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는 유언장 (2)

by 곡도



어렸을 때 나는 아버지를 캐러멜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늘 주머니 속에 싸구려 캐러멜을 한 움큼씩 넣고 다녔거든요. 이제는 더 이상 먹는 사람이 없는, 어디서 파는지도 알 수 없는, 희뿌연 종이 포장지에 쌓인 황갈색 땅콩 캐러멜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니면서 가끔씩 꺼내먹고는 했습니다. 아버지의 입에서는 언제나 담배 냄새와 땅콩 캐러멜 냄새가 뒤섞여 나곤 했어요. 그건 고약한 냄새였습니다. 무관심과 게으름, 그리고 천진무구의 냄새였지요. 그 입으로 내 볼에 억지로 뽀뽀할 때마다 나는 역겨웠습니다.

아버지는 창백한 얼굴에 목이 붉고 이마가 넓었어요. 젊었을 때는 왜소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깨와 등에 퉁퉁하게 살이 붙었죠. 웃지 않을 때는 화난 사람처럼 보였지만 대부분 웃는 얼굴이었어요. 사실 아버지에게 미소는 습관이었습니다. 일단 입에 미소를 걸어두면 그 다음부터는 표정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으니까요. 그건 저도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순진해서가 아니라 귀찮아서 웃는 거예요.

사정을 모르는 선생님은 제 웃는 얼굴을 칭찬해 주시며 저를 모델로 써주셨지요. 유명한 화가선생님의 모델이 되는 건 두 말할 필요 없이 크나 큰 영광입니다. 감사한 일이에요.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그 그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사실이에요. 물론 선생님은 모델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신다는 거 잘 압니다. 모델의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죠. 저도 그런 것쯤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왜 빨간 모자를 그리셨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우스꽝스럽잖아요. 제가 그 때 쓰고 있던 모자는 회색이었는데요. 그리고 잘 보세요. 그림 속의 모자가 머리를 파고든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머리 모양이 기형으로 보인단 말입니다. 그게 저 속없는 미소와 함께 저를 얼마나 저능하게 만드는지 모르시겠어요? 게다가 빨간 모자에 빨간 입술, 빨간 버찌, 빨간 벽, 너무 많은 빨간색들이 저를 불안하게 합니다. 선생님, 혹시 이건 어떤 계시일까요? 그림 속의 저는 웃고 있지만 전혀 행복해 보이질 않아요.

제 아버지도 그 그림을 봤다면 불같이 화를 내셨을 겁니다. 저에게 광대 같은 너절한 옷을 입혔다고 말이에요. 정작 화가 자신은 최신 유행하는 명품 옷을 빼입고 다니면서 요. 아버지는 항상 옷차림에 민감하셨거든요. 사람은 무엇보다 옷 꼴이 제대로 갖추어져야 출세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죠. 형편없는 옷을 입느니 차라리 홀딱 벗고 다니는 게 낫다고 하셨어요. ‘장화신은 고양이’의 막내아들 처럼요. 아버지는 늘 멀끔하게 차려입고 다녔습니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옷을 선호했고 가죽 구두만 해도 다섯 켤레가 넘었죠. 주말 저녁에 혼자 외출할 때는 온 몸에 값비싼 향수를 뿌려댔구요. 고급 향수라니, 우리 형편에는 사치품이었습니다. 아버지 세대에게는 더더군다나 그랬죠. 물론 선생님도 고급 향수를 즐겨 사용하신다는 걸 알지만 그건 전혀 다른 얘기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얘기에요.

만약 선생님이 제 아버지를 직접 만나봤다면 분명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걸작이 나왔을 걸요. 그림 소재로 이보다 더 적당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다분히 희극적이고 다소 비극적인 구석도 있죠.

아버지는 유머감각이 있었습니다. 누구든 유머감각이 있으면 10배는 더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기 마련이죠. 아버지는 천진하고 악의가 없었어요. 누구와도 금방 친해졌고 누구와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함께 있으면 모두들 유쾌해졌죠. 어디를 가든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난 아버지만큼 인간관계가 다양한 사람을 본적이 없어요. 어느 날은 키가 훤칠하고 턱이 긴 경찰 과장을 집에 데려오는가 하면, 다른 날은 노름꾼이나 사기꾼들과 히히덕거리며 몰려다녔습니다. 아버지는 사람을 가려서 사귀지 않았어요. 상대방이 누구든 좋아했습니다. 사람들도 아버지를 좋아했구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두들 아버지를 업신여기고 있다는 걸 난 알고 있었습니다. 무리도 아니죠. 아버지는 뻔뻔하고, 무책임하고, 게으르기 이를 데 없었으니까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늘 큰소리 쳤지만 그 말의 반의반도 지키지 못했어요. 수중에 있는 돈을 아낄 줄 몰랐고, 남들에게 신세지는 일을 꺼리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인생의 대부분 동안 빈털터리였습니다. 평생 부자 친지들과 친구들 주변을 기웃거리며 살았지요. 믿지 못하시겠지만, 아버지는 부자들을 진심으로 존경했습니다. 단지 돈이 많다는 이유로요. 그들에게 조아리고 아부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어요. 진심이었으니까요. 하긴 요즘 세상에 부유함보다 더 한 미덕이 있나요. 빚을 지지 않는 일만큼 존엄한 건 없어요. 타인에게 돈을 빌리는 순간 나이가 몇 살이든 천덕꾸러기가 되죠.

많은 친구들과 여자들이 아버지를 떠나갔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이 많건 적건 금전적 손해를 입었지요. 하지만 그들이 아버지에게 진저리를 친 건 단지 그것 때문은 아니었어요. 아버지는 사사건건 자신의 의견을 큰 소리로 떠들어댔지만 쓸모 있는 얘기는 별로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방어적이고 모순투성이에 치졸하기 그지없었거든요.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솔직하지도 않았어요. 그건 거짓말보다 더 나쁜 거잖아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평생을 다투며 살았습니다. 싸우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서로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에서도 우리 가족은 태평하게 저녁식사를 마칠 정도였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아버지와 어머니간의 분란도 점차 잦아들었습니다. 두 사람 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서로에게 완전히 이골이 났기 때문이지요. 마침내 우리 가족에게도 평화롭다고 할 만한 시절이 찾아왔습니다. 7월에는 다 함께 바닷가로 여행도 다녀왔어요. 그건 꽤 단란한 가족 여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 겨울, 아버지가 자살했습니다. 유서도 없었습니다. 사전에 누구에게도 귀띔도 하지 않았어요. 특별한 계기도 명확한 조짐도 없었죠. 만약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없었다면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걸 절대로 믿지 않았을 겁니다. 우린 아버지가 자살 같은 걸 할 수 있는 위인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 날은 11월 27일로 따듯한 초겨울이었습니다. 오후 3시 20분쯤 아버지 친구 분이 동네 앞에서 우연히 아버지를 만났는데, 아는 사람에게 빌려준 돈을 받으러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친구와 헤어진 뒤 아버지가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준 일도 없었구요. 아버지에게 돈을 빌렸다는 그 사람이 과연 실존인물인지조차 의문입니다. 아버지는 1시간가량 대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Y건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건물 옥상에 올라가자마자 그대로 난간을 넘어 밑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잠시도 주저하지 않았대요. 그 때가 오후 5시 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Y건물인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와의 연결점을 찾을 수가 없거든요. 그냥 무작위적인 선택이었을까요? 남모를 사연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때문이었을까요? 혹시 5시라는 시간이 중요했던 걸까요? 누구보다 시시하고 뻔했던 사람인데, 갑자기 세상에서 제일 불가사의한 사람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거야말로 정확하게 아버지가 원했던 일인지도 모르죠.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 가족이 제일 먼저 느낀 건 슬픔보다 의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이해 불가하고 혐오스러운 일이었어요. 마치 알아 볼 수 없게 난도질당한 신문지 같았죠. 선생님과 친구 분들이 즐겨 언급하시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이라는 것도, 실은 아버지 살해가 아니라 어머니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요? 그 편이 훨씬 더 거지같으니까요. 저는, 우리 가족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호한 법정에 불시에 끌려 나온 피고이자 원고가 돼야 했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범죄를 고발하고 고백하기 위해 기억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번복하고 또 반복해야 했죠. 가는 체를 치듯 우리 자신을 탈탈 털었습니다. 내가 했던 모든 말들을 순서대로 나열하고, 모든 행동에 일일이 꼬리표를 붙였습니다. 상대방과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했어요. 결과적으로 그것이 슬픔을 너무 빨리 가시게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기계적이리만치 냉담했거든요. 그리고 스스로의 냉담함에 오랫동안 상처를 받았습니다.

딱딱 소리를 내며 물어뜯던 엄지손톱, 귀밑머리에서 굽슬거리던 숱 적은 머리카락, 대문 앞에 구부정하게 서 있던 뒷모습, 덩치에 비해 빈약한 장딴지, 늘 땀에 젖어 있던 이마, 선물로 받은 가죽 손목시계를 몇 번이나 만지작거리던 통통한 손가락, ‘허허’ 하고 빈소리를 내던 웃음의 뒷맛. 그래요. 그 싸한 뒷맛. 만약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중에 갑자기 배우가 연기를 멈추고 극장을 나가버린다면 대충 이런 기분이 들까요?

아버지의 시체는 어머니와 제가 확인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네요. 설명 드리기가 어려워요. 꼭 냉동 고등어 같은 시체는 어딘지 모르게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슬퍼할 이유조차 없었죠.

우리는 점차 아버지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더 좋아진 점도 있었어요. 그래요. 평화로운 시절이 이어졌습니다. 다만, 어떤 시선이, 누구의 시선인지 모를 어떤 시선이 달라졌다는 걸 나는 곧 알아차렸습니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내 자신이 미세하게 어긋나서 내 눈 바로 뒤에 내 눈이, 내 입 바로 뒤에 내 입이, 내 자신 바로 뒤에 내 자신이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세상은 이미 낡아 빠져서 헌 물건이 되어 있더군요. 어느새 내 자신도 누렇게 색이 바랬구요. 선생님은 이해 못하시죠? 색이 바랜다는 느낌말입니다. 색 위에 색을 덧칠하는 게 선생님이 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저 같은 사람은 그런 능력이 없지요. 그저 색이 바래지는 걸 잠자코 지켜봐야만 합니다. 그건 단순한 결핍이 아니에요. 아니, 결핍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결핍만이 아니라 최초의 과거에까지 미치는 결핍이지요.

선생님, 자살은 역겨운 일입니다. 제 말을 믿으세요. 딱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거기에는 지독한 역겨움이 있어요. 나는 그것을 오염이라고 부릅니다. 한번 광채를 잃으면 다시는 회복되지 않아요. 눈 밑이 얼마나 어두운지 모두들 잊어버리게 되죠. 모든 게 주관적인 문제로 배척돼요. 세상은 알 수 없는 외부를 향해 열리지만 점차 내부에서부터 폐쇄됩니다. 사람들은 24시간 잠들지 못하게 돼버린 것처럼 정신을 차려요. 망각은 무거워지고 잔상은 사라지지를 않아요. 사소한 거라곤 아무 것도 없어요. ‘무심코’라는 기쁨을 잃습니다. 돌연 나는 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나는 아버지를 별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선생님 밑에서 일하게 된 건 정말이지 행운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좀 까다롭고, 예민하고, 가끔 심한 말을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예술가란 의례히 그렇다고 하더군요. 급여도 나쁘지 않고, 물감을 개거나 캔버스를 만들거나 소소한 담배 심부름 따위를 하는 것도 제법 재미가 있어요. 무엇보다 선생님과 선생님의 친구 분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는 게 너무나 즐겁습니다. 말씀들은 어렵고 조리 있게 하시지만 모두들 어린애들처럼 격앙되어 있지요. 마치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보면서 고양이니, 꽃다발이니, 벌거벗은 여자 등을 찾아내는 아이들 같아요. 손에는 초코 아이스크림 대신 진한 커피를 들고 있는 게 다를 뿐이죠. 저는 그 모습이 부러워서 멍하니 바라보게 됩니다.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도 언젠가는 선생님 같은 화가가 되고 싶어요. 유언장에 장래의 꿈을 적는다고 너무 비웃진 말아주세요. 선생님과 선생님의 친구분들을 보고 있자니 예술가란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과 선생님의 친구분들은 자신들을 화가나 시인이나 음악가가 아니라 굳이 ‘예술가’라고 지칭하시잖아요. 그건 더 이상 직업을 규정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저도 알아요. 일종의 새로운 계급이죠. 선생님과 선생님의 친구분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첫 번째 주민이라고 믿고 있더군요. 딱히 바쁘지도 않은 데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의기양양하시죠. 어디서나 턱을 치켜들고 다니고, 신랄하고 야비한 농담을 좋아해요. 멋쟁이 귀족나리들이 따로 없지요. 이건 틀린 말이 아니에요. 이제 이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들을 예술가와 예술가가 아닌 사람으로 구분하고 있으니까요. 하늘나라 영광의 문을 여는 열쇠가 선이나 믿음이나 심지어 돈이 아니라 재능이 된 거죠. 천상에는 예술가들이, 지옥에는 관객들이, 그리고 이제 연옥은 실패한 예술가들로 넘쳐날 겁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저 허드레꾼이 아니라요. 진심이에요. 아름다운 여인들과 꽃, 그리고 비참한 인간들을 그리고 싶습니다. 물론 선생님이 손사래를 치리란 걸 잘 압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웃다가 곧바로 버럭 화를 내시겠죠. 마치 제가 선생님을 모욕하기라도 한 것 처럼요. 선생님, 선생님은 제가 절대로 화가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시죠? 아니, 실은 제가 그 무엇도 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하시는 거죠. 하지만 저도 무언가가 돼야만 합니다. 살아가려면 말이에요. 그럼 이왕이면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요. 화가가 되고 싶습니다. 재능을, 야망을 가져보고 싶어요. 꿈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한 번 살아보고 싶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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