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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Apr 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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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속마음을 나누는 사람 없이 오랫동안 혼자 살았다. 6년 전 지하 실험실에서 눈을 뜨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제법 큰돈을 받고 냉동인간 실험에 참여하던 중이었다. 살아있는 금붕어를 순식간에 얼렸다가 해동으로 부활시키듯, 살아있는 인간을 냉동했다가 해동시키는 실험이었다. 나는 가족도, 친구도, 매사에 의욕도 없었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냉동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은 튜브를 따라 내 몸속으로 주입되던 약물이었다. 마치 꿈처럼 달콤한, 혹은 락스처럼 비릿한 파란색.


     그리고 캡슐 안에서 깨어났을 때 실험실에는 나 혼자 뿐이었다. 사방은 어두웠고 희미한 비상 등만 군데군데 켜져 있었다. 나는 캡슐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어안이 벙벙해서 처음에는 내가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 나는 누군가 의자에 놓아둔 흰색 가운을 몸에 걸치고 복도로 나왔다. 복도 역시 텅 비어있었고 인기척 하나 없었다. 나는 비상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올라갔다. 냉동되었던 이후로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일단 지상으로 올라가면 사정을 알 수 있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나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그것도 꽤나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듯했다. 소름 끼치도록 조용한 도시는 높이 솟은 건물들의 텅 빈 창문들을 통과하는 바람으로 인해 거대한 오르간처럼 기묘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무작정 폐허가 된 도시를 돌아다녔다. 가는 곳마다 비슷한 광경이 이어졌다. 많은 건물들이 부서지거나 무너졌다. 유리로 된 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자동차들은 어린아이가 놀다가 집어던져 놓은 듯 도로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전철은 마치 운동장에 내팽개쳐진 줄넘기 같았다.


     전쟁이 벌어졌던 게 분명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디에서도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만약 정말 전쟁이 벌어진 거라면 천지에 시체들이, 하다못해 뼛조각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모두들 어디론가 피난이라도 떠난 걸까. 아니면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진 건가?

 


     나는 무너진 폐허들을 보면서 온전했던 옛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려고 애썼다. 건물도 자동차도 내게 익숙한 모양인 걸로 봐서 전쟁은 (일단 전쟁이라고 하자) 내가 냉동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졌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폐허가 되고 난 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1년일 수도 있고 10년일 수도 있고 100년일 수도 있었다. 더 되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기운이 빠져서 반쯤 무너진 고가도로 아래 주저앉았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뗏목을 타고 있는 난파 선원보다도 더 외로운 처지였다. 망망대해라 해도 어딘가에 있을 항구와 불빛, 웃음소리를 떠올리면 사람의 두 손에는 온기가 도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세상천지 어디에도 기댈 곳 없이 오롯이 혼자였다. 그러니 해가 뜰 녘 내가 한 낯선 작은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 보라.


     “저, 내 얘기 좀 들어줘.”


     “뭐?”


     “내 얘기를 들어줘.”


     나는 벼락 맞은 것처럼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두 눈을 비비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기에는 작은 아이가 심각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두 눈이 붉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허깨비를 바라보았다. 나는 평생 인간형 로봇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살던 시대는 공식적으로는 인공지능 개발이 막 시작되던 참이었다. 하지만 냉동인간에 대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듯이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실험도 이미 완성단계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돌고 있었다.

    

     “넌, 로봇이니?”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 말하자면 그렇지.”


     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마치 그건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투였다.


     “하지만, 넌 여기서 뭘 하고 있니?”


     그것은 바보 같은 질문이었지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이기도 했다. 그는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아주 중대한 일에 대해 얘기하는 것처럼 천천히 말했다.


     “내 얘기를 들어줘.”


     “도대체 무슨 얘기를 들어 달라는 거야. 로봇에게 무슨 할 말이 있지?”


     “이 세상 모든 것들에게는 다 할 말이 있어. 사람, 동물, 식물, 그리고 사물에게도.”


     “사물도?”


     “물론이지.”


     나는 그의 얘기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문득 어렸을 때 원장님이 찢어버렸던 인형이 떠올랐다. 그 인형의 뱃속에는 하얀 솜뭉치 뿐, 이야기 같은 건 들어있지 않았다. 아니, 혹시 내가 듣지 못한 건가? 어쩌면 그 인형도 계속 내게 말을 걸고 있었을까?


     “좋아. 너에게 할 얘기가 있다면.”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내 옆에 앉았다. 이렇게 해서 나는 어린왕자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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