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3)

by 곡도



“근데, 넌 죽는 게 두렵지 않아?”

창준은 어금니로 세차게 껌을 씹으며 묻는다.

“어차피 사람은 죽는 거잖아요.”

창준은 잠자코 코웃음 친다. 시인이라는 우석도 뻔하고 식상한 대답으로 방패막이를 하고 있다. 저런 대답은 죽음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지껄일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면서도 실은 자신이 정말 죽을 수 있다고는 조금도 믿지 않는 불사신들.

“난 말이야, 사람들이 죽는 걸 많이 봤어. 이렇게 마주보고 조잘조잘 얘기하던 상대가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 적도 있었지. 너도 그렇게 죽을 수 있는 거야. 그렇게 존나 싱겁게. 그래도 상관없어?”

“괜찮습니다. 시를 쓸 수만 있다면요.”

우석이 기개 좋게 대답한다. 구제불능이구만. 창준이 혀를 찬다.

“그럼, 여기 와서 그 놈의 시는 좀 썼냐?”

“아, 조금요.”

“그래? 어떤 건데?”

“별다른 건 없어요. 아직 완성도 안됐고…….”

“씨발, 알았으니까 한번 읊어 봐.”

창준이 윽박지르자 우석은 찔끔 고개를 숙인다. 완성되지도 않은 시를 우격다짐으로 캐묻다니, 그게 시인에 대한 모욕이라는 걸 창준은 모르고 있다. 혀를 우물우물 씹던 우석은 결국 입을 연다.



무수한 밤과

한 번의 새벽을 지나

해질녘 샛길을

작두 타듯 아슬아슬

아슬아슬하게 숨어들어와

두 주먹을 쑥 내밀며

어느 손에 들었느냐

다짜고짜 묻는 내 질문에

내려앉은 거대한 턱이

성긴 투로 말하길

좀 더 가까이 오렴

나에게 말하는 건지

혼잣말을 하는 건지

입술도 없는 만개의 이빨이

모래 속에서 와르르 떨며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가까이 오렴



“에에, 이게 무슨 소리야. 나 같은 놈은 하나도 못 알아먹겠네.”

투덜대면서도 창준은 자신이 처음 이곳에 도착했던 날 밤을 떠올린다. 부대에 들어서는 길에 시체 4구가 실려 나가는 걸 보고는 그날 밤 이불 속에서 숨죽여 울음을 터트렸다. 무섭기보다는 서러워서 울었다. 살아있기가 서러웠다. 창준의 핀잔에 우석은 입술을 쩝쩝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이 시도 말장난일 뿐이에요.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들을 뒤섞어놓고는 거기서 우연히 의미가 생기길 바라는 거죠.”

웅얼거리는 우석의 등 뒤로 창준이 가래침을 내뱉으며 비열하게 웃는다. 그리고 그들은 짙푸른 안개 속으로 희미하게 물러가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침묵에 빠져 든다. 창준은 전쟁에 대해, 우석은 시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창준은 시에 대해, 우석은 전쟁에 대해 생각한다.

“중사님은 전쟁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우석이 목소리를 낮추어 묻는다. 무슨 군사기밀이라도 빼내려는 것처럼 행여나 창준의 비위를 거스를까봐 조심하는 투다.

“전쟁?”

창준은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다가 목이라도 메인 것처럼 입을 닫아버린다. 6년을 전쟁터에서 전전했지만 딱히 전쟁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사람이 죽고, 또 죽고, 죽이고. 매복, 군화 손질, 진흙탕, 기습공격, 정면 돌파, 설사, 습진, 행군, 후방 방위, 가지각색의 이빨들, 일제 사격, 화약 냄새, 찢어진 입술, 지원 요청, 방독면, 뒤집어진 눈동자, 포탄들, 비명 소리, 불구자들. 고무 타는 냄새, 확인 사살, 포로들, 겁에 질려 발이 꼬여버린 부하들…….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지만 전쟁이 뭐냐는 질문에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전쟁이 전쟁이지, 뭐.”

창준은 짐짓 거들먹거리며 어깨를 으쓱하지만 말끝에는 힘이 없다. 동어반복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허접한 말장난이다. 소위 시에서나 통할법한 비겁함이다. 그는 잠시 눈동자를 뒤룩거리다가 말을 잇는다.

“봄에, 그러니까 이른 봄에, 얼음이 녹아서 강물이 범람하기 시작하면 말이야, 오물로 뒤범벅이 된 진흙 속에 묻혀있던 아군과 적군의 시체가 뒤엉켜서 떠내려 오거든? 그럼 동네 아이들이 거기에 돌을 던져 맞히는 놀이를 해. 점수를 매겨가면서. 그러니까, 내가 보기엔, 전쟁은 그런 거야.”

“좀 의외인데요?”

“왜?”

“저는 피와 살이 튀기는, 뭐 그런 얘기를 하실 줄 알았거든요.”

피와 살이 튀기는? 그렇다. 그는 그런 장면을 수없이 보았다. 그 중 몇몇 장면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잊을 수 없을 만큼 그의 머릿속에 분명한 자국을 남겼다. 잘생긴 머리통이 와사삭 부서지는 모습이나, 자기 내장에 목이 졸린 얼굴이나,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간 발기된 몸뚱이 같은……. 어쩌면 숨이 넘어가는 마지막 순간에도 그런 장면들이 떠오를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창준은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아무런 판단도 느낌도 없다. 그것은 시체들이 둥실둥실 강물 위로 떠내려 오는 장면보다 더 밋밋하게 여겨진다. 문득 그는 몇 년 전 부상 때문에 제대한 선임에게서 받았던 편지 한 구절을 떠올린다. 선임이 한국으로 돌아간 지 2년이나 지난 어느 날 뜬금없이 날아든 편지였다.

[....너도 알다시피, 난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았어. 피가 흘러넘치고, 뼈가 부서지고, 한끝차이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그 괴상한 상황에서도 난 침착하고 용감했어. 심장도 머리도 모두 무쇠덩어리로 만들어진 것처럼 도무지 겁이 없었지. 솔직히 오히려 재밌었어. 스릴 있었고. 활력이 넘쳤어. 그야말로 뼛속까지 군인이었지. 그런데 그곳을 떠나 제대를 하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와 자려고 누웠는데 말이야, 그제서야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 거야. 뭐에 대해서냐고? 그냥 그 모든 것에 대해서. 그 뒤로 지금까지 나는 하루도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어. 포탄이 터지는 전장에서도 눈만 감으면 잠들었던 내가 안전한 내 집에서는 2년이나 잠을 못 잤단 말이야.]

이제 며칠 뒤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창준도 무언가를 느끼게 될까? 꽉 멈추었던 무언가가 그제서야 제대로 돌아가게 될까? 창준은 넌더리를 치며 웃는다. 그러다 슬쩍 주변을 둘러본다. 까마득한 어둠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어쩐지 어둠을 향해 ‘거기 누구요?’하고 불러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저, 중사님은 사람을 몇 명이나 죽여 보셨어요?”

어둠 속을 노려보던 창준은 천천히 우석을 돌아본다. 속삭이는 우석의 목소리에는 호기심과 경외심, 그리고 약간의 죄의식이 담겨있다. 어쩌면 슬그머니 감추어진 비난도. 창준은 6년 전, 자신이 막 이곳에 왔을 때 어느 선임 상사에게 같은 질문을 했던 게 떠올라 냉소를 흘린다. 우석이 앞으로 거치게 될 그 모든 과정이 눈앞에 훤히 보이는 듯하다. 자신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길을, 마치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그대로 밟으며 따라오듯 겪게 될 것이다. 자신이 쏜 총에 누군가의 턱이 산산이 부서지는 걸 봤던 안개 짙은 새벽이나,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적군의 겁에 질려 뒤틀어진 입술이나, 파열탄에 맞아 볼링 핀처럼 튀어 오르던 동료의 뒷모습이나, 소대 하나를 순식간에 휩쓸어 버리는 불기둥까지, 창준의 과거가 모두 우석의 미래였다. 아, 다른 점이 있다면 우석은 이곳에서 시를 찾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체 그 솟구치는 핏방울과 녹아내리는 살점들 속 어디에 시가 숨어 있단 말인가?

“글쎄, 백 명은 족히 되겠지.”

그렇게 말해 놓고 창준은 슬그머니 뒤를 돌아본다. 만약 이 들판이 정말로 전쟁에서 죽은 유령들로 가득하다면 자신이 죽인 100명도 분명 그들 사이에 섞여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100명은 자신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가는 곳마다 어디든지 따라다니면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창준은 두렵지 않다. 그 유령들이 피거품을 뒤집어쓰고 자신의 면상을 기웃거리며 이를 갈고 있을지라도 진심으로 자신을 미워하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증오는 마른 양말보다도 부족하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믿어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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