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순진하게 (3)

by 곡도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나는 동현이를 상대로 호시탐탐 욕정을 느끼고 있었다. 만약 위에서 내가 언급했던 이론이 사실이라면, 욕정이야말로 내가 동현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반대로 위의 이론이 틀렸다면, 나는 동현이에 대한 감정이 사랑이라는 걸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욕정을 부추겼거나, 혹은 그저 욕정을 일으킬 시기가 되었을 뿐이고 그 핑계로 동현이니 사랑이니 하는 걸 끌어다 붙인 걸 수도 있다. 사실 동현이에 대한 내 사랑은 나 자신에게도 관념적일 때가 많아서 그 나약함과 막연함이 언제나 못마땅했다. 그리고 사랑이란 감정을 어떻게 구체화시켜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욕정을 구체화시키는 데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그 욕정을 통해서 내 감정이 어떤 것인지, 심지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서 말이다.

상상 속에서 나는 동현이와 수없이 키스했고, 애무했고, 또 섹스를 했다. 인터넷의 포르노 동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욕망해야 되는지 자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공상은 상당히 사실적이었다. 행위에 관해서만큼은 이론적으로 애매한 부분이 없다고 자부할 만했다. 심지어 남성의 성기나 여성의 성기를 확대한 사진도 속속들이 찾아보았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동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비슷한 듯 다른 가지각색의 성기를 보면서 나는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못했다. 대충 ‘교묘하다’는 감상 정도였던 것 같다. 단지 여성의 성기가, 더 정확히 말해 그 구멍이 내 생각보다 더 항문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는 조금 눈살을 찌푸렸지만 말이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거의 그렇듯, 나 역시 부모님이 잠든 한밤중에 몰래 일어나 소리를 죽여가며 컴퓨터로 포르노 동영상을 보곤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내 방에 개인 컴퓨터가 생겼기 때문에 그건 손쉬운 일이었다. 동영상들은 꽤나 자극적이었고 또 실제로 나를 흥분시키기도 했지만, 솔직히 역겹기 그지없는 것들도 꽤 있었다. 특히 여성의 성기에 남성의 성기가 기계적으로 들락날락하는 모습이나 체액이 흥건하게 분비되는 장면 등을 그토록 자세히 클로즈업한다는 건 오히려 흥을 깨는 일이었다. 그것은 섹스를 더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냉소적으로 만들었다. 그래도 화면을 가득 채우는 성기들과 분비물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는데,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성적 호기심 때문이기보다는 지적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나는 자위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특별히 마음먹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렇게 구체적인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접하고 또 맹렬한 관심과 욕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상상으로만 끝냈다면 그것이 더 부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자위에 대한 죄의식을 배운 적이 없었다. 심지어 내가 더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한 여의사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었다.

“자위는 죄가 아닙니다. 남자한테나 여자한테나 자연스러운 욕구고 본능이죠. 그러니 그것에 대해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많은 문학작품에서 자위는 종종 쓸쓸하고 공허한 행위로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사실 자위가 섹스보다 더 공허하다고 믿을 만한 근거는 없다. 면구함과 편견을 떨쳐버리기만 하면 자위는 꽤나 충실하고 또 충분한 행위이다. 다만 당시 내 자위행위는 어떤 면에서는 완성되지 못했는데, 몇 번 시도해보기는 했지만 도저히 내 성기 깊숙한 곳까지 무언가를 넣을 수는 없었다. 그건 파열에 따르는 통증이 두려워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다시는 복구할 수 없는 것을 스스로 훼손시켜버리는 것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어차피 쓸모없는 것이라고 해도 단순히 장난으로 망가뜨린다는 건 좀 경망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때 나는 고작 열일곱 살이었다는 걸 이해해주기 바란다.) 그래서 처녀막은 오직 나의 상상 속에서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파열되곤 했는데, 만약 그때 내가 함부로 처녀막을 손상시켰다면 나는 그 뒤로 상상을 위한 중요한 테마 하나를 잃게 되었을 것이다.

자위를 하면서 나는 동현이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매우 단편적인 장면이나 표정, 단순한 행동 같은 걸 상상하곤 했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살이 붙어서 한 편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래서 5분의 자위를 하기 위해 20분 이상 공상에 잠겨 있는 것이 보통이었고, 나중에는 하루 종일 그 이야기에 빠져 있는 날도 많았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다음의 줄거리를 가장 애용했다.


‘동현이와 나는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 사이다. -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는 서로에게 색다른 감정을 느낀다. - 하지만 우리는 우정과 사랑을 구분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 (이때 간질간질하고 아슬아슬한 에피소드 몇 개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비 오는 날이나, 불가피한 신체 접촉이나, 술로 인한 실수나, 부모님 중 한 분이 돌아가시는 것 같은) - 그때 나를 좋아하는 다른 남자가 나타난다. - 나 역시 그 남자에게 호감을 느낀다. - 이런저런 사건들과 오해들로 인해 삼각관계의 갈등이 깊어진다. - 결국 동현이가 내게 고백한다. - 하지만 혼란스러운 나는 그에게서 도망친다. - 내가 만나주지 않자 동현이는 한밤중에 몰래 내 방에 침입한다. (장소는 으슥한 공원이나 빈 교실 등이 될 수도 있다.) - 그리고 나를 구석에 밀어붙인다. - 나는 계속 빠져나가려고 한다. - 동현이는 내게 화를 내다가, 애원하고, 또 화를 낸다. - 나를 밀어붙이면서 집요하게 키스한다. - 결국 나도 동현이의 키스에 응한다. - 우리의 애무는 점점 더 격해진다. -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진 동현이가 거칠게 삽입해 들어온다. - 나는 고통을 느끼며 몸을 빼려 하지만 동현이는 사정없이 몸을 움직인다. - 처음에는 힘들어하던 나도 점점 동현이에게 보조를 맞춘다. - 두 사람 모두 쾌감을 느끼며 신음소리를 높인다. - 마침내 동시에 오르가슴에 도달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것은, 언제나 절정에서 떠올리는 것은 동현이의 일그러진 표정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일그러진 표정이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 정도의, 한마디로 소녀들을 위한 포르노 영화가 있다면 애용될 만한 진부하고 낯 뜨거운 판타지였다. (사실 사람들의 판타지 대부분은 현실보다 더 고루한 법이다). 하지만 그 상상은 수없이 되풀이되는 동안 점점 살이 붙어서 사소한 부분까지 지극히 사실적이 되었고, 지금도 ‘그건 상상이었다’고 박아놓은 명제만 빼면 실제의 동현이보다 더 분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쯤 나는 가끔씩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도 했다. 부모님께 도서실에 간다고 말하기만 하면 밤 9시에라도 집을 빠져나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술집에 들어갈 수 없었던 우리는 주로 동네에 있는 한 공원에 모였다. 그 공원은 어떤 관공서 옆에 있는 작은 동산을 끼고 조성되어 있었는데, 그리 크지는 않아도 구석구석 으슥한 곳이 많아서 연인들에게 애용되는 데이트 장소였다. 그래서 경찰들도 웬만하면 자세히 살피지 않고 지나가주었기 때문에 우리 같은 미성년자들이 숨어서 술을 마시기에 적당했다. 우리는 보통 맥주나 소주를 섞어 마셨고, 안주는 순대, 오징어튀김, 빵, 과자 등이 대부분이었다. 제대로 된 안주를 살 돈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후미진 나무 그늘 밑에 웅크리고 앉아서 통닭이나 두부김치를 먹는다는 건 번거로운 일이었다. 비록 안주가 간식거리뿐이긴 해도 풀밭 위에 신문지를 깔고 펼쳐놓으면 언제나 잔칫상처럼 푸짐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그늘이 지는 풀숲의 축축한 내음이라든지, 공원 담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경적 소리나 고함 소리라든지, 혹시나 들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이 우리 모두에게 팽팽하게 당겨진 쾌활함을 안겨주었다.

반은 장난으로 마시는 술이긴 해도 친구들 모두 술을 마시는 이유 한두 가지씩은 가지고 있었다. 그중 몇몇은 부모님에 대한 불만이나 모자란 성적을 푸념하기도 했고, 한둘 정도는 나처럼 사랑 타령을 늘어놓기도 했다. 인생에 대한 때 이른 회의에 빠져 술을 마신다던 한 친구는 가끔 터무니없이 진지한 얘기를 꺼내서 우리들의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아무런 이유나 핑계도 없이, 그리고 굳이 그런 것을 만들어낼 필요조차 느끼지 않은 채 기꺼이 술을 마시던 괴상한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는 말하기보다는 주로 들어주는 쪽이었는데, 비밀리에 무언가를 취재하러 온 기자처럼 유달리 열심히 친구들의 하소연을 경청했다.

어쨌든 아직 술을 잘 마실 줄 몰랐던 우리들은 모두들 금세 취해버렸다. 그리고는 서로 앞을 다투어 재치 있는 농담들을 지껄여댔는데, 그럴 때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깔깔거리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번 쏟아져 나온 웃음은 쉽게 잦아들 줄을 모르고 한참을 이어졌다. 마치 있는 힘을 다해 웃어재끼는 꼴이어서 옆 사람의 팔이나 어깨를 부둥켜안고 쓰러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것을 만족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지만 분명 달콤하게 도취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렇게 술에 취해 한참을 낄낄대다가도 나는 불현듯 동현이 얘기를 꺼내며 울음을 터트리곤 했다. 특별히 동현이 때문에 서럽다거나 마음에 맺힌 게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런 내 자신이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몇 번 하고 나니 남들 앞에서 운다는 게 그리 창피하지도 괴롭지도 않은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오히려 나는 솔직한 흥분 속에서 울음을 터트렸고, 약간이나마 자랑스러움 속에서 울음을 멈추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울고 있으면 평소 장난기 많던 친구 혜진이가 (아니면 혜정이던가?) 내 어깨를 두 팔로 감싸 안으며 조용히 속삭여주었다.

“민주야, 다 잘 될 거야. 다 잘 될 거야.”

그럴 때면 그것이 낯간지럽게 꾸며낸 말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귓불에서부터 찌르르 감정이 북받쳐 올라와 그 애의 여드름이 가득한 이마에 머리를 기대고 더욱 흐느껴 울어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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