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64년 겨울]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다. 왜 이 소설이 김승옥의 다른 소설 [무진기행]에 비해 인기나 인지도가 떨어지는지 모를 일이다. (위의 김승옥 소설 모음집 제목도 [무진기행]이 아닌가.) 내가 보기에 [무진기행]은 짐짓 잰 체하는 느낌에 허언되고도 지루했는데 말이다. 물론 '잰 채'하는 느낌은 [서울 1964년 겨울]에서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그러나 차라리 대놓고 잰 채를 하니 오히려 좋았던 것이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우선은 그 세련됨 때문에 놀랐다. 심리 표현이나 문장들이 너무 세련되게 다듬어져 있어서 자칫 글 전체가 그저 문학적 수사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말하자면 지나치게 '문학적'이거나 혹은 '작위적'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나는 그 문학적 작위성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작위성'은 집약적이고 압축적인 단편소설 자체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문학사는 잘 모르지만) 그 시절 한국 단편소설들의 전반적인 특성인 듯하다. 그러나 [서울 1964년 겨울]만큼 세련되고 현대적인 '작위성'을 보여주는 소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더 보탤 것도 더 뺄 것도 없이 단단하게 압축되어 있는 데다가 직관적이고 심리적이어서 이 소설은 나에게는 거의 시적인 느낌마저 준다. 조각난 인물들은 새벽녘 꿈속을 헤매는 것만 같고 서늘하고 불투명한 문장들 바로 뒤로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내밀한 심경들이 끈끈하게 엉겨 붙어 있다.
이 소설은 분석하면 오히려 그 직관적인 시적 감흥이 깨질 것만 같다. 그건 사실 모든 문학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미 글은 완성체로서 그리고 완결체로서 여기에 온전하게 새겨져 있는데, 말해야 하는 건 이미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말해 놓았는데, 무슨 쓸데없는 설명을 더 보태고 뺀단 말인가. 애써 이런저런 말을 거들어 보았자 처음부터 무언가가 어긋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문학에 대한 감상은 어렵다.
이 소설은 현대의 인간상을 아이콘처럼 부각시킨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부정된 아이콘이다. 도시의 사람들은 수많은 건물들, 수많은 거리들, 수많은 상점들, 수많은 골목들과 화장실들을 끊임없이 오가며 살아간다. 그러나 도시에 붙어 기생하는 포자들처럼 여기저기 퍼져있는 그들의 현존을 보장해 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 오직 자기 자신만이 자신을 증명할 뿐이며,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자신을 증명할 뿐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각자 완전한 고립 속에서 지극히 안전하고 만족스럽다. 그들은 오직 아무 상관없는 객체들과의 아주 얇은 접촉면만을 사랑하는 데 왜냐하면 아무 상관없는 객체들하고만 아주 얇게 접촉하기 때문이다.심지어 그들에게는 그것마저도 너무 과도할 지경이다. 그들에게는 오직 자기 자신이 서있을 만큼의 정확한 공간 안에 오직 자기 자신만 쓸 만큼의 정확한 산소를 가지고 있다. 때때로 그들도 타인과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서로가 너무 멀고 단단해서 진심은 서로에게 닿기도 전에 증발해 버리고 만다. 차라리 거짓말이 진심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상대방에게 가닿음으로써 거짓말은 일면 숭고해진다. 과연 거짓말은 말하는 사람에게서 기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듣는 사람에게서 기원하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일종의 합의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진심'이라고 부를 만한 내용이 그들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들의 거짓말은 실은 거짓말이 아니다. 모든 상호성과 상대성을 상실한 그것은 그저 아무것도 아니다. 빈털털이, 빈 껍데기다. 그런데도 그들은 오래된 습관이나 관습처럼 접촉을, 대화를, 교환을, 공감을 - 거의 아무런 기대도 노력도 없이, 혹은 그것을 막을 아무런 능력도 힘도 없이 - 시도한다. 하지만 거짓도 진심도 없다면 과연 무엇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걸까. 결국 그들은 그저 찰나에 대해서만, 아직 오염되지 않은, 아직 거짓도 진심도 아닌, 아직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는 순간적이고 영구한 실존적 찰나에 대해서만 대화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대화는 참으로 순수하다. 아마도 그것이 문제일 것이다.
이들의 발을 잡으려고 기어 오던 개미는 죽은 남자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다. 세계가 너무 넓은 건지, 아니면 자신이 너무 작은 건지, 개미는 대답할 수가 없다. 개미는 결코 길을 잃지 않는데 언제나 내려다보면 단 한 점 위에 제대로 서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읽을 때마다 즐겁다. 이 번에 읽을 때는 책 외판원 남자가 유독 내 흥미를 끌었다. 그 역시 다른 두 남자들과 다름없는 철저한 현대인이다. 다만 고장이 났을 뿐이다. 의심하면 고장이 난다. 고장이 나면 길을 잃는다. 길을 잃으면 추락한다. 하지만 그 역시 너무나 흔한 일이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