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저기, 죽일 때, 그 때, 기분이 어때요?”
“기-분?”
창준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우석의 눈을 마주보다가 씹고 있던 껌을 멀리 뱉어 낸다. 그리고 혀로 잇몸을 훑으며 불연 듯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본다. 새까만 손이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듯 하다.
“뭐 그냥. 한 번에 머리통을 날려버리자. 그런 생각뿐이야.”
“네에.”
“가끔 재밌기도 하고.”
“아.”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그래. 확실하게 죽었나, 하고 확인하는 정도지.”
우석은 창준의 얼굴을 흘깃 훔쳐본다. 자신이 전쟁터에 와있다는 게 비로소 조금 실감이 난다. 사람을 죽였다 해도, 사람을 죽이는 게 재밌다 해도, 면구스럽지 않은 세상.
“그럼, 그 때는 어땠어요?”
“뭐?”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요.”
창준은 부지불식간에 미소를 짓는다. 빙그레 올라간 그의 입가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난다.
“처음이란 게, 씨발, 별거 아니었어. 시멘트 공장을 수색하고 있는데 갑자기 튀어나와서 달려들길래, 어이없게도 정면으로 달려들잖아. 개머리판으로 쳐서 쓰러뜨리고는 뒤통수에 총을 갈겨 버렸지. 그게 다야. 글쎄, 당시에는 좀 놀랐지만, 그냥 참 쉽다고 생각했어. 사람을 죽이는 게 참 쉽구나. 사람이 죽는 게 참 쉽구나. 그런데 난 살아남았구나. 앞으로도 계속 살아남아야겠구나. 씨팔, 나는 절대 정면에서 달려들지 말아야지, 뭐, 그런 생각들.”
“결국 끝까지 살아남으셨잖아요.”
“멍청한 놈들이나 죽는 거야. 죽은 놈들은 다 멍청한 놈들이야.”
그러더니 창준은 갑자기 경련을 하듯 몸을 떨며 웃어재낀다. 우석은 숨을 죽이고 창준을 바라본다. 끽끽 거리던 창준이 별안간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든다.
“야 썅, 좆같은 소리 하고 있네.”
“예?”
“개 같은 새끼, 씨팔. 다 개새끼들이야. 뒈져 버리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시퍼렇게 눈을 번뜩이는 창준은 그대로 우석의 얼굴에 군화발이라도 날릴 기세다. 하지만 돌연 시무룩해지더니 볼멘소리를 한다.
“아냐. 그냥 해 본 소리야. 그래, 하기는 전쟁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야. 나도 여기서 빚을 다 갚았으니까. 저축도 좀 했고. 그럼 된 거지.”
창준은 또 재채기가 터지듯 웃어재낀다. 우석은 문득 창준이 짐승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납지만 무기력한 짐승.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짐승. 말하지 못하는 짐승. 그러고 보니 짐승들은 어둠을 피해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도망친다던데. 언젠가는 자신도 저 웃음을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올까? 두 사람은 다시 지평선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거라곤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평선에 걸려있는 푸른 안개가 점점 더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그 푸른색은 어둠 속에서 아름답고도 기묘한 빛을 띤다. 우석은 그 안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시상을 떠올린다.
여기 번쩍이는 쇠총으로
사람의 뒤통수를 까부수고
기꺼이 웃음 짓는 이 자는
악마가 아니다
그저 은행 빚을 갚으러 온
내 나라 형제일 뿐
누구보다 성실한 그는
매일 밤 참호에 누워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노동의 대가를 세아린다
시퍼런 지폐마다 찍히는
선명하게 붉은 지문자국
“야.”
창준이 부르는 소리에 우석은 정신이 번쩍 든다.
“네?”
“나한테 시 하나만 지어주지 않을래?”
“시요? 무슨 시요?”
우석은 뜨끔한 나머지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거, 뭐라고 해야 하지? 죽은 사람한테 바치는 시 있잖아.”
“추모시요?”
“그래, 추모, 추모시 말이야. 얼마 전 추도식에서 누가 추모시를 읽었는데 멋지더라고. 그런 걸 좀 지어 줘.”
“그러니까, 누구를 위해서요?”
“상규.”
“상규요?”
“여기서 같이 있던 내 동기야. 강상규라고, 원래는 전기 기술을 공부했었는데 홀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홧김에 군인이 된 멍청한 새끼지. 하지만 군인이 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어. 비정하지만 뜨겁고 단순한 이 전쟁터가 좋다나. 웃을 때 보조개가 들어가고 이마가 넓은……. 아, 그러고 보니 너하고 좀 닮은 구석이 있네. 그 놈도 시인 기질이 있었거든. 가끔 알 수 없는 헛소리를 지껄여댔지.”
창준은 오늘 밤 처음으로 순순히 웃는다.
“언제 돌아가셨는데요?”
“재작년 이맘 때 쯤.”
“어쩌다가요?”
“어쩌다가? 아, 어떻게 죽었냐고? 포탄에 맞았지. 뭐, 전쟁터에서는 흔한 일이야. 포탄 파편이 심장 쪽에 박혔어. 제대로나 박혔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썅 어중간했던 모양이야. 피를 한참이나 쏟다가 고통스럽게 죽었어. 얼굴이 새파래져서 입에 새까만 거품을 물고, 그래도 끝까지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어.”
“네에.”
그 때 등 뒤를 스치는 날갯짓 소리에 우석은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본다. 그러나 들판은 바람도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아직도 그 새들이 주변을 돌아다니는 걸까? 혹시 죽은 자에 대한 얘기인 걸 알고 입맛을 다시며 모여든 게 아닐까?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에 우석은 다시 창준을 바라본다.
“그래도 말이야, 난 그 새끼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 눈 깜짝할 새에 저승길로 나가떨어지는 놈들에 비하면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눈 깜짝할 새에 죽는 걸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죠.”
“축복? 개소리 하고 있네. 자신이 죽는 것도 모르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주변을 한 번 둘러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린다면, 인생 전체가 무슨 소용이야? 그냥 개죽음이지, 썅.”
말투는 거칠지만 시무룩한 표정으로 창준은 우석을 쳐다본다. 우석은 무어라 할 말이 없어 그저 고개만 끄덕인다. 창준은 퉤 침을 뱉더니 다시 입 꼬리를 올리며 말을 잇는다.
“그 놈하고는 농담이 잘 통했어. 시시한 얘기도 그렇게 우스울 수가 없었어. 미친 듯이 웃다보면 내 목숨을 그 싸구려 농담과 바꿔도 아깝지 않을 정도였어.”
“친하셨나 봐요.”
“친했냐고? 그 이상이었어. 그 누구하고도 그만큼 가까워진 적이 없었어. 누군가와 그렇게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한 적도 없었지.”
"네에.”
“웃긴 얘기 해줄까? 이건 비밀인데 말이야, 전장에서 우린 서로 껴안고 잤어.”
본인이 생각해도 망측한지 창준은 머리를 긁으며 히뜩히뜩 웃는다.
“웃기지? 아, 그렇게 정색할 건 없어. 진짜 그냥 안고만 잔거니까. 그러면 잠이 잘 왔거든. 좀 춥기도 했고. 그게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잖아. 그렇잖아?”
“아, 네.”
창준은 손사래를 친다.
“그 놈한테는 유곽에 만들어 놓은 여자도 있었어. 원주민 치고는 제법 예쁘장하게 생겼지. 몸 파는 년들이 다 그렇고 그렇지만. 그래도 말이야, 그 놈이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울더라고. 왜 울었는지는 모르겠어. 그 놈이 주던 돈이 아쉬워서였는지도 모르지. 어쨌거나 울어줬어. 뭐, 그 뒤로는 나랑 붙어먹는 사이가 됐지만.”
“네에.”
“씨팔, 뻔한 거 아냐? 어쨌거나 난 그것도 일종의 의리라고 생각해.”
“네.”
“내가 그 여자한테 한국말도 가르쳤어. 안녕하세요, 고마워요, 좋아요, 최고에요, 괜찮아요. 이 다섯 문장만 할 줄 알아도 한국 놈들 사이에서 인기 짱이라고 하더군. 여기서는 한국말 하는 여자를 찾기가 힘들거든. 때로는 여자가 아니라 한국 말하는 여자가 필요하단 말이야.”
우석이 빙그레 웃자 창준도 그 웃음을 흉내 낸다.
“너도 여기서 냄비 하나쯤 만들어 놓는 게 좋아. 내일 고자가 될지도 모르는 판에 적당히 즐겨둬야지. 여기 냄비들은 국산하고는 틀려서 양은냄비처럼 팔팔 잘 끓는단 말이야. 나쁘지 않아. 돈만 주면 뭐든지 하니까. 아, 그래, 내가 방금 전에 말했던 그 여자 소개시켜 줄까? 제법 예쁘고 싹싹하고, 깨끗한 편인데.”
“아니, 아니요.”
“괜찮다니까? 자, 내가 주소 적어 줄 테니까 한 번 가봐. 가서 내 얘기하면 잘해줄 거야. 안 그래도 내가 귀국하고 나면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찝찝하던 참이거든.”
우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창준은 수첩을 꺼내 주소를 적고는 종이를 찢어 우석의 안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내일 마지막으로 그 여자한테 가서 인사도 하고 돈도 좀 챙겨 줄 생각이야. 옷이랑 화장품도 사주고. 좋은 걸 바르면 벌이도 더 좋아지겠지.”
그리고 창준은 군화로 땅바닥의 무언가를 비벼댄다. 마치 벌레라도 잔뜩 있는 것처럼. 그러나 우석의 눈에는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