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역 (1)

by 곡도





꿈을 꿀 때면 그는 늘 그것이 꿈이라는 걸 알았다.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꿈에서 깰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시도해 본 적은 없었다.

오늘도 그는 이것이 꿈이라는 걸 똑똑히 인식한 채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는 어두운 터널 속을 달려가고 있었다. 듬성듬성 벽에 달린 희미한 전등이 회색빛 콘크리트 내벽과 컴컴한 바닥을 가로지르는 레일의 단면을 비추고 있었다. 마치 두 개의 거울을 마주 놓았을 때처럼 똑같은 광경이 계속되었다. 터널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았고 어쩌면 같은 자리를 빙빙 돌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였지만 어느 쪽인지 알고 싶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이런 꿈은 정신분석의 대상이 될 만 했다. 어둡고 좁은 굴은 자아의 상징이나 고립의 상징일 수 있고, 혹은 여성에 대한 두려움이나 성적인 무력감에 관한 암시일 수도 있다. 한정된 시공간의 끝없는 복제와 반복이라는 의미에서 신경증의 전조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꿈은 상징이나 신경증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이것은 먼지가 풀풀 날릴 정도로 메마른 현실 자체, 혹은 현실의 연장이었다. 누구든 하루에 8시간씩 전철을 운행한다면 그것을 기계적으로 꿈에서 보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 순간 핸드폰 알람 벨이 울렸다. 병준은 마치 아까부터 깨어있었던 사람처럼 단번에 눈을 떴다. 바로 머리 위에 매달려 있던 어둠이 칼날처럼 그의 눈앞에 떨어졌다. 잠들기 전에 뒤집어썼던 이불은 여전히 그의 얼굴에 감겨 있었다. 옆에서 충식이 이불을 차내며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재빨리 손을 뻗어 핸드폰 벨을 껐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일어나 숨을 죽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벽을 앞 둔 숙소 안은 창밖만큼이나 짙은 어둠과 침묵에 잠겨 있었다. 그의 옆자리에 누워있는 충식은 배를 다 드러낸 채 코를 골고 있었고, 방 모서리에 머리를 박고 돌아누워 있는 또 한사람 역시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는 머리맡에 놓아둔 자신의 가방에서 원통 모양의 갈색 플라스틱 통을 꺼내 손에 쥐고 미끄러지듯 욕실로 향했다.

낡은 회색 타일로 둘러싸여 있는 욕실에는 딱딱하고 차가운 냉기가 서려있었다. 병준은 플라스틱 통을 세면대 위에 올려놓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소름끼치도록 생경한 얼굴이 그를 빤히 마주보고 있었다. 누구나 자신의 얼굴에는 익숙해질 수 없다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의 예상보다 더 놀라곤 했다. 그는 기분을 북돋기 위해 거울을 마주보며 벙긋이 웃었다. 그 미소는 마치 불가사의한 수수께끼 같았다.

그는 넓적한 이마를 몇 번 쓸어 넘기고는 갈색 플라스틱 통의 뚜껑을 열었다. 그 속에는 파란 빛깔의 물이 가득 차있었다. 그는 통 안에 손을 넣고 뒤적이더니 하얗고 가지런한 틀니 두 개를 꺼냈다. 위쪽과 아래쪽 한 쌍의 틀니였다. 그는 틀니를 하나씩 능숙하게 입 안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이빨을 몇 번 딱딱 부딪혀 본 그는 다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홀쭉하게 말려들어갔던 헐렁한 입술이 이제 반듯하게 자리를 잡았다. 턱과 인중에 균형이 잡히고 광대뼈에 힘이 생겼다. 그것은 38살 남자의 탄탄한 얼굴이었다. 그 남성다움에 수줍어진 그는 작위적으로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고르게 상아색을 띈 멋진 이빨이 벌어진 입술 사이로 환하게 드러났다. 그는 더욱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숙였다. 가리고 있던 남자의 부위가 드러난 것 같기도 하고 또 얼굴에 화장품을 두껍게 바르고 여장이라도 한 것 같은 괴팍한 생각이 뒤섞였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잇몸에 뼈가 없었다. 이빨이 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임플란트도 할 수 없었다. 그는 5살 때 첫 틀니를 맞췄고 그것이 33년 동안 계속 되어온, 그리고 앞으로도 평생 계속 될 긴 동반의 시작이었다. 어렸을 때는 틀니들이 그의 꿈속에 자주 등장하곤 했다. 두 개의 틀니가 벼룩처럼 각자 사방을 팔짝팔짝 뛰어다니다가 사고나 우연인 듯 하나로 합쳐져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지껄여댔다. 드문드문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도 있었지만, 명사가 접속사형이 되거나 동사가 부사형으로, 접속사가 형용사형으로 뒤엉켜 있어서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틀니는 더 이상 그의 꿈속에 나오지 않았다. 그건 초등학교 2학년 때 부터였을 것이다. 겨울 방학을 얼마 앞둔 11월, 체육시간에 농구를 하다가 한 친구의 팔꿈치에 턱을 맞고 병준의 위쪽 틀니가 빠져버리는 사고가 있었다. 정작 병준은 침착하고 신속하게 틀니를 주워 올렸지만 그의 반 친구들은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졌고 그의 곁에 서있던 남자 아이 한 명은 발작까지 일으켰다. 그것은 대단한 소동이었다. 병준에게보다 오히려 그들에게 더 끔찍한 악몽으로 남았을 것이다. 병준은 며칠 뒤 전학을 갔고 다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틀니가 빠지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틀니가 벼룩이나 물고기처럼 날아다니던 꿈도 사라졌다.

이제 그의 가족과 가까운 친척을 제외하고는 그의 틀니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었다. 병준은 평생 동안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털어놓지 않았다. 틀니에 대해 함구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옷을 차려 입는 것만큼이나 능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굳이 옷을 벗어 남들에게 자신의 알몸을 보여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누구도 그것을 ‘솔직’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자신을 가리는 건 문명인으로서의 당연한 예의범절이었다. 다만 이렇게 직장에서 숙직을 해야 하는 날은 조금 번거롭기는 했다. 물론 그것은 사소하지만 끈덕진 일상의 여러 번거로움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는 남들이 잘 때까지 기다렸다가 몰래 일어나 틀니를 세척해서 통에 넣은 뒤 얼굴을 이불로 꽁꽁 가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은 남들보다 30분 일찍 일어나 감쪽같이 틀니를 착용했다. 아무도 그가 이빨을 닦는 걸 본 적이 없었지만 눈치 채는 사람은 없었다. 누가 남의 양치 여부에 신경을 쓰겠는가. 어쨌거나 그의 이빨은 늘 고르고 깨끗한데 말이다. 그 때 욕실 밖에서 들리는 인기척 소리에 그는 재빨리 혀로 이빨 안쪽을 핥았다.

“일찍 일어났네?”

인사를 건넨 사람은 우영이었다. 그는 온통 까치집이 된 머리를 두 손으로 털며 욕실로 들어왔다.

“아, 저쪽에서 자고 있던 사람이 형님이셨어요? 그런데 오늘 형님 당번 아니잖아요?”

병준은 입술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어, 그런데 오늘 민식이 처가 애를 낳나봐. 그래서 바꿔 줬어.”

그들은 이번에 네 번째 아이를 낳는 민식의 정력을 터널 속으로 질주하는 전철에 빗대어 외설적인 농담을 몇 마디 나눈 뒤 각자 샤워실로 들어갔다. 병준은 샴푸로 거품을 내어 머리를 감으면서 옆 칸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방금 전 했던 농담 때문인지 우영이 자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들었다. 사실 어두운 터널 속에서 하루 종일 쳇바퀴를 돌기 직전에는 자위만한 기분 전환 거리가 없었다. 그 역시 마음이 동하기는 했지만 그냥 몇 번 주물럭거린 뒤 내버려 두었다. 그는 틀니를 낀 채로는 발기가 되지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병준과 우영은 토스트와 커피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그들은 정치 뉴스와 국민연금에 대해 몇 마디 과격한 얘기를 나누었지만 딱히 진심은 아니었다. 식사를 끝낸 병준은 사무실에 가서 승차 보고를 하고 주의 사항을 숙지했다. 그리고 점심으로 먹을 김밥 2개를 구내식당에서 사 들고 차량기지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길쭉한 쇳덩어리 수십 개가 엿가락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그것들의 텅 빈 내부는 또 하나의 작은 동굴 속처럼 어두웠다. 이제 그 흐물흐물한 빈속을 하얀 전깃불로 빳빳하게 채우고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는 2호선 237번 전철 운전칸에 올라 열쇠를 꽂고 시동을 걸었다. 하루 동안의 길고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전철은 천천히 차량기지를 빠져 나가 좁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어젯밤 꿈속에서 내내 보았던 익숙한 장면이 다시 눈앞에 펼쳐졌다. 듬성듬성 벽에 달린 희미한 전등이 회색빛 콘크리트 내벽과 컴컴한 바닥을 가로지르는 레일의 단면을 비추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앞 유리창에 언뜻언뜻 비치는 그의 멀건 얼굴뿐이었다.

아침 7시가 지나자 전철 승강장에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툭 터지듯 벌어진 승강장 안에는 가지각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한 덩어리로 뒤섞여 있었다.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승강장으로 들어서면서 병준은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모두들 다른 외모, 다른 체형, 다른 분위기, 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병준에게는 그들의 하얀 이빨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빨이 얼마나 하얗게 빛나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타인과 마주했을 때 눈부터 본다는 얘기를 병준은 믿을 수 없었다. 저렇게 위협적이고 아름답게 번쩍이는 이빨을 무시한 채 어떻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단 말인가. 전철이 멈추기 직전 감색 교복차림에 선명한 하늘색 야구 모자를 쓴 여학생이 그를 향해 미소 짓는 게 보였다. 그녀의 오른쪽 송곳니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다. 병준은 자신도 모르게 여학생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미소를 짓고 난 뒤에는 늘 죄책감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죄책감이란 지나치게 과시적인 용어지만 다른 적절한 단어가 없었다. 모든 신경의 온기가 움츠러들어 내장 깊숙한 곳에서 딱딱하게 뭉치는 느낌. 병준은 앞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건장한 얼굴 위로 이빨 없는 홀쭉한 미소가 겹쳐 보였다. 그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는 미소였다. 진심으로 웃으면 웃을수록 더 끔찍해 보이는 미소였다. 그에 비해 틀니를 끼고 짓는 미소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연습을 많이 해도 틀니 위로 미끄러져 내리는 미소에 병준 스스로는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았다.

그의 담당 치과 의사 말에 따르면 그의 경우처럼 선천적으로 잇몸에 뼈가 없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꽤 많다고 한다. 생각보다 흔한 장애라는 것이다. 단지 목숨을 위태롭게 하지도 않고 생활에 지장을 주지도 않기에, 무엇보다 완벽하게 감출 수 있기 때문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뿐이라고 한다. 그 얘기를 들은 뒤로 병준은 거리에서, 직장에서, 전철 안에서 혹시나 자신의 동류가 있지나 않을까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렇다고 딱히 뾰족한 기대가 있는 건 아니었다. 같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장애를 매개로 타인과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저 몇 마디 대화, 그들만이 알 수 있는 특수하고 구체적인 일상에 대한 이해, 틀니에 대한 유용한 정보 정도를 나누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병준이 그렇듯 그들 역시 너무나 감쪽같이 자신을 감추고 있어서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전 그는 출근길 전철에서 자신의 동류인 듯한 남자와 마주쳤다. 그의 이빨은 미미하게 노란색이 비치는 밝은 아이보리 색깔이었는데, 그 균일한 색과 가지런한 크기, 지나칠 정도로 훌륭한 청결 상태 등이 병준으로 하여금 의심을 품도록 만들었다. 남자는 이빨 색과 잘 어울리는 밝은 갈색 얼굴에 가느다랗고 부드러운 눈, 회색 양복이 꽉 끼는 통통한 상채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아래턱을 당기며 버릇처럼 윗입술을 자근자근 깨물었을 때 병준은 80%에 가까운 확신에 다다랐다. 병준은 남자와 단지 두 발자국 떨어진 곳까지 가까이 다가갔다. 한 발자국 다가서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걸 수 있는 거리였다. 가슴은 세차게 뛰었고 콧잔등과 미간에는 땀이 맺혔다. 그는 몇 번이나 남자를 향해 돌아 섰다가 고개를 돌렸고 거의 한 발을 내디딜 뻔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실상 그는 못 박힌 듯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체 남자에게 뭐라고 말해야 한단 말인가?

병준은 남자와 단 한번 눈이 마주쳤다. 아니, 그들은 서로의 눈이 아니라 서로의 틀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최소한 병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남자도 병준의 틀니를 쳐다보고 있었고 혀끝으로 자신의 틀니 뒤편을 긁고 있었다. 3초 보다 짧았던 그 시간동안 언어화 되지 못한 언어가 두 사람 사이에서 출렁였다. 단 한마디 말이면 충분한데 그 한마디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는 왜 ‘틀니’를 대체할 말이 존재하지 않는 걸까. 쭈뼛거리며 이마의 땀을 훔쳐내던 병준은 갑자기 주먹으로 남자의 얼굴을 힘껏 내리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남자는 나가떨어지며 벌컥 비명을 지를 것이다. 비명이야 말로 언어화 되지 않은 언어가 아닌가. 하지만 최소한 모두들 들을 수 있을 게 아닌가. 거기다 운이 좋다면 틀니가 남자의 입 밖으로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모두들 그것을 똑똑히 볼 수 있을테지. 그 상상이 병준의 목젖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려야할 목적지를 4정거장이나 지나친 후, 병준은 옷깃을 여미며 전철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다시는 그 남자를 보지 못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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