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밤 (2)

by 곡도




그때, 어깨와 가슴이 보랏빛으로 번쩍이는 여자가 커다란 접시를 두 손에 받쳐 들고 그들에게 다가온다. 이 주점의 주인인 경혜다. 굵게 다섯 갈래로 웨이브 진 머리카락을 어깨 위로 늘어뜨리고 진보라색 블라우스와 프릴 장식이 풍성한 은색 치마를 입었다. 50이 다 된 그녀의 나이를 고려할 때 상대방이 부끄러워질 법한 옷차림이다. 심지어 눈두덩이와 입술의 색조마저 보라색이어서 눈을 마주치면 웃음이 터지기 쉽다. 블라우스의 보라색 광채가 노란 전등 빛에 반사되어 그녀의 둥글넓적한 얼굴이 회색빛으로 번들거린다.

“모두 오랜만이야. 왜 그렇게 발걸음이 뜸했데?”

“아, 엄마, 잘 계셨어요?”

가게에 오는 손님들은 모두 경혜를 ‘엄마’라고 부른다. 심지어 마흔이 넘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 애칭의 유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 외국 영화에서 보고 따라들 하는 거라고 현정이 비꼰 적이 있다.

“자, 이거 오랜만에 온 기념으로 주는 서비스야. 실은 방금 손님이 시켜놓고 취소한 건데, 어차피 만든 거니까 누구라도 먹는 게 좋지.”

그녀는 사과, 파인애플, 포도, 키위 등이 가지런히 담긴 과일 접시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활짝 웃는다. 그 바람에 새하얀 이빨뿐만 아니라 분홍색 잇몸까지 훤히 드러난다. 뜻하지 않은 횡재에 모두 환호성을 올리며 경혜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다. 그러나 인사가 충분히 오간 뒤에도 그녀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흐뭇한 미소 사이로 여전히 하얀 이빨이 반짝인다.

“블라우스가 예쁘네요. 진짜 보라색을 좋아하시나 봐요.”

보다 못한 지영이 결국 말을 건넨다.

“응, 난 보라색이 좋아. 너무너무 좋아. 내가 보라색에 집착한다고 다들 뭐라고들 하지만 좋아 죽겠는데 어쩌겠어. 신비로운 색이잖아.”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이코 아니면 천재라던데요?”

현정의 농담에 경혜가 가장 큰 소리로 웃는다.

“어머, 난 천재는 아니니까 그럼 사이코인 건가? 하긴 내가 좀 또라이 같은 구석이 있지.”

그녀는 일부러 큰 소리로 떠벌리며 알아달라는 듯 주변을 돌아본다.

“요즘 장사는 어떠세요?”

수미가 묻는다.

“아유, 뭐 그렇지. 경기가 안 좋으니까 우리도 타격이 있어. 여자들은 술값, 안주값부터 아끼니까 말이야. 그나저나 자기는 요즘 부동산 일이 어때?”

경혜가 지영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려놓는다. 자신이 부동산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걸 그녀가 어떻게 알았는지 지영은 의아하다.

“뭐, 좋지 않아요. 불경기가 오래됐잖아요.”

“그렇지? 그래도 그런 때일수록 믿을 만한 건 역시 땅뿐이라고들 하잖아? 저기, 그래서 말인데, 내가 양평에 땅을 좀 살까 하는데, 언제 시간 되면 나하고 같이 가줄래? 내가 부동산 쪽에는 영 젬병이라서 말이야.”

“글쎄요. 저도 땅은 잘 몰라요. 상가 전문이라. 그렇지만 뭐, 정 필요하시면 나중에 시간을 내볼게요.”

당황한 지영이 입술을 오물거리는 걸 보면서 경혜는 싱긋 미소 짓는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지영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다.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몇 초가 흐른다.

그때 주점 문이 빼꼼히 열리며 한 여자가 안으로 들어선다. 무슨 큰 소리를 낸 것도 아닌데 주점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그녀에게 쏠린다. 다름 아니라 그녀가 지팡이를 짚은 채 다리를 절면서 들어왔기 때문이다. 20대 중반, 적어도 서른은 넘기지 않은 듯한 여자는 칼라가 넓은 황색 롱코트에 통이 넉넉한 짙은 회색 바지를 입고 머리는 반듯하게 하나로 모아 뒤로 묶었다. 뻣뻣한 얼굴로 입은 꼭 다물었는데 검은 눈동자가 흰자위 한가운데 단단히 고정돼있어서 사람이 어딘가 좀 모자라 보인다. 그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숙이고 절룩거리며 홀을 가로지른다. 발을 옮길 때마다 기묘한 모양으로 휘어지는 오른쪽 다리가 바지 주름 밑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녀가 걸어가는 내내 현정은 자신도 모르게 왼쪽 발가락을 꼼지락 거린다. 황색 코트의 여자는 바 테이블 빈자리에 앉는다.

“저거 봐.”

수미가 황색 코트의 여자를 턱으로 가리킨다.

“그러게.”

지영도 입맛을 다신다.

“아, 쟤 말이야? 요새 매일 오고 있어. 한 일주일 됐지.”

경혜가 윤기 있는 목소리로 속삭인다.

“그래요? 매일 혼자요?”

그제서야 현정이 흥미를 보인다.

“그래, 매일 혼자.”

웃고 싶지만 웃기는 좀 미안한지 거의 울상을 짓는 표정으로 경혜가 대답한다. 그리고 쉬익 하는 숨소리를 내며 속삭인다.

“누굴 기다리는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저렇게 앉아서 곁눈질로 주변을 흘긋거리며 쳐다봐. 내가 말을 좀 걸어 봤는데 영 숙맥인 것 같더라고. 저런 애들이야 여기에 왜 왔는지 뻔하잖아. 그런데 누가 관심을 가져줘야 말이지. 일주일 내내 저렇게 혼자 앉아 있다가 자정이 다 돼서야 돌아간다니까.”

“안됐네.”

지영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다.

“안될 게 뭐 있어? 누구나 저런 때가 있는 거지.”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현정의 태도에 수미가 발끈한다.

“몰라서 그래? 백날 저 자리에 앉아있어 봤자 아무도 말을 걸지 않을 걸? 말을 건다 해도 그건 관심이 아니라 동정이나 호기심이겠지. 놀림거리 밖에 안 될 거야.”

수미는 딱 잘라 결론을 짓는다. 말의 내용과는 다르게 마치 그게 저 여자 탓이라는 듯 매서운 말투다. 현정은 다시 황색 코트의 여자를 쳐다본다. 여자는 노란색 칵테일을 마시며 슬쩍슬쩍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마치 누군가에게 혼나러 나온 사람처럼 주눅 든 표정이다. 현정은 그녀의 다리를 바라본다. 자리에 앉자 비스듬한 양쪽 다리의 비대칭이 더욱 두드러진다. 오른쪽 허벅지가 그 위에 올려진 오른쪽 팔뚝보다 더 가늘어 보인다. 그렇게 문득 고개를 들던 현정은 그만 황색 코트의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여자는 당황했는지 노골적으로 고개를 돌려버리고 현정도 머쓱해져서 재빨리 자세를 바로 한다.

“어머, 내가 너무 오래 있었네. 오랜만에 보니까 반가워서. 자, 그럼 나는 그만 가볼 테니까 재미있게 놀아. 있다가 시간 나면 또 놀러 올게.”

경혜는 호쾌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카운터로 돌아간다. 그녀가 가고 나자 모두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눈을 깜빡인다. 자욱했던 보라색 안개가 물러간 듯 눈앞이 밝아진다.

“야야, 아무래도 엄마가 널 좋아하는 것 같은데?”

경혜가 멀어지자마자 현정이 지영에게 히득거리며 속삭인다.

“무슨 소리야.”

지영이 코를 찡긋거린다. 하지만 현정은 물러서지 않는다.

“지금 봤잖아. 엄마가 너 쳐다보는 거. 꽤나 노골적이던데?”

“지금 엄마한테는 애인이 있잖아. 그 뚱뚱한 여자. 머리를 운동선수처럼 빡빡 깎았던.”

“뭐 사이가 별로인가 보지. 그동안 헤어졌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엄마하고 잘해봐.” 수미도 눈썹을 씰룩거리며 장단을 맞춘다.

“무엇보다 엄마가 엄청 부자라는 소문이 있어. 아까도 은근히 돈 자랑하는 거 봤잖아. 잘 보여서 엄마 호적에라도 들어가면 대박 나는 거야.”

“그럼 엄마가 진짜 엄마가 되는 거네?”

두 사람은 함께 머리를 조아리며 낄낄거린다. 지영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사과 한쪽을 우적우적 씹는다. 시큼하고 달달한 맛에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지영은 사과 조각을 억지로 삼키고는 떨떠름하게 말한다.

“흉보려는 건 아니지만, 엄마는 꼭 퀴어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 같아. 레즈비언 퀴어 영화가 아니라 게이 퀴어 영화 말이야. 게이 영화에 보면 저렇게 엄마 같이 차려입은 여장남자가 꼭 하나씩은 나온단 말이야.”

“그건 맞는 말이야. 특히 화장이 비슷하잖아.”

“어쩌면 엄마는 진짜 여장남자인지도 몰라.”

결국 세 사람은 왁자하게 웃음을 터트린다. 그 바람에 몇몇 사람들이 그들을 쳐다본다. 황색 코트의 여자도 곁눈질로 슬쩍 넘겨본다.

웃음이 잦아들자 조금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지영이 정색을 한다.

“아아, 너무 그러진 말자. 그래도 난 엄마를 존경해. 그 옛날 스무 살에 커밍아웃해서 지금까지 당당하게 레즈비언으로 사는 분이잖아. 좀 독특하긴 해도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해.”

“맞아. 그렇긴 하지.”

현정도 순순히 동의한다.

“뭐어, 그건 그렇지만…….”

수미가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술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지영과 현정의 눈동자가 그녀의 가느다란 손끝에 매달린 미끈한 유리컵을 따라 움직인다.

“그런데 나이 든 레즈비언이란 거, 좀 그렇지 않아?”

수미가 입맛을 다시며 말한다.

“뭐?”

“솔직히, 좀, 구질구질해 보이잖아.”

“구질구질?”

지영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나이 드는 게 그런 거지 뭐. 너도 나이 들면 별 수 있어?”

현정도 수미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노려본다.

“글쎄. 난 모르겠어. 나이 드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뭐랄까. 저 나이가 될 때까지 계속 여자를 만난다는 건 좀 그렇잖아? 엄마뻘 되는 여자들이 서로 수작 떠는 걸 상상해봐.”

“그게 무슨 소리야?”

지영은 속이 뒤틀리는 걸 간신히 참으며 말한다. 하지만 수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초록색 키위를 입안에 넣고 우물거린다.

“상상해 보라고.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가슴도 처지고, 배도 나온 중년의 아줌마 둘이 침대에서 엉기는 모습을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난 말이지, 동성애는 젊을 때나 하는 거라고 생각해.”

“뭐?”

이번에는 현정과 지영이 동시에 외친다. 그들의 반응에 수미도 조금 움찔한 눈치지만 여전히 순진한 표정이다. 솔직한 건 죄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아니, 진심이야?”

현정이 입 꼬리를 올리며, 그러나 웃는 걸로는 보이지 않는 얼굴로 묻는다.

“진심이야. 난 나이 들면 레즈비언 안 할 거야. 깔끔하게 은퇴할 거야. 자, 봐봐. 주변을 좀 둘러보라고. 나이 든 사람들은 거의 없잖아. 20년 전, 30년 전에 레즈비언이었던 사람들은 지금 다 어디 있는 거지?”

순간 지영과 현정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본다. 현정은 기꺼이 헛웃음을 터트렸지만 지영은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수미에게 동성애란 취향을 넘어 단순히 취미에 불과한 걸까. 지영은 술잔을 드는 척하면서 슬쩍 주변을 살펴본다. 수미 말대로 가게 안에는 주점 주인을 제외하면 중년을 넘긴 여자는 한 명도 없다. 나이가 많아 봐야 사십 대 중반 정도다. 지영은 자신의 입술 안쪽을 자근자근 씹는다. 50대, 60대 이상의 레즈비언들은 모두 어디 있는 걸까? 따로 모이는 장소라도 있는 건가? 하지만 레즈비언임을 자처한 지 꽤 오래된 지영조차 그런 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그녀는 언젠가 인터넷 기사로 봤던 미국의 80대 레즈비언 커플이 떠오른다. 그때 그녀는 감동했었나? 조금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나머지 감상은 실상 이성애자들이 그 기사를 봤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면 그때는 남자를 만날 거야?”

현정이 맥주와 함께 웃음을 꿀꺽 삼키며 말한다.

“어머, 내가 언제 남자를 만난데? 여자를 만나지 않는다고 해서 남자를 만나야 하는 건 아니잖아?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나,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들 성적인 관계에 대해 지나치게 강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꼭 그게 인생의 다인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남자를 만나지 않을 거야?”

현정이 재차 묻는다.

“남자를 왜 만나? 남자는 늙은 여자보다 더 싫어. 남자들은 젊으나 늙으나 더럽고 욕심 많은 하마들 같아. 섬세함도 없고, 예리함도 없고, 무엇보다 뻔뻔하지. 남자들은 여자들이 모든 면에서 열등하다고 생각해. 남자라면 누구나 다 내심 그렇게 믿고 있다니까. 여자는 결코 주체가 될 수 없고 결코 주체가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고 말이야. 얼마 전에 책에서 읽었는데 남자들이 여자를 욕망할 때 여자들은 자신을 욕망하는 남자를 통해 자기 자신을 욕망한다는 거야. 세상에. 꽤나 저명한 학자라는데 어쩜 그렇게 다른 못난 남자들하고 똑같은 소리를 지껄이는지. 마치 남자에게 남자의 성기가 달려있고 여자에게 여자의 성기가 달려있는 것처럼, 남자의 욕망에도 남자의 성기가 달려있고 여자의 욕망에도 여자의 성기가 달려있다는 거잖아? 그렇게 남자의 욕망은 타인을 향해 발기되지만 여자의 욕망은 자기 자신을 향해 발기된다는 거야? 결국 여자에게 가능한 섹스는 오로지 자위뿐이라는 거네? 자신의 뱃속에 자기 자신을 임신하기 위해서?”

수미가 열변을 토한다.

"글쎄, 난 여자에 대한 제법 그럴듯한 이론이라고 생각하는데?"

현정이 냉소적으로 말한다.

"그럴듯하다고?"

수미가 소리친다.

"단지 남자들이 자신들은 여자와 다르다고 믿고 있는 게 놀라울 뿐이지. 그들은 여자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면서도 실은 자신이 인간 일반을 상대하고 있다는 걸 잊은 것 뿐이야. 그런데 그러고 보니 그건 이성애자들이 떠드는 동성애의 기원하고도 비슷하네. 자폐적이고 근친상간적인. 이성애자들 역시 자신들은 다르다고 믿고 있지.

현정이 코웃음 치며 말한다.

“아니, 제발 여자를 동성애자나 장애인과 비교하지 좀 마. 여자는 결코 소수자가 아니야. 세상 사람의 반이 여자잖아.”

수미가 질색을 한다.

“아하, 미안하지만, 페미니즘은 한참 유행이 지났는데.”

현정이 시큰둥하게 말한다.

“그래? 그럼 이젠 동성애가 유행인 모양이지?”

수미 역시 지지 않고 쏘아붙인다.

“아니, 요즘은 채식주의가 대세더라고.”

현정이 대꾸한다.

아까부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지영은 별안간 눈물이 핑 돈다. 자신이 상처받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점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다. 가슴속에서 단단히 뭉치는 이것이 정당한 분노인지 아니면 열등감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동성애가 모독되고, 여성이 모독되고,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가 모독되고 있지만, 지영에게는 그것들을 보호할 능력이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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