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분들 말씀은 모두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제가 2년 전 여기 최한규 기자님과 했던 인터뷰는 지극히 자발적인 것이었습니다. 물론 제 얘기가 기사화되는 것에도 동의했습니다. 왜냐구요? 죽기 전에 제 이야기를 좀 더 정확하게 세상에 남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최기자님은 제 바램대로 정확하고 공정한 기사를 써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 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그 기사를 토대로 오윤숙 작가님의 소설이 나왔습니다. 곧이어 이태훈 감독님의 영화도 나왔지요. 솔직하게 말하건대, 둘 다 대단한 작품입니다. 진심이에요. 전 정말이지 감동받았습니다.”
“원고는 계속 같은 말을 빙빙 돌리지 말고 제대로 말하세요. 소송의 요지가 무엇입니까?”
“돈이죠, 재판장님.”
박치수가 시퍼렇게 정색을 하자 재판정 전체에는 순식간에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마치 재판정을 통째로 찬물 속에 던져 넣은 것 같았다. 박치수는 피고 세 사람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꼭꼭 씹듯이 말을 이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가 2년 전 최기자님과 인터뷰를 했을 때, 저는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한 일을 세상에 제대로, 의문이나 오해 없이 제대로 남겨야겠다는, - 일종의 도리랄까, 소임이랄까 - 감히 말하지만 순수한 의도였단 말이죠.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허어, 제 이야기가 어마어마한 돈벌이가 되어있더라 이겁니다. 최한규 기자님은 독점 인터뷰 기사 수익뿐만 아니라 오윤숙 작가님 소설에 협조하고 사례금을 받으셨죠? 오윤숙 작가님도 소설책 판매 수익과 함께 소설이 영화화 된 것에 상응하는 대가를 챙기셨구요. 이태훈 감독님의 경우야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영화가 대박이 난데다가 해외 판매까지 진행되고 있으니 따져보면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입니다. 그런데 전 어떻습니까? 저에게 돌아온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닳아빠진 십 원짜리 한 푼 없어요. 참으로 부끄럽고 부당한 일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고민 끝에 제 정당한 몫을 피고들에게 요구하는 바입니다.”
“말도 안 됩니다.”
피고 측 변호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호기 있게 외쳤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처음으로 그 변호사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는 거무튀튀한 피부의 40대 남자로 코가 약간 휘어있고 눈꼬리가 처져있어서 전체적으로 투박한데도 어쩐지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
“여기 최한규 피고는 원고 박치수의 허락 하에 정당하게 기사를 쓴 것입니다, 오윤숙 피고와 이태훈 피고 역시 정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창작 활동을 한 것이죠. 그런데 이 분들의 창작물에 대한 대가가 어째서 살인범인 박치수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까? 상식적으로나 법적으로나 터무니없는 주장이에요.”
“그런가요?”
박치수는 반론이 기쁘기라도 한 듯 환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그러자 하얗고 깨끗한 이빨이 가지런히 들어났는데 몇몇 방청객들은 그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말입니다, 제가 다시 질문하지요.”
박치수가 턱을 꺼떡이며 물었다.
“오윤숙 작가님과 이태훈 감독님의 작품이 누구의 창작물이란 말씀입니까?”
“그거야 당연히 피고 본인들의 창작물이지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건 표절입니다.”
“말도 안돼요. 대체 이 분들이 누구의 것을 표절했다는 말씀입니까.”
“당연히 저죠. 이분들은 저의 이야기를 표절했습니다. 제 창작물을 훔쳐갔어요. 말하자면, 비열한 도둑질이죠.”
“뭐라고?”
오윤숙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책상을 두 주먹으로 내리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더러운 사이코 자식이 어디서 내 작품을 모독하는 거야? 너 따위가 사람이나 죽일 줄 알았지 무슨 창작을 했다는 거냐. 표절, 표절이라니. 재판장님, 저건 억지입니다. 모략이에요. 명예훼손이라구요. 제 이름을 걸고 저는 어떤 것도 표절하지 않았습니다.”
피고석이 다시 우르르 들끓었다. 재판장은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두 번이나 엄중히 경고해야 했다. 변호사도 자리로 돌아가 그들을 만류했다. 반면 박치수는 그저 빙글빙글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허리를 쭉 피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모두 앉아 있는 가운데 비쩍 마른 그의 키가 무척이나 커 보였다.
“당신들 작품이라구요? 천만에요. 그건 제 작품이죠. 제 아이디어에요. 제가 그 일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아십니까? 그 일을 계획하는 데만 꼬박 3년이 걸렸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얼마나 꼼꼼하게 준비했는지 소설과 영화에도 잘 나오지 않습니까. 아이들을 고를 때도 신중에 신중을 기했단 말입니다. 영수, 미주, 철호, 숙희, 경일, 현정, 초롱, 원경, 승기, 동현, 용민, 정혜, 성웅, 나영, 정우, 상미. 그들의 나이, 혈액형, 외모, 모든 걸 꼼꼼히 따져서 선별했어요. 심지어 내가 직접 디자인해서 아이들에게 만들어 입혔던 살색 잠옷과 줄무늬 양말까지 소설과 영화에 그대로 나오더군요. ‘천사’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또 어떻구요. 머리를 절개해서 뇌의 일부분을 손상시킨 아이는 평생 울지 못합니다. 또 다른 아이는 말을 못하게 되고, 어떤 아이는 1분 전의 일도 기억 못하는가 하면, 또 어떤 아이는 감정 자체가 사라지죠. 아, 그 아이들과 함께 하는 파티는 너무나 아름답고 기묘합니다. 그들은 마치 천사가 커다란 날갯짓을 하듯 현실을 단번에 무너뜨리고 날아올라 허공 위 어딘가를 떠다니지요. 그 장면도 소설과 영화 속에 고스란히 나오지 않던가요. 그 장면에서 울려 퍼지던 ‘워킹 인 디 에어’란 배경 음악도 실제로 내가 파티에서 틀었던 음악입니다. 자아, 다들 아는 얘기니 더 이상 길게 떠들진 않겠습니다. 제 말의 요점은, 그건 내가 창조한 이야기라는 겁니다. 난 그 이야기를 이 현실 세계에 직접 새겨 놓았습니다. 내 목숨과 맞바꾸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걸 탁본이라도 뜨듯이 훌렁 손쉽게 베껴갔어요. 진실의 고발이라느니, 창작의 자유라느니, 인간에 대한 탐구라느니, 허울 좋은 핑계를 앞세우면서……. 좋아요. 다 좋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니었다면 그 특집 기사도 없었을 것이고, 소설도 없었을 것이고, 영화도 없었을 것이고, 여러분 손아귀에 떨어진 그 어마어마한 돈과 명예도 없었을 테지요. 이런 걸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떼놈이 챙긴다고 하던가요. 세상 참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이봐요, 박치수씨. 그건…….”
“다시 말하지만.”
박치수가 변호사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수갑이 번쩍이는 두 팔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
“난 내 죄를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자, 보십시오. 난 이미 사형선고를 받았어요. 아시겠습니까? 나는 그저 나로 인해 창출된 막대한 경제적 수익 중에서 약간의 내 몫을 요구하는 것뿐입니다. 내 이야기에 대한 정당한 대가 말입니다.”
16명의 아이들을 불구로 만들고 그 중 7명의 아이들을 죽게 한 것에 대한 정당한 금전적 대가. 재판정에는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방청석에서 누군가가 작게 신음 소리를 냈다.
“알겠습니다. 원고 측은 더 할 말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모두들 제 뜻을 이해하신 것 같군요.”
박치수는 빙그레 웃더니 자신의 자리에 앉아 겸손하게 두 손을 탁자 위에 모았다.
“피고 측 변론 하세요.”
재판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변호사는 책상 밖으로 튀어 올랐다. 그는 어깨를 한껏 끌어올리며 역기선수처럼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 나왔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재판장님도 보셨다시피 원고의 황당한 주장이 신성한 재판정을 코미디 판으로 희화시켜 버렸습니다. 처음에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무고한 어린 아이들을 학대하고 죽인 것도 모자라 그 대가로 돈을 달라니요. 이런 파렴치한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범죄에도 저작권이 있던가요? 그럼 히틀러에게는 얼마의 돈을 챙겨줘야 합니까. 가스실을 발명한 공로로 인센티브라도 줘야겠군요. 간단하게 계산해서 죽은 유대인의 머리수대로 정산하면 될까요? 오사마빈 라덴은 또 어떻구요? 911 테러가 지구촌 최대의 볼거리였다며 행사비라도 입금해 줘야 한단 말입니까? 도무지 더 입에 담을 수가 없군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희 피고들은 우리 사회의 법과 가치를 존중하며 자신의 일에 충실히 임해왔던 훌륭한 모범 시민들이자 인재들입니다. 그들의 창작 활동은 저희 사회를 문화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고양시키는데 기여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상응하는 이윤이 발생했던 것뿐입니다. 그렇다고 범죄와 저널리즘을, 범죄와 예술을 같은 선상에 놓는다는 건 우리 문명사회의 지적 수준에 대한 모욕입니다. 원고는 정의의 기준을 교란시키고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려 하고 있어요. 이 자리에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거죠. 존경하는 재판장님, 비열한 범죄자의 농간에 성실하고 유능한 우리 피고들이 더 이상 농락당하지 않도록 단호한 결정을 부탁드립니다. 이상입니다.”
마지막에 목소리가 조금 갈라지긴 했지만 변호사는 끝까지 또박또박 발언을 마쳤다. 변호사가 변론하는 동안 세 명의 피고인들은 끊임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특히 오사마빈 라덴의 얘기가 나왔을 때 이태훈은 불끈 쥔 오른손을 가슴께로 치켜들기도 했다. 변호사가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앉자 재판장이 서류에 무언가를 써넣으며 말했다.
“양쪽의 의견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오늘은 이것으로 변론을 종결하고 한 달 뒤인 3월 20일 오전 10시에 이 자리에서 판결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재판장이 의사봉을 휘두르는 순간 박치수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 것 같았는데 보는 자리에 따라서 분명하지 않았다. 그는 두 손을 높이 올리더니 - 두 손이 수갑에 엮인 탓에 - 마치 수달 같은 우스운 모양새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가 끌려 나갈 때까지 사람들은 그의 손에서 눈을 땔 수가 없었다.
이 소송은 즉각 법조계 인사들 사이에서 뜨거운 흥미와 논쟁을 일으켰다. 여기저기서 내기도 벌어졌다. 피고 전원 무혐의 판결이 날거라는 쪽이 우세했지만 박치수 편을 드는 소수의 주장도 극렬했다. 온갖 첨예한 관점들과 애매모호한 감상들이 뒤엉켰다. 모두들 3월 20일에 있을 판결을 촉각을 곤두세우고 기다렸다. 어떤 판결이 나던지 간에 논란과 파장을 피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판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3월 18일 저녁 7시, 원고인 박치수의 사형이 집행되었기 때문이다. 원고의 사망으로 재판은 자동으로 취소 처리되었다. 일각에서는 판결을 내리기가 곤란해진 재판부가 압력을 넣어 사형 일자를 앞당겼다는 루머가 나돌았다. 하지만 한 사법부 관계자는 박치수의 사형 날짜는 이미 1년 전부터 결정되어 있었으며 오히려 사형을 연기하기 위해 박치수가 얼토당토하지 않은 고소를 벌인 거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또 다른 당사자인 최한규, 오윤숙, 이태훈은 하나같이 굳게 입을 다물었다. 결국 이 일은 몇몇 사람들과 관계자들만이 아는 비밀이 되어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은 채 잊혀졌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내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내가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지만, 나는 이 글을 인터넷에 올릴 예정이다. 얼마 안가 이 글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기사로, 책으로, 혹은 영화로 만들어 질 것이다. [악마의 고소장]이나 [살해 경제학]같은 자극적인 제목이 어울리겠지. 기대해도 좋다. 우리 사회는 이야기 거리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있는 데다가 이야기를 재생산해서 비싸게 팔아치우는 데 대단한 수완이 있지 않은가. 여러분은 그저 느긋하게 다음 메뉴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