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아직 오지 않았다
달은 이제 막 떠올랐을 뿐이고
나는 오늘밤 느지막이 태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본 것은
새까만 눈동자들
세상은 이미 사람들로
몹시 붐비고 있었다
생일잔치처럼 지루하고
파산한 은행처럼 분주한
그들은 늘 태양에 대해 떠들지만
아무도 본적은 없다고 했다
그래도 모두
입을 쩍 벌리고서
그리운 사람의 이름을 부르듯
막연하고 또 막역하게
태양-
태- 양-
태에- 야앙 -
내 입술도 덩달아 달싹달싹
달은 이제 막 떠올랐을 뿐이고
새벽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게 네 시란 말이지? 새끼, 이거 정말 시인이었네.”
“그렇지 않아요. 형편없어요.”
우석은 입맛을 쩍쩍 다신다.
“형편없다고? 난 마음에 드는데? 특히 태-에-야-앙 하고 부르는 부분이 말이야.”
“그런가요?”
우석은 건성으로 대답한다.
“그나저나 팬대나 굴리는 시인이 왜 이런 이역만리 전쟁터에 있는 거야?”
창준이 껌 하나를 더 까서 입안에 던져 넣는다.
“자원했습니다.”
“왜?”
우석은 곤란한지 대답은 않고 입술만 우물거린다.
“대체 왜?”
창준이 다그친다.
“돈 때문이야? 아니면, 무슨 실연이라도 당한거야?”
“아니에요, 그런 건.”
“돈도 아니고 연애사도 아니면 뭐야? 합법적으로 살인이라도 해보고 싶었던 거야? 뭐, 그, 슈팅 게임처럼?”
“시를 쓰려구요.”
“뭐라고?”
“말씀드린 데로입니다. 시를 쓰려고 자원했습니다.”
“시 나부랭이를 쓰려고 전쟁터까지 왔단 말이야?”
“네.”
“아니, 씨팔, 난 뭔 소리인지 한 개도 못 알아먹겠네. 시를 쓰려면 조용한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닙니다. 그 반대에요.”
“뭐?”
“조용한 책상 앞에서 매일 머리를 싸매고 앉아 있었지만 시를 쓸 수가 없었어요. 고작해야 달이 어쩌고 태양이 어쩌고 하는 그런 고리타분한 말들이나 떠오를 뿐이었죠. 이제까지 제가 쓴 건 시가 아니라 다 유치한 푸념일 뿐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저란 인간으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너란 인간이 어때서?”
“시시하고 또 시시하죠. 저는 공무원이었던 부모님 밑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어요. 사지 멀쩡하고, 병치레도 없었고, 집 안에 딱히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구요. 살면서 펄쩍 뛰게 억울한 일도, 가슴 찢어지게 슬픈 일도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한 적도 죽도로 미워한 적도 없었죠. 평생을 그저 무탈하고 잔잔하게 지냈습니다. 말하자면, 이끼와 다를 바가 없어요. 축축하고 무료하고 게으른 이끼 말입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창준이 멀리 침을 탁 뱉는다.
“제 취미가 뭐였는지 아세요? 방구석에서 전쟁 다큐멘터리를 보는 거였습니다. 잔인하고 충격적이라고 알려진 작품들을 일부러 찾아서 봤습니다. [지지 않는 전쟁], [악한 군인], [전쟁 비즈니스], [겁쟁이들], [나쁜 평화], [매복의 정의]……. 그런데, 그게 갑자기 너무 소름끼쳐서…….”
“왜? 너무 끔찍했나?”
“아뇨. 오히려 그 반대였어요. 사람들이 비명도 없이 거꾸러지고, 조각난 시체들이 들끓고, 폭발들, 파렴치한 명령, 고함소리, 무참한 희열, 살아남은 자에게 몰아주는 증오……. 하지만 화면 속의 그 모든 게 도무지 와 닿지를 않았어요. 오히려 진부했어요. 저는 그저 완벽한 타자인 감상자로서의 서늘한 낭만 밖에는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모든 결말은 뻔하다고 거만하게 굴면서, 트위터에 관심을 구걸하고 칭찬에 아부하는 글이나 올리면서, 하루하루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 제가 무슨 수로 시를 쓰겠습니까? 진짜 시를요.”
“아니, 그래서 전쟁터에 왔다는 거야?”
“저에게는 극렬한 현실이 필요했습니다. 저를 이 세상에 억지로 쑤셔 넣어줄 만큼 극렬한 현실이요. 관념적인 인간들이 아니라 정말로 살고 정말로 죽는 몸뚱이를 가진 인간들이 있는 곳이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말이 있죠? 천국의 노래에는 가사가 없고, 지옥의 노래에는 멜로디가 없다고. 여기만큼 지옥과 비슷한 곳도 없잖아요?”
“씨팔, 미친 새끼. 헛소리 집어 치워.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자빠진 거야. 여긴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냐. 그냥 전쟁터라고. 저기 가서 죽이라면 죽이고, 여기 가서 죽으라면 죽는 거야. 그냥 뒈져버리는 거라고. 그게 뭔지 알기나 해?”
“몰라요. 모릅니다. 바로 그게 문제에요. 전 아무 것도 몰라요. 그래서 여기 와야만 했습니다.”
“이게…….”
“정말 그래요.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전쟁을 반대했던 수많은 시인들이 정작 전쟁이 터지자마자 한걸음에 전쟁터로 달려갔는지 아십니까? 시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거예요. 어떤 시인이 말하길 전쟁터에서는 나뒹구는 시체만큼이나 시가 흔하다고 하더군요. 3류 시인이었던 군인이 깜깜한 참호 속이나 군병원 침대 위에서 최고의 시를 쓰는 것도 흔한 일이었어요. 마치 추수를 하듯, 시인들은 전쟁터에서 전리품으로 시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터질 때마다 시도 흥했던 거죠. 군인들을 시인으로 만들고, 시인들을 예언자로 만들고, 시집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위 평화롭다는 요즘은 어떤지 아세요? 시란 시는 모두 창백하게 말라 비틀어져서, 고작 편집증이나 공황장애, 동성애, 발기부전, 양성자, 그림자 정부, 유튜브에 대해서나 떠들어댈 뿐입니다. 그나마도 나른한 잠꼬대처럼 웅얼거리는 소리로 말입니다. 그러니 모두들 시가 끝장났다고 손가락질 할 수밖에요. 이제 시는 하얀 병실 안에서 시름시름 죽어가는 시한부 환자나 다를 바 없습니다. 고통조차 허락되지 않은 채 이제 곧 남몰래 안락사 당할 처지란 말입니다.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아요. 오히려 호상이라고 할 걸요. 하지만요, 시는 그렇게 죽어선 안 됩니다. 그래선 안 돼요. 차라리 전쟁터에서 나뒹굴다가 장렬하게 전사할지언정 그렇게 꼴사납게 사라져선 안 됩니다.”
장렬? 전장에서 죽으면 장렬한 건가? 몸이 산산이 부서져 뼈와 살점이 분리되어 사방으로 흩어지는 장면을 사람들은 장렬하다 하는가? 오히려 참으로 천박하고 우스꽝스러운 꼴이 아닌가? 반은 알아들을 수 없고 반은 술주정 같은 얘기를 거창하게 웅변하는 우석이 창준은 마냥 철없어 보인다. 아니, 어이없다 못해 심사가 뒤틀린다. 곧 진짜 전쟁을 겪게 되면 저 애송이는 오줌을 질질 지리며 오늘 자신이 지껄였던 말에 스스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는 중사님은 왜 전쟁터에 오셨습니까?”
우석이 붉게 물든 이마에서 땀을 훔치며 묻는다. 지나치게 많은 말을 해버린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그의 가슴도 빡빡하게 조여와 숨이 가쁘다.
“나? 난 돈 때문에 왔어. 빚이 있었거든.”
“아아, 예에.”
“왜, 무슨 존나 거창한 사연이라도 있을 줄 알았나? 하지만 여기 온 놈들 대부분이 돈 때문인 걸. 내 사정도 별거 아냐.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장사해보겠다고 덤벼들었다가 2년도 안 되서 말아먹고 씨팔 땡전 한 푼 안 남았지. 돈 푼이나 벌겠다고 좀생이들 앞에서 굽실거리는 것 보다는 낫겠다 싶어서 여기 온 거야. 부당하거나 멍청한 명령을 받아도 기분 나쁘지 않은 곳은 전쟁터뿐이니까. 그래봤자 죽기 밖에 더 하겠어. 최악을 안다는 건 일면 마음 편한 일이지.”
창준은 머리를 긁적인다. 허세가 좀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작 돈푼이나 벌겠다고 전쟁터에 온 자신이 시를 쓰겠다고 참전한 우석을 비웃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