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쏴아아 하고, 붉은색 시멘트 기와가 얼기설기 얽혀 있는 지붕 위로 세찬 바람이 비를 퍼부으며 지나간다. 꼭 솟구치는 거센 파도 같다. 그 빗줄기 사이로 번개가 번쩍이더니 곧이어 머리 위에서 천둥이 후려친다. 그 힘에 밀려 기와가 우르르 떨고 닫혀있는 문에서는 쿵쿵 소리가 난다. 창문 유리가 와그작거리고 사방이 온통 삐걱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이러다간 10평 남짓한 허름한 집이 금방이라도 기우뚱 무너져 내릴 것 같다. 이미 한쪽 구들이 내려앉기 시작했으니 정말 무너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집 안은 그저 무심한 침묵과 어둠 속에 멀찍이 잠겨있다. 창문을 통해 비쳐 들어오는 나무 그림자가 채찍질처럼 날카로운 잔상을 벽지 위에 뿌리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다. 빈 집일까? 아니다. 누군가 있다. 한 남자가. 그는 벽에 등을 기대어 쪼그리고 앉아있다. 가늠할 수 없는 시커먼 방구석을 노려보며 그 모든 것을 향해 귀를 기울인다.
‘이까짓 태풍 따위.’
기섭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더니 바지를 추켜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구석에 던져놓았던 검은 고무장화를 신고 지체 없이 밖으로 나간다. 문을 열자마자 몰아치는 세찬 비바람에 눈을 뜨기도 힘들 정도다. 시퍼런 빛과 굉음이 번갈아가며 밤하늘을 들쑤셔 놓고 있다. 웬만큼 배짱 있는 사람도 쭈뼛거리며 두 눈을 뒤룩거리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다. 그러나 뭐가 대수랴. 그는 잠깐사이에 흠뻑 젖은 머리카락을 쓱쓱 뒤로 문지르고는 문 옆에 걸려있는 반투명의 젖빛 비닐 우비를 걸쳐 입고 뒷마당으로 향한다. 뒷마당으로 이어지는 철사 울타리를 돌아서자 눅눅한 썩은 내가 물씬 풍겨온다. 말만 마당이지 실은 허물어 내린 담벼락과 갖가지 쓰레기들, 부서진 가구, 구겨진 양철통, 하얀 스티로폼 조각, 종이박스, 음식물 찌꺼기 같은 것들이 어지럽게 쌓여있어서 쓰레기장이나 다를 바 없다. 날이 좋았다면 수천마리의 파리들이 새까맣게 꼬여 있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진흙에 반쯤 잠긴 빈 시멘트 포대를 밟자 몇 마리의 파리들이 튀어나오더니 재빨리 빗속으로 사라진다.
기섭은 쓰레기더미를 지나 어두컴컴한 마당 한 켠으로 걸어간다. 대체 그는 왜 이 궂은 날, 그것도 까마득한 새벽에 물웅덩이가 흥건한 이 누추한 마당을 가로지르는 것일까. 그 때 내려치는 찰나의 빛 갈래 속에서 새까맣고 커다란 무언가가 불쑥 그의 눈앞에 솟아오른다. 그것은 이 너절한 집 마당에는, 아니 사실 그 어느 집 마당에도 어울리지 않을 2m 높이의 직육면체 쇳덩어리이다. 튀어 오르는 비에 젖어 새까맣게 번들거리는 쇳덩어리는 진흙투성이 한가운데서 꽤나 고상하고도 괴상해 보인다. 창고일까? 아닐 것이다. 대체 이게 뭐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이웃사람들에게 기섭이 창고라고 둘러댔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모양의 창고는 본적도 없는데다 단순히 창고라고 하기에는 빈틈하나 없이 탄탄하고 심지어 고압적인 느낌까지 주기 때문이다. 몇 년이나 마당 공사를 한다며 땅을 파헤치더니 저게 무슨 엉뚱한 짓거리람. 이웃들은 한동안 조소와 험담을 섞어 입방아를 찧었지만 곧 관심이 멀어졌다.
그는 쇳덩어리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축축하고 미지근한 표면을 손으로 문질러 본다. 두툼한 쇠의 두께가 손바닥 밑으로 단단하게 전해진다. 잠깐 그의 입술에 미소가 떠오르더니 천둥소리와 함께 재빨리 사라진다. 얼핏 보면 한 덩어리의 거대한 철괴 같지만, 찔레나무로 반쯤 뒤덮인 쇳덩어리 뒤쪽 편에 검은색 철문이 있다. 1m 정도 높이의 작은 문인데 척 보기에도 이만저만 튼튼한 게 아니다. 그는 자신의 윗도리 안쪽을 더듬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낸다. 작은 쇠꼬챙이처럼 생긴 열쇠를 구멍에 넣고 돌리자 둔탁한 쇳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벌어진 문틈으로 보이는 건 혼탁하고 먹먹한 어둠뿐이다. 그러나 그는 주저 없이 허리를 구부리고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곧바로 어른 팔뚝만한 빗장 두개를 문에 단단히 걸어버린다. 이제 중장비 없이는 누구도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기섭은 젖은 우비를 벗어 문 옆에 던져 놓고는 벽을 더듬어 무언가를 찾는다. 곧 탈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이 밝아진다. 손전등을 켠 것이다. 그는 손전등으로 천정과 모서리를 비춰본다. 비라도 새지 않나 살펴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퀴퀴한 먼지 냄새만 날 뿐 실내는 건조하기까지 하다. 이윽고 불빛을 정면으로 돌리자 바닥 한가운데에 지하로 이어지는 사다리가 드러난다. 그는 손전등을 목에 걸고 사다리를 내려간다. 가느다란 목구멍 같은 좁은 길을 따라 3미터 정도 내려가자 막다른 곳에 또 다른 문이 나타난다. 빈틈없이 견고해 보이는 하얀색의 매끈한 문 한가운데에는 자주색 핸들이 달려있다. 꾸덕꾸덕 핸들을 돌려 힘껏 문을 잡아당기자 냉장고 두께만한 문이 김빠지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린다. 그 안에는 마치 몇 만 년 동안 밀봉되어 있었던 것 같은 서늘한 어둠이 덩어리째 가라앉아있다.
그는 안으로 들어서더니 이 문마저 닫아 버린다. 묵직한 울림과 함께 어둠이 울렁이다가 다시 잠잠해 진다. 그는 안쪽에 있는 핸들을 돌려 문을 고정시키고 다시 두 개의 빗장으로 단단히 걸어 잠근다. 그리고 그대로 어둠을 향해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하지만 정적이야말로 바로 그가 듣고 있는 것이다. 귀가 멀어버릴 만큼 절대적인 적막. 이 안에 들어오면 바깥세상이 얼마나 많은 소리들로 가득 차 있는지 깨닫게 된다. 마치 부풀어 오르는 뜨거운 거품처럼 가지각색의 소리들이 뒤섞여 끓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는 이 지독한 정적에 익숙해지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빛이 없는 어둠만큼이나 정적도 무한하다는 걸 그는 이제 이해하고 있다.
그는 조금 가쁜 숨을 뱉어내며 주변을 둘러본다. 손전등 불빛만으로는 가늠되지 않을 만큼 깊고도 단단한 어둠이다. 가느다란 송곳처럼 헛되이 어둠을 찔러대는 미미한 빛이 오히려 그를 두렵게 한다. 손전등을 꺼버리자 순식간에 그는 경계도 구분도 없는 어둠 한가운데로 떨어져 내린다. 어둠과 한 덩어리가 되어 녹아버리다가 휘발성 기체가 되어 어둠 전체로 퍼져나간다. 그는 어지럼증을 느끼며 숨을 크게 들이쉰다. 어둠이 폐 속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자 한결 머리가 맑아진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해 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가 어디에 없는지가 분명해진다. 그가 지금 있는 곳은 그 어디도 아닌 곳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허공을 향해 그는 고개를 들어본다. 그는 완전히 고립되었다. 동시에 저 지상의 세계도 그에게서 완전히 고립되었다. 바로 몇 미터 위에 그의 집과 마을과 밤하늘이 있지만 실상 그는 지구에서 수백만 광년 떨어진 우주 한가운데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는 발가락 끝마디가 저릿해진다. 맨 처음 이 문을 닫았을 때는 정말로 먼 우주에서 홀로 미아가 된 것 같아 호흡곤란과 발작으로 기절하다시피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이곳이 더 마음 편하다. 자유, 그는 이제 고립보다는 이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자신에게 붙어 있던 모든 이물질들이 깨끗이 떨어져 나간 멸균의 자유.
그는 꼭 눈앞이 훤히 보이는 것처럼 거리낌 없이 어둠 속을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탁자 앞에 멈추어 서서 능숙하게 가스등을 켠다. 곧 불꽃이 일더니 부옇게 빛이 퍼져 나간다. 가장 먼저 한 남자의 주름진 이마가 드러난다. 그리고 듬성듬성 숱이 줄기 시작한 반백의 머리와, 땀과 빗물이 번진 꾀죄죄한 볼, 팔자 주름에 묻힌 뭉툭한 코, 두툼한 눈꺼풀이 내려앉은 눈, 위로 치켜 올라간 얇은 입술, 심지를 돋우고 있는 울퉁불퉁한 짧은 손가락이 차례로 보인다. 그는 눈이 부신지 눈을 끔뻑이면서 뒤로 물러난다. 그 순간 솟구친 불빛이 환하게 밝아지며 방의 내부가 그림자를 앞세우고 어둠 속에서 튀어 오른다. 만약 이 순간 다른 누군가가 함께 있었다면 분명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이다. 텅 빈 어둠인 줄 알았던 이곳이 각종 물건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20평 남짓 될 법한 방에는 불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스텐 재질의 선반대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위에는 크고 작은 물건들이 빈틈없이 꽉꽉 채워져 있다. 천정까지 쌓여있는 생수병 상자와 각종 통조림, 인스턴트식품, 가스통, 라면, 고기와 과일 등의 건조식품, 양초, 건전지, 비상약, 그 밖의 가지가지의 생활 용품들, 그리고 한 쪽에는 산소통까지 빼곡히 구비되어있다. 이 정도 물품이면 한사람이 3년 이상, 아껴서 생활하면 5년 가까이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가스등을 들고서 그 모든 것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매일 저녁 꼼꼼히 둘러보는 데도 그는 오늘도 또 고집스럽게 하나하나 개수와 상태를 확인해 나간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책무나 습관이 아니다. 자세히 보면 그의 짓무른 눈동자가 형형히 빛을 발하고 있다. 누리끼리한 가스등 불빛 밑에서도 어느새 그의 안색에는 생기가 돌고 들뜬 마음에 연신 입을 쩝쩝거린다. 그는 참으로 기껍게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왜? 이 쇳덩어리와, 빈틈없는 이중 삼중의 문들과, 지하실의 피난처와, 비축해놓은 엄청난 양의 물품들이 다 어디에 소용이 있단 말인가? 당장 세계 멸망이라도 일어난단 말인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