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역 (2)

by 곡도




그 뒤로도 몇 번 의심 가는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침착하게 서로를 모른 척 했다. 병준 역시 차차 무관심해졌다. 그들이 서로를 찾을 필요가 없다는 건 자명했다. 굳이 모임 따위를 만든다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들의 장애는 건강상 치명적인 것도 사회적 차별의 대상도 아니었다. 그 이상의 불편도 그 이상의 극복도 없었다. 비장애인들은 그들을 동정하고 장애인들은 그들을 질투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아무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일반사람’은 물론이고 ‘소외자’나 ‘소수자’같은 강력하고 절대적인 범주 밖에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그 역시 자신의 결핍을 가장 교묘하고 미심쩍은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완벽하게 감출 수 있지만 완전히 지울 수는 없는 장애가 그의 비위를 뒤집어 놓았다. 사람들은 이식이나 변형에 의한 이중성에 막대한 관심을 기울이지만 이식되지도 변형되지도 않음으로써 야기되는 이중성이야 말로 진정 고약한 것이었다. 병준은 오래전 사람들이 처음 옷을 입기 시작했을 때도 이처럼 곤혹스러웠을 거라고 짐작했다. 옷을 벗었을 때와 입었을 때의 그 현기증 나는 분열을 극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 극복은커녕 간신히 견뎌온 것뿐이었다. 몇 만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그 간격 사이에서 여전히 고꾸라지고 있지 않은가.

몇 년 전 그가 운행하던 전철에서 한 남자가 옷을 모두 벗어재끼고 알몸으로 칸칸마다 뛰어다닌 적이 있었다. 전철 안은 웃음소리와 비명소리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결국 경찰이 출동해서 남자를 체포했다. 경찰 두 명에게 양쪽 팔을 붙들려 끌려가면서도 남자는 꺼뭇한 하체를 사람들을 향해 들어 올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거 봐. 난 제대로 옷을 입고 있어. 홀딱 벗고 있는 건 바로 너희들이야.]

남자가 자연주의 운동가인지 아니면 그냥 노출증 환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병준은 그 일을 두고두고 생각했다. 한 번쯤은 그도 틀니 없는 분홍색 잇몸을 드러내며 그렇게 외치고 싶었던 걸까?

거대한 쇳덩어리를 다시 터널 속으로 밀어 넣으며 그는 두 손으로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문제는 이 터널이었다. 터널이 쓸데없는 생각들을 끄집어낸다. 터널 내부의 어둠 속에서 빨아들이는 까마득한 힘에 의해 가장 가볍고 사소한 생각들이 먼저 끌려나온다. 그가 미처 마음속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티끌 같은 생각들이 말이다. 동굴의 인력에 저항하는 건 힘에 부치는 일이다. 그리고 저항은 언제나 실패로 끝난다. 터널이 너무나 길고 깊기 때문이다.

역과 역 사이가 긴 구간에 이르자 병준은 바지 지퍼를 내리고 옆 좌석 밑에 놓여있던 페트병을 집어 올려 소변을 보았다. 참고 있었던 탓에 그의 목덜미가 발갛게 상기되었다. 노란 오줌 줄기가 작은 페트병 입구를 통해 힘차게 쏟아져 나왔다. 엉덩이가 씰룩거리면서 그는 작게 신음소리를 냈다. 눈은 여전히 터널에 고정된 채였다. 달리고 있는 전철의 운전대를 잡은 채 소변을 볼 때면 그는 1.8리터짜리 빈 페트병이 아니라 저 거대한 터널을 향해 소변을 갈기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했다. 속이 후련할 만도 하련만 그는 되려 허벅지가 후들거렸다. 놀라운 힘으로 빨아들이는 터널에 비해 자신의 오줌발이 너무 빈약한 탓이었다. 손으로 주물러가며 아랫도리에 몇 번 더 힘을 주던 그는 멀리서 역의 불빛이 보이자 서둘러 페트병과 바지를 추스르고 손바닥을 대충 바짓단에 문질렀다.

그는 몇 십번 째인지 더 이상 알 수 없는 빛과 이빨들의 덩어리 속으로 천천히 정차했다. 재잘거리거나 웃거나 단지 버릇 때문에 드러내는 이빨들이 또다시 그의 넋을 빼놓았다. 이빨이 아니라면 그들은 대체 무슨 고민을 하며 살아갈까? 병준은 전철 출입구를 향해 어깨를 부대끼며 돌진하는 사람들을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방심 속에서 놀라울 정도로 닮아보였다. 그런데도 저토록 서로에게 무관심하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 사실 그것은 조장되고 단련된 무관심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모른 척 하면서 실은 서로를 향해 몰래 이빨을 갈고 있었다. 그러다 상대방에게 조금의 틈만 보여도 돌연 달려들어 주먹다짐을 하거나 뒤엉켜 정사를 벌였다.

폭력이면서 동시에 욕망이라는 점에서 이빨만큼 결정적인 게 있을까? 그는 무심코 앞이빨을 딱딱 소리 내어 부딪혔다. 잔혹하고 매혹적인 흡혈귀가 이빨의 화신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은 단순한 상징이나 기호가 아니라고 병준은 생각했다. 이빨은 폭력과 욕망의 실질적인 기능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사람들이 웃을 때, 화났을 때, 놀랐을 때, 흥분할 때마다 이빨이 그토록 눈부시게 번쩍이겠는가. 노인들이 권위와 성적 매력을 잃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에게 이빨이 없어서가 아니겠는가. 이빨을 잃으면 폭력과 성(性)을 잃고, 폭력과 성(性)을 잃으면 인격을 잃고, 인격을 잃으면 페티시가 된다. 중학교 1학년 때 한 짓궂은 친구가 병준과 다른 남자 아이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떠벌린 적이 있었다.

[노인네들이 이빨 없는 입을 오물거리는 걸 보면 난 막 꼴리는 거야. 그 쪼그라든 부드러운 입이 내 걸 빨아주면 어떨까. 완전 죽여주겠지?]

모두들 혀를 빼물고 몸서리를 치며 박장대소를 터트렸지만 병준은 혼자 얼굴을 붉히며 진땀을 흘렸다.

병준은 다시 터널 속으로 천천히 전철을 밀어 넣었다. 전철은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텅 빈 승강장으로부터 멀어졌다. 커브를 돌자 둥글고 곧은 터널이 이어졌다. 듬성듬성 벽에 달린 희미한 전등이 회색빛 콘크리트 내벽과 컴컴한 바닥을 가로지르는 레일의 단면을 비추고 있었다. 쇠를 긁어대는 소음을 제외하고는 꿈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꿈속에서도 소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건 쇳소리가 아니라 바스러지고 뭉개진 속삭임 같은 것이었다. 청각이라기보다는 통각에 가까웠고 자석 주위로 엉겨 붙는 고운 쇳가루 같았다. 어느 쪽이든 적막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는 전철이 지나가고 그 다음 전철이 올 때까지의 터널 속 적막을 상상하곤 했다. 잘려나가고 방치된, 침묵 속에서 대기 중인, 그 서늘한 공간. 그리고 잠시 후 다짜고짜 찢고 들어오는 헤드라이트 불빛, 천둥소리와 진동, 수백 톤의 쇳덩어리, 사람들의 활기로 들쑤셔지는 순간에 대해서도 떠올렸다. 이곳에 중간은 없었다. 텅 빈 세상이 뒤집어지고 또 뒤집어 진다. 병준은 끝없이 이어지는 전등들 중에 고장이 나서 깜빡이는 전등 하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불빛의 불규칙성에서 무슨 의미라도 찾는 듯이, 혹은 그 불규칙성 자체가 의미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고장 난 전등은 빠른 속도로 다가와 순식간에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마음은 그 전등을 쫒아 마지막 전철 칸 끝까지 달려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깜빡이는 전등은 막차가 끊기고 인적이 멈춘 새벽에도 터널 어딘가에서 깜빡이고 있을 것이다. 병준은 그 사실이 섬뜩한 익살처럼 여겨졌다.

막차가 끊긴 터널을 떠올리는 건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생각이 그리로 미칠 때마다 그는 애써 눈을 깜빡여 떨쳐내곤 했다. 하지만 얼떨결에 등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처럼 그는 때때로 그 광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24시간 꺼지지 않는 침침한 전등 빛, 옅게 퍼져있는 먼지 안개, 근원도 방향도 알 수 없는 바람, 그리고 먹먹한 정적의 울림. 앞으로 뻗어있는 외길인데도 그곳에서는 어쩐지 정처 없이 헤맬 것만 같았다. 최소한 전철만큼의 엄청난 힘과 속도로 통과하지 않는다면 이 터널 속으로 영영 가라앉을지도 모른다는 유치하지만 끈질긴 공포. 그는 오싹한 한기를 느끼며 두 발을 세차게 굴렀다. 그가 막 기관사 일을 시작했을 때 선배 하나가 신참인 자신을 놀리느라 해 준 얘기가 떠올랐다.

[그거 알아? 막차가 끊긴 전철 터널로 귀신들이 모여든데. 텅 비어있는 어둠의 공간은 귀신들을 끌어들이거든. 밤이 되면 이 도시의 모든 귀신들이 전철 터널 속을 헤매고 다닐 거야.]

물론 병준은 곧바로 코웃음을 쳤었다. 귀신 따위는 두렵지 않았고 심지어 귀신의 존재를 믿지도 않았다. 그는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난 세대였다. 매일 저녁 사탕을 빨며 시청하던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사람이 저지른 기발하고 끔찍한 일들이 넘쳐났다. 웬만한 잔혹과 공포가 아니고서는 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선배가 해준 그 순진하고 밋밋한 터널 괴담은 그의 머릿속에 단단히 틀어박혀 버렸다. 꽉 채우는 식이 아니라 텅 비어있는 식으로 말이다.

그는 가방을 뒤져서 출근길에 사두었던 김밥을 꺼냈다. 호일 윗부분을 벗겨내고 덥석 베어 물자 고소한 참기름 향이 입 안에 가득 고였다. 그는 김밥 한 줄을 얼른 먹어치우고는 또 한 개를 꺼냈다. 전철을 운행하는 중에는 어쩐지 입맛이 돌았다. 자제 하지 않으면 3줄이고 4줄이고 끝없이 들어갈 것이다. 실제로 언젠가 단번에 햄버거 3개를 먹어치우고는 스스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동료들에게 우스개삼아 그 얘길 했더니 엉뚱하게도 그들은 결혼을 하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닌데도 그의 일과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들은 그에게 욕구불만을 들먹였다. 곧이어 냄비, 솥단지, 숟가락, 조개, 우유, 버섯, 굴, 골뱅이, 계란 등의 비유들이 쏟아져 나왔다. 병준은 끝내 얼굴을 붉혔고 사람들은 혹시 숫총각 아니냐며 왁자하게 즐거워했다.

물론 그의 식탐이 결혼을 못해서라거나 욕구불만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다. 아마도 참기 힘든 권태나 운동 부족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풀이과정이 틀렸는데도 종종 답이 맞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동료들의 희롱은 사실이었다. 병준은 성관계 경험이 없었다. 심지어 키스조차 해 본적이 없었다. 아니, ‘조차’라는 말로 비꼬는 건 그에게 공평하지 않은 처사일 것이다. 키스야 말로 이 문제의 핵심이니까. 어째서 성적인 관계는 키스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도대체 입과 입을 맞춘다는 발상은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 만약 사람의 입이 팔꿈치나 복사뼈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난봉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누구라도 자신의 인생이 선택의 결과인지 결핍의 결과인지 가늠하기 힘든 법이다.

병준은 키스를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의 입속은 지나치게 개인적인 영역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성기나 항문보다 입 안이 더 은밀한 부위로 여겨졌고, 그 안을 다른 사람이 침범하는 건 폭력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입이 수행해야 하는 다양한 기능들을 떠올리면 그는 혼미해졌다. 씹고, 삼키고, 맛보고, 무엇보다 끊임없이 떠벌려야 하는 입에게 키스까지 강요하는 건 지나친 일이었다. 그는 상기된 이마를 수그리며 비틀어지려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슨 궤변이 이렇게 장황할까. 진짜 이유야 누가 보아도 뻔하지 않은가. 키스를 하다가 틀니가 튀어나올까봐 겁이 나는 것이다. 하얗고 가지런한 이빨이 바닥을 굴러다닐까봐 겁이 나는 것이다. 당황한 나머지 이빨 없는 홀쭉한 입으로 빙그레 미소지을까봐 겁이 나는 것이다.

병준은 소금기와 참기름이 번들거리는 손가락을 바지에 문지른 뒤 물병을 꺼내 물을 들이켰다. 불행하게도 모든 걸 자격지심으로 치부해 버릴 만큼 간단하지가 않았다. 자격지심이란 거울의 깨진 틈과 같다. 그 깨진 틈새로 싸구려 나무 합판의 무늬가 보인다. 병준은 틀니의 어금니를 꽉 물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그는 요새 한 여자를 만나고 있었다. 아니, 이미 끝났는지도 모른다. 이틀 전 불시에 키스하려는 그녀를 병준이 밀쳐낸 뒤로 그녀는 더 이상 연락해 오지 않았다. 원희. 4개월 전 기술팀 최팀장의 소개로 만난 여자였다. 상사의 소개라 거절하지 못한 점도 있지만 그 역시 앞도, 뒤도, 내부도, 외부도 똑같은 삶에 질력이 나있던 참이었다. 잠잘 때조차 성실한 그의 삶에도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필요했다. 설사 그것이 병준 자신을 향한 신랄한 농담이 될지라도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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