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1)

by 곡도




후드득.

무언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소리에 우석은 히뜩 놀라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도 구름도 없는 새까만 하늘. 어디에도 새는 보이지 않는다. 잘못 들은 건가? 왼쪽 새끼손가락으로 오른쪽 귓밥을 파내는 데 또다시 뒤쪽에서 퍼득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 그는 장총을 치켜들고 몸을 낮추고는 주변을 살핀다. 순간 등에 땀이 배고 방아쇠에 걸려있는 검지가 파르르 떨린다. 우석은 씹고 있던 껌을 뱉어버리고는 어둠을 향해 총을 겨눈다. 뭐든 보이면 쏴버릴 심산이다. 그러나 새까만 하늘만큼이나 새까만 언덕이 이어지는 들판은 바람 한 점 없이 잠잠하기만 하다. 우석은 고개를 길게 빼고 주변을 살핀다. 고운 모래가 물결처럼 반짝이는 마른 연못도, 듬성듬성 들판에 뿌려져 있는 붉은 자갈도, 언덕 중턱에 무너져 내린 낡은 오두막도 먹먹한 어둠 속으로 깊이 가라앉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새까만 들판과 새까만 하늘, 그리고 그 들판과 하늘의 경계를 알려주는 지평선 너머의 희끗희끗한 안개만이 겨우 눈에 띌 뿐이다.

그 때, 먼 숲에서부터 언덕을 타고 낮게 불어 내려오는 바람이 짧게 자른 잡초들을 우수수 훑으며 지나간다. 그저 바람인 줄 알면서도 그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린다. 그러나 그 뿐, 여전히 사방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새소리일 뿐이었나. 하긴 이 나라에는 참새만한 크기의 까만 새들이 지천에 있지. 시체를 보면 우글우글 달려들어 순식간에 뼈를 발라내지만 산 사람에게는 덤벼들지 않는다고 했어. 우석은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연신 훔쳐내며 꼼짝도 하지 않고 들판을 노려본다. 마음을 놓는 게 두렵기만 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초소로 이어지는 바위틈 오솔길로 창준이 터벅터벅 구둣발 소리를 내며 올라오는 게 보인다. 그는 구부정하게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서 발길에 차이는 자갈들을 한가롭게 더 멀리 차내기도 한다. 6년이나 이 전쟁터에서 뼈가 굵은 창준을 보자 우석은 길게 콧바람을 내뿜으며 웅크렸던 몸을 바로 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세를 가다듬는다. 어느새 등이며 겨드랑이가 흠뻑 젖었지만 밤이라 들키지는 않을 것이다. 우석은 재빨리 중사에게 경례를 붙인다.

“어때, 아무 일 없어?”

까맣게 탄 얼굴의 창준이 개머리판으로 바닥에 깔린 시멘트 블록을 툭툭 치며 격식 없이 말한다.

“예, 괜찮습니다.”

우석의 단호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땀이 송연히 맺혀있는 우석의 콧잔등과 구렛나루를 보며 창준은 혼자 웃음을 삼킨다. 그는 우석의 군모를 손바닥으로 한 대 세차게 내려치고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젓는다.

“그나저나 하늘 한 번 존나 어둡네. 오늘 따라 별도 없고.”

“아, 네.”

"이런 날일수록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 네가 오기 한 달 전에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이던가, 보초 서던 놈 하나가 당했다고.”

“적의 기습이었습니까?”

“아냐, 자살이었어.”

“네?”

“자살이었다니까. 왜,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적에게 죽던 자살로 죽던 마찬가란 말이야. 방심하니까 그 꼴이 되는 거지. 엠병, 그러니까 이 먼 나라 땅에서 객사하고 싶지 않으면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알았어?”

“네.”

“요즘 사내새끼들은 너무 물러 터졌어. 듣자하니 한국에서는 계집애처럼 변기에 앉아 오줌을 싸는 후러덜 새끼들도 다 있다지?”

창준이 어깨를 죽 피며 기지개를 켜자 우두둑 하고 뼈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그가 어깨를 주무르는 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우석이 슬그머니 묻는다.

“저 그런데……. 그 초소가 혹시 여기입니까?”

“뭐, 어디? 자살했다는 곳? 아니, B3번 초소라고 하던데. 왜?”

“아닙니다.”

“뭐야. 사람이 죽은 곳은 찝찝하다는 거야? 병신, 여긴 전쟁터야. 사람이 죽지 않은 곳을 찾기가 더 힘들 거다. 사람이 죽고, 그 위에 또 죽고, 그 위로 또 죽고, 엉? 저기 저 언덕만큼이나 켭켭이 쌓여 있단 말이야. 만약 유령이 있다면 이곳은 마치 아침 8시 만원 버스 속 같을 걸? 그런데 고작 한 명 죽은 자리를 신경 써?”

우석은 조금 질린 얼굴로 자세를 바로 잡고 창준 역시 자신의 얘기에 스스로 찜찜해져서 입을 다문다. 두 사람은 묵묵히 어두운 지평선을 바라본다. 지평선을 뒤덮고 있는 안개 너머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왼쪽에서는 뜨거운 바람이, 오른 쪽에서는 찬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이상하고 기분 나쁜 바람이다. 우석은 또 날갯짓 소리가 들리지 않나 귀를 쫑긋이 세워보지만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 때 창준이 군화발로 그의 정강이를 툭 찬다.

“어때? 지내보니까 한국하고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지?”

“네에.”

“좀 더 있어 봐. 내가 언제 한국에서 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게 가물가물해질 테니까. 어떻게 된 게 이제는 한국 코미디 프로를 봐도 전혀 웃기지가 않아. 씨발, 이해가 안가더라고.”

“아, 예.”

“그나저나 이거 참, 조용한 밤이네. 난 이렇게 조용한 밤이 싫어. 아니, 누구라도 그럴 거야. 이건 정말이지, 심하게 조용하니까. 꼭 숨이 넘어가기 직전처럼 조용해. 자꾸만 귀를 기울이게 되거든.”

“네에.”

“보아하니 꽤 긴 밤이 될 거 같은데 서로 편하게 얘기나 하자고. 미안하지만 내가 말이 좀 많거든. 아니, 예전에는..,.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이곳에 온 뒤로 말이 많아졌어.”

“예.”

“그래. 자, 편히 쉬어. 어때 여기는? 지낼 만 하냐?”

“네, 괜찮습니다.”

“병신, 괜찮기는. 보아하니 밤마다 찔끔거릴 것 같은데. 하긴 아직은 얼떨떨하겠지. 다음 주부터는 작전에 투입되지? 지례 이것저것 넘겨짚으면서 속 끓일 거 없어. 짐작해 보았자 짐작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차라리 마음 편하게 있으라고.”

그리곤 창준은 빙글빙글 웃으며 주머니 속에서 껌을 하나 꺼내 입안에 넣는다.

“중사님은 곧 한국으로 돌아가신다고 들었는데, 언제 가십니까?”

“아, 사흘 뒤에.”

“그럼 어느 부대로 가시는 겁니까?”

“아아, 아냐. 돌아가면 군인은 그만 둘 거야. 이제 군대라면 씨발 지긋지긋해. 앞으로는 다른 일을 좀 해 보고 싶어. 완전히 다른 일. 구체적으로 생각은 안 해봤지만, 뭐 과일 장사도 괜찮지 않을까? 고향에 과수원들이 많으니까 거기서 과일을 헐값에 사다가 도시에다 비싸게 파는 거지. 사과나 배나, 포도 같은 거, 뭐, 딸기도 좋고.”

창준은 자신이 어처구니없는 농담이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린다.

“그러는 너는 여기에 오기 전에 뭘 했어?”

“예? 저요?”

“뭐 하던 일이 있었을 거 아냐?”

“아, 그게, 글을 썼습니다.”

“글? 작가나 기자 그런 거 말이야? 무슨 글?”

“시를, 시를 썼습니다.”

“시? 그럼 시인이었단 말이야? 이야, 내가 여기서 별의 별 인간들을 다 만나봤지만 시인은 처음 보겠네.”

“별거 아닙니다. 겨우 등단은 했지만, 아직 시집도 못 냈고.”

“그래도 꼴에 시인이면 대단한 거잖아. 나도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시를 참 좋아했었는데 말이야. 안 믿겠지만 좋아하는 시를 수첩에 적어 놓기도 했다니까. 그 중에 제일 좋아하는 시가 있었는데. 쌍, 지금은 다 잊어버렸네. 뭐더라. 나침반 바늘처럼..... 흔들흔들...... 돌아보는...... 돌아보는... 저 뾰족한 눈, 이었나? 에이, 씨발, 모르겠네. 어쨌거나 잘됐다. 심심한데 네가 쓴 시 하나만 읊어 봐라.”

“제 시요? 아니, 아직 들려드릴 수준이 아니라서…….”

“자식아, 그럼 나는 뭐 남의 시를 평가하고 자시고 할 수준이냐? 그냥 해 봐. 궁금해서 그러니까.”

우석은 곤란한지 들고 있던 총을 몇 번이나 만지작거린다. 어둠 속이라 보이지는 않지만 목까지 뜨끈하게 상기되었다. 머뭇거리던 그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시를 읊기 시작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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