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012년 즈음이었다. 사원 시절 대리님을 따라 수영장에 가게 되었다. 수영이라고는 배워본 적은 없었고 그냥 눈대중으로 남들 하는 동작을 보면서 영법을 따라 했다. 그렇게 자유형과 평영만 흉내 낼 줄 알았는데 회사 선배의 수영 모임에 따라갔다가 영법을 테스트를 받고 교정을 받았다. 그냥 수영이나 한번같이 하자라고 갔는데 이상하게 회사에 수영 동호회 멤버들이라면서 함께 수영을 했다. 25미터 편도 한번 가고 나서 거칠어진 호흡과 혼미해진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데 그들은 계속 돌고 또 돌았다. 그렇게 공포스러운 수영을 마치고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바다와 강 수영 대회를 목적으로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내가 모르던 세상 속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수영장도 힘든다 야외에서 하는 수영인 오픈워터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무섭고 공포스러웠지만 그 세계가 궁금했다. 그렇게 한 번의 모임 참석으로 시작해서 시간이 될 때마다 그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두꺼운 네오프렌 소재의 스윔슈트를 입고 오리발을 끼고 물에 발을 담갔다. 생각보다 물이 차가워 당황을 했다. 물에 머리를 박고 수영을 시작한 것도 아닌데 호흡이 가파졌다. 내 의지보다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 휩쓸리듯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팔을 휘젓기 시작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공포가 밀려왔지만 그래도 자세를 취하고 팔을 서너 번 휘저었다. 하지만 공포가 여전히 나를 엄습했고 두려운 마음에 고개를 들었다. 평형으로 영법을 바꾸어 나아갔지만 속력이 나오지 않았다. 어느새 후미 그룹의 사람들이 형성이 되었다. 몇 안 되는 후미 그룹의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라이프가드에게 손을 들어 꺼내어 달라고 할까? 포기할까? 물속에서 내 스스로 나가는 것보다 포기가 더 나은 선택일 거라는 생각이 계속 내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쉬다가 가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참아가며 거리의 반을 채웠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온 게 아까워 포기보다는 전진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렇게 ‘공포 > 포기 > 참기’가 순환이 되면서 물레방아처럼 돌고 돌아 골인 지점까지 왔다.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한강물에 발을 담갔을 땐 생각보다 물이 너무 차가워 당황했다. 10년도 넘은 그때의 생각이 났다. 그렇게 공포가 나를 찾아오고 호흡이 거칠어지겠지만 나는 끝까지 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미 그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경험은 늘 그렇게 나를 단련시켜준다. 참기 힘든 공포와 힘든 순간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기억은 미화가 된다. 그렇게 다신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망각한 채 다시 도전을 하게 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생존하고 진화해왔다. 내가 도저히 넘지 못할 것만 같았던 산처럼 높은 목표라도 그 목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높이가 아닌 불안해하는 마음이다. 오늘도 차가운 한강물이 어느새 시원해지고 거친 숨이 평온해지고 팔을 쭉쭉~ 뻗어가며 글라이딩하는 유영을 하면서 자유로움과 재미를 느꼈다. 그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나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작게 시작했던 25미터 수영장에서 한강을 건너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무언가 하고 싶고 원하는 게 있다면 한 번에 한강에 뛰어들지 말고 25미터부터 간다면 원하는 그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