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이 딴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황색 코트의 여자는 현정이 벌써 지루해졌을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그녀는 다급한 나머지 불쑥 현정에게 다가선다.
“저기요.”
“네?”
“오늘 저하고, 잘래요?”
“네?”
“죄송한데요, 하지만, 저기, 너무 싫지 않으시면……. 모텔비는 제가 낼게요.”
그녀는 의외로 당차게 말한다. 긴장해서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긴 했지만 당돌한 그녀의 모습에 현정은 내심 감탄한다.
“그럼, 수고비도 달라면 줄 거예요?”
현정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하자 농담인지 진담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해진 황색 코트의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 가느다란 눈이 저렇게 커질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어쩐지 그 모습이 일부러 순진한 척 하는 것 같아 현정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농담이에요.”
현정은 곧 히득이며 웃어넘겼지만 황색 코트의 여자는 찜찜한 표정을 거두지 못한다. 순전히 농담이었는지 의문이고, 또 줘야 한다면 얼마를 줘야 하나 고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 방법도 있었던가 싶어 놀랍기도 하다. 현정은 맥주를 마시는 척 하며 황색 코트의 여자를 다시 한 번 훑어본다. 가까이에서 본 오른쪽 다리가 더 가늘고 앙상해 보인다. 실제로 벗겨 보면 꽤나 징그러울지도 모른다.
“혹시 처음이에요?”
현정이 빈 맥주병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묻는다.
“아, 아뇨. 여기는 일주일 정도…….”
“그게 아니라, 혹시 여자하고 자는 게 처음이냐구요.”
황색 코트의 여자는 당황해서 입술을 우물거린다.
“네.”
“그래요?”
“그런데, 아니, 저기 사실은.... 아직 남자하고도 자본적이 없어요.”
현정은 순간 정색을 하다가 간신히 눈꼬리를 끌어내린다. 황색 코트의 여자는 마치 핑계라도 대는 것처럼 슬쩍 자신의 지팡이를 내려다본다. 그녀는 자신에게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 현정의 구미를 돋울지, 아니면 오히려 입맛을 떨어뜨릴지 몰라 가슴이 울렁거린다.
“제가 한심해 보이죠?”
황색코트의 여자가 묻는다.
“뭐가 한심해요. 그게 무슨 벼슬이라고.”
현정이 웃는다.
“아니에요. 언니는,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언니는 모르실 거예요. 이게 얼마나 한심하고 창피한 일인지요. 하루하루 지날수록 점점 더 천치가 되가는 기분이에요.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불구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구요. 이해 못하실 거예요. 모두 나에 대해 쟤는 저럴 거야 라고 지례 짐작 할 때, 정말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게 어떤 건지 말이에요. 저기, 부탁드릴게요. 일주일 내내 여기 앉아 있었지만 이렇게 제대로 말을 걸어준 건 언니가 처음이에요. 언니가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아요.”
그녀는 말끝을 흐린다. 그만 울먹일 것만 같다. 하지만 현정은 입맛을 다실뿐 아무런 말이 없다. 경험이 없는 상대가 처음인 건 아니지만 이런 비장한 각오로 덤비는 여자와의 첫날밤은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다. 자신이 그런 역할을 맡아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내빼기도 어중간해서 영 곤란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좋은 생각일까요? 이건 적당한 해결 방법이 아닐 수도 있어요.”
현정은 최대한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며 설득해 본다. 하지만 황색 코트의 여자는 크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요. 그게 아니에요. 난 해결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난 그냥 달라지려는 거예요. 앞이건 뒤건, 더 좋아지건 나빠지건 상관없이, 지금하고는 달라지고 싶다구요.”
“헤에, 섹스를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어요. 생각보다 별 거 아니거든요. 따지고 보면 그저 심심풀이일 뿐이죠.”
“하지만 모두 그 심심풀이에 대한 얘기들뿐이잖아요.”
여자의 반론에 현정도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하기야 요즘처럼 제각각인 사람들이 함께 허물없이 웃을 수 있는 일이 그 얘기 외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언니, 부탁해요.”
황색 코트의 여자가 슬쩍 현정의 팔을 잡는다. 하지만 현정은 멀찍이 고개를 돌려버린다. 섹스를 위한 섹스가 아닌 섹스는, 섹스가 아니라 퍼포먼스일 뿐이다. 하지만 이대로 이 손을 뿌리치고 돌아서면 계속 찜찜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혹시 나중에라도 여전히 첫 섹스 상대를 찾아 헤매고 있는 황색 코트의 여자와 마주친다면 유령을 본 것처럼 섬뜩해질 것이다. 현정은 몰래 이빨을 갈아 본다. 그래, 뭐,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해치워야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좋아요. 그럼 지금 나하고 나갈래요?”
현정의 말에 여자의 몸이 경직된다. 정말 현정이 허락할 줄은 몰랐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혹시나 현정의 마음이 바뀔까 싶어 그녀는 되묻지도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두 팔로 탁자 모서리를 붙잡고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여자를 보면서 현정은 곧바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한다. 중요한 순간에 자신이 질겁하게 될까봐 벌써부터 걱정이다.
현정이 절룩거리는 여자를 부축해줘야 하나 잠시 망설이는 사이, 여자는 어느새 지팡이를 짚어가며 씩씩하게 앞장서서 걸어 나간다. 현정도 따라 나서려는 데 경혜가 그녀를 불러 세운다.
“어쩌려는 거야?”
“글쎄요, 나도 모르겠어요.”
현정이 삐죽이 어깻짓을 해 보인다. 경혜는 잇몸을 훤히 드러내며 능글맞게 웃더니 어서 가보라고 손짓을 한다. 현정은 지나가면서 슬쩍 수미와 지영을 쳐다본다. 그들은 현정이 나가는 것도 모를 만큼 자신들의 얘기에 푹 빠져있다. 특히 수미는 종잡을 수 없는 표정이다. 그들의 결말이 궁금하긴 하지만 현정은 애써 눈을 깜빡이며 주점을 빠져나간다.
근처 모텔로 가는 동안 두 사람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황색 코트의 여자는 첫 경험을 앞두고 긴장 때문에 멀미가 날 지경이고, 현정은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까봐 신경이 곤두선다. 참아야 할 무언가가 있을까봐 염려스럽고, 자신이 그것을 잘 참아낼 수 있을지, 또 참아낸다 해도 참고 있는 걸 들키지는 않을지 조마조마하다. 이것은 동정일까, 치기일까, 유희일까, 아니면 색다른 종류의 방탕일까? 현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숨을 삼킨다. 어쩐지 자신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 같은 억울한 기분이 든다.
그들은 모텔 카운터에서 열쇠를 받아 4층 방으로 올라간다. 샛노란 이불이 덮인 침대가 방 정면에 놓여있다.
“계속 존대하기도 어색한데, 난 그냥 반말해도 될까?”
현정이 탁자 위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아, 네. 그러세요.”
“너도 말 놓고 싶으면 놓아도 돼.”
“아니에요. 저는 존댓말이 편해요.”
“이름이 뭐야?”
“이주희요. 저기, 언니는요?”
“최현정.”
“네에.”
“씻을래?”
“네?”
“먼저 씻겠냐고.”
“아뇨. 집에서 씻고 왔어요.”
“그래? 그럼, 난 씻고 올게.”
현정은 욕실로 들어가 머리가 젖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뜨거운 물에 몸을 적신다. 이렇게 된 거 눈 딱 감고 해치워버려야지, 다리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잖아, 어차피 불을 끄면 아무 상관없을 거야.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자근거리던 현정은 이래서야 마치 자신이 첫 경험을 앞두고 있는 것 같아 쓴웃음을 짓는다.
샤워를 마친 그녀는 분홍색 모텔가운을 몸에 걸치고 욕실을 나온다. 주희는 코트를 벗어놓고 침대 모서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재빨리 재떨이에 눌러 끈다. 코트에 가려져 있던 흰색 블라우스가 지나치게 하얗다. 현정은 주희의 어깨가 조금 굽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딱히 놀랍지는 않다. 그저 픽 웃음이 나온다.
“왜요?”
주희가 정색을 하고 묻는다.
“아무 것도 아니야. 자, 침대로 올라가 봐.”
현정의 건조한 말투에 주희는 참고 있던 거부감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울컥 치밀어 오른다. 현정이 내켜하지 않는 건 처음부터 눈치 채고 있었지만 정말 아무 감흥도 없는 것 같아 서러워진다. 하지만 현정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주희는 순순히 침대위로 올라간다.
현정은 현정대로 입술이 바짝 마른다. 이렇게 무겁고 어색한 분위기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지금으로서는 빨리 해치워 버리는 게 상책인 듯하다. 현정은 백열등 불을 끄고 침대 맡에 놓인 작은 전등을 켠다. 연한 갈색 그림자가 침대에 드리워지자 두 사람 모두 한숨을 돌린다. 현정은 침대로 올라가 주희에게 입을 맞춘다. 처음에는 짧게, 두 번째는 깊게. 주희도 현정의 어깨를 잡으며 적극적으로 입술을 빨아올린다. 키스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현정은 생각한다. 그 사실에 조금 더 불쾌해 진다.
“저기, 옷을 좀 벗어야겠는데.”
현정의 말에 주희는 블라우스 단추를 주섬주섬 푼다. 블라우스를 걷어내자 블라우스보다 더 하얀 브래지어와 의외로 커다란 젖가슴이 들어난다. 마치 아기 볼 살처럼 매끄러워 보이는 가슴이다. 짙고 부드러운 살 냄새가 현정의 코를 찌른다. 현정은 가볍게 침을 삼키며 슬그머니 고개를 뒤로 뺀다. 평소 같으면 당장 손을 뻗어 만져 보았을 텐데 머뭇거리고 있다.
“바지도 벗어.”
명령조의 목소리에 주희는 기계적으로 바지 단추에 손을 얹는다. 하지만 그대로 멈추더니 더 이상 꼼짝도 하지 않는다.
“왜 그래? 안 벗을 거야?”
엄한 교사처럼 현정이 다시 재촉한다.
“그게 아니라, 언니가 놀랄 것 같아서.”
“아.”
“징그러울 거예요.”
주희가 다리를 오므린다.
“좀 흉측해요.”
현정은 할 말을 잃는다.
“미안해요. 지금이라도 그만 두는 게 좋겠어요.”
현정은 끝내 참고 있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다. 사람을 여기까지 끌고 와놓고 지금 와서 이게 무슨 수작인가. 갑자기 피해자인 척, 불쌍한 척, 생각해 주는 척 하는 모습이 가증스럽다. 누가 그 속을 모를까봐? 자신의 손으로 바지를 벗기게 하려는 속셈이다. 그렇게 자신을 공범으로, 아니 오히려 주범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