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추모시 말이야.”
별안간 창준이 고개를 번쩍 드는 바람에 창준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우석은 어깨를 움찔 떤다.
“네?”
“내가 떠날 때까지 완성될까?”
창준은 한쪽 눈을 찡그린다.
“한국에 돌아가면 그 자식 무덤에 가볼 생각이거든. 그 때 그 시를 읽어주고 싶은데.”
“최대한 맞춰보겠습니다.”
우석은 가볍게 대꾸한다. 추모시야 뻔하다. 적당히 감동적인 구절을 나열해 주면 그만이다. 용감한 전우, 진정한 친구, 고귀한 희생, 추억, 감사, 견디기 힘든 슬픔, 형제여, 편히 잠들라, 영원히 기억하겠노라. 창준은 몇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얼굴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우석도 얼떨결에 하늘로 고개를 돌린다. 새까만 하늘이 이마에 닿을 만큼 낮게 내려와 있다. 바람도 불지 않는다. 모든 게 멈춰버린 것 같다.
“어느 날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
우석이 돌아보니 창준은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어쩌면 그 놈이 죽기 며칠 전, 아니, 바로 전날이었는지도 몰라. 하여간 어느 날 밤이었는데, 그 놈이 내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와서 내 팔을 꽉, 아플 정도로 꽉 움켜쥐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어. 그런데 주변이 너무 조용해서 그 놈 목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크게 들렸어.”
창준은 무언가 말하려 하지만 잘되지 않는지 자꾸만 더듬거린다. 우물쭈물 하던 그는 품속을 뒤져 무언가를 꺼내 우석에게 건넨다. 그것은 빼곡하게 글씨가 적힌 하얀 종잇조각이다.
“이게 뭐예요?”
“상규가 죽은 후에, 내가 적어놨어.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한 자라도 빼먹지 않고 온전히 기억해두려고.”
우석은 종이를 펴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다. 침침한 어둠 속에서 한참을 들여다 본 후에야 겨우 글자를 분별해 낸다.
야아. 왜? 만약에 말이야, 만일 내일 죽는다면 어쩔 거야? 내일 죽는다면? 그래, 그럼 어떻게 할 거야?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글쎄, 남길 말 같은 건 없어? 남길 말? 없는데. 죽는 마당에 아무 할 말이 없다는 거야? 모르겠어. 생각이 안나. 죽음을 앞두고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그러는 넌 죽기 전에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아아, 글쎄. 하고 싶은 말이 있긴 한데, 죽어버리면 다 소용없는 말들뿐이지. 그러니까 난 할 말 없어. 그럼 후회는? 후회는 없어? 후회? 대체 어디서부터 후회해야 하지?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 이 전쟁터에 온 것? 내가 이런 사람인 것? 태어난 것? 넌 어때? 후회하는 게 있어? 없어. 정말? 당장 죽게 된다고 해도? 그래, 난 살아있는 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을 거야. 후회는 죽은 사람의 몫이니까.
우석은 어느 부분이 창준의 말이고 어느 부분이 상규의 말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오직 창준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창준 자신도 구별할 수 없는지 모른다. 창준은 종잇조각을 찬찬히 접어 도로 품속에 집어넣는다.
“어때?”
“글쎄요.”
“그래, 뭐 너에게는 별 의미가 없겠지. 그냥 추모시 쓰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보여준 거야.”
창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 지평선을 눈으로 더듬는다. 우석은 창준의 얼굴을 가만히 훔쳐본다. 새까맣고 거친 얼굴 뒤로 촘촘해 보이는 두 눈이 빛나고 있다. 그 눈매가 제법 선하다고 우석은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을 수없이 죽인 자의 눈이 어떻게 선할 수 있을까 반문도 해본다. 저 눈이 살기를 띠면 어떻게 변하는 걸까? 그가 벌게진 눈으로 자신에게 달려든다면 그만 총으로 쏴버리게 될까? 표리부동이라고 하는데, 대체 어디까지가 안이고 어디까지가 바깥인거지?
그 때 창준이 갑자기 우석 쪽을 돌아보며 날카롭게 외친다.
“들었어?”
“네?”
“들었냐고.”
창준도 그 날갯짓소리를 들은 걸까? 우석은 귀를 쫑긋 세운다.
“못 들었어?”
“뭘요?”
"방금 어이쿠 하고…….”
“네?”
“씨팔, 못 들었어?”
“전 무슨 말씀인지…….”
“이상해. 이렇게 깨어 있을 땐 들린 적이 없었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미친 소리 같겠지만, 매일 밤마다 자려고 누우면 상규 목소리가 들려. 그 마지막에 어이쿠, 하던 소리. 어이쿠. 그렇게 딱 한마디 했지. 어이쿠……. 그건 마치,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 같았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어이쿠 하고. 그리고 나서, 그건, 뭐랄까, 한줄기 연기가 공기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이, 잡을 수도 없이, 어떻게, 해볼 수도 없이, 그러고도 두어 번 더 빈 숨을 내쉬더니, 그걸로 끝이었어. 남은 건 피에 젖은 군번줄을 가슴에 늘어뜨린, 흔하디흔한 시체뿐이었어. 그건 짐짝처럼 비행기 화물칸에 실려 한국으로 보내졌지. 난 배웅조차 하지 않았어. 대신 이불 속에서 그놈 이름을 불렀어. 상규야. 그러자 그놈이 내 귓가에 대답했어. 어이쿠, 하고. 그때 난 알았지. 후회는 산 사람의 몫이라는 걸.”
“뭘, 후회하시는 데요?”
하지만 창준은 대답하지 않는다.
사람의 뒤통수를 까부수고
기꺼이 웃음 짓는 이 자는
악마가 아니다
차라리
악마가 되었다면 편했을
변변치 않은 인간일 뿐.
이마를 손톱으로 벅벅 긁어대던 창준은 어조를 바꿔 애써 활기를 띤다.
“추모시는 내게 좋은 선물이 될 거야. 그리고 혹시 알아? 네가 나중에 존나 유명한 시인이 되면 네가 써준 시가 비싼 값에 팔릴지도 모르지.”
두 사람은 함께 웃는다. 그리고 철책 앞에 나란히 서서 오줌을 갈긴다. 어느새 지평선에서부터 잔잔한 물결이 퍼지듯 여명이 밝아온다. 언덕의 부드러운 능선도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축축한 습기가 땅 밑에서부터 스며 나오며 짙은 진흙 냄새를 풍긴다. 우석은 밝아오는 하늘과 함께 자신의 몸속 깊은 곳에서도 생명이 차오르는 걸 느낀다. 그는 어깨를 죽 펴고 서늘한 새벽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신다.
“이제 이틀 남았네.”
둘로 갈라지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창준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그러다 갑자기 안면을 바꾸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
“썅, 왜 아직도 교대하러 안오는 거야? 해뜨기 전에 왔어야 하는데.”
우석은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자세를 바로 한다.
“야,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봐.”
“예.”
“이런 병신새끼들, 정신머리가 빠졌어. 어서 가봐. 별일은 아닐 거야. 순번을 잘못 알고 있거나, 뭔가 사소한 일에 동원됐겠지. 가서 엉덩이를 차주고 당장 끌고 오라고.”
거하게 침을 뱉은 창준은 옅은 분홍빛으로 밝아오는 지평선을 향해 버티고 서서 가늘게 눈을 뜬다. 지난밤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인다. 우석은 창준의 왜소하지만 단단한 어깨를 흘끗 쳐다보고는 총을 어깨에 메고 바위틈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슬에 젖은 오솔길은 어느새 질펀한 진흙 밭이다. 이리저리 피해 보지만 군화는 금세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그는 나무에 총을 기대놓고 군화 밑창에 덕지덕지 붙은 진흙을 바위에 문지른다. 오른쪽 군화를 다 문지르고 왼쪽 군화 바닥을 나뭇가지로 긁어내고 있을 때, 별안간 벼락 맞은 것처럼 추모시 몇 구절이 떠오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