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2(금) 15일차
그럴 의도는 없었다. 그냥 마라톤을 온전히 아프지 않고 완주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달리기 학원에 가고 달리기 모임에 나가면서 나의 달리기 컨셉은 목표를 위한 여정이 되었다.
3시간 15분 목표 그룹에 들어갔다.
매일 주어지는 달리기 레시피를 수행하기 위해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서 달렸다.
빠른 페이스의 에어로빅 러닝 70분.
금요일이다 보니 마음이 여유로워 일찍 일어나서 뛰었다.
몸은 무거웠고 오랜만에 인빈서블을 신었다. 역시 인빈서블은 스피드 훈련할때는 몸이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었다.
페이스는 밀리긴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뛰었다.
출근해서 하루 종일 피곤했다. 오후에는 팀장님이 출장이라서 사무실에서 편하게 있었지만.
할 일들이 잔뜩 쌓여있는 거 같아서 마음은 무거웠다.
나를 관리 감독하는 보스가 없어도 자유롭지 못했듯이 처자식이 저 멀리 미국 땅에 있어도
나의 마음은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5시차를 타고 퇴근해서 삼겹살을 사다가 구워 먹었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고기가 당겼다. 저녁을 먹고 무엇을 할까 했지만 덥다 보니 어디 가기도 귀찮고 그냥 집에서 쉬다가 컴퓨터 방 정리를 했다.
한강이 보이는 창이 있는 멋진 뷰를 가진 방이지만, 겨울엔 춥고 여름엔 가장 더운 방이라
창고 겸 컴퓨터를 하는 방으로 되어버렸다.
그래도 나의 취미거리의 도구들이 가득해 있어서 그나마 그 방에서는 자유롭게 산이며 들이며 신나게
방랑하는 나의 모습이 상기되어 즐거운 방이다.
그런 나의 소중한 공간에 애들 옷과 와이프 잡동사니가 침투해와서 너무 지저분해 들어가기도 싫었는데
정리를 하고 나서 보니 그제야 멋진 한강뷰가 보였다.
24.8.3(토) 16일차
새벽에 일어나서 달리기 모임에 갔다. 더위가 극에 달해 공기가 습해서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자유 남편 모드라서 달리기 후에 즐기는 커피타임도 걱정 없이 마음껏 조인할 수 있었다.
스벅에서 간단히 커피와 간식 먹고 집으로 가는 길 와이픈가 연락이 왔다.
내일 토요일에 뭐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주말에 뭐 하지 하는 고민을 미국에서도 하고 있다니 삶은 비슷하고 부모의 역할에 얽매인 삶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름이 없구나.
와이프랑 장인어른이 고생하는 거 같아 미안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집에 와서 씻고 잠시 쉬다가 서점에 가서 NYC 여행 계획을 세웠다.
어차피 와이프는 미국 사촌과 함께 로컬들이 다니는 NYC를 누비고 다니면서 나에게 아이들과 함께하는
별도의 여행 계획을 세우라고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발이 닫는 대로 가게 될게 뻔했는데 그래도 와이프 잔소리의 스트레스로 뉴욕 여행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우선 뉴욕 여행 책을 한 권 읽어보고 계획을 잡아보려 했지만 너무 많고 다양해서 어떻게 잡아야 할지 복잡했다.
블로그도 참고하고, 지인들한테도 물어보고, 책도 보고, 심지어 Chat GPT에게도 물어보고 해서 대략적인 2박 3일의 일정을 잡았다.
여행 계획을 시간 단위로 촘촘하게 구분해서 세우고 계획된 장소/시간에 맞춰 들르는 형식의 여행을 했던 내가 이제는 발이 닿는 대로 가서 여유를 가지고
그곳에서 생기는 돌발적으로 생기는 이벤트와 그곳의 일상의 체험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취향과 성향이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와이프가 요구하는 투어 형식의 자유여행은 차라리 패키지여행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계획을 잘 마무리하고 와이프에게 스케줄표를 카톡으로 보냈다.
그리고 관우 형에게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 하고 연락을 했더니 큰아버지 큰어머니도 계신다고 했다.
4시까지 가기로 하고 준비를 해서 인천으로 갔다. 가는 길에 너무 졸렸다.
목금 새벽 달리기를 위해 잠을 충분히 못 잔 게 피로 누적이 되어 있는듯하다.
큰아빠 큰엄마는 반가워하셨고, 50의 노총각 관우 형은 여전히 큰아빠의 잔소리에 질린 표정으로 있었다.
그래도 관우 형이 맛집 검색의 달인이라 괜찮은 식당이라며 추천한 청라에 있는 스지집에서 먹기로 했다.
그런데 관우 형이 찾아서 간 곳의 분위기가 술집이라 큰아버지가 못마땅해하셨다. 매번 큰아빠와 관우 형의 냉랭한 분위기가 안타깝고 안쓰럽기도 했다.
관우 형과 별도로 커피를 마시기로 하고 둘이 컴포즈커피에 갔다.
근황 토크를 하고 나서, 8월에 미국에 가는데 정화 누나네 가는 건 어떠냐 물었다.
관우 형은 연락 한번 해보라 했다.
미국에 살기 때문에 자주 보지 못하고 그래도 이왕 가는 김에 왕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떨어져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가족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마음이 불편했다.
첫째 조카와의 가슴 아픈 생이별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을 텐데 괜히 큰 부담을 준 건 아닌가 싶었다.
24.8.4(일) 17일차
오늘은 관문 운동장에서 달리기 학원 공식 훈련을 했다.
지난주 6시 반이었는데 오늘은 6시 집결이었다. 날씨 덕에 일찍 모였지만 그래도 날이 너무 더웠다.
덥기는 어제가 더 습했던 거 같았지만 어제 아쉬움에 마셨던 막걸리 두병의 여파로 더 힘들었다.
운동을 하는 내내 땀이 많이 나와 비 맞은 듯 다 젖었다. 주말 토/일 새벽에 모두 이렇게 달리기를 하다 보니 하루를 일찍 시작했다.
오늘은 훈련 마치고 카페에 안 가고 소피텔에 있는 펜 케이크집으로 간다기에 그냥 브런치 가게인 줄 알았더니 웨이팅이 엄청 긴 핫플레이스였다.
나중에 와이프랑 데리고 와봐야겠다.
그러고 집에 가서 밀린 잠을 잤다. 거의 3시까지 자다가 일어나서 서점으로 갔다.
역시 제일 시원한 곳이 서점이다. 최재붕 교수의 AI 사피엔스를 정말 속독으로 후루룩 읽었다.
깊이 있는 인사이트보다는 트렌드 테마를 소재로 책 시리즈를 만들어내는 책팔이정도로만 생각했다.
초반부에는 그 의구심이 지워지지 않았는데 중반부에 나오는 아이들 교육에 대한 생각은 많은 공감이 되었다.
정말 속독으로 후루룩 읽기에는 나쁘지 않은 책이었다.
책을 다 읽어 갈 무렵 달리기 모임 단톡방에서 ‘나이키 알파 플라이 3’이야기가 나왔다.
품절 대란을 일으키는 신발인데 달리기 모임에서 한 분이 내 거까지 재고가 있어서 구매해 주었다고 했다.
미리 사전에 사이즈며 구매의사를 밝히긴 했는데
압구정 지점에서 갑자기 방출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사람들 거까지 사 왔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
왜냐하면 가격이 후덜덜했다.. 33만 원 정도였으니..
아울렛에서 할인이 많이 된 신발만 사던 나에게 신상 나이키를 거금을 주고 산다는게 어색했다.
나를 위한 소비이자 투자라고 생각하며 합리화를 했지만 마음이 시원하지는 않았다.
저녁은 뭐 먹을까? 하다가 집에서 먹기는 덥고 해서 밖에서 사 먹기로 하고 뼈해장국을 사 먹었다.
청년 감자탕이었는데 양은 많으나 깊이 있는 맛은 아니었다. 다 먹을 무렵 큰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정화 누나가 아직 온전한 정신이 아니니 다음에 놀러 가라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괜히 큰 집식구들에게 불편하게 만든 거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푹푹 찌고 습한 날씨처럼 내 마음도 너무 무겁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자식과의 슬픈 이별이 100% 공감은 못해도 나도 자식이 있다 보니 그 슬픔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 슬픔을 가족으로써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마음을 달래며 올림픽공원을 지나 한강을 거쳐 집으로 갔다.
샤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정리하고 이런저런 것을 하다 보니 10시가 다 되었다.
맥주 한 잔을 마실까 고민하다가 늦게서야 편의점에 가서 하이볼 4캔을 사 왔다.
이상하게 자기 싫은 마음이 들어 12시 넘도록 미적거리다가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