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애주의자 (3) - 완결

by 곡도




하지만 한수는 - 물론 - 죽지 않았다. 창고 문을 열고 불을 켜자 캐비닛에 매달려있는 한수가 새하얗게 그의 눈에 들어왔다. 두 눈은 퉁퉁 부어있고 붉게 달아오른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바지에는 오줌을 지려서 바닥까지 흥건했다. 정호는 비릿한 악취에 얼굴을 찌푸렸다. 중간에 잠깐 내려와서 화장실에 데려갈 걸. 그는 창고 구석에 있는 대걸레로 손을 뻗다가 그만두었다. 바닥에는 비닐이 단단히 깔려있었고 어차피 곧 피로 뒤덮일 터였다.

정호는 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가 아이 앞에 앉았다. 한수는 고개를 숙인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눈물과 침이 뒤섞여서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정호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차려다가 꾹 참고 한수의 입에 물려있는 스타킹 재갈을 풀어 주었다. 한수는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두 어 번 크게 숨을 몰아쉬더니 이내 숨소리를 죽이고 흐느꼈다.

“엄마 아빠한테 갈래요.”

한수의 철없는 말이 정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지금쯤 한수를 기다리며 속을 태우고 있을 한수의 부모에게도 생각이 미쳤다. 내일 날이 밝으면 그들은 자신의 아이가 이미 죽었는지도 모르고 아이의 사진이 박힌 전단지를 돌리며 사방을 헤맬 것이다. 어쩌면 지나가는 정호에게도 그 전단지를 쥐어주면서 “어디서 이 아이를 본 적이 없나요”하고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얼굴도 모르는 그들의 고통이 전해져와 정호는 가슴이 미어졌다. 그 부모를 위해서, 그리고 부모와 한수가 다시 포옹하는 그 따듯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위해서 한수를 그냥 돌려보내줄까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나. 또 다른 아이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아이에게도 부모나 가족이 있을 것이다. 결국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셈이었다. 게다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한수는 정호에게 있어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사히 보내 준다면 한수는 다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아이를 놓아주는 것과 죽이는 것에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는가?

그는 자신의 숨소리에 집중하면서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손에 쥐고 있는 신문지 안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잠시 후 어떤 짓을 하려고 하는지를 타인처럼 직시해 보았다. 그러자 긴장이 풀리고 어느새 그의 천성적인 명랑함이 되살아났다. 그렇다고 그의 도덕관념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심지어 약해지지도 않았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인다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극악한 짓이라는 걸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똑똑히 인식하고 있었다. 괴롭고, 미안하고, 두려운 마음 또한 그의 가슴속에 가득했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극악하다’라는 말 속에서 인간의 모든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집에 갈래요.”

한수는 다시 한 번 쥐어짜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 집에 못가.”

정호는 최대한 부드럽게 대답했다.

“왜요?”

“넌 죽을 거니까.”

이 말은 어쩐지 낯간지러웠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솔직하게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요?”

한수는 ‘죽는다’는 말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되물었다. 오히려 정호의 친절한 말투에 조금 긴장이 풀어진 듯 했다.

“아저씨가 너를 꼭 죽여야 될 일이 있어서 그래.”

정호는 미안하다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이런 일을 해놓고 미안하다니, 마치 상대방을 조롱하는 것 같지 않은가. 한수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프겠지만, 아저씨가 빨리 끝내 줄께.”

달래듯이 말하며 정호는 신문지 뭉치를 꼭 쥐었다. 그러자 한수가 으아악 울음을 터트렸다. 아프다는 말에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요란한 울음소리에 잠시 정호가 머뭇거리는 사이 한수는 울음을 삼키며 정호에게 애걸했다.

“아저씨,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앞으로 착한 아이가 될게요. 엄마 말씀 잘 듣고, 친구들하고 싸우지도 않을 거구요, 공부도 열심히 할게요.”

그러나 오히려 역효과였다. 정호는 어린아이인 척 하는 어린아이를 싫어했다. 그것은 구태의연할 뿐만 아니라 그저 얕고도 약은 꾀였다. 그는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한 번에 목을 찔러야지, 그리고도 죽지 않으면 가슴을 한 번 더, 그는 그렇게 되뇌며 칼자루에 손을 댔다.

“그리고, 병아리도 죽이지 않을게요.”

그 순간 정호는 잔뜩 힘이 들어갔던 손을 멈추고 한수를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뭐라고?”

정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가 다시 큰 소리로 물었다.

“병아리라고 했니?”

“예.”

“병아리를 죽였어? 네가?”

“네에.”

“일부러?”

“네.”

“몇 마리나?”

“작년에 4마리. 그리고 저번에 7마리요.”

정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을 더듬었다.

“어떻게?”

“저기, 옥상에서 밑으로 던지기도 하고, 벽에 던지기도 하고, 손에 꽉 쥐어서, 숨 막히게 해서 죽이기도 하고. 물에 빠뜨린 적도 있고, 그리고 그 때는 발로 밟아서…….”

정호는 어안이 벙벙했다. 도대체 이 아이는 누구란 말인가?

“왜?”

“그냥요. 잘못했어요.”

아이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시 울음을 터트리려 했다.

“아냐. 아저씨가 혼내려는 거 아냐. 그냥 알고 싶어서 그래. 왜 그랬니?”

“그냥, 궁금해서요.”

“뭐가?”

“죽이면, 기분이 어떤지요.”

정호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애써 참으며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 죽이니까, 어땠어?”

한수는 정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자신이 시험에 들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운 모양이었다.

“혼내지 않을 테니까 솔직하게 말해 봐. 병아리 죽일 때, 어땠니?”

“그게, 저, 재밌었어요.”

정호는 눈꺼풀을 치켜뜨며 찡그리듯 웃었다.

“그래? 그래, 그리고?”

“불쌍했어요.”

“그리고?”

“내가, 힘 센 거인이 된 것 같았어요.”

“그리고?”

“무언가 좀, 이상했어요.”

“그리고, 그 다음엔?”

한수는 우물쭈물하다가 대답했다.

“그런데, 죽이고 나니까, 시시했어요.”

정호는 와락 울음이 터졌다. 그는 어쩔 줄 모르다가 결국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었다. 눈물은 계속해서 쏟아졌다. 정호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목이 멘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그래, 그런데, 시시한데, 왜 계속 병아리를 죽였니?”

그러자 한수도 덩달아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딸꾹질을 하며 띄엄띄엄 대답했다.

“내가, 죽이지 않아도, 어차피 언젠가는, 죽을 거라서.”

어쩌면 정말로 질 드 레를 이해하고 있었던 쪽은 이 아이였는지도 모른다고 정호는 생각했다. 어차피 죽어야만 하는 사람들이기에 질 드 레는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을 죽이는 행위만큼이나 죽이지 않는 행위 역시 잔인하고 냉담한 것이니까.

[나는 단지 힘을 원했습니다. 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포함해서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하고 살인한 죄로 체포되었을 때, 질 드 레는 이렇게 증언했다고 한다. 이것이야 말로 질 드 레의 진실한 고백이었을 거라고 정호는 확신했다. 그 모든 희생과 여정의 마지막 순간에도 '나는 힘을 가졌다'라고는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모든 걸 정호 자신도 알고 있었는데 어째서 여기까지 온 걸까. 한 치도 더 나아갈 곳이란 없다는 뻔한 사실을 왜 모른 척하려고 했을까. 그는 가슴이 벅차올라 와락 한수를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한수의 땀 냄새와 오줌 냄새를 맡으며 어쩌면 이것이 피냄새보다 더 흥미로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한수를 품에 안고 있던 정호는 불쑥 신문지에서 칼을 빼내 한수의 턱 밑에 갖다 댔다. 칼끝에 새빨간 피가 맺히더니 금세 정호의 손목을 타고 주루룩 흘러내렸다.

“잘 들어. 한번만 더 병아리를 죽이면, 아저씨가 다시 찾아가서 너도 똑같이 죽여 버릴 거야. 알았니?”

정호는 피시식 튀어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말했지만, 한수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새까만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새벽, 정호는 정신을 잃고 열이 펄펄 끓는 한수를 잠실 대교 근처 길가에 놓아두고 돌아왔다. 자신의 얼굴을 본 한수를 살려 보내는 게 찜찜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경찰이 한수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거라곤 고작해야 만화 캐릭터에 가까운 몽타주 한 장이 다일 터였다.

그날부터 며칠 동안 신문이며 텔레비전은 온통 한수 얘기로 시끄러웠다. 왜 납치범이 하루 만에 아이를 풀어 주었는지, 도대체 범인이 누군지, 사람들은 제각기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았지만 사실과 비슷한 건 하나도 없었다. 병아리를 죽였다는 이유로 범인이 자신을 납치했으며 다시는 병아리를 죽이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나서야 풀어주었다는 한수의 증언 때문에 사건은 더 혼선을 거듭했다. 결국 아무도 한수의 말을 믿지 않았고 정신과 의사들은 한수가 정신적인 쇼크로 인한 망상 장애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따위의 결론을 내렸다. 나흘 뒤 신문에는 한수 엄마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한수를 무사히 돌려보내준 것만으로도 범인에게 감사한다는 요지였다. 정호는 그 구절을 읽자마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평생 그렇게 크게 웃어 본적이 없을 정도였다. 인터뷰 기사 옆에는 병실 침대에 앉아있는 한수와 곁에 앉아 간호하고 있는 어머니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려 있었다. 한수의 얼굴에는 모자이크 처리가 돼있었지만 한수의 무릎을 두 손으로 맞잡고 있는 한수의 어머니는 기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다정한 얼굴이어서 한수를 보내주길 잘했다고 정호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그는 한수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자이크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마치 조각난 무늬들을 다시 조합해서 한수의 얼굴을 떠올려 보려는 듯 했다. 그러다 불현듯, 한 10년 쯤 뒤에 한수를 보러가는 것도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수는 자신을 기억할까? 과연 어떤 사람이 돼있을까? 정호는 빙그레 미소를 짓고는 신문을 옆으로 던져 놓고 부지런히 스타킹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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