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신기하게도 최근에 읽었던 책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였다. 페스트의 발현으로 고립된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인간 사회의 구조와 삶의 고립과 고독에서 얻는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 재미난 건 그다음 책으로 요한 치머만의 ‘고독에 관하여’를 읽고 있었다. 요즘 들어 내가 사는 이유? 그리고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대한 물음이 답을 찾지 못하고 반복되고 있었다. 이전의 나다움은 사라지고 어느새 사회에 길들여져 외부의 요구와 눈치에 휩싸여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MBTI를 다시 해보기도 하고 독서도 관련된 쪽으로 하고 있었는데 그 답을 찾지 못했었다.
입원을 하니 정말 내가 읽던 책들 내용과 비슷한 상황을 마주할 수 있었다. 첫날은 아무 생각 없이 누워있었다. 링거를 통해 투여되는 항생제의 효과가 바로 느껴졌다. 밤마다 오한과 발열로 끙끙 앓으며 베개가 축축해지던 밤과는 달라진 걸 느꼈다. 치료가 돼가는 걸 내 몸으로 느끼고서야 비로소 마음의 안도가 되었다. “그간 고생했어 승우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어~” 오랜만에 다른 사람은 생각 없이 나만 생각하는 하룻밤이 되었고 그렇게 치유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간 내 마음에 머물던 질문들이 회복됨과 함께 다시 맴돌기 시작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재력이 있어야만 나도 가족도 돌볼 수 있다는 그간의 물질에 대한 욕심이 잠시 뒤로 멀어졌다. 나는 누구일까?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일까? 그동안의 나의 삶의 발자취를 되새김질해보았다.
항생제가 작용하면서 무기력감이 사라졌다. 시계를 항상 차고 몇 시인지를 체크하던 습관은 여전히 남아 종종 봤지만 점점 시간에 무색해졌다. 흐르는 시간을 체크하며 정해진 시각에 맞춰 굴러가던 삶에서 벗어났다. 몇 시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밥 주면 밥 먹고 시간 되면 체온과 혈압을 재는 간호사 샘들만이 대략 몇 시임을 알려주는 시계가 되었다. 그동안 내가 삶 속에서 얼마나 빠른 템포로 살았는지를 자각하게 되었다. 병원밥을 먹으면서도 그동안 회사에서 늘 5~10분 내 해치우는 식습관이 나쁘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고 모든 삶의 템포가 빠른 걸음으로 급했다. 심지어 이렇게 글을 쓰는 동안에도 마음의 여유보다는 빨리 써야 한다는 촉박함에 편한 마음이 아닌 쫓기는 마음이 상당 부분 지배하고 있다.
대학시절 차를 타고 갔던 같은 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갔을 때 그리고 자전거로 타고 갔을 때의 차이를 느낀 적이 있다. 차를 탔을 땐 빠르고 쾌적하게 목적지에 갈 수 있었지만 그 풍경을 온전히 눈에 담을 수 없었다. 오토바이로는 그 거리의 바람과 향기 풍경의 모습만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탔을 땐 그 풍경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속력과 내가 느끼는 것의 깊이가 반비례한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병원 입원실에서 보내는 주말의 한적함이 나의 내면 속은 들여다볼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