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29(월) 11일차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주말의 여독이 남아있는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다행히 오늘은 짧은 에어로빅 러닝이라서 한강으로 향했다. 한강에도 늘 보이던 사람은 그 무렵에 뛰는지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하루 종일 회의에 보고에 뭐 한 것 없이 하루 갔다. 처음에 느꼈던 자유로움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생활의 패턴에 녹아져
바쁘고 정신없게 살아가고 있었다.
퇴근하고 밥을 먹고서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롯데월드 몰에 갔다. 그냥 정체 없이 길을 나섰다.
잠시하고 서점과 유니클로를 배회하고 오는 길에 소이한테 영상통화가 왔다.
이제 막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려는 모습이었다.
소이는 여전히 그곳에 생활 속에서도 장난기 가득했고 주안이는 엄마 옆에 딱 붙어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금세 9시가 되었고 집으로 돌아와 부랴부랴 씻고 이제서야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기를 쓰고 있다.
반복은 늘 어색하고 낯설었던 환경을 적응하게 하게 해주는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나도 자유가 반복된 하루를 통해 익숙해져 가고 있다.
별다른 게 있을 줄 알았지만 정말 뭐 특별하게 없는 자유 시간이다.
24.7.30 (화) 12일차
주안이는 조금씩 미국 생활에 적응을 하는듯하다. 사진에서 표정이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미국에 적응한다기 보다 새로운 환경이 이제는 익숙해진 거 같다. 한국과 다른 미국 과연 얼마나 다르고 어떤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아이들과 다운이가 느끼는 그 경험과 감정이 어떤지 짐작만을 할 뿐이다.
오늘도 새벽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했다. 회사에 출근해서는 하루 종일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빈둥 거렸다. 가짜 노동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진짜 일에 대한 권태로움과 회의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하루는 너무 빨리 지나갔다.
오후에는 동탄 롯데캐슬 대국민 청약을 넣었다. 로또 수준이라고 하지만 모두들 희망을 가지고 있다.
퇴근하는 길에는 버스에서 잠들지 않기 위해 정말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눈꺼풀은 너무 무거워 졸다 깨다 어깨를 주무르다가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가짜 노동을 다 읽었다.
책의 도입과는 다르게 후반부는 너무나 로즈하고 도덕 책 같은 이야기뿐이어서 아쉬웠다.
집에 도착했을 때 습한 공기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너무 아름다웠다. 남은 족발과 닭 다리 두 개 그리고 컵라면 남은 밥을 같이 먹었다. 먹고 나서 그동안 해야지 했던 영어원서 읽기를 시작했다.
위대한 개츠비. 검색을 해보니 너무나 어려운 내용이라고 했지만 욕심부리지 않고 한 장씩 한 장씩 해보기로 하자.
24.7.31(수) 13일차
오른쪽 아래 두 번째 어금니의 치통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치과를 가면 되겠지만 두렵다. 치료가 복잡할까 봐 비용이 많이 나올까 봐서. 그냥 별일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치아가 아닌 잇몸에서 오는 통증이 개선되기를 바라본다.
아빠는 오늘 김제 작은 내과병원에서 폐렴에 대한 소견으로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가서 엑스레이 촬영하고 내일 위내시경 예약을 잡았다고 한다. 마음이 무거워지고 고민이 한가득이다. 다시 작년 엄마의 병환에 대한 트라우마인지 아니면 나의 약한 멘탈 덕분인지 하루 종일 마음이 무겁고 걱정이 한가득이다.
마음을 내려두고 다시 몸과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퇴근 후 밥을 먹고 영어 원서 한 페이지를 공부하고 나니 10시가 되었다.
홈플러스에서 켈리 3캔을 사 와서 일기를 쓰고 있다.
내일은 수도계량기 교체로 인해 휴가를 냈다.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비싸지만 노후된 아파트 녹물로 인해 배관 공사를 위해 실시하는 작업을 핑계 삼아 자유 남편의 기간 동안 처음으로 자유로운 연차를 냈다.
뭐하고 보내야 할지 아직 정한 게 없다.
그래도 한 가지 숙제. 다운이가 이야기한 미국 투어를 짜야겠다.
처자식이 없어 자유로운 시간을 얻었음에도 다시 속세의 굴레에 얽매여 완전한 자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벌 인터넷 시대에 멀리 미국에서도 숙제를 내주는 와이프로 인해 나의 자유는 늘 불안하다.
24.8.1(목) 14일차
아파트 수도계량기 함을 교체한다고 아침에 일찍부터 작업자분들이 오셨다. 오시긴 했는데 세탁기 때문에 작업 공간이 안 나와서 세탁기를 옮겨야 한다고 노발대발하고 갔다. 같이 들어서 움직이면 움직일 거 같았는데 다른 날 다시 날 잡아서 할 수 있게 세탁기를 이동하라고 하고 가버렸다.
나름 어렵게 연차를 내서 날을 맞춘 건데 짜증이 나면서도 어떻게 하지 걱정을 했다.
들어서 옮겨지려나 하고 손으로 밀어보았는데 조금씩 움직이긴 했다. 건조기만 내렸다가 다시 조정하고 다시 올리면 될 거 같아 건조기를 고정하는 레버를 떼서 움직여 보았지만 두세 명이서 들어서 작업해야만 할듯했다. 답답한 마음에 복도로 나가 밖을 내다보니 앞 동에서 이사 가는 차가 보였다.
작업자 아저씨들한테 작업비를 주면서 도와달라 할까 했지만 작업이 이제 막 시작하고 있어서 손을 빌리기 어려운듯했다. 일단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봐 해봤어?’라는 정주영 회장의 멘트가 이상하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일단 다용도실 짐을 빼고 옮길 공간을 만들었다. 가구 옮기듯 흔들흔들하며 옮기면 될 거 같았다. 다행히 움직여졌고 공간을 만들었다. 안될 거 같아 보였지만 됐다는 것에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무조건 안된다고 생각하기보다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맞았다는 것에 기뻤다.
작업은 다행히 완료되었고 그동안 소이 방과 끝방을 정리했다. 소이방은 정말 천불이 났다. 몇 번 치워주었는데 그때마다 느낀 건 정말 개판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아침에 미국시간으로 그곳은 자기 전에 했던 통화에서 다운이가 기가 확 빨려 힘들어하는 게 보였다.
이 녀석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화가 치밀었다.
어떻게 아이들을 잘 기를 수 있을지...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사도 끝나고 정리까지 마치고 나니 두시가 훌쩍 넘었다.
그제야 갈증이 나고 배가 고팠다. 더위를 먹은 듯 입맛은 없었는데 이상하게 순대 국밥이 먹고 싶었다.
오늘도 청와옥에가서 정말 국밥 한 그릇을 뚝딱 먹었다.
정말 희한하게 다 먹을 무렵 당근 연락이 왔다. 미니 6를 구매하겠다고 당장이라도 오겠다고 했다.
부랴부랴 패드를 챙겨 잠실나루에서 거래를 했다. 초기화가 잘 안돼서 (나의 아이패드 찾기를 먼저 꺼야 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거래를 마치고 다이소를 들어 테플론 테이프를 사려고 했는데 없었다. 철물점을 찾아가는 길에 전기상이 있어 그곳에서 테플론 테이프를 사고 이제 서점 가서 좀 쉬다 와야지 했는데 몸이 지쳐서 그런지 집에 가고 싶었다. 집에 와서 수도꼭지 물새는 것을 수리하고 정리가 된 소리방을 보며 뿌듯해했다.
오늘 하루 있었던 모든 일들이 내가 답답해서 움직이고 실행했던 일들의 연속 같았다.
역시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옛말이 틀린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