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예찬 (4)

by 곡도



그들은 거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는 먼지에 찌든 환풍기 맞은 편 탁자에 좁게 모여 앉아 이것저것 안주와 막걸리를 주문한다. 곧바로 얼음 섞인 막걸리가 가득 담긴 양은 주전자와 멋을 내기위해 일부러 찌그러트린 양은 사발 7개가 건너온다. 주거니 받거니 차디 찬 막걸리 한 잔씩을 쭉 들이켜자 그들의 어깨가 하나 둘씩 펴진다. 그제서야 그들은 자신들이 꼽추처럼 어깨를 웅크리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헛웃음을 짓는다. 영욱은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 눈을 털어낼 때처럼 상체를 부르르 떤다.

두 번째 막걸리 잔이 오가고 안주 접시가 줄줄이 나오자 분위기가 점차 살아난다. 그들은 연거푸 술을 들이키며 오늘 새벽의 시청 광장에 대해 왁자하게 떠들어 댄다. 정말 그런 꼴은 처음 보겠어. 꼭 폭탄 맞은 것 같았다니까. 전쟁터도 그것보다는 깨끗할 거야. 거기에 시체 몇 구만 던져 놓으면 바로 전쟁터지 뭘. 사진이라도 찍어 놨어야 됐는데. 나는 몇 장 찍어 놨지. 인터넷에 올려 버려. 자기들이 얼마나 개판인지 사람들도 알아야지. 씨팔, 한쪽에는 누가 똥까지 싸놨더라고. 이건 영웅담일까? 아니면 자기위로인가? 아니, 자기혐오인가? 그들은 킬킬거리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자세하게 뇌까리지만 곧 시들해진다. 자기들끼리 떠들기에는 너무 뻔한 얘기이고 남들과 떠들기에는 면구스러운 얘기들이다. 모두 어물어물 입을 다물자 명식이 기섭의 허벅지를 툭 밀치며 목소리를 높인다.

“어때요, 형님에게는 그 난장판이 꼭 종말의 한 장면처럼 보였을 테지?”

쩝쩝 입맛을 다시며 묵묵히 막걸리를 마시던 기섭은 어리둥절하게 명식을 쳐다본다. 별안간 화제를 자신에게 돌리는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식은 제법 진중한 표정으로 기섭을 안심시킨다. 상철도 슬쩍 끼어든다.

“왜 아니겠어. 나한테도 딱 그렇게 보이더구만. 드디어 최후의 날이 도래했도다, 응?”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기섭이 퉁명스럽게, 그러나 또박또박 대꾸한다.

“겨우 그 정도일 리가 없잖아.”

몇 몇 사람들은 웃고 몇 몇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린다.

“근데 그 종말이라는 게 대체 언제 온다는 거요? 내가 형님을 처음 만났던 6년 전부터 지금까지 내내 형님은 종말이 온다고 떠들어댔지만 아직도 이렇게 멀쩡하지 않우.”

참을성 없는 광수가 버럭 외친다. 그의 어조에는 늘 정체불명의 사투리가 섞여있다. 제일 연장자인 종필도 슬쩍 비꼰다.

“그게 참, 10년 뒤에는 종말이 오려나? 아니면 20년, 혹은 30년 뒤? 결국 언젠가 오기는 오겠지만 종말을 기다리다 자네 숨이 먼저 넘어가겠네.”

정호와 영욱이 낄낄 웃음을 터트린다. 기섭은 말문이 막힌다.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종말을 감지하는 감각을 잃어버렸다. 냄새를 맡지 못하면 맛을 느끼지 못하고 맛을 느끼지 못하면 결국 입맛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냄새를 맡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냄새의 현존에 대해 설득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온 몸에 두드러기를 유발하는 알레르기처럼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반응이다. 여기 기섭이 바로 그 두드러기인 것이다. 기섭은 알고 있다. 종말은 이제 도래할 것이다. 머지않아, 어쩌면 1년 뒤, 한 달 뒤, 일주일 뒤, 혹은 바로 내일이 될 수도 있다. 여기 까지는 누가 뭐래도 틀림이 없는데 당장 정확한 날짜를 대라고 닦달하면 그는 그만 천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예언자가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사실 말이지, 난 이미 종말의 날은 지났다고 생각해.”

기섭이 어물쩍 코끝을 긁으며 입을 땐다.

“뭐라구요?”

이건 또 무슨 얘기인가 싶어 모두들 입술을 이죽댄다.

“종말의 날은 지났는데, 아직 종말이 오지 않은 거야. 비가 올 듯 올 듯 며칠이고 오지 않는, 푹푹 찌고, 그늘지고, 습기 차고, 냄새나고, 머리도 터질 듯이 무거운 그런 날들처럼 말이야. 모든 게 천천히 상해가고 있는 거지. 그러다 결국 고름이 터지 듯 종말이 오고야 말거야. 결국에는 말이야.”

“아하.”

정호가 맨 먼저 감탄사를 뱉어낸다. 덩달아 상철도 외친다.

“그러니까 이건 여분의 시간인 셈이구만. 우린 덤으로 살고 있는 거야.”

“사이에 끼었다는 건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곳에 갇혔다는 거여?”

광수가 헤헤 거리면서 안주를 입안에 우겨넣는다.

“뭐, 솔직히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종필이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입 모양은 노골적으로 비틀려 있다.

“그럼 당장 내일 종말이 오면 형님은 어쩌실 거예요?”

명식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기고만장한 목소리로 기섭에게 묻는다.

“벙커로 가야지.”

기섭이 당연한 걸 묻는 게 이상하다는 듯 대꾸한다.

“아, 벙커. 형님 벙커가 있다고 했지.”

“그래, 그 대단한 벙커. 그걸 잊고 있었네.”

“듣자하니 그 벙커인가 뭔가에 들어간 돈이 어마어마하다면서요?

“그 돈이면 지금쯤 좋은 집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을 것 아뇨?”

모두들 기세 좋게 히죽인다. 그러나 영욱은 곧 웃는 낯을 지우더니 짐짓 엄하게 묻는다.

“벙커로 들어가서, 그 다음은요?”

“그 다음?”

기섭은 질문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살아야지.”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다 죽어도요?”

기섭은 어리둥절하다. 그게 바로 벙커의 본질이자 목적이 아닌가? 기섭은 같은 말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

“살아야지.”

“혼자서요?”

“그렇지.”

“그 좁고 어두운 벙커 안에서 몇 달이고, 몇 년이고 혼자 산다구요?”

“그렇다니까.”

“아니, 그렇게 살아서 뭐 합니까?”

영욱이 기가 막히다는 듯 너털웃음을 짓는다. 다른 사람들도 따라 웃는다. 다만 기섭만이 있는 데로 미간을 좁힌다. 또 이런 이야기. 정순이 몇 년이나 떠들어 대던 그 지긋지긋한 이야기. 왜 모두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걸까. 그는 세상 사람들을 모아놓고 고래고래 연설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게 살아서 뭐 하냐고? 그럼 이렇게 사는 건? 이렇게 살아서 뭐할 건데? 왜 이렇게 사는 건데? 이건 너희들이 원하던 딱 그런 삶이었나?

“형님은 망상에 빠져있어요.”

정호가 적의와 연민이 뒤섞인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기섭은 슬그머니 웃어버린다. 망상에 빠져 있는 건 너희들이야. 과대망상자는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라고.

“맞아요. 제일 중요한 게 없잖아요.”

기섭이 무어라 입을 떼기도 전에 광수가 와락 소리친다.

“여자 말이에요.”

그러자 사방에서 우르르 진부한 웃음이 터진다.

“맞아, 여자를 데리고 들어가야지.”

“여자 없이는 그저 생매장일 뿐이야.”

“어둠 속에서 하루 종일 뭘 하겠어요. 그 짓이나 해야지, 엉?”

“옷도 입을 필요 없이 아예 벗고 살면 되겠네.”

“아침 먹고 한 번 하고, 저녁 먹고 한 번 하고 말입니다.”

“그건 의무야. 종족 보존의 의무.”

“에이, 안 돼. 애새끼는 없는 게 나아. 거추장스럽기나 하지. 나 같으면 아예 그 전에 꿰매버릴 거야.”

“그럴 줄 알고 나는 벌써 애저녁에 공사 끝냈지.”

“야, 이제 보니 나도 벙커 하나 만들어놔야겠네. 양색시 하나 예약해 놓고 말입니다. 아니 아니, 이왕이면 두세 명쯤 부를까요?”

“왜 두세 명 뿐이야? 열 명 정도는 있어야지.”

와아 하고 웃음과 힐책이 쏟아진다. 하지만 기섭은 묵묵히 막걸리만 들이킨다. 그것은 농담처럼 지껄여지고 있지만 그 얇은 거죽 밑에는 뾰족하게 찔러대는 무언가가 있다. 말하자면 욕정이 삶이나 죽음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니, 가장 중요하다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정순도 그게 불만이었지. 자신을 안는 건 고작 일 년에 몇 번 뿐이라며 하소연을 했었다. 그렇지만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애정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그것이 그의 체질인지, 일종의 장애인지, 혹은 늘 조바심을 내며 살아왔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언제부터인가 그에게 있어 성관계란 번거롭고 반복적이며 척박함만을 더하는 일일 뿐이었다. 굳이 발기시키고 결국 축 늘어지게 만드는 행위란 단지 죽기 위해 사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정순이 떠난 후에도 15년 동안 그는 고작 예닐곱 번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을 뿐이었다. 그것도 최근 6년 동안은 아예 관계를 맺지 않았다. 그저 가끔씩 뻣뻣해질 때마다 별다른 욕구 없이 배설물을 빼주곤 했다. 심지어 그 와중에도 그의 성기는 반쯤 늘어져 있었다. 이제 그는 자신이 더 이상 발기할 수 없다고 짐작한다. 자신 앞에서 여자가 벌거벗고 두 가랑이를 쫙 벌리며 허리를 뒤튼다 해도 구미가 당길 것 같지 않다. 어떻게 발기하는 지도 잊어버렸고 어찌어찌 발기한다 해도 그것을 유지하는 건 더 큰 일이다.

그는 목욕탕에서, 식당에서, 길거리에서 불쑥 불쑥 솟아오르는 남자들의 성기를 볼 때마다 그 욕정의 과잉에 놀라곤 한다. 아니, 그건 비단 남자들뿐만이 아니다. 그의 눈에는 남자, 여자, 노인, 아이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온몸으로 발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눈도, 머리도, 입도, 코도, 귀도, 손가락도, 피부도 늘 꼿꼿하게 발기되어 있으니 성기 역시 그토록 쉽게 발기하는 것이다. 그들은 턱 끝을 치켜들고 동그란 눈동자를 굴리면서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서로를 향해 막무가내로 달려들다가 결국 정면으로 부딪혀 나가떨어진다. 그들은 만족을 모르고 결코 온전히 사정(射精)하는 법도 없다. 사정하기 위해서는 계속 욕정해야 하고 욕정하기 위해서는 계속 사정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삶은 욕정으로 욕정은 삶으로 넘쳐흐르지만 결국 혼탁해지고 색이 바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무늬조차 아름답다는 것이다.

음담패설로 후끈 달아오른 기섭의 동료들은 하이힐만 빼고 남김없이 벗어주는 여자들이 접대하는 노래방에 가기로 뜻을 모은다. 하지만 기섭은 슬그머니 사양한다. 술도 사람도 이쯤이면 충분하다. 결국 동료들은 서로 뒤엉켜서 노래방으로 몰려가고 그는 터덜터덜 집으로 향한다. 저녁 하늘이 회색빛 미광 속으로 저물고 좁은 골목에는 두터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때 묻은 가로등 불빛에 비친 골목의 풍경은 너무 오래돼서 누렇게 바랜 것만 같다. 그는 눈을 끔뻑이며 골목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둘러본다. 퇴근하는 사람들, 장보러 가는 여자들, 재잘거리며 뛰어가는 아이들, 꺽달진 표정의 학생들, 폐지 쪼가리들을 끌고 가는 노인들. 기섭은 그들의 단단하고 명민한 얼굴을 두 손으로 일일이 꽉 붙잡고서 질문을 퍼붓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대체 종말은 언제 오는 거지요? 멀지 않았겠지요? 멀지 않았다는 게 당신들도 느껴지죠? 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 명쯤은 답을 알만도 한데 어째서 모두들 시치미를 뚝 때고 있는 걸까. 이 카드빚으로 저 카드빚을 끝없이 돌려막듯이, 그들도 그저 당장 하루하루를 돌려막는 데 여념이 없을 뿐이다.

그는 오늘 따라 유난히 더 납작해 보이는 자신의 집으로 휘적거리며 들어선다. 피곤과 술기운이 그를 등 뒤에서 함부로 떠민다. 기섭은 어젯밤에 빠져 나왔던 미지근한 이부자리 속으로 옷도 벗지 않고 기어 들어간다. 다 헤진 모포 이불이 어깨를 묵직하게 누르는 느낌이 좋다. 이불이 좀 더 단단하게 자신을 감싸주기를 바라면서 그는 눈을 감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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