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는 잠자코 미터기를 누르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한 겨울 새벽, 그것도 이렇게 진눈깨비가 쏟아지는 혹한에 공원이라니, 궁금할 만도 하련만 기사는 별다른 질문이 없었다. 하긴 손님의 사정을 시시콜콜 알아서 무엇 하겠는가? 자신에게는 왜 저런 현명함이 없었는지 종민으로서는 통탄할 일이었다. 입술을 자근자근 씹으며 그는 핸드폰 시계를 보았다. 1시 11분. 서두르면 1시 50분까지는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울렁이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희끗희끗한 바람에 날려 진눈깨비가 새까만 어둠 너머로 흩어지고 있었다. 종민은 문득 그 광경이 채팅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진심과 거짓이 뒤섞여 진눈깨비처럼 쏟아지는 세상.
이제까지 종민에게 그것은 그저 멀찍한 풍경일 뿐이었다. 흔들면 눈이 내리는 유리구슬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지만 바깥세상과는 동떨어진 진공의 공간이었다. 얼핏 보면 와글와글한 것 같아도 귀를 기울이면 아무도 없었고, 결코 녹지 않는 눈이 처음처럼 모든 걸 깨끗이 덮어주곤 했다. 그 온기 없는 새하얀 풍경이 종민은 좋았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 더 이상 그 무엇도 ‘풍경’이 아니었고 그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종민은 세차게 이를 갈았다. 오즈를 만나면 이따위 짓을 꾸민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할 작정이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새 1시 45분이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죠?”
종민이 다급하게 외쳤다.
“눈 때문입니다. 속도를 낼 수가 없어요.”
택시운전사가 냉담하게 대답했다.
1시 57분이 되서야 택시는 겨우 공원 앞에 도착했다. 내내 가슴을 졸이던 종민은 허둥지둥 돈을 치르고 굴러 떨어지듯 택시에서 뛰어내렸다. 하지만 막상 그는 택시가 떠날 때까지도 그 자리에 우두커니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저 넓은 공원에서 어떻게 얼굴도 모르는 오즈를 찾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아니, 오즈가 정말 저 공원에 있기는 한 걸까? 드문드문 가로등이 밝혀져 있었지만 진눈깨비가 흩뿌리는 공원은 칠흑보다 더 어둡게 느껴졌다. 진눈깨비에 젖어서인지 불길한 예감 때문인지 그의 무릎이 덜덜 떨려왔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없었다. 종민은 캄캄한 공원 안으로 무작정 뛰어 들어갔다.
한 겨울 새벽의 공원은 인적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공원 한 가운데 자리한 인공 호수에는 시커먼 살얼음이 껴있어서 마치 깊은 구덩이처럼 보였다. 종민은 무작정 호수 주위를 돌며 오즈를 찾기 시작했다. 진눈깨비에 젖은 머리와 어깨로 한기가 스며들어 그는 자꾸만 두 발을 땅바닥에 굴러야 했다. 어쩌면 오즈는 지금쯤 따듯한 아랫목에 누워 ‘그 병신, 정말로 공원에 간 거 아냐?’ 하며 키득거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덩달아 헛웃음을 지으며 핸드폰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어느새 2시 15분을 지나고 있었다. 너무 늦어버린 걸까? 이미 모든 게 끝장나버린 게 아닐까? 그는 이제 정말 오즈를 발견하게 될까봐 두려워졌다. 종민은 신음소리를 흘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얗고 까만 진눈깨비가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뱃속이 울렁거려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는 비틀거리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 결론이든 끝장을 봐야 했다. 그 전까지는 이 춥고 어두컴컴한 공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종민은 자전거 광장과 수목원을 돌아 호수 건너편에 있는 조각원까지 달려갔다. 진눈깨비가 몰아치는 황량한 들판에 듬성듬성 서있는 기하학적인 조형물들은 아래쪽에서 비추는 희미한 조명들로 인해 더 괴괴해 보였다. 도무지 현실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종민은 자신이 그저 악몽 속을 헤매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텅 빈 조각원에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긴, 이렇게 시야가 트인 곳에서 일을 벌일 리가 없지. 그대로 야외무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세워진 조형물 하나가 종민의 눈에 들어왔다. 지붕이 없는, 네 개의 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집 모양의 조형물이었다. 창문은 없고 다만 돌로 된 조그만 문이 반쯤 열려있었다. 종민은 ‘오즈’가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그냥 난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죽고 싶을 뿐이야.
종민은 언덕 위로 달려 올라갔다. 그리고 좁은 문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자마자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뒤로 주저앉았다. 안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정말로 사람이 있었다.
“이봐요.”
종민이 소리쳤지만 그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종민은 커다랗게 고함을 질렀다. 그래도 꼼짝하지 않았다. 마치 바닥에 쓰러져 얼어붙어버린 조각상 같았다. 종민은 네 발로 기어 안으로 들어갔다. 얼굴을 뒤덮은 긴 머리로 보아 여자였고, 머리맡에는 소주병과 빈 약통이 놓여 있었다.
종민은 와들와들 떨며 그녀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 놓은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새파란 손이 눈에 들어왔다. 종민은 비명을 지르며 주먹으로 그녀의 등을 힘껏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그렇게 몇 번이나 주먹을 날렸다. 자신이 죽은 시체를 내리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그 때, 돌연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길고 까만 머리카락이 뒤엉킨 새하얀 얼굴은 흡사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괴상할 정도로 크게 입을 벌리더니 하얀 거품이 이는 액체를 꺼억꺼억 토해냈다. 그리고 자신의 토사물 속에 고개를 처박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두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주저앉아있던 종민은 그대로 그녀를 들쳐 업고 뛰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토사물이 그의 옷을 흠뻑 적셨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다. 얼어붙은 진눈깨비는 여전히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어두운 공원은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종민은 저 멀리 보이는 공원 관리실의 불빛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종민이 여자를 업고 뛰어 들어가자 관리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관리실 직원이 득달같이 차를 몰고 종민과 여자를 인근 병원 응급실로 태워갔다.
“도와주세요. 약을 먹은 것 같아요.”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종민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달려온 의사가 여자의 눈을 열어보며 물었다.
“무슨 약이죠?”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일단 위세척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보호자는 여기서 기다리세요.”
축 늘어진 여자는 그대로 간이침대에 실려 검사실 안으로 사라졌다. 검사실 문이 닫히자 종민은 다리가 풀려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그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 몸은 토사물과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떨고 있는 그에게 간호사가 다가왔다.
“방금 들어간 여자분 보호자 되시죠?”
“네? 아뇨, 저기…….”
“보호자 아니세요?”
“보호자는 아닙니다.”
“그럼 어떤 관계세요?
종민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오즈와 자신을 무슨 사이라고 해야 하나?
“친구입니다.”
“아, 그럼 여기 치료 동의서에 사인 좀 해주세요. 그리고 좀 씻으셔야겠네요. 수건 드릴 테니까 저기서 씻고 오세요.”
간호사는 종민에게 파란색 병원 로고가 찍혀있는 수건을 건네주었다. 그는 얼이 빠진 채 순순히 화장실로 들어가 윗도리를 벗었다. 그제서야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종민은 헛구역질을 하다가 새하얀 수건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트렸다.
몸을 씻은 뒤 그는 검사실 앞 복도 의자에 앉아 여자의 위세척이 끝나길 기다렸다. 1시간 정도 지나자 마침내 여자가 누워있는 간이침대가 나타났다. 여자는 여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종민은 간호사에게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는 의사를 붙잡고 물었다.
“저기, 괜찮을까요?”
“아, 시간이 오래 경과 되지 않아서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빨리 발견돼서 천만다행입니다. 그런데 워낙 독한 약을 먹었어요. 어디서 그런 약을 구했는지, 원. 회복될 때까지 고생 좀 하실 겁니다.”
여자가 병실로 옮겨지는 동안 종민은 정말 그녀의 친구라도 되는 냥 모든 입원 수속을 처리했다. 심지어 응급실 비용까지 계산했다. 수속을 마친 후, 그는 병실로 가서 여자 곁에 앉았다. 아까의 난리가 다 거짓말인 것처럼 병실 안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핏기 없이 창백했지만 표정만은 편안해 보였다. 만약 자신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지금도 그 싸늘한 공원에 누워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새삼 오금이 저렸다. 종민은 그녀의 얼굴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정도로 보이는 평범한 외모의 여자였다. 오즈가 이런 사람이었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진눈깨비가 멈추고 동이 터오고 있었다. 참으로 길고도 괴상했던 하룻밤이었다. 진심으로 미소를 지으려는 찰나 별안간 여자가 벌떡 일어났다.
“여기가 어디에요?”
그녀가 무서운 얼굴로 외쳤다. 당황한 종민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병원이에요.”
“병원이요?”
그녀는 믿지 못하겠는지 한참이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그 바람에 같은 병실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니까 죽지 못한 거네요?”
“네.”
“왜요? 왜 죽지 못한 거예요?”
그녀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며 외쳤다. 종민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거야 제가 그쪽을 찾아냈기 때문이죠.”
종민의 볼멘소리에 그녀는 눈물 콧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을 치켜들었다.
“당신이 날 찾아내서 병원에 데려왔다구요?”
“네.”
“아니, 어떻게 절 찾았는데요?”
“참 내. 그거야 그쪽이 내게 알려줬으니까 그렇죠.”
그녀는 입을 쩍 벌리며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종민은 그녀의 소스라친 표정에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내가 절대 오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나 보지? 나에 대해 뻔히 안다고 생각했던 거야.
“하지만, 당신이 왜요?”
그녀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당신이 왜 나를 구해줘요?”
“네?”
“당신도 같이 죽기로 했잖아요.”
“뭐라구요?”
“그럼, 나를 속인 거예요?”
종민은 어리둥절해서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무언가 섬뜩한 예감이 들었지만 그게 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한참동안 서로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종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즈 아니에요?”
“누가요? 제가요? 무슨 소리에요. 오즈는 당신이잖아요.”
두 사람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얼떨떨했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똑같은 생각이 동시에 두 사람의 머리를 내리쳤다. 오즈가 아니라면 대체 이 사람은 누구지?
먼저 정신을 차린 쪽은 종민이었다.
“난 오즈가 아니에요. 반대로 오즈가 죽는 걸 막으려고 공원에 간 겁니다. 인천대공원에서 자살할 거라고 오즈가 말했거든요. 아니, 제 말은, 채팅에서 말했다구요. 그래서 난 당신이 오즈인 줄 알고……. 그런데, 같이 죽기로 했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오즈도 거기 공원에 있었던 거예요?”
“아뇨. 그게 아니라……. 오즈하고 저는 어제 새벽 2시에 동시에 자살하기로 했었어요.”
“동시에요? 그럼 오즈는 어디서 죽기로 한 건데요?”
“몰라요. 저한테 알려주지 않았어요. 그건 비밀로 남겨놓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오즈는 내가 인천대공원에서 자살할거란 걸 왜 당신한테 알려준 거죠?”
“그거야, 그쪽을 살리려고 했던 거겠죠.”
“저를요? 아니, 아뇨,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어째서요?”
“왜냐하면 내게 자살약을 보내준 게 오즈니까요.”
두 사람은 또 다시 말문이 막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리둥절해서가 아니었다. 마침내 모든 걸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오즈는 한날한시에 목숨을 끊자며 그녀에게 자살약을 보내주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녀가 자살할 시간과 장소를 종민에게 알려 주었다. 오즈는 그녀를 살리려고 했던 걸까 죽이려고 했던 걸까? 어쩌면 오즈에게는 그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는지도 모른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결국 오즈는 기꺼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한 가지 의문만이 남은 셈이었다. 과연 오즈는 지난밤 새벽 2시에 목숨을 끊었을까? 아니면 이 모든 게 그저 다른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한 소름끼치는 코미디에 불과했나?
“그쪽은 헛수고한 거네요.”
허탈하게 웃는 종민에게 여자가 말했다.
“어쨌거나 거기라도 구했으니 헛수고는 아니죠.”
종민의 대답에 여자의 한쪽 입 꼬리가 비틀렸다.
“그러니까 헛수고라는 거예요. 난 병원에서 나가자마자 죽어버릴 거거든요.”
종민은 경악에 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비틀 뒷걸음질 치다가 마비라도 된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여자에게 달려들어 목을 졸라버릴 것처럼 두 눈이 포악하게 희번덕거렸다. 하지만 그는 두 눈을 벅벅 문지르더니 별안간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들릴 듯 말 듯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요.”
그리고 종민은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 날 이후로 종민은 더 이상 채팅방에서 오즈를 볼 수 없었다. 단순히 오즈가 닉네임을 바꾼 건지, 아니면 진짜 죽어버린 건지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종민은 언젠가부터 ‘오즈’라는 닉네임을 쓰기 시작했다. 자신이 몇 번째 ‘오즈’일까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요즘도 종민은 가끔 꿈을 꾼다. 하얗게 진눈깨비가 쏟아지는 그 춥고 어두운 공원에서 누군가 헤매고 있는 꿈. 그 사람이 종민인지, 오즈인지, 아니면 이름도 닉네임도 알지 못하는 그녀인지는 종민 혼자만의 비밀이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