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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Apr 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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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살 적에 나는 인형을 좋아했다. 또래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하지만 나는 정도가 심한 편이어서 선물로 받은 인형뿐만 아니라 남들이 쓰레기통에 버린 인형들까지 몰래 주워오곤 했다. 가뜩이나 작은 내 침대는 늘어나는 인형들로 인해 늘 비좁았다. 하지만 나는 인형들과 함께 있는 게 좋았다. 그들이 다정하다고 생각했다. 





    그 무생물적 침묵을 왜 다정하다고 느꼈는지 모를 일이다.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기 때문일까? 하지만 의자도, 침대도, 커튼도 내게 상처를 주지 않지만 그것들이 다정하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짐작건대 아마도 그것들은 모두 자신만의 역할에 몰입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의자는 의자처럼 행동하느라, 침대는 침대처럼 행동하느라, 커튼은 커튼처럼 행동하느라 늘 바쁘고 무심하기 마련이니까. 사람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하지만 인형은 아무런 역할이 없다. 그러니 무슨 척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거기 있을 뿐이다. 나는 그게 좋았다. 


    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아원의 원장님은 내 취향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원장님은 내게 말했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인형은 아무 짝에도 쓸데가 없어. 너도 인형처럼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인간이 될 셈이냐.” 나는 바로 ‘쓸데가 없었기’ 때문에 인형이 좋았던 것인데, 원장님은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악덕이라고 했다. 그 누구나, 그 무엇이나 반드시 쓸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고아원의 사명이기도 했다. 쓸데없는 아이들을 쓸데 있는 어른으로 만드는 것. 


    어느 날 원장님은 무슨 일 때문인지 화가 잔뜩 나서 나를 인형들 앞으로 끌고 갔다. 그러더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형을 가져오라고 다그쳤다. 나는 일부러 가장 싫어하는 인형을 골랐다. 



    그것은 다른 어떤 인형보다 예쁘고 섬세했음에도 불구하고 입술 옆에 묻은 작은 얼룩 때문에 내 눈 밖에 난 인형이었다. 나는 그 인형을 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마지못해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참이었다. “자아, 네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알게 해 주지.” 그러더니 원장님은 다짜고짜 커터 칼로 인형 한가운데를 쭉 찢어놓았다. 갈라진 틈으로 새하얀 솜뭉치가 팝콘처럼 후두둑 터져 나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형의 몸 속 어디에도 피나 뇌, 심장이나 내장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눈부시게 깨끗한 하얀색 솜뭉치뿐이었다. 원장님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이것 봐, 이건 그냥 솜뭉치를 쑤셔 넣은 천 조각에 불과해. 똑똑히 보란 말이야.” 그래, 나도 안다. 나는 어리긴 했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것 역시 살인이 아닌가? 하나의 인격이 그저 한 개의 물건이 되어버렸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하지만 나도 더 이상 순진한 척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기분이 싹 가셔버린 것이다. 인형은 몸이 갈가리 찢기고도 여전히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입가의 얼룩이 더 크고 지저분해 보였다. 그제야 나는 인형도 의자나 침대나 커튼처럼 자신만의 역할이 있음을 알았다. 원장님은 틀렸지만 결국 옳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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