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27 (토) 9일차
3시까지 태훈이 형네 집에 가기로 했는데 집 이곳저곳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부랴부랴 집을 나섰고 선물을 미처 구하지 못해 장미 상가에서 작은 꽃다발을 사서 갔다.
빌라에서 신혼생활을 하다가 아파트로 처음 들어가게 된 태훈이 형네 집은 딩크족답게 너무 깔끔하고 이쁘고 모던하게 꾸며져 있었다.
내가 오는 것에 하경이 누나도 반가워해주고 작은 선물임에도 꽃 선물을 너무 좋아해 줘서 다행이었다.
애가 없이 둘이 인생을 즐기며 사는 그 둘의 모습은 때로는 부럽고 때로는 안 부러웠다.
그래도 아이들이 없기에 하고 싶은 대로 정말 모델하우스보다 더 멋지게 인테리어를 했다.
방 하나는 술방으로 만들어 분위기 있는 테이블과 귀여운 책장 단조로우면서도 우아한 조명까지..
40년이 훌쩍 넘은 우리 집이 떠올랐다.
신혼 때부터 쭉 따라온 가구와 급하게 급조한 생활집기들까지..
다음 집으로 이사 갈 때는 꼭 와이프가 원하는 대로 인테리어 하라고 해야겠다.
딩크가 부러웠던 다자녀는 다시 현실세계인 집으로 돌아와 만약 딩크 vs다자녀(서울기준 자녀 2명 이상) 중 선택을 해야 한다면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해보았다.
부러운 건 맞지만 아이들이 주는 고통과 부담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지금의 삶을 다시 선택할 거다.
어차피 인생은 고통스러운 거 아니겠나?!
갑자기 채은이가 연락이 왔다. 집들이를 간다고 했지만 그래도 뭔가 꿍꿍이가 있는듯했다.
답답한데 누구한테 말할 사람도 없고 술 한잔하고 싶어 하는 듯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했다.
테니스 마치고 집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올래? 했더니 수락을 하고 오는 동안 나는 좀 쉬고 있겠다고 했다.
웬걸.. 집을 치우고 정리하느라 쉬지도 못하고 부랴부랴 먹을 거 시키고 술 사러 갔다 오니 10시가 되었다.
6개월가량 만나던 놈이 양다리였고, 뒤통수를 맞은 걸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난 로또 맞은 거라며 위로해 줬다. 인생에 유턴은 어렵다. 차라리 미리 알고 정리된 게 다행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안 좋은 표정을 하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사랑에 빠지면 불나방이 된다. 주변에서 아무리 뜯어말려도 직진하고 있다.
그래도 나이가 먹으며 경험이 생기고 보는 안목이 늘겠지만. 마음은 생각처럼 되지는 않는다.
양자역학을 설명할 때 ‘이미 모든 것은 다 결정되어 있다’는 예를 들 때가 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때 느끼는 공허함처럼 우리의 인생도 다 정해져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채은이의 반려자도 다 계획이 되어 있겠지?
아.. 그리고 나의 삶도 로또가 당첨될 일이 없는 것으로 계획이 된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