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순진하게 (2)

by 곡도




열두 살 이후 몇 년간에 대해서는 특별히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 굳이 누군가 묻는다면, 중학교 시절에 친구들과 저질렀던 몇 가지 장난이나 새 아파트로의 이사, 교통사고로 발목이 부러져서 병원에 일주일간 입원했던 일, 생리를 시작하게 된 일, 같은 반 친구가 물에 빠져 죽었던 일, 일본 여행을 다녀왔던 일, 부모님의 자동차 구입 등에 대해 길게 늘어놓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남에게 들었던 얘기를 그대로 옮기는 것처럼 나 자신에게도 어색하고 낯설기만 하다. 아마도 그 몇 년간은 딱히 크게 즐거울 것도 크게 슬플 것도 없는, 그래서 아무런 인상도 이야깃거리도 남길 수 없었던 생활이었던 모양이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 주변에서 이야기를 끌어내기에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나는 그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몰래 마른침만 삼키곤 했다.

나의 진짜 기억은 열일곱 살 때로 훌쩍 넘어가게 된다. 열일곱 살, 그러니까 고등학교 1학년 봄, 더 정확히 말해서 한 남학생을 좋아하게 되면서부터이다. 만약 내가 그때 이 남학생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 ‘진짜’ 기억 사이의 공백은 훨씬 길어졌을 게 분명하다. 하긴, 그 아이가 아니었더라도 결국 나는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을 테지만. 그러지 않고 어떻게 그 시기를 지나갈 수 있었겠는가. 물론 이성에게 관심을 가졌던 게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TV 속의 연예인에게 마음을 뺏기기도 했고, 호감을 느낀 남자아이를 보러 일부러 교회에 다니기도 했었다.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얼굴이 근질근질해지는 그런 천진한 마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남학생에 대한 감정은 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남학생의 이름은 박동현이었다. 그 애는 당시 사춘기를 지나면서 얼굴에 울퉁불퉁 각이 잡히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종잡을 수 없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또래에 비해 키가 훤칠하게 커서 어디서나 두드러져 보였다. 길쭉한 팔과 다리 덕에 느릿느릿 움직여도 폼이 났고, 무언가를 설명할 때 기다란 손가락을 허공에 휘두르는 모습이 퍽이나 멋져 보였다. 그는 속삭이듯이 조용히 말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웃을 때만은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볼 만큼 큰 소리를 내곤 했다. 그것은 뜬금없었을 뿐만 아니라 좀 경박해 보이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점도 마음에 들었다. 아쉽게도 유머 감각은 시원치 않았던 것 같다. 한 번도 그 애의 농담에 큰 소리로 웃어본 적이 없었다. 운동에 별 소질이 없다는 점도 종종 나를 실망시켰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동현이에 대한 내 마음을 누그러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밖에 그의 아버지가 냄비 뚜껑 손잡이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한다고 누군가에게 들었던 듯한데 정확하지는 않고, 누나와 형이 각각 한 명씩 있다는 사실은 동현이에게 직접 들어서 알고 있었다.

대충 이 정도가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이다. 그의 외모에 대해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이제는 그의 이목구비가 또렷이 떠오르지를 않는다. 그저 귀를 살짝 덮은 곱슬곱슬하던 머릿결과 웃을 때 시원하게 이를 드러내던 입맵시만이 단편적으로 생각날 뿐이다. 분명 그를 좋아하게 된 처음의 계기도 있었을 테지만 그 역시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건 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추억하기보다는 ‘나는 동현이를 좋아했었다’는 한 줄의 문장만을 반복해서 되새겼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반이었던 우리는 친한 친구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서먹한 사이도 아니었다. 교실에서 가끔 간단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친구 생일 파티에서 만나 같이 어울리기도 했다. 내 기억으로는 언젠가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동현이와 함께 학교 앞에 있는 서점에 간 적이 있었다. 그날은 화창하고 따듯한 늦은 봄날이었다. (난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교정 담을 따라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무슨 얘기인가를 간간이 나누었다. 동현이는 교복 바지 주머니 속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 걸었고, 나는 구입할 참고서 목록이 적혀 있는 심부름 쪽지를 오른손에 꼭 쥐고 있었다. 동현이와의 대화 중 오직 이 한 구절만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 가수 노래 들어본 적 없어? <다시 한 번만>이나 <미드나잇 뮤직>이란 곡도 유명한데. 모른다고? <미드나잇 뮤직>은 이렇게 시작하잖아. 한밤중에 라디오를 켜니,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있어, 이 노래를 지금 너도 듣고 있을까‧…….”

동현이는 그렇게 흥얼거리듯 노래를 했다. 그리곤 쑥스러운지 나를 보며 슬쩍 눈웃음을 지었는데, 순간 나는 그 눈매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의 눈에 입 맞추고 싶을 지경이었다. 어쩌면 동현이도 나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은 당시에도 알 수가 없었고 지금은 더더군다나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당시에조차 나는 그 점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동현이에게 내 마음을 전하는 데에도 별 열의가 없었다. 그저 나는 내 자신에게 도래한 이 새로운 감정을 온전히 살피고, 감당하고, 성취하는 데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오해를 막기 위해 미리 확언해두건대, 동현이를 향한 나의 감정이라는 것이 ‘소녀’의 순수한 순정만은 아니었다. 열일곱 살이면 이미 스스로를 소녀라고 생각하지도 않을뿐더러, 다른 사람들도 더 이상 소녀로 보지 않기 마련이다. 거기다가 그 당시 수많은 성적인 정보들이 사방에서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꽉 막힌 촌뜨기라도 순진하기는 영 틀린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를 비롯한 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성에 관한 이론과 실습의 불균형 속에서 넘칠 것 같은 불만과 불안에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이 더 이상 순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충분히 매력적이지도 않은 무능한 신세처럼 느껴졌다. 종종 루머처럼 들려오는 주변 또래들의 경험담은 그런 자괴감을 더 부채질했고 동시에 내 차례가 돌아오고 있다는 두려움을 퍼트렸다. 나와 친구들은 내일 당장 일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조급함 속에서, 또 은밀한 결사대가 암호를 교환할 때와 같은 끈끈한 스릴 속에서 신속하게 정보를 교환하곤 했다.

그 ‘정보’란 것들에는 엉터리 음담패설과 과장이 다분히 뒤섞여 있었지만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내용들은 상당히 정확한 편이었다. 몇몇 발 빠르고 사특한 아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이미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습득하고 있었고, 실제 경험에서 그런 지식들을 얻은 것 마냥 허세를 부리며 친구들의 상담역을 자처하기도 했다. 가령 키스할 때 혀를 잘 굴리는 방법이라든가, 여러 종류의 전희, 아프지 않고 쉽게 삽입하는 요령, 오르가슴, 클리토리스, G-Spot, 오럴 섹스, 남자의 성감대, 여러 가지 체위, 항문 성교, 배란일 체크, 동성애 등등에 대한 정보들은 필요하다면 믿고 참고할 수 있을 만큼 확실했다. 나는 특히 항문 성교에 관해 처음 접했을 때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기술적이고 창의적이며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섹스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룹 섹스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에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감명을 받았으나, 조금 더 나중에 알게 된 스와핑은 좀 다른 이유로 충격적이었다. 나는 인간이 상상이상으로 관대하다는 것에 감탄해마지 않았다.

오히려 불분명하게 꼬여 있는 건 구체적인 내용이나 방법들이 아니라 전제적인 논지에 해당할 만한 부분이었다. 무엇보다도 ‘애정’이라는 개념과 ‘욕정’이라는 개념이 함부로 뒤섞여 있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욕정을 일으킨다는 것이고, 욕정을 일으킨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욕정이 동반되지 않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며, 사랑 없는 욕정 또한 진짜 욕정이라고 할 수 없다.’

이 가설을 처음에 누가, 왜 퍼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소녀들 사이에서는 은연중에 정설처럼 되어 있었다. 수많은 순정만화와 로맨스 소설과 영화들이 이 같은 전제를 깔고 있었고 나아가 노골적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사랑을 고백할 때 “너하고 하고 싶어”라고 말하는가 하면, 섹스를 원할 때는 “우리 오늘 사랑하자”라고 했다. 한마디로 그것이 세련된 표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조금만 따져보면 이것은 당연하기는커녕 참으로 기발한 생각이었다. ‘애정’과 ‘욕정’이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개념이 어떻게 이토록 치밀하게 엮일 수 있는지 신기하고도 의아한 일이었다. 짐작컨대 아마도 그것은 순전히 우연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 나이 또래의 소녀들은 (아마 소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사랑과 욕정의 결합을 지극히 열망했다. 그 양자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그리고 (혹은 그럼에도) 그 양자의 구분이 애매하면 애매할수록, 그들은 더더욱 열광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들이 바라는 건 사랑도 욕정도 아니고 단지 ‘극단’이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그 양 극단이 화학작용처럼 격렬히 뒤섞이다가 그만 견디지 못하고 폭발이라도 일어나 그 안에 자신들이 휩쓸려 들어가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그 폭발 속에서 사랑과 욕정이라는 세상의 가장 큰 비밀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과열된 압력으로 인한 밀도 높은 열정과 고뇌마저 소유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은 하늘 끝까지 순수한 사랑과 땅 끝까지 퇴폐한 욕정의 결합 안에서만이 궁극적인 사랑과 인생의 진실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암암리에 믿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경향이야말로 지나치게 낭만적인 감성이었다. 아무리 시대가 복잡하게 변하고, 아이들이 재빨리 노숙해지고, 과학은 철두철미하게 전능해지고, 사람들의 마음은 진화해가고 있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여전히 ‘낭만의 시대’는 계속되고 있는 듯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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