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 (2)

by 곡도




오후 수업까지 모두 마치고 나자 종민은 어지러운 생각에 치여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거기다 어젯밤 채팅을 하느라 잠까지 설친지라 어디 구석에 처박혀 푹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정작 잠들 수 있을까? 이렇게 1초 1초 깎여나가는 시간이 자신의 어깨위로 요란스레 떨어지고 있는데 말이다. 진절머리를 치며 가방을 집어 드는 종민을 한수가 뒤에서 잡아끌었다. 저녁식사 겸 술이나 한 잔 하자는 것이었다. 술을 즐겨하지 않는 한수가 먼저 술을 마시자고 청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실은 한수는 오전에 종민이 했던 얘기에 내내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희미한 불안감을 말끔히 털어내지 않고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리고 만에 하나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어찌 되었든 자신은 최선을 다했노라 자위할 만큼의 알리바이가 필요했다. 종민은 내키지 않았지만 잠자코 한수를 따라 나섰다. 한수를 핑계 삼아 오늘 밤을 얼렁뚱땅 보내려는 속셈이었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다가 내일 아침에야 깨어난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때쯤이면 모든 게 시시하고 시들해져 있을 테니까.

두 사람은 학교 근처 지하에 있는 빈대떡 집으로 향했다. 콩기름 냄새와 고기 냄새, 향수 냄새, 담배 냄새가 뒤섞인 빈대떡 집은 싫증과 추위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나무판자를 얼기설기 덧대어 오두막집 분위기를 낸 실내는 누추하고 음침했지만 저렴한 안주 탓에 이곳은 늘 만원이었다. 그나마 벽마다 빼곡히 적힌 가지각색의 낙서들이 가게 전체에 천진한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종민과 한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담배부터 한 개비씩 피워 물었다. 기름 냄새 탓인지 담배 맛이 더 고소하게 느껴졌다. 종민은 희미한 한지 전등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가늘고 긴 연기를 머리 위로 흘려보냈다. 누런 불빛이 짙은 담배 연기에 가려 얼룩얼룩한 그림자를 그의 얼굴에 드리웠다. 어쩐지 온 세상이 다 얼룩진 것 같아 그는 두 눈을 비볐다.

두 사람은 매운 알탕과 부추 빈대떡을 앞에 놓고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를 마셨다. 기름진 음식에 술이 몇 잔 들어가고 왁자한 농담이 오가자 종민의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오히려 자꾸만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채팅에서 만난 사람의 허튼 소리에 휘둘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오즈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텔레비전 시청을 즐기지 않는다거나,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거나, 하루에 세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신다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거나, 아동포르노를 혐오한다거나, 앵거스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등의 사소하고 쓸데없는 신변잡기뿐이었다. 혹여 오즈가 다른 닉네임으로 채팅방에 들어와 하루 종일 채팅을 한다 해도 종민은 그가 오즈라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아니, 그건 더 이상 오즈가 아닌 걸까. 참 내, 무슨 상관이람? 고루한 표현처럼 채팅이란 일종의 가면무도회였다. 가면무도회에서는 사람의 머리수가 아니라 가면의 개수대로 인원을 센다. 그곳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숨김없이 밝힌다 해도, 가령 실명을 닉네임으로 쓰거나 자신의 실물 사진을 공개한다 해도 그 역시 가면일 뿐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난 내일 자살할 거야.


하지만 이 한마디에 모든 게 무너지고 말았다. 마치 가면무도회 도중에 누군가 쓰고 있던 가면을 불쑥 벗어 던진 것과 같았다. 그의 가면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 감히 상대방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일 것이다.

“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쓸데없는 생각 말고 죽죽 마셔.”

종민은 자신에게 자꾸 술을 권하는 한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종민을 취하게 할 심산이었던 한수는 자신이 먼저 취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문득 종민의 머릿속에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혹시 한수가 오즈인건 아닐까? 그는 곧바로 웃음을 깨물었다. 말도 안 되지. 한수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친해져서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지원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한수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다고 종민은 자신할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자살 예고 따위의 싱거운 짓을 할 위인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는 이번에는 웃음 대신 이빨을 자근자근 씹었다. 한수 역시 가장 친한 친구인 종민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종민이 인터넷 채팅을 통해 어린 여자애들을 꼬셔왔다는 걸 한수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만난 여자들과 몇 번이나 잠자리를 가졌다는 것도? 종민은 돌연 한수가 낯설게 느껴졌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을 ‘종민’이라고 믿고 있는 한수가 낯설게 느껴졌다. 종민은 두 눈을 문지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름진 튀김 냄새, 왁자한 소란, 날카로운 비웃음, 핸드폰 벨소리, 취기가 번뜩이는 눈동자……. 담배 연기 때문에 자꾸만 눈앞이 흐려졌다.


난 내일 자살할거야.


종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지갑에서 삼만 원을 꺼내 한수의 손에 쥐어주고는 도망치듯 술집을 빠져나왔다. 싸늘한 밤거리에는 어깨 속으로 얼굴을 파묻은 사람들이 종종걸음을 치며 걸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이 사람들 중 한명이 오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종민은 숨통이 조여 오는 것 같았다.

그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책상 앞으로 달려가 컴퓨터부터 켰다. 시간은 밤 10시 20분을 지나고 있었다. 채팅창에 오즈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오지 않은 건지, 아니면 이미 왔다 간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종민은 턱을 괴고 앉아 무작정 오즈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오즈를 만나서 어떻게 해야겠다는 계획 같은 건 없었다. 단지 오즈를 만나야만 했다. 11시 7분, 마침내 오즈가 나타났다.



오즈 : 안녕?^^

오즈 : 잠깐 인사하러 들린 거야

오즈 : 마지막으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네

김치만두 : 진짜로 할 생각이야?

오즈 : 믿거나 말거나 네 자유라고 했잖아

김치만두 : 그러니까 진짜 할 생각이야?

오즈 : 그렇다니까

김치만두 : 꼭 그래야 돼?

김치만두 :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김치만두 : 앞으로 좋은 일들이 더 많이 생길 수도 있잖아

오즈 : 너도 지루한 얘기를 하는구나

오즈 : 결국 죽는 건 마찬가지인데

오즈 : 다들 삶에 너무 강박적이라니까

김치만두: 한번만 다시 생각해 봐

오즈 : 세상에는 말이야

오즈 : 설득할 수 없는 사람이 세 종류 있대

오즈 : 한사람은 신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고,

오즈 : 또 한사람은 자살하려는 사람이고

오즈 : 제일 꽉 막힌 사람은

오즈 : 신이 없다고 믿으면서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이래ㅎㅎㅎ

김치만두 : 그러니까, 진짜 하겠다고?

오즈 : 대체 몇 번을 묻는 거야? ㅎㅎ

김치만두 : 그럼... 몇시쯤에 할 생각인데?

오즈 : 새벽 2시

김치만두 : 새벽 2시?

김치만두 : 그럼 3시간도 남지 않았잖아

오즈 : 그래서 곧 가봐야 해

김치만두 : 어디서?

김치만두 : 어디서 할 생각인데?

오즈 : 공원에서

김치만두 : 무슨 공원?

오즈 : 공원 이름은 알아서 뭐하게

오즈 : 비밀을 알면 괴로울 뿐이라는 걸

오즈 : 아직도 배우지 못했나봐? ㅎㅎ

오즈 : 그리고 내가 알려줘도 넌 오지 못할 걸?

김치만두 : 왜?

오즈 : 바보가 되고 싶지 않을 테니까

김치만두 : ......

김치만두 : 왜 나한테 자살할 거라고 말한거야?

오즈 : 네가 물어 봤잖아

김치만두 : 하지만 말 안할수도 있었잖아

오즈 : 글쎄.....

오즈 : 너라면 상관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나보지.

오즈 : 넌 그렇잖아

오즈 : 누구의 얘기든 열심히 들어주는 것 같지만

오즈 : 실은 적당히 비위나 맞추면서

오즈 : 속으로는 시큰둥해 한다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아?

오즈 : 하지만 누군들 그렇지 않겠어?ㅎㅎ

오즈 : 자, 나는 이만 가봐야겠다

김치만두 : 잠깐만

김치만두 : 정말 이대로 죽어도 괜찮아?

김치만두 : 아쉬운 게 없어?

오즈 : 별로

오즈 : 한 가지 생각나는 게 있긴 하네

오즈 : 추운 겨울날 밖에 나가면 말야

오즈 : 살갗이 섬뜩하잖아

오즈 : 36.5도의 체온과 영하의 공기가 만날 때

오즈 : 모든 게 선명해 진단 말이야

김치만두 : 무슨 말이야??

오즈 : 그냥 그렇다고.

오즈 : 잘 지내^^

김치만두 : 잠깐만

김치만두 : 그 공원이 어디야

오즈 : 정말 알고 싶어? ㅎㅎ

김치만두 : 어디야

오즈 : 인천대공원

김치만두 : 인천대공원???

김치만두 : 너..... 내가 인천에 살고 있는 거 알고 있었지?

김치만두 : 예전에 날씨 얘기 하다가 내가 말한적 있었잖아

김치만두 : 혹시 그래서 나한테 비밀을 털어놓은 거야?

김치만두 : 내가 막아주기를 바라는 거야?

오즈 : ㅎㅎㅎ

오즈 : 그냥 난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죽고 싶을 뿐이야

오즈 : 이제 가봐야겠다

오즈 : 안녕^^

* 오즈님이 퇴실하셨습니다.


종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방안을 돌아다녔다. 이 모든 게 실제 상황일까?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자신과 오즈는 뻔한 대사를 서로 주고받으며 연극을 하고 있었던 게 분명해. 지금쯤 오즈는 자살은커녕 다른 채팅방에서 다른 사람과 다른 닉네임으로 또 다른 연극판을 벌이고 있을 걸? 종민은 연극이 끝난 후 혼자 남아 텅 빈 객석을 바라보고 있는 배우처럼 오즈가 떠난 빈 채팅방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만약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그는 벽에 걸린 크고 둥그런 시계를 쳐다보았다. 12시 50분이었다. 인천공원에 2시 전에 도착하려면 당장 출발해야 했다. 황급히 코트를 집어 들고 걸음을 떼던 그는 별안간 우뚝 멈춰 섰다.


내가 알려줘도 넌 오지 못할 걸. 바보가 되고 싶지 않을 테니까.


종민은 얼음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가슴이 싸늘해졌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 놀아나 새벽 2시에 공원으로 쫒아가는 건 분명 바보 같은 일이었다. 정말 허탕이라도 친다면 분하고 창피해서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코트를 손에 든 채 방안을 뱅글뱅글 돌았다. 어찌해야 좋을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죽음에게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오즈를 구하기 위해 이 모든 걸 감수해야 하는 걸까?

이제 시계는 정확히 1시 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종민은 그대로 방 한가운데 서서 숨소리조차 죽이고 딸깍딸깍 움직이는 초침을 노려보았다. 너무나 더디게 움직이는 초침은 한 바퀴를 도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하지만 결국 차근차근 틀림없이 한 바퀴를 돌고야 마는 것이다. 그렇게 1분, 또 1분. 다시 1분. 종민은 마치 자신의 인생 전체가 1분 단위로 끝없이 분절되는 것만 같았다. 그는 간신히 눈을 깜빡였다. 정각 2시가 되면 이 마비는 풀어지겠지만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분명 무언가가 하얗게 바래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선명해지지 않을 것이다. 시간은 원을 그리며 느릿느릿 되돌아오고, 매일 밤 새벽 2시가 되면 이 모든 걸 수백 번, 수천 번 다시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진짜 저주가 아니겠는가. 그는 코트에 팔을 쑤셔 넣으며 밖으로 뛰어 나갔다. 거리에는 매서운 바람과 함께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을 올려다 볼 새도 없이 그는 곧바로 집 앞을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타고 외쳤다.

“인천대공원으로 가주세요. 최대한 빨리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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