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하나 가르쳐 줄까?
뭔데?
난 내일 자살할 거야.
종민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창문에서 쏟아져 내리는 햇빛이 쓰레기와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뒤섞여있는 종민의 자취방을 훤히 비추고 있었다. 아, 꿈이었나. 하지만 아직도 그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했다. 난 내일 자살할 거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가 이토록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있다니 우스운 일이었다. 종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담뱃재와 먼지가 뽀얗게 엉겨있는 책상으로 다가갔다. 컴퓨터는 켜진 채였고 화면에 채팅창도 그대로 열려 있었다. 종민은 어젯밤 했던 채팅 대화를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김치만두 : 오늘은 별로 말이 없네
오즈 : 이것저것 생각할 게 많아서^^
김치만두 : 뭔데? 얘기해 봐
오즈 : 글쎄
김치만두 : 뭐 어때? 여기서는 무슨 말이나 떠들 수 있잖아
김치만두 : 무슨 고민 있어?
오즈 : 고민은 아냐
오즈 : 이미 고민은 끝났으니까
김치만두 : 그럼 뭐야?
오즈 : 비밀
김치만두 : 왜이래. 궁금하게...
김치만두 : 무슨 비밀인데?
오즈 : 됐어
김치만두 : 말해봐
오즈 : 정말 알고 싶어??
김치만두 : 당연하지
오즈 : 하지만 비밀을 알면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야
김치만두 : 책임? 무슨 책임??
오즈 : 알아버린 것에 대한 책임
김치만두 : 말 돌리지 말고 빨리 말해
오즈 : 잘 생각해 봐. 난 지금 너에게 기회를 주는거야
김치만두 : 책임져야 되면 지는 거지 뭐. 뭔데 그래?
오즈 : 난 내일 자살할거야
종민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그는 두 손으로 눈을 벅벅 문지르고는 모니터에 얼굴을 바싹 들이밀고 마지막 문장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어보았다. 혹시나 저 문장에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닐까, 토씨 하나하나까지 분석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저 짧은 문장에 어떤 다른 뜻이 있겠는가?
김치만두 : 농담 하지 마 짜증나게
오즈 : 농담 아냐
오즈 : 내일 밤 새벽에 할거야
김치만두 : 웃기지 말라니까
오즈 : 믿건 안믿건 네 자유지
오즈 : 무시할 테면 무시해 버려...
오즈 : 난 상관없으니까^^
오즈 : 이만 가 볼게
오즈 : 내일 밤에 잠깐 여기 들어올건데
오즈 : 혹시 그 때 너도 있으면
오즈 : 마지막으로 볼 수도 있겠네
오즈 : 그럼 안녕~~~~
종민은 진저리를 치며 채팅창을 닫아버렸다. 자살이라니, 진심일까? 에이, 설마. 그는 혀를 차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웃음이 잦아들자 차가운 기운이 스멀스멀 턱 밑으로 기어 올라와 그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아아, 씨발, 괜히 물어봤어. 책임 어쩌고 이상한 얘기를 지껄일 때 관뒀어야 했어. 딱히 그 비밀이라는 게 궁금하지도 않았는데. 그나저나, 진짜로 자살하는 건 아니겠지? 종민은 다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거세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웃기는 소리지. 진짜일 리 없어. 그 놈은 인터넷에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끌어보려고 발악하는 흔하디흔한 인간들 중 한명일 뿐이야. 애정결핍자들. 관심병환자들. 다중인격자들. 종민은 억지로 입 꼬리를 올리며 책상위에 놓여 있던 담뱃갑에서 담배를 한 대 꺼내 입에 물었다.
인터넷 채팅은 종민이 5년 째 꾸준히 해오고 있는 소일거리였다. 그 동안 그와 채팅한 사람만 해도 너끈히 수천 명은 될 것이다. 그 중에는 별별 희한한 사람들이 다 있었다. 자신이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사람부터, 9살 어린 나이에 희귀 불치병에 걸렸다거나, 영등포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이라거나, 유명 여가수의 동성 애인이라거나, 회초리로 엉덩이가 부어오를 만큼 맞아야만 발기가 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채팅방에서 굴러먹을 만큼 굴러먹은 그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자살 예고라니.
오즈와는 두 달 전 채팅방에서 처음 만났다. 제법 말이 잘 통해서 거의 매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지만 종민이 오즈라는 인물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없었다. 오즈는 철저하게 자신의 신상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만 알려달라고 조르는 종민의 부탁을, 아니 ‘김치만두’의 부탁을 오즈는 딱 잘라 거절했다.
어차피 믿을 것도 아니잖아?
종민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뜨끔했고, 그 뒤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 때 후두둑 떨어지는 담뱃재 때문에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몇 시지? 재떨이에 담배를 구겨버리며 시계를 본 종민은 그만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11시 강의에 늦게 생긴 것이다. 종민은 세수도 하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준비를 마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바깥은 겨울바람이 제법 매서웠다. 계속 되는 겨울 가뭄에 벼릴 대로 벼려진 바람이었다. 코트를 바싹 목 위로 끌어당기며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화창해서 얇은 유리처럼 깨질 것만 같았다. 안개와 황사로 유명한 인천의 명성이 무색한 날이었다. 그는 선명해서 오히려 낯설어 보이는 골목길을 지나 전철역까지 한달음에 뛰어갔다. 그리고 막 떠나려는 전철을 아슬아슬하게 잡아타고 빈자리에 털퍼덕 주저앉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보니 출근 시간이 지난 전철 안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몇몇 사람들이 듬성듬성 자리에 앉아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쪼이고 있었다. 그는 어쩐지 주눅이 들어서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햇빛을 잠자코 흘끔거렸다. 전철이 쇳소리를 내며 방향을 바꾸자 토막토막 난 그림자가 사람들의 얼굴을 가로지르며 지나갔다.
난 내일 자살 할 거야.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아 종민은 고개를 돌렸다. 햇빛이 그의 발치에서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그는 햇빛의 모서리를 헛되이 운동화 발로 꾹꾹 밟아 눌렀다. 만에 하나라도 그 말이 사실이면 어쩐다. 전철이 다시 방향을 틀자 발끝에 걸려 있던 햇빛이 공처럼 튀어 올라 다음 칸으로 물러갔다. 어쩌긴 뭘 어째? 그는 자신의 운동화를 몸 쪽으로 바짝 끌어당기며 중얼거렸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비밀을 알면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야.
종민은 자신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왼손으로 움켜쥐고 있는 힘껏 비틀었다.
학교에서도 종민은 도무지 강의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먼지 덩어리가 그의 가슴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그는 수십 번 반복했으면서도 또 다시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40분. 오늘 밤 새벽쯤이라고 했으니 이제 열 몇 시간 남짓 남은 셈이었다. 조바심이 난 종민은 옆자리에 앉은 친구 한수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만약에 말이야.”
“뭐?”
책에 필기를 하던 한수가 둥그렇게 휜 두터운 눈썹을 치켜 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만약에 내가 내일 자살할 거라고 말하면 넌 어떻게 할래?”
“뭐라고?”
“내가 자살할 거라고 말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뭐야. 재수 없게.”
한수가 탁 소리 나게 볼펜을 내려놓았다.
“너, 무슨 일 있어?”
“아, 아냐. 내 얘기가 아니고. 그러니까 만약, 만약이라니까. 만약에 네가 아는 어떤 사람이 자살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당연히 말려야지.”
“왜?”
자신도 모르게 되묻는 종민의 말에 한수는 기가 막혔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냐고?”
“아니, 왜가 아니고……. 어떻게, 어떻게 말릴 건데?”
“글쎄. 그거야 생각해 봐야지. 하지만 몰랐으면 몰랐지 아는 데 어떻게 가만히 있냐.”
종민은 고개를 수그렸다. 한수의 대답이 정확히 정곡을 찔렀다. 알아버렸다는 것, 그것이 문제였다. 한수가 종민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말했다.
“야, 너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아니라니까. 다른 사람 얘기야.”
“다른 사람 얘기라면서 꺼내놓는 대부분의 얘기가 실은 자기 얘기라던데?”
“진짜 다른 사람 얘기야.”
“진짜지? 너 나한테 이렇게 말 흘려 놓고 이상한 짓 하면 안 된다. 그럼 내가 뭐가 되겠냐. 평생의 저주지, 저주. 나한테 그런 짓 하면 안 돼.”
저주. 아, 비밀이 깨지면 저주가 되는 건가?
종민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까맣게 꺼풀이 일어난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오늘 밤 자살을 계획하고 있는데 자신은 대학 강의실에 앉아 [서양사 재조명] 수업을 받고 있는 것이 가당치 않게 여겨졌다. 하지만 이건 우스운 변덕일 뿐이고 또 위선적인 감상이라는 것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만 하루 평균 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그 중 자살하는 사람이 수십 명에 이르는데 새삼 연민에 빠질 일이 무엇인가. 당장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의 숨이 끊어지고 있을 게 아닌가. 하지만 세상은 이토록 화창하고 수업은 이토록 지루하기만 한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