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예찬 (5) - 완결

by 곡도



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정신이 든다. 나는 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며 뾰족하게 솟아있는 산꼭대기 위에 서 있다. 내가 누구인지는 잊었다. 그저 까마득히 높은 곳에 홀로 서 있을 뿐이다. 무언가 머리 위로 쏟아진다. 고개를 든다. 그것은 태풍이다. 하지만 비나 우박의 태풍이 아니다. 불의 태풍이다. 나는 그제서야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깨닫는다. 하늘에는 먹구름 대신 검붉은 불길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그리며 돌고, 타오르는 재와 불덩어리들이 장대비처럼 지상으로 떨어져 내린다. 사방으로 하늘과 땅을 잇는 불기둥이 수백 개씩 꼿꼿이 돌아가는 데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건지 땅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낮인지 밤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세상은 온통 이글거리는 황금빛과 잿빛 안개, 불꽃 튀는 번개로 가득하다. 나는 휘몰아치는 열기 속에서 두 눈을 부릅뜬다. 발아래로 도시가 펼쳐진다. 끓어오르는 열기 너머로 서울 전체가 광대한 화염에 휩싸여 있다. 벌건 불길이 치솟지 않는 건물이 없고 여기저기서 불기둥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골목과 도로를 내달린다. 이미 다 타버린 새까만 폐허 위를 다시 불길이 덮치고 또 덮친다. 기름으로 들끓는 한강은 시커먼 매연을 맹렬히 뿜어내며 온 도시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강을 따라 이어지는 먼 지평선 너머로 어둠에 둘러싸인 오렌지색 광채가 불길하게 번쩍인다. 사람들은 불붙은 창문에서, 옥상에서, 거리에서, 무리를 지어 나타났다가 곧 사라진다. 불길이 너무 빨리 그들을 덮치기 때문에 그들은 마치 불속에 던져진 한 줌의 머리카락처럼 순식간에 오그라든다. 그들은 아마 비명을 지르고 있겠지만 청동빛으로 달구어진 대기 너머로 짧고 부드러운 한숨만이 울려 퍼진다. 얼굴에 불이 붙은 채 계주선수처럼 뛰어가던 한 여자아이가 스스로 벽에 몸을 던져 머리를 깨버린 뒤로는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 모든 광경에 압도 되어 비틀거리다가 내 손을 내려다보고는 아연실색한다. 두 손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손 전체가 붉은 불길에 휩싸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두 손을 앞으로 쭉 내밀며 몸서리친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 불이 붙은 게 아니다. 거기에는 ‘손’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다. 그것은 타오르는 불꽃 자체일 뿐이다. 손뿐만이 아니라 팔도, 두 다리도, 가슴도, 배도, 사타구니도 온통 맹렬한 불덩어리다. 얼굴도, 머리카락도, 눈도, 코도, 귀도, 입도 넘실대며 타오른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누구인지 깨닫는다. 나는 불이다. 인간의 형태나 기능이나 사연에 구애받지 않는 비인칭의 작용이다. 그래, 나는 그 사실을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홀가분하게 발뒤꿈치를 치켜든다. 온 몸에서 엄청난 불길이 하늘로 뿜어져 올랐다가 폭발하는 불꽃이 되어 사방으로 폭포수처럼 떨어져 내린다. 아, 이 세상을 뒤덮어버린 불길은 바로 나 자신이었구나.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사지를 뒤틀다가 얼떨결에 70층짜리 건물을 뭉개버리고는 우렁차게 웃는다. 불덩어리가 사방으로 튕겨나간다. 온몸에서 힘이 솟고 눈매가 잔인해지고 눈동자가 부풀어 오른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면서 별안간 성기가 딱딱해진다. 아니, 그것은 거대한 불기둥이다. 나는 그 불기둥을 움켜쥐고 대여섯 번 용두질을 친다. 어쩌면 이렇게 뜨거울까. 저절로 젖혀진 머리 위로 검은 불길이 넓게 퍼지며 나는 점점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다. 내 머리는 하늘에 닿고 지상의 모든 것이 발아래 납작하게 펼쳐진다. 나는 돌연 침착해져서 잠자코 타오르는 세상을 바라본다. 하늘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세계는 말 그대로 거대한 불의 바다와 같다. 모순도 오염도 시작도 끝도 없는 솔직한 아름다움이다. 윤리적이라고 해도 좋고 위생적이라고 해도 좋다. 마침내 지구는 위선에서 벗어났다. 비로소 내면과 외면이 조화를 이루었다. 나는 몸을 더 높이 일으켜 불길을 뚫고 우주와 하늘의 경계에까지 다다른다. 검붉게 물든 수평선이 둥글게 휘어지면서 그 너머로 영원히 어두운 우주가 펼쳐진다. 그곳은 태울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청정하고 잔혹한 미래다. 나는 불타오르는 지구가 저 우주를 향해 날아가는 총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어떤 자살자가 자신의 머리를 겨누고 쏜 마지막 한방의 총알이다. 나는 다시 웃어보려 하지만 더 이상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사실 웃음은 가증스러운 것이다. 웃음은 인간을 의인화한다. 웃음의 부재야 말로 전능함이 아닌가.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불길이 잦아들고 우주가 성큼 어두워진다. 지구는 사막처럼 펼쳐진 검은 잿더미와 누추한 불씨로 뒤덮여 있다. 바다도 육지도 지구도 그저 한 덩어리의 숯덩이일 뿐이다. 모든 것이 멸망했고 이제 그 멸망마저 멸망하고 있다. 더 이상 그 무엇도 멸망할 수 없는 완전함이야말로 내가 진정 원했던 것이 아니었나. 미래보다 더 먼 미래. 더 이상 미래가 없는 미래. 이런 말장난도 더 이상 필요가 없다. 나는 보푸라기처럼 오그라드는 불티가 사그라지는 광경을 바라본다. 아무런 감회도 없이, 최후의 증인이 되어, 그저 똑똑히 지켜보고 싶다. 마침내 마지막 남은 한 움큼의 빛이 사라진다. 지구가 사라진다. 우주가 사라진다. 시선이 사라진다. 모든 경계가 수증기처럼 흩어지면서 나는 절대적인 1차원의 어둠이 된다. 마땅하고 당연한 어둠.

왼쪽 이마를 세차게 부딪치며 기섭은 눈을 뜬다. 고통과 충격으로 인해 그는 비명을 내지르며 어두운 방바닥을 나뒹군다. 방금 전의 꿈과 뒤섞여서 그는 혼란에 빠진다. 그가 미쳐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큼직한 돌덩어리가 벽에서 떨어지더니 곧이어 천정의 널빤지가 튕겨져 나와 그의 안쪽 허벅지를 때린다. 그는 몸을 둥글게 말고 방모서리에 바짝 붙는다. 천정의 기와가 우르르 떨고 닫혀있는 문에서는 쿵쿵 소리가 난다. 창문 유리가 와그작거리고 사방이 온통 삐걱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집안 구석구석에서 피어오른 먼지가 어두운 방안을 칠흑같이 뒤덮는다. 어이쿠. 머리 위의 유리창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 그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엉금엉금 기어서 문을 박차고 마당으로 굴러 떨어진다. 뒤를 돌아보니 집 전체가 마치 알루미늄 호일처럼 삐거덕거린다. 그리곤 한 번 크게 요동치더니 가장 먼저 골목을 향해 있는 벽이 두 쪽으로 갈라지고 곧이어 지붕과 앞쪽 벽이 주저앉으면서 기와가 뒷마당으로 와르르 쏟아져 내린다. 그제야 구들 밑에서 튀어나온 쥐 몇 마리가 담벼락 밑으로 쏜살같이 사라진다. 기섭은 숨 쉬는 것조차 잊은 듯 천진하게 입을 쩍 벌린다. 집이 눈앞에서 무너져 내린 건 알겠는데 꼭 천치가 된 것처럼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꼼짝할 수가 없다.

잠시 후 자욱했던 먼지가 가시자 그는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폐허 뒤로 빤히 내다보이는 한밤의 동네는 아무 일 없이 평온하고 조용하기만 하다. 그믐인 하늘에도 별 몇 개가 총총히 떠있고 서늘하고 부드러운 바람에는 아무런 불길한 기운도 실려 있지 않다. 모든 게 그대로인데 그의 집만 무너진 것이다. 그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집을 향해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간다. 뜯겨나간 갈색 벽에는 부러진 각목과 쇠꼬챙이, 뒤엉킨 전선들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와 있다. 그 위로 잘게 쪼개진 널빤지들이 낡은 천조각처럼 널려있고, 산산 조각난 붉은색 기와들과 튕겨 나온 세간들이 나뒹굴며 발길에 차인다. 그 때 터진 수도관에서 물이 분수처럼 솟구쳐 집 주변에 흥건한 웅덩이를 만들기 시작한다. 정말이지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난잡한 광경에 익숙한 그이지만 어느새 다리가 후들거린다. 정순과 결혼하면서 마련했던 이 집에서 그는 근 20년을 살아왔다. 20년 전에도 이미 낡은 집이었고 최근 들어 축대가 세 번에 걸쳐 두 뼘 가까이 주저앉았으니 무너진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미리 손을 썼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에게는 이 집에 기울일 관심도 돈도 없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이 집이 무너지기 전에 종말이 올 거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종말은 오지 않았고 그의 집은 무너져 내렸다. 그의 집은 무너져 내렸고 종말은 오지 않았다. 그는 산산히 부서진 잔해 속에서 용케 버티고 서 있는 현관문에 눈길이 멈춘다. 벽도 지붕도 방도 모두 허물어졌는데 여전히 서 있는 문은 기발할 정도로 기만적이다. 불시에 모멸적인 농담을 들었을 때처럼 그의 입 꼬리가 비틀어진다.

“아이구, 장씨. 이게 무슨 일이요?”

기섭은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기계적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느새 그의 집 주변에는 집이 무너지는 소리에 잠이 깬 열댓 명의 이웃들이 엉기성기 몰려와 있다. 바싹 다가와 그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호들갑을 떠는 그들을 기섭은 빤히 바라본다.

“아니, 새벽에 이게 무슨 난리에요?”

“어쩌다가 집이 무너졌데요?”

“아이구야, 꼭 전쟁이라도 난 것 같네.”

“장씨, 다친 데는 없어요?”

“아야야, 저기 장씨 이마에 피나네, 피.”

“이마가 깨져부렀나 보네.”

“이를 어째. 괜찮으세요?”

기섭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지도 않다. 누군가 물수건으로 그의 이마의 피를 닦아주지만 역시나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재잘거리는 생기가 그의 뼈마디에 아프게 부딪힌다. 모든 게 너무나 조잡스럽고 구차하기만 하다.

“아저씨, 일단 우리 집으로 가요. 따듯한 곳에 좀 누우세요.”

기섭과 별 친분이 없는 아랫집 청년이 그의 팔을 다정하게 부축한다. 기섭은 얼떨결에 그 미지근한 손을 뿌리친다. 설사 한번 숙고했다고 해도 역시나 뿌리쳤을 것이다. 하지만 청년은 물러서지 않고 기섭을 억세게 잡아 끈다. 기섭은 그만 분통이 터진다. 청년은 젊고 강하다. 고집이 세고 조심성이라곤 없다. 원한다면 기섭을 완력으로 끌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원한다면 가둬둘 수도 있을 것이다. 원한다면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원한다면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섭은 주먹을 휘둘러 청년의 턱을 세차게 후려친다. 불시에 당한 청년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주저앉는다. 기섭은 그대로 청년에게 달려들어 무자비하게 주먹을 휘두른다. 놀란 사람들이 그를 뜯어 말리지만 그는 청년의 얼굴에 있는 힘껏 주먹을 내리 꽂는다. 청년의 얼굴은 온통 피범벅이 되고 기섭의 양 주먹도 피에 젖는다. 하지만 기섭은 곧바로 사람들의 거친 손아귀에 떠밀려 뒤로 나가떨어진다. 사람들이 일제히 그에게 고함을 지른다. 격노에 의해 표정이 씻겨 내려간 그들의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서로 닮았다. 기섭은 그들에게서 발을 돌려 휘청거리며 뒷마당으로 달려간다. 그가 철사 울타리를 돌자마자 진창에 붙어 있던 수 만 마리의 파리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며 그의 눈앞을 새까맣게 어지럽힌다. 묵직하게 위잉위잉 공명하는 소리가 꼭 불 속에서 사그라들던 사람들의 비명 소리 같다.

잿가루처럼 하늘을 뒤덮은 파리들을 헤치고 그는 벙커로 달려간다. 어둠 속에 더 깊은 어둠이 있듯이 그의 후미진 뒷마당 구석에 육중한 직육면체의 벙커가 있다. 그는 긴 세월동안 자신의 손으로 하나하나 완성해 온 벙커를 낯설게 바라본다. 자신이 이것을 왜 만들기 시작했는지 까마득히 떠오르지 않는다. 혹시 이것은 종말을 피하기 위한 대피소가 아니라 종말을 기원하기 위한 제단이었나. 그렇다면 제단에는 제물이 있어야 하지 않나.

뒤를 돌아보니 사람들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어둠에 가려 그들의 들쭉날쭉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눈빛도 짐작할 수가 없다. 그저 모두 한 덩어리의 차갑고 축축한 그림자가 되어 기섭을 에워쌀 뿐이다. 그들은 종말의 그림자이다. 그래서 종말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종말의 그림자이다.

그는 품속에서 열쇠를 꺼내 벙커 문을 열고 재빨리 안으로 뛰어든다. 그림자가 없는 어둠 속으로. 그의 등 뒤로 벙커 문이 무겁게 닫힌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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