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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Jul 26. 2020

[연극] 마우스피스



연극 : 마우스피스

공연장소 : 아트원씨어터 2관

공연기간 : 2020년 7월 11일 ~ 2020년 9월 6일

관람시간 : 2020년 7월 25일 오후 3시




     사실 [마우스피스]는 지난주에 예매가 되어 있던 연극이다. 그런데 그 며칠 전에 구조한 새끼 고양이가 생사를 넘나드는 바람에 연극 관람을 펑크낼 수밖에 없었다. 궁금한 분을 위해 참고로 말하자면 그 고양이는 지금 밥을 너무 먹어서 배가 터질까 봐 뜯어말려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나는 다시 예매를 했고 이번에는 아무 방해 없이 공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서니 경사면과 사선으로 이루어진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무대가 눈에 띄었다. 경사면과 사선은 불안감과 긴장감을 조성하며 이 연극의 전체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었다. 전에 관람했던 두 편의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과 [라스트 세션]) 무대가 워낙 현실적이고 아기자기했기 때문에 간만에 시원하고 기하학적인 무대를 보니 기뻤다. 동시에 연극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졌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연극은 꽤나 괜찮을 뻔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확신하건대 연극을 본 많은 사람들이 이 연극을 괜찮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충분하지 않으며 무언가 빠져있다는 느낌, 중요한 것이 방치되었고 무시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흥미로운 주제에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접근한 데다가 꼭 필요한 깊이 있고 결정적인 한 방이 없었다. 전체적으로 세련되게 마감되었고 또 설득력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정확히 뭘 말하려는 것인가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일일이 말하자면 장황해질 것이기 때문에 내가 가장 문제라고 느꼈던 것을 두 가지 정도로 압축하자면, 하나는 여주인공에 대한 인물 해석이고, 두 번째는 주제에 대한 해석이다. 

      여주인공에 대한 인물 해석이 희곡 자체에 의한 것인지, 연출에 의한 것인지, 여배우에 의한 것인지 나는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희곡 자체의 인물 설정은 아닐 거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46살 지식인 여성을 '난 이럴 줄 몰랐어요' 하고 징징대는 15살 소녀처럼 표현했다는 건 치명적인 문제이다.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도 그렇지만 그것보다 문학점이 관점에서 더 그렇다. 이 희곡은 의도적으로 세심하게 여주인공인 [리비]와 남주인공인 [데클란]을 대비시키고 있다. 남녀라는 성차이에서부터, 소년과 어른이라는 세대차이, 빈민층과 지식인이라는 계급 차이 혹은 교육차이까지 이들 사이에 그어진 경계는 견고하고 확연하다. 그들은 '예술'을 통해 그리고 '사랑'을 통해 이 경계에 접근하지만 결국 그들은 그 경계를 무너뜨릴 수가 없는데 애초에 그들이 서로에게 매력을 느낀 것은 서로가 아니라 그 경계이기 때문이다. 마치 모든 타부가 위반을 거부하면서도 위반하도록 유혹하며 그러다 결국 더 공고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여주인공의 인물 해석은 이러한 경계를 들어내기는커녕 무력화시키고 만다. 여주인공은 마치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 나오는 맥 라이언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터프하지만 상처 받은 남자와 덤벙대지만 귀여운 여자라는 순정만화 공식을 완성하면서 그것만이 강조되는 데, 그것이 이 연극을 (솔직히 말해서) 망쳤다고 생각한다. 소년과 여자의 나이가 무려 30년씩이나 차이 나는 것에는 분명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물론 동시에 그 이상 차이가 나지 않도록 한 것에도 의미가 있는데 성적인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상한선쯤을 제시한 듯하다. 아, 그런데 혹시 배우의 실제 나이를 반영한 걸까? 뭐 그렇다고 해도 일단 보이는 데로 이해하도록 하자. 그 나이의 배우를 캐스팅한 것 자체도 결국 같은 의미를 가지니까.) 작가인 리비는 이지적이고, 냉정하며, 계산적이고, 닳고 닳은, 세상과 거리를 둘 줄 아는 성인이며, 반면 데클란은 거칠고, 무식하고, 충동적이며, 순진하고, 아직 세상과 거리를 둘 줄 모르는 소년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작가는 더 복합적이고 모순된 인물이 될 수 있고, 동시에 이 이야기 역시 복합적이고 모순된 의미를 담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두 사람의 교집합인 [순수함]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예술과 사랑이라는 순수함으로 인해 서로에게 끌리지만 실은 리비는 그 순수함을 필요로 하는 반면 데클란은 그 순수함에서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에 이미 처음부터 비극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을 다 순진하고 미숙한 어린애처럼 만들어버림으로써 모든 경계와 대비와 의미가 다 질척거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 연극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주체]와 [객체]의 문제마저도 흐지부지 되어 버리고 그저 로맨스적인 감상주의만이 남게 된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두 번째 문제점은 앞에서 언급한 여자 주인공에 대한 해석의 실패와 이어지는데, 바로 [주체]와 [객체]의 주도권 대결이 선명하게 부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이 부분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면 나는 이 연극에 푹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객체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동시에 그 객체를 이용하고 억압하는 주체의 권력 구도와 그 대립은 너무나 매력적인 주제인데, 판을 다 깔아놓고도 막상 중요한 순간에 얼버무리다니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 연극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침대에서의 실패한 정사 신이 아니라 바로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완성된 희곡을 들쳐보던 그 테이블 장면이다. 두 사람은 거기서 이야기의 권리에 대해, 주체와 객체에 대해, 주체의 전능함과 객체의 목소리에 대해, 진심에 대한 소유권에 대해, 이야기의 진실과 거짓 그리고 '이야기적'이라는 것에 대해 100분 토론이라도 해야 했다. 거기서 치열하게 '말로서' 싸우고 상처를 입히고 피를 흘리며 피투성이가 되어 팔다리가 다 잘려 나가야 했다. 적당히 그런 분위기를 풍기기는 했지만 나는 '말' '말' '말'이 더 필요했다. '마우스피스'라는 이 제목에 걸맞은 그런 치열하고 치밀한 말 말이다. 그런데 그저 시시한 치정 장면처럼 감상적으로 얼렁뚱당 넘어감으로써 이 이야기 전체가 부실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내 투정은 이쯤 해 두고 이제 진짜 이 연극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작가인 리비는 끊임없이 말한다. 

     "나는 씁니다."

     그녀는 문자화 시키지 못하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인간이다. 그녀는 언어를 먹고 언어를 마시고 언어를 소화시키고 언어를 싸는 인간이다. 그녀에게 삶은 장면이 되고, 세상은 배경이 되며, 대화는 대사가 되고, 사랑은 예술이 되고, 생명과 죽음은 오직 문장 속에만 가능하다. 그녀의 세상은 [빛이 있으라]라는 말로서 탄생한 세상이다. 작가는 마치 거미처럼 언어라는 거미줄을 치고 한가운데 앉아 모든 것을 객체로 끌어들인다. 그녀의 글 속의 등장인물은 마치 우리가 자신의 삶에서 소외되어 있는 것처럼, 나를 만드신 신에게서 소외되어 있는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에서, 그리고 작가에게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이야기 속에서 주체인 주인공이 어느 순간 자신이 철저하게 객체임을 깨달았을 때의 충격과 분노를 상상해 보자. 그는 자신이  자신의 이야기에 갇혀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하지만 그는 글에서 결코 도망칠 수가 없는데 그 글이 없으면 그에게는 목소리도, 생명도, 미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글의 결말처럼 '극적으로' 무대 위에서 죽어줄 수밖에. 그러나 깔끔하게 목을 매는 대신 온통 붉은 피를 뿌리는 것은 아마도 객체가 되어버린 인간의 최대한의 침묵의 외침이었을 것이다. 피는 모든 예술을 무력화시키며 주체와 객체와 경계를 무너뜨리니까. 그러나 대걸레질 몇 번이면 다시 무대는 말끔해지고 새로운 이야기가 올라가겠지. (이것은 세대갈등이나 계급갈등에서도 반복된다.) 

     혹평으로 시작했지만, 이상하게도, 감상을 쓰다 보니 이 연극이 좋아졌다. 장점이 점점 더 크게 느껴져서 감상을 다시 써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대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어쨌든 글을 쓰는 이상 주체는 나이고 이 연극은 객체이니 나는 아무리 엉터리 말이라도 지껄일 권리가 있다. 연극이 실제로 어떠한지는 더 이상 나에게 중요하지 않으며 진실은 각자 극장에서 확인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데클란은 외친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고. 이야기는 계속된다고. 막이 내리고 암전이 되고 모두가 극장을 떠나도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고. 그러자 잠자코 있던 리비가 말한다. [암전] 그리고 극장에는 불이 꺼진다. 박수가 터진다. 배우들이 나와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한다.  사실 연극이 끝난 뒤의 이 장면에 이 연극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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