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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카 Sep 30. 2024

자유남편 5화 _ 벌꿀 오소리

24.7.24(수) 6일차


루틴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달리기를 하기 위해 4시 40에 일어났다.

출근 전 운동을 하는 습관은 약 5~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TV에서 새벽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습관으로 시작해 책까지 썼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았다.

하루하루 치이는 삶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거기에 목표를 이루는 성취감까지 얻을 수 있다니 나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에 하루를 시작한다는 걸 도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매번 실패를 거듭했다.

아침에 일어나 잠과 싸움을 하다가 결국 그 싸움에서 졌었는데. 그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동기를 만들기로 했다.

바로 새벽 6시에 시작하는 수영 수업을 신청했다. 그렇게 해볼까 했던 생각으로 시작된 새벽 운동 루틴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오래되었음에도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는 건 힘들다. 하지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게 싫기 때문에 억지로 일어나게 된다.


일기예보와 달리 새벽에 비가 내리지 않고 있었다. 하늘은 흐리고 금세 비가 내릴 듯해 보였지만 일단 챙겨서 집을 나섰다.

비 올 때 달리는 건 좋다 하지만 신발이 젖으면 뒤처리가 귀찮다. 아파트 단지를 뛰기 시작할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살짝 흩뿌리다 비가 멈추었다. 덕분에 더운 건 덜했다. 그런데 잠시 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비를 맞으며 달리는데 기분이 좋았다.

마치 어린 시절 소나기를 미처 피하지 못해 어쩔 줄 몰라하다가 결국엔 마음을 내려놓고 비를 마음껏 맞으며 뛰어갔던 기억이 떠오르는데 그때도 그랬다.

이왕 젖은 거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내리는 폭우에 소리도 시야도 모두 가려져 있어 남 눈치 볼 것도 없고 그냥 그 자체로 즐겁고 재미가 있었다.



벌꿀오소리

달리면서 빗물에 샤워하고 다시 집으로 흘린 땀과 비를 씻어내는 샤워를 하고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며 출근을 했다.

오늘은 담당 소통 행사가 있는 날이고 행사 사회를 보기로 되어 있다.

이직하고 이곳에 와서도 정말 희한하게 행사 진행을 도맡아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런 나의 특성이 가려지지 않는가 보다. 어쩌면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옷 중 하나같다.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분위기를 만들고 공감을 하는 일 ‘언젠가는’이라는 단서로 관련 일을 해야겠다는 흐릿한 다짐을 해본다.

행사는 나름 재미있게 잘 진행되었고 정말 오랜만에 눈물 나도록 웃었다.

바로 사무실 내 옆자리에 윤 부장님 때문이다.

올해 우리 부서로 새로 이동하신 분들을 소개하는데 그때 자신을 소개하는 사진이 남달랐다.

24년 미국 대선 트럼프 후보가 피격으로 귀에 총알을 맞고서 유권자를 향해 손을 치켜드는 사진에 자기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구성원들에게 추천할 게 있는데 그게 바로 ‘벌꿀오소리’ 유튜브 채널이 있었다.

왜 그런지 물어보는데 그분의 어리숙하면서도 진지한 답변이 너무 웃겼다.

“벌꿀오소리 가요 볼품없고 뭐 별 볼일 없어 보이는데요. 금마가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들을 이기거든요~

그런 걸 설명하는 유튜브 채널이 있는데요. 그 사람 멘트가 진짜 웃겨요~”

잉? 진짜 독특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회사에서 최대한 버티며 조용히 지내는 말년 부장은 벌꿀오소리처럼 최상위 포식자가 될법한 상사들에게 마음껏 이야기하고 싶은 깊은 내면의 욕구를 대변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를 마치고 퇴근해서 회식장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 영상을 찾아보았다. 그냥 생태계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상위 포식자도 아닌 녀석이 정말 겁 없이 멋지게 상위 포식자들과 싸우고 때로는 이기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등하고 공평하다고 착각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먹고 잡아먹히는 생태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같은 회사를 다녀도 그 안에 계급이 존재하고 같은 직급에서도 위계질서가 나뉜다.

그런 환경이 당연한 듯 살아가다가도 현타가 오게 되고 지금의 상황이 신물이 나기도 한다. 지금 보다 더 높은 곳 나은 곳을 가기엔 세상은 너무 거칠고 험난해서 그냥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그런 생태계의 현실 속에서 상위 포식자에게 과감히 자신의 능력을 피력하고 싸워 이겨내는 벌꿀오소리는 윤부장님의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히어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속한 여러 생태계에서 나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집에서는? 회사에서는? 다른 조직에서는?

약 14년 전 신입 1년 차 때 퇴사를 선언하고 나를 조용히 불러 타이르던 인사과장이 물었던 질문이 생각이 난다. “여기 종이에 당신이 가지는 역할에 대해서 적어보세요~”

역할이라는 의미는 책임이었고 그 책임은 나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었다.

결국에 나는 그 자유를 놓아주고 이렇게 샐러리맨으로 14년을 넘게 일하고 있다.

이렇게 나의 자유남편의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이렇게 정신없이 보내다가는 시간이 금방 갈 텐데..

정신 똑바로 차리고 어떻게 하면 나도 벌꿀오소리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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