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는 못생긴 여자였다. 그건 분명했다. 녹색이 비치는 이빨 색깔도 좋지 않았고 여드름으로 뒤덮인 안색은 더 좋지 않았다. 그는 이런 생각에 스스로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꼈다. 자신이 타인의 외모를 평가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못생긴 건 못생긴 것이다. 달리 뭐라 말할 수 있겠는가. 형용사는 고유명사만큼이나 결정적이며 심미안의 보편성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주변 사람들 중 유일하게 터널 바깥의 사람이었다. 그녀에게서는 건조한 바깥 공기와 섬유 유연제 냄새가 풍겼다. 병준은 그녀가 “그럼 그럴까요?” 라고 말할 때의 독특한 음조와, 생각에 잠길 때 살짝 주름지는 미간과, 동글납작하고 창백한 그녀의 귓불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것들은 그가 그녀에게서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매력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고무적인 일이었고 그를 조금 들뜨게 만들었다. 이틀 전 그녀가 그의 손을 잡으며 수줍게 속삭일 때 까지는 말이다.
[나한테는 모든 일에 솔직했으면 좋겠어요. 아무런 비밀도 없이요.]
병준은 입을 꽉 다물었다.
[나도 병준씨한테 아무 것도 숨기지 않을 거예요.]
그는 그만 그 자리에서 헛구역질을 할 뻔 했다.
솔직함, 정직함, 진실함. 무엇이라고 명명하던 간에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틀니에 대해 그녀에게 솔직하게 얘길 할 수도 있었다. 그녀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녀를 만나 온 4개월 동안 그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만약을 대비해 밤을 새워가며 적절한 단어들을 골라보기도 했다. 그는 그녀를 떠올리며 자위한 적도 있었고, 어쩌면 진실한 애정이 실제로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기도 했다. 그도 누군가를 위해, 타인을 위해, 노력하고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필요하다면 그녀를 향해 텅 빈 잇몸으로 몇 번이라도 미소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훌쩍 그 이상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물쇠의 비밀번호가 아니라 자물쇠 자체를 원했다. 그것은 그녀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분에 넘치는 일이었다. 아무 것도 숨기는 게 없는 관계를 그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대체 비밀이 없는 인격이 가능한 것일까. 그는 벌거벗겨진 채 살 수는 없었고, 상대방을 벌거벗기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는 노출증을 혐오했으며 결벽증이 두려웠다. 그런데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벌어질 판이었다. 병준은 초록색 이빨을 드러내며 매달리는 그녀를 거칠게 떠밀었다. 그녀의 얼굴이 수치심과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못생긴 얼굴이 더욱 볼썽 사나워 보였다. 이윽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역시 내가 못생겼기 때문인가요?]
병준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결핍에 집중하느라 실은 상대방에게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그는 침묵했고 원희는 그대로 떠나 버렸다.
그 때 갑자기 튀어나온 스피커 소리에 그는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종합 사령실입니다. 지금 바로 비상 정지 하세요. 긴급 상황입니다. 신도림역에서 투신한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신도림역이라면 바로 앞차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터널 중간에 전철을 세우고 마이크를 들었다.
“승객 여러분, 신도림역에서 발생한 상황 사고 때문에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마이크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자 적막에 잠긴 터널 속에 병준은 홀로 있었다. 뽀얗고 고운 티끌들이 회오리치듯 헤드라이트 불빛 속을 떠돌았고 바닥의 레일이 선뜩한 파란 빛을 띠고 있었다. 그는 터널이 오므라들며 멀어지는 어둠 속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약 2km 앞에 신도림역이 있었다. 그곳에 시체도 있을 것이다. 갈가리 찢긴 살점에서는 검은 피가 쏟아져 내리고 튀어나온 내장들은 아직 경련으로 떨고 있을 것이다. 사고는 간발의 차이로 그를 비켜갔다. 보통 투신자들이 투신 전에 전철 한 두 대를 그냥 보낸다는 걸 감안하면 더욱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결국은 시간문제라고 병준은 생각했다. 터널은 외길이고 전철은 앞으로만 달려가야 한다.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병준은 문득 터널 너머의 뿌연 어둠 속에서 희끗한 무언가를 본 것 같아 고개를 쭈뼛 세웠다. 그러나 전등 빛이 터널 벽에 반사되어 번들거린 것뿐이었다. 그는 그 불빛에 지지 않으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신도림역에서의 사고는 얼마동안 괴담이 되어 전철역 주변을 떠돌 것이다. 투신자의 유령이 자신의 잃어버린 신체 일부를 찾아 터널 속을 헤맨다거나, 달리는 전철 유리창에 붙어서 안을 들여다본다는 식이었다. 병준은 자신도 죽으면 유령이 되어 터널 속을 헤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유령을 조금도 믿지 않았지만 그런 상상은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었다. 일설에 따르면 유령들은 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일을 끊임없이 반복한다고 한다. 그럼 그의 유령은 하얀 이빨을 눈부시게 빛내며 터널 한가운데 서있을까?
“종합사령실입니다. 상황이 수습되었습니다. 운행 재기 하십시오.”
전철은 신도림역을 향해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그는 오후 2시가 조금 못되어 일을 마쳤다. 한 낮인데도 극심한 피로가 양어깨를 짓눌렀다. 쓰러져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에 별 용건도 없이 대기 중인 동료들과 숙소에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저녁을 먹고 카드 게임도 몇 판 돌리고는 밤이 깊어지고 전철이 끊길 시간이 다 돼서야 그는 집으로 향하는 막차를 탔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등받이에 고개를 떨구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는 또다시 어두운 터널 속을 달리고 있었다. 듬성듬성 벽에 달린 희미한 전등이 회색빛 콘크리트 내벽과 컴컴한 바닥을 가로지르는 레일의 단면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이것이 꿈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꿈에서 깨고 싶지는 않았다. 깨어 보았자 다를 것도 없었다. 똑같은 사진의 끝없는 겹침처럼 같은 풍경이 현실과 꿈을 관통하며 이어지고 있었다. 그의 오른편으로 전등 하나가 깜빡이며 스쳐 지나갔다. 그는 전등을 쫒아 뒤를 돌아보려다가 그만 두었다. 그에게는 뒤가 없었다. 앞만 보고 달려가야 했다. 그는 문득 저 앞에 신도림역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분명 그곳에 시체도 있을 것이다. 아니, 시체는 이미 그곳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살점과 핏물을 씻어낸 물웅덩이가 바닥에 흥건히 가라앉아 있고, 푸른색 기둥에는 미처 닦아내지 못한 핏방울 몇 점이 뿌려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채 선로 바닥 구석에서 나뒹굴고 있는 새하얗게 빛나는 이빨 몇 개. 하지만 그것이 이 모든 것의 결말은 아니었다. 종착지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지 간에 그는 다시 떠나야 했다. 신도림역을 지나면 그 다음 역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나면 또 그 다음 역. 그 어느 역도 특별하거나 결정적이지 않았다. 역은 끝없이 지나가는 것이고 터널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전철은 끝없이 사람들을 치면서 전진하고 유령들은 끝없이 전철 뒤로 남겨질 것이다. 그 때 깜빡이는 전등 하나가 다시 그의 오른편으로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터널을 향해 오줌을 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성기가 솟구쳐 올랐다.
병준은 마치 아까부터 깨어 있었던 것처럼 눈을 떴다. 전철은 여전히 터널 속을 달리고 있었다. 둘러보니 텅 빈 전철에는 병준과 병준 건너편 자리에 마주 앉아 있는 남자뿐이었다. 아무도 없는 전철 칸에서 두 남자가 서로 마주 보며 앉아 있는 모습은 조금 야릇했다. 병준은 잠깐 이게 꿈이 아닐까 의심했다. 앞에 앉은 남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는 병준과 전혀 닮지 않은 얼굴이었다. 청결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남자의 누런 이빨은 크고 단단해 보였다. 그는 높고 날카로운 코를 가지고 있었고 머리는 반쯤 벗겨져 있었다. 한참동안 서로 마주 보고 있다가 먼저 미소를 지은 쪽은 남자였다. 남자는 자신의 사타구니를 길쭉한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병준은 꼼짝도 하지 않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바지 속에서 솟구쳐 오른 그의 성기가 보였다. 그 때 전철이 정차하면서 문이 열렸다. 잠깐 바람이 휘몰아쳤지만 아무도 타는 사람은 없었다. 잠시 후 문이 닫히고 다시 전철이 출발했다. 바퀴가 레일을 스치는 소리가 윙윙거리며 귓등을 긁었다. 차창 밖으로 짙은 회색빛 벽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남자가 바지 단추와 지퍼를 열고 성기를 꺼냈을 때 병준은 약간 어지럼증을 느꼈다.
“이리 와.”
남자가 명령조로 말했다. 말투는 위협적이었지만 거기에는 부드러움과 유머가 섞여 있었다. 최소한 병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병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갔다. 전철이 흔들리는 바람에 잠깐 비틀거렸지만 꼴사납지는 않았다. 남자는 초록색 시트 위에 몸을 뒤로 젖히고 두 다리를 앞으로 쭉 뻗은 채 앉아 있었다. 병준은 남자의 두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눈앞에 늘어진 남자의 갈색 성기를 빤히 바라보았다.
“빨아.”
남자가 다시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남자는 병준에게는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 그저 허리를 조금 더 앞으로 들어 올렸을 뿐이었다. 병준은 자신에게 내밀어진 남자의 길쭉한 성기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러자 돌연 마음이 편해졌다. 심지어 입가에는 침이 고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남자의 성기를 입안으로 가져갔다. 목 안쪽까지 남자의 성기가 밀고 들어왔다. 처음에는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지만 혀가 자리를 잡자 참을만해졌다.
“물어뜯으면 뒤질 줄 알아.”
남자가 이빨을 갈며 말했다. 병준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면서 온몸을 떨었다. 물어뜯는 행위의 잔혹함을 떠올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행위가 야기하는 고통에 공감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물어뜯다’라는 단어 자체가, 이빨이 서로 갈리는 그 발음이 그를 흥분시켰다.
“기도라도 하는 거야?”
뻣뻣하게 굳은 병준에게 남자가 재촉했다. 잠시 우물거리던 병준은 이윽고 머리를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꼿꼿해진 남자의 성기가 그의 입 안 구석구석을 찔러댔고 예상치 못한 깊숙한 곳까지 함부로 침범했다. 수치심과 호흡 곤란 때문에 병준은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허기진 사람처럼 그것을 빨아올렸다.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무언가를 원해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것이 그것인지도 모른다.
“전철이 달린다, 달려.”
들 뜬 목소리로 남자가 외쳤다. 병준은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입안이 가득 차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입술 양 옆으로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역시 이건 꿈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준은 더 힘차게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남자의 하체도 같이 꿈틀거렸다. 전철은 계속 앞으로 달려갔다. 더 이상 어느 역에도 정차하지 않았다. 돌연 모든 역이 사라져버린 듯 했다. 너무 빨라서 마치 날아가는 것 같았다. 전철은 몇 번이나 좌우로 휘청거리더니 갑자기 덜컹 하고 크게 흔들렸다. 순간 병준은 허공에 던져진 것처럼 중력을 잃고 남자의 무릎을 꽉 움켜쥐었다. 전철이 크게 솟구쳐 올랐다가 거꾸로 곤두박질쳤다. 방향을 상실한 나머지 눈앞이 빙글빙글 돌고 선로가 나선형으로 뒤집어지면서 모든 경로에서 벗어났다. 전철과 터널이 분리되었다가 합쳐지고 다시 분리되기를 반복하다가 뜨거운 현기증의 폭렬과 함께 터널이 전철을 꿰뚫고 튕겨져 나갔다. 병준은 입을 꽉 다물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썅, 여기가 아냐. 여기가 아니라고.”
욕설을 지껄이면서 허둥지둥 상채를 일으키던 남자가 별안간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병준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들었다. 남자의 성기에서 무언가 하얗고 반짝이는 게 보였다. 틀니였다. 터질 듯이 발기된 남자의 성기에 틀니가 반지처럼 꽉 끼어있었다. 병준은 혀로 입안을 핥았다. 텅 비어있었다. 대신에 헐렁한 입술이 잇몸까지 말려들어왔다. 남자는 틀니와 병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거의 혼절할 지경이었다. 병준은 무언가 말하기 위해 남자를 향해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입을 몇 번 오물거렸을 뿐이었다. 그 때 남자의 성기가 비비 꼬이더니 틀니 사이에서 뿌연 정액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남자는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댔다. 정말이지 이런 난리법석이 없었다.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였다. 병준은 그만 와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바람 빠진 웃음소리가 전철이 달리는 내내 계속되었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