ 물질의 노예

23.7.25(목) 7일차

 

달리고 달리고

어제 회식으로 늦게 와서 12시 넘어서 잤지만 새벽에 일어나 달리기를 했다.

피곤하고 몸이 무거워서 할까 말까 고민을 하면서도 몸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루가 너무 피곤했다.

와이프는 맨해튼에 놀러 가서 뮤지컬 보고 사촌이 일 마치는 시간에 차를 얻어타고 함께 집으로 간다고 했는데 늦은 시간 밤거리를 혼자 거닌다고 하니 걱정이 되었다.

미국에 대해서 경험이 전무한 나에게 미국 출장을 여러 번 다녀온 선배들이 그랬다.

“차 안에 귀중품을 두고 내리면 도둑들이 와서 창문을 깨고 다 훔쳐 가니까 조심해야 해~”

거기에 좀비처럼 길거리에 배회하는 마약중독자에 대한 미국에 대한 뉴스까지 미국에 대한 이미지가

더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사촌이 일찍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고 해서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치료방법이 하나뿐인 아이패드병

오후에는 수원에 있는 업체 출장을 갔다가 일찍 퇴근할 요량이었는데 예상보다 늦어졌다.

찌는듯한 날씨에 녹초가 되어 집에 도착해서 식탁의자에 앉아 퍼져 있었다.

저녁은 주안이가 좋아하는 참치 비빔밥을 먹고 영어 화상 수업을 준비하고 선생님을 기다렸다.

15분가량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아 문자를 남겨두었다.

선생님도 미국 여행을 갔다고 했는데 시차 때문에 잠들어서 수업 시간에 못 들어온듯했다.

물질적인 것에 욕심이 없었는데 요 근래 아이패드 11인치 사이즈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작년 반년 넘게 하루 6시간의 장거리 출퇴근을 하면서 E-book으로 잘사용했고, 회사에서는 업무 노트로 잘 활용했다.

그런데 쓰다보니 아이패드 미니가 휴대성은 너무 좋은데 업무용으로는 너무 작아서 불편했다.

자유 남편은 아이패드 병에 걸려 물질에 대한 자유를 잃고 식탁에 앉아서 아이패드를 검색하고 있었다.


영어수업도 펑크 나고 차라리 잘 됐다며 아이패드 실물 사이즈를 비교할 겸 애플 매장에 가겠다고 집을 나서는데 폭우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미 나선 길이라 비를 뚫고 갔다. 보면 볼수록 큰 사이즈가 맞는듯하다. 그렇게 11인치로 업그레이드 하기로 결심을 했다. 고민은 길었으나 결정이 나면 실행은 빠르게 하는 게 맞다. 바로 중고나라와 당근 매물을 검색했고, 주말 전에 마무리하기로 결심했다.

 

자신감

소이는 미국 체질인듯하다. 하지만 주안이는 아직 많이 낯설어하고 영어가 안돼서 어색해 하는 거 같다. 영어나 새로운 문화에 친숙함을 주기 위함인데 오히려 트라우마가 되면 안 될 텐데 걱정이 살짝 되었다.

타지 생활에 “주안이는 뭐?(손정웅 패러디를 하며)”라고 외치면 “자신감!”이라고 답을 하던 주안이는 주눅이 들었고 한국에서 엄마 잔소리에 말수가 줄던 소이는 물을 만났다

10살 7살의 새로운 환경에서의 인생수업을 응원해 본다.




24.7.26(금) 8일차

평화로운 금요일의 불치병 치료(아이패드11")

어제도 저녁에 간단히 먹고 자야지 했는데 승원이랑 먹을 때 사두고 남은 한병의 막걸리가 눈에 띄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먹고 잤는데 더위 때문인지 숙취 때문인지 잠을 푹 자지 못했다. 그래도 새벽에 일어나서 달리기를 하기로 마음먹고 일어나 공원으로 향했다.

습도 97% 몸이 무거웠고 생각처럼 달려지지 않았다.

잠은 부족하고 피곤이 누적된 탓이라 생각하고 그냥 마음을 내려놓고 밀리는 대로 달렸다.

나중에 알았는데. 프로그램을 잘못 이해해서 중간에 휴식을 빼먹고 6킬로를 연달아 달렸다...

어쩐지 힘들더라 하루 종일 너무 피곤했고 다행히 회사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쉬어서 여유로웠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로운 금요일 회사였다.

책 ’가짜 노동‘을 읽는 중이라서 그런지 정말 이런 여유로움도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태훈이 형이 연락이 왔다. 작년에 이사 갔는데 집들이 한번 초대를 못했다고

시간 되면 내일 집에 놀러 오라고 했다. 흔쾌히 수락하고 퇴근 후 뭐 할지 고민을 했다.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아이패드 11인치로 교체에 대해서 계속 궁리를 했고.. 당근을 뒤적거리다

아이패드 프로 m1 3세대 11인치 124g가 95만 원에 6월 리퍼 한 제품으로

매직 키보드 포함해서 올라온 게 있어 연락을 했던 게 답장이 왔다.

오늘 저녁에 삼성역 부근이 회사인데 8시까지 근무라서 그때까지 오면 당근 거래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조금 일찍 퇴근을 했다. 퇴근 버스를 내릴 무렵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우연을 가장한 공상

비가 잦아들 때까지 서점에서 책 좀 보다 가야지 하며 교보문고에 갔다.

서점을 들어서는데 몇 걸음 안 갔는데 정말 신기하게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심지어 그 책은 제자리도 아니고 누군가 읽다가 엉뚱한 자리에 슥 두고 간 것이었다.

자유남편인 나에게 게시를 내려주는 책인가? 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반갑게 그 책을 집어들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읽기 시작했다. 고독에 관한 내용이었다.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 그리고 요즘 제일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갑자기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누리면서 든 생각이 혼자의 삶은 고독하다였다.

퇴근 후 반기는 와이프와 아이들이 없으니 텅 빈 불 꺼진 집을 들어가는 길이 쓸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오랜만에 누리는 이 자유가 반대로 나의 고독을 마주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우연스레 흘러가는 금요일 왠지 오늘은 로또도 하나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누린 이 자유가 로또가 아닐까? 과연 그 행운이 더 크게 오진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바램으로.

그 헛된 생각을 하며 잠실역 8번 출구 앞에 로또 명당의 긴 행렬에  동참을 했다.

과연 로또가 나에게 자유를 줄 것인가?

 

당근 거래를 하러 나온 사람은 개발자인듯했다.

사회생활 덕분인지 나이를 먹어 생긴 연륜인지 누군가를 만나면 대략적인 그 사람의 직업이나 성격이 짐작이 된다. 네오플에 근무하는 직원 같았고 (당근 거래했던 건물에 그 회사가 있었다.)

쿨하게 나도 그 사람의 인상착의를 보고 쿠퍼스 하나를 쥐여주고 이체를 마치고 집으로 왔다.

너무나도 광활했다. 그간 미니를 너무 잘 쓰고 만족했는데... 거거익선이라는 말이 맞기도 한듯하다.

하지만 반대로 앞으로 이북을 어떻게 봐야 하나 하는 걱정이 되었다.

아이패드 미니와 11인치 모두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편리함과 즐거움을 위해 물질에 얽매이게되고 그렇게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자유를 잃게 되는구나 하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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