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애주의자 (2)

by 곡도



이렇게 용의주도하게 살인을 계획하고 또 그런 자신에게 치를 떨기를 몇 달여 간 반복하고 나서, 정호는 마침내 누군가를 죽여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건 정호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셈이었고 그 골목에는 오직 단 하나의 출입구만이 있었다. 살해 대상은 역시 어린아이가 적당하다고 정호는 판단했다. 어린애가 납치하거나 해치우기에 간편했고, 또 - 이상한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 어른을 상대할 때보다 죄의식도 덜 할 것 같았다. 게다가 길거리에는 어디나 아이들이 넘쳐나고 있으니 찾으러 헤맬 필요도 없었다. 처음에 정호는 거리를 떠돌며 구걸하고 다니는 아이를 대상으로 고려했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은 더럽고, 냄새나고, 불행에 익숙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혹여나 자신의 동정심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을까 싶어 내키지 않았다. 결국 정호는 위험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 아이를, 큰 고민 없이 한가하게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 중에서 한 명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죽음이나, 불행, 공포라고는 전혀 모르던 아이에게 이것은 정호 자신에게만큼이나 새롭고 놀라운 경험이 될 것이다.

며칠 뒤 정오가 막 지났을 무렵, 정호는 자신의 집에서 40분가량 떨어져 있는 구의동으로 차를 몰았다. 구의동은 예전에 가까운 친구가 살아서 익숙한 곳이었다. 골목이 많은 데다가 낮에는 한적한 동네여서 아이를 납치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무엇보다 동작구인 그의 집과는 거리가 멀어서 인근부터 조사하기 마련인 경찰 수사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그는 미리 점찍어 두었던 초등학교 근방에 차를 세웠다.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곳이었다. CCTV 위치 정도야 인터넷으로 쉽게 검색할 수 있었다. 그는 회색 야구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차 밖으로 나왔다. 혹여 자신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이 없나 둘러보았지만 모두 무심코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곳인 것 같았다. 그는 학교 담장 위로 드리워진 은행나무 그늘 밑에 서서 학생들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오후 1시가 되자 저학년 아이들이 교문 밖으로 삼삼오오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이름이 쓰여 있는 책가방을 찾기 위해 아이들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는 곧 한 여자 아이의 가방에서 큼지막한 이름을 발견했다. ‘1학년 3반 이미란.’ 아이의 연보라색 원피스와 볼록한 이마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가 막 따라나서려는 찰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뛰어와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 사라져 버렸다.

하는 수 없이 정호는 다른 아이를 물색하기 위해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 한 남자아이가 정호 앞을 성큼성큼 뛰어가며 그의 주의를 끌었다. 파워레인저 마크가 큼직하게 붙어있는 곤색 가방에는 아이의 이름이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2학년 1반 유한수.’ 짧게 깎은 머리에 밝은 겨자색 조끼를 입은 통통한 얼굴의 남자아이였다. 한수는 친구들과 교문 앞 문방구를 기웃거리기도 하고, 그 옆 구멍가게에 들러 땅콩 캐러멜을 사 먹으며 어물거리다가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정호는 가만히 한수의 뒤를 밟았다. 그러나 걸음이 느리고 보폭이 좁은 아이를 성인 남자가 거리를 유지하며 뒤쫓는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그는 중간중간 멈춰 서서 쇼윈도를 들여다보거나 핸드폰을 확인하는 척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그뿐 아니라 주차해 놓은 차와 점점 멀어지는 것도 불안한 일이었다. 이래서야 아이에게 성공적으로 접근한다 해도 아이를 차까지 데려가는 건 위험천만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한수는 길가에 있는 한 학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간판에는 [솔로몬 English School]이라고 쓰여 있었다. 정호는 차를 가지고 돌아와 학원 근처에 주차해놓고 한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1시간이 지나도록 한수는 나오지 않았고 정호는 점점 초조해졌다. 배송할 물건을 가지러 택배 기사가 방문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난밤사이에 주문 들어온 물건들은 아침에 미리 포장해 놓았지만 오늘 오전에 주문 들어온 물건들도 택배 기사가 오기 전에 포장을 마쳐야 했다. 시계를 보니 늦어도 30분 안에는 출발해야 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서 포기하고 돌아서야 하나 한숨짓고 있을 때 마침 한수가 아이들과 우르르 섞여 모습을 나타냈다. 다른 아이들과 몰려가면 어쩌나 정호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한수는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혼자 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정호는 한수가 10m 정도 앞서 가기를 기다렸다가 차를 출발시켰다. 그러나 2, 3 미터도 못 가서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차를 천천히 몰면서 아이 뒤를 쫓는 건 ‘나 납치범이오.’하고 광고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다고 걸어서 쫓자니 다시 차로 돌아오기 곤란할 테고……. 정호는 쌍욕을 내뱉으며 운전대를 움켜쥐었다. 계획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한수는 길가를 따라 50m 정도 걸어가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골목길로 사라졌다. 정호는 그제야 차를 몰고 한수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큰 기대는 갖지 않았다. 만약 한수가 들어선 골목길이 - 대부분의 골목길들이 그렇듯 -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면 한수를 찾을 방법은 없었다. 또 설사 한수와 골목길에서 마주친다 해도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영 틀린 셈이었다. 정호가 골목길로 꺾어 들어가자 어른 키만 한 붉은 벽돌담이 이어지는 좁은 길이 나오고 그 중간에 한수가 보조가방을 빙빙 돌리며 발을 구르고 있었다. 아이는 땅바닥에 있는 무언가를 발로 짓이기는 데 열중해 있었다. 정호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골목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CCTV도 없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전봇대 그림자가 군데군데 드리워진 골목길은 적적하기만 했다. 정호는 자신의 행운에 놀라 소름이 끼쳤다. 평생 이렇게 운이 좋았던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정호는 차를 한수 옆에 바짝 세웠다.

“한수, 너 여기 있었구나?”

정호는 옆 창문을 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나 누가 볼까 싶어 차에서 내리지는 않았다.

“누구세요?”

아이는 처음 보는 남자가 다짜고짜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매우 놀란 듯 움츠려 들었다.

“어, 기억 안 나니? 저번에 우리 인사했었는데. 나, 네 아빠 친구잖아.”

고전적인 방법이긴 했지만 여전히 제일 그럴듯한 방법이었다. 아이는 쭈뼛거리며 마지못해 인사했다.

“너희 아빠가 너 영어 학원에 있을 거라고 해서 갔었는데 벌써 나갔다더라. 지금 너 찾으러 가던 길이야.”

천연덕스러운 정호의 거짓말에 아이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네, 이제 속셈 학원에 가야 되는데.”

“그래, 그래. 너희 아빠가 너 영어 학원에 없으면 속셈 학원에 가보라고 했어. 그런데 너 오늘 속셈 학원 안 가도 돼. 아빠 친구들하고 너희 가족하고 다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기로 했거든. 아저씨 회사가 이 근처라서 너희 아빠가 너 데리고 오라고 아저씨 보낸 거야. 니 엄마 아빠는 식당으로 바로 온다고 했어.”

정호는 한수가 영악하게도 아빠 이름을 말해보라고 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한수는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모양이었다.

“지금 바로요?”

“지금 바로 가야 돼. 속셈 학원에는 네 엄마가 전화해 놓겠다고 하셨어. 자, 빨리 타. 조금 있으면 차 막혀서 늦어.”

한수는 조금 머뭇거리는 것 같았지만 그건 의심 때문이 아니라 쑥스러움 때문이었다. 아이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일과를 그토록 자세히 알고 있는 ‘아빠 친구’를 의심하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한수는 차 문을 열더니 얌전히 뒷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탕’ 소리가 나게 차 문을 닫았다. 그것이 신호인 것처럼 그때부터 정호의 가슴은 세차게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정말로 아이가 자신의 차에 타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일이 벌어진 것이다. 불연 듯 그의 가슴 한켠이 먹먹하게 아려왔다. 정호는 슬쩍 고개를 돌려 한수를 바라보았다. 한수는 정호가 차 시트와 바닥에 미리 깔아놓았던 비닐에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가방에서 책 하나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아빠 친구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자, 그럼 갈까?”

정호는 허락이라도 받듯이 한수에게 물었다. 한수는 분명한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것처럼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정호는 혹시 접촉사고라도 나서 모든 걸 망쳐버리는 코미디 같은 일이 일어날까봐 조심하면서, 또 속도 감시 카메라에 찍히지 않도록 규정 속도도 착실히 지키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비닐을 깔아놓은 지하실 창고로 아이를 끌고 가서 스타킹으로 재갈을 물리고 접착테이프로 팔과 다리를 꽁꽁 둘러 캐비닛 문고리에 묶어 놓는 과정은 마치 꿈속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다. 마지막으로 차에 깔아 놓았던 비닐을 벗겨내 쓰레기봉투에 넣고 멀찍이 내다 버렸을 때는 그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택배 기사가 물건들을 가지고 돌아간 후, 밤이 깊어질 때까지 정호는 방에서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잠시라도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그는 자꾸만 발밑으로 귀를 기울였다. 고작 그의 허리께에 오는 작은 아이가 점점 거인처럼 부풀어 올라 비좁은 창고를 꽉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장롱만한 눈이 뒤굴거리며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상상을 하면서 정호는 자꾸만 발을 굴렀다. 그는 어떻게든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특별히 당황스럽거나 혼란스러운 건 아니었다. 충분히 침착하고 냉정한데도 더 침착하고 냉정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떠올려 보았다. 차를 몰고 건너던 잠실 대교, 은행나무가 우거진 교정, 조잘대며 뛰어가는 아이들, 연보라색 원피스의 소녀, 반짝이는 파워레인저 마크, 커다란 창문이 있는 영어 학원, 그 영어 학원 간판에 English라고 쓰여 있던 하얀색 필체, 한수가 걸어가던 골목의 붉은 벽돌담, 물이 샌다고 소리치는 여자의 어렴풋한 고함소리, 들썩이는 겨자색 어깨,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하는 한수의 얼굴, 한수가 읽던 동화책의 악어 그림, 물결처럼 출렁이는 비닐의 광택, 아이의 입에 물려있는 커피색 스타킹, 그 스타킹을 잘근잘근 씹는 자그마한 이빨들, 그 모든 게 하나도 빠지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났다. 정말이지 일이 이렇게까지 되다니,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마치 바닥에 그어진 금과 같아서 마음만 먹으면 한걸음에 넘어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하지만 볼일을 마치고 뒤돌아봤을 때도 그것은 여전히 바닥에 그어진 금에 불과할까. 어느새 하늘 높이 솟아오른 견고한 벽이 되어있거나, 더 심각하게도 아예 금이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한 없이 넓어졌거나 한 없이 좁아졌기 때문에?

어쨌거나 일은 벌어졌고 아직 뒤돌아 볼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정호는 질질 끌 것 없이 오늘 안에 처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시체는 큰 검정 비닐봉투에 넣어 땅에 파묻어 버릴 작정이었다. 그는 이미 며칠 전부터 차를 몰고 다니며 장소를 물색했고 파주에서 적당한 곳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야트막한 야산이었는데 예전에 군인들이 참호를 파느라 만들어 놓은 구덩이들이 많아 시체를 유기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산 중턱, 커다란 소나무가 쓰러져 있는 바위 뒤에서 적당한 구덩이도 점찍어 놓았다. 시체를 그리로 던져 넣고 옆에 널려 있는 돌멩이들로 구멍을 메운 후 흙을 덮어 놓으면 감쪽같을 것이다. 적어도 몇 년 안에는 발견될 리 없었고, 그 후에는 발견된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을 정호는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를 어떻게 죽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곰곰이 따져본 결과 선택은 세 가지 중 하나였다. 첫째, 목을 조르거나, 둘째, 둔기로 치거나, 셋째, 칼을 사용하거나……. 물에 넣어 익사시킬 수도 있었지만 창고에서 시행하기엔 다소 번잡스러워 일찌감치 배제되었다. 그리고 둔기를 사용하는 방법도 곧 제외시켰다. 피가 사방에 튈까봐 염려되었던 것이다. 특히 스타킹에라도 묻으면 큰일이었다. 그렇다면 목을 조를 것인가, 칼을 쓸 것인가, 양단간의 결정이었다. 1시간 남짓을 끙끙대며 고민한 끝에 정호는 칼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딱히 피를 보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자신이 피를 두려워하는 건 아닌지 의심을 떨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새벽 3시가 되자 정호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싱크대 서랍에서 커다란 식칼 하나를 빼어 들었다. 칼의 묵직한 무게감과 시퍼렇게 빛나는 날의 선명함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실적이어서 그는 잠시 넋을 잃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수없이 보아 오고 사용해 오던 칼이었지만 이제야 칼의 정체를 깨달은 것 같았다. 그는 칼을 위에서 아래로 두어 번 휘둘러보았다. 썩 잔인하고 의기양양한 기분이었다. 그는 칼을 신문지에 둘둘 말아 들고 지하실 창고로 내려갔다. 불도 켜지 않은 캄캄한 층계를 돌아내려 가자니 이미 한수가 죽어있을 것 같은 괴이한 의심이 그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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