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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Apr 13. 2020

3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린왕자는 (그는 스스로 자신을 ‘어린왕자’라고 소개했다) 많은 말들을 했지만 대부분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지나치게 구체적이어서 이해하기 힘들었다. 감성과 이성의 구분에 대한 부조리함을 늘어놓다가 갑자기 부서진 건물 잔해의 성분을 세세하게 분석하기도 했다. 그저 무심코 하는 약간의 말들을 통해 나는 조금씩 그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영원히 살고 싶은 거야, 사람들은?”


     그는 내가 참여했던 냉동인간 실험에 대한 얘기를 듣더니 물었다.


     “가능하면 그렇지.”


     “영원히 살아서 뭘 하려고?”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사는 거지.”


     “살아가는 목적이 그냥 살아가는 거야?”


     그리고는 어린왕자가 웃었기 때문에 나는 기분이 다소 상했다. 나는 사람의 운명이 좀 더 진지하게 여겨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는 너는 왜 사는 건데?”


     내 질문에 어린왕자는 수줍게 반문했다.


     “나도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리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작동’이라는 말은 너무 무신경하게 여겨졌고, 그렇다고 ‘존재’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한데다가 실상 그것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단어였다.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막상 대답은 했지만 나는 골치가 아팠다. 그러고 보니 생명의 정의를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게 이상했다. 어쩐지 생명은 내 몸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것이 아니라, 공간적으로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까마득히 먼 어딘가에 온전히 따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직 지구에 처음 나타났던 최초의 세포만을 진정 ‘생명’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그 세포의 복제품에 불과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자신 없는 말투로 덧붙였다. 


     “하지만 생명이라면 증식을 해야 하지 않을까?”




      

     구태여 이렇게 말한 건 내가 ‘인격’과 ‘생명’을 혼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인격’과 ‘생명’, 그리고 거기에 ‘인간의 생명’이란 또 다른 것일까? 아니, 어쩌면 나는 그저 인간과 로봇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슬쩍 어린왕자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어린왕자는 딱히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아아, 맞아.”


     어린왕자는 순순히 인정했다.


     “하지만 증식하는 건 불완전하기 때문이야. 세상에 불완전함을 퍼트리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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