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럼 여기 이태훈 감독님부터 시작해 볼까요? 우리 감독님으로 말씀드리자면 작품성으로 보나 흥행으로 보나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감독이죠. 깐느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했던 경력도 있구요. 외국에서 더 인정받는 감독이라고 하더군요. 감각적이고 몽환적인 영화 스타일 때문에 외국 언론에서 감독님께 ‘코카인(Kocain)’이라는 별명도 붙여줬다죠? 무엇보다 최근 개봉한 이감독님의 화제작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어디서나 온통 그 얘기들뿐이니까요. 심지어 교도소 안에서도 말입니다. 네, ‘천사의 기원’이란 영화입니다. 재판장님도 그 영화를 보셨나요?”
“보았습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정말이지 안 본 사람이 없더군요. 저는 어제서야 보았습니다. 재판을 위해서라고 하니 겨우 보여주더군요. 사실에 입각한 다큐멘터리 형식을 전면에 도입한 실험적인 영화라고 칭찬이 자자하더니, 정말 색다르고 재미있었습니다. 특출한 영화에요. 게다가 주인공인 한석규씨의 연기 또한 너무나 훌륭했습니다. 끝까지 눈을 뗄 수가 없더군요. 지난주에 800만 관객을 넘겼다죠?”
“오늘 1000만을 넘었습니다.”
이태훈이 애써 냉담하게 말했다.
“이야, 벌써요? 대단합니다. 곧 신기록이 나오겠어요. 나중에 따로 축하를 드리도록 하죠. 자, 그리고 그 옆에 앉아 계신 우리 오윤숙 작가님도 보통 분이 아니시죠. 내로라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십니다. 얼마 전에 작가님의 소설 ‘짐승의 기도’가 공전의 대히트를 쳤죠. 이태훈 감독님의 영화 ‘천사의 기원’이 바로 이 소설을 기반으로 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소설 표지에 쓰여 있던 ‘실제 사건보다 더 실제에 가까운 편집증적인 묘사, 눈물까지 투명하게 얼어붙는다’라는 광고 문구가 생각나네요. 사실 저도 이 소설을 읽고 이만저만 감탄했던 게 아닙니다. 어찌나 담대하고 치밀하게 묘사했던지 장면 하나하나가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자아, 그런데.”
박치수는 최한규를 향해 고개를 비틀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오윤숙 작가님의 소설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이 누군가 하면 바로 여기 최한규 기자님입니다. 모두들 최기자님의 공로를 잊어선 안 되죠. 최한규 기자님은 소설 ‘짐승의 기도’의 모태가 된, 일명 ‘천사 사건’에 대한 단독 특집 기사를 5차례나 시리즈로 냈었지요. 당시 무명 기자에 불과했던 최한규 기자님은 그 기사로 단번에 스타 기자가 됐고, 신문도 엄청난 판매부수를 올렸구요. 최기자님의 기사 때문에 신문사 홈페이지가 몇 번이나 다운될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어디, 최기자님, 그 ‘천사 사건’에 대해 직접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지만 최한규는 고개를 숙인 채 입만 우물거릴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원래 혈색이 안 좋은 그의 얼굴에는 역정과 두려움이 번갈아가며 지나갔다.
“말씀해 주시죠.”
재판장이 거들고 나서자 최한규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16명의 아이들이 납치되어 불구자가 되었고 그 중 7명이 사망했던 강력 범죄 사건입니다. 희생자의 숫자도 숫자지만 전직 의사였던 범인이 피해자들의 뇌 일부를 손상시키는 실험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사회적 파장이 컸던 사건입니다. 결국 범인은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범인이 왜 그런 일을 벌였을까요?”
박치수가 짐짓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게, 살아있는 천사를 만들겠다고…….”
최한규가 이를 갈며 말끝을 흐렸다.
“그렇죠. 그랬었죠.”
박치수는 쾌활하게 장단을 맞췄다.
“그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최기자님의 기사를 읽어보면 됩니다. 범행 계획, 납치 수법, 수술 방법과 도구 등은 물론이고 범인의 신상이나 자란 환경, 취향, 범행 동기,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감상평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으니까요. 심지어 범인이 좋아하는 코미디언 이름까지 명시되어 있을 정도죠. 그런데 이상한 건 기자님의 기사에는 경찰들조차 몰랐던 사실들이 수두룩했다는 겁니다. 대답해 보시죠. 최기자님은 어떻게 이 모든 걸 그토록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던 겁니까?”
최한규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그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박치수가 휙 돌아서며 방청석을 향해 외쳤다.
“제가 말해주었습니다. 제 얘기를 마치 다른 사람의 얘기인 것처럼 떠드는 우스운 짓은 그만 하죠. 모두들 아시다시피 제가 그 사건의 범인이니까요. 최한규 기자님과 만났을 때, 저는 사형선고를 받고 교도소에서 하루하루 사형 집행을 기다리던 처지였습니다. 뭐, 2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당시 여기 최기자님이 제게 단독 인터뷰를 요청해오셨죠. 저는 흔쾌히 응했습니다. 기자님께 모든 걸 숨김없이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왜, 왜 나를 고소한 겁니까. 난 분명히 당신에게 허락을 받았어요. 기사를 내는 데 당신도 동의했다구요. 그런데 무슨 근거로 날 고소하는 거요?”
최한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오윤숙과 이태훈도 악다구니를 쳤다. 오윤숙은 분한 나머지 큰 소리로 발을 굴렀다.
“나도 여기 최기자에게 정식으로 도움을 받아 소설을 쓴 겁니다. 내 책에도 그 점을 분명하게 밝혔어요. 거기에는 어떤 법적, 도덕적 문제도 없단 말입니다. 재판장님, 이건 시간낭비입니다.”
“이건 정말이지 바보 같은 짓이에요. 저 인간이 우릴 바보로 만들고 있어요. 저 인간 장난에 다들 놀아나고 있다구요.”
“모두 정숙하세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피고석을 향해 재판장이 따끔하게 소리쳤다. 그리고 박치수를 향해서는 더 신랄한 어투로 말했다.
“나 역시 의문이군요. 소송의 요지가 무엇입니까?”
여유만만하게 피고들을 내려다보던 박치수는 수갑 찬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