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조각 (1)

by 곡도




시간은 자정을 앞두고 있다. 전자시계라 시계 침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캄캄한 방 안에 노랗게 빛나는 작은 전등 하나를 켜놓았다. 희미한 빛 아래서 무늬 없는 회색 벽지는 낮보다 더 풍부한 색깔을 띤다. 언제 빨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갈색 커튼이 슬그머니 바람에 날리고 반쯤 열어놓은 창 밖에서는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다. 가을을 앞두고 있는, 하지만 아직 가을은 아닌 9월 중순의 밤이다. 기온도 어중간해서 위에는 긴 팔 니트를 걸치고 아래는 짧은 반바지에 양말을 최대한 끌어올려 신었다. 어쩌면 독자들도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만끽하고 있을지 모르는 초가을 전원의 상쾌한 밤공기가 한결 머리를 맑게 해준다.

보다시피 난 시작부터 ‘독자’를 언급했다. 오늘 내가 얼마나 소탈하게 글을 쓰고 있는지 독자들도 눈치 챘으리라 생각한다. 난 이제껏 이런 방식으로 소설을 써 본적이 없다. 나는 늘 몰입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늘 작품 뒤로 숨고만 싶었기 때문에, 작가가 글 전면에 나서는 방식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좀 색다른 시도를 해볼까 한다. 솔직히 일흔 살이 넘도록 책이라고는 단 한 권밖에 내지 못한 늙은 무명작가가 이렇게 쓴 들 어떻고 또 저렇게 쓴 들 어떻겠는가. 어쩌면 이 소설이 내 마지막 소설이 될지도 모른다. 운이 좋다면 한 두 작품 더 쓸 수도 있겠지만 이걸로 그만일 수도 있다. 그건 내가 죽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글쓰기를 그만 두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뭐든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내 나이가 되면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법이다. 어쨌건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글쓰기를 그만 둘 자신이 있다는 걸 이 자리에서 분명히 밝히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는 오랫동안 준비해왔고, 어느 순간부터는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글쓰기를 그만두기 위해 글을 써왔다.

나는 보통 내 자신을 ‘작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물론 그건 무엇보다 내가 작가로서 인정받지 못한 탓이 크다. 누구도 부르지 않는 이름으로 나 자신을 지칭하는 건 부적절한 일이다. 나는 내 자신을 ‘작가’라고 하기 보다는 그저 ‘글을 쓴다’라고만 얘기한다. 그럼 대부분 ‘작가냐’는 질문이 돌아온다. 꼭 그런 건 아니라고 대답한다. 상대방은 혼란스러워하지만 딱히 흥미가 생기는 건 아니어서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다. 뭐, 작가라는 명칭을 기피하는 게 꼭 나의 자격지심 때문만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글을 쓰고 또 작가들이 넘쳐나는 요즘 세상에, ‘작가’는 오히려 좀 더 엄중하고 방어적인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내 자신을 ‘작가’라고 지칭하겠다. 그리고 그 동안 뻔히 의식하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해왔던 당신들을 대놓고 ‘독자’라고 불러보겠다. 앞에서 말했듯 내게는 처음 있는 일이고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물론 나에게나 새롭다는 것이지 독자들은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식의 글쓰기는 식상해진지 오래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이미 어떤 위대한 작가가 위대한 작품으로 위대하게 완성해 낸 후 수많은 사람들이 자주 사용했던 방식이라고 말이다. 나도 알고 있다. 천재들이 어디 남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봐주는 사람들이던가. 성마르고 탐욕스러우며 인색한 그들은 이미 모든 시초와 시도를 선점했다. 그것도 가장 전위적이고 전능한 방식으로 말이다. 그들은 적선하는 법도, 실수로 부스러기를 흘리는 법도 없다. 그들은 미식가이면서 대식가이며 결벽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접시까지 남김없이 핥아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들 때문에 예술은 결코 완만하게 발전하는 그래프를 보이지 않는다. 한 번에 꼭대기까지 수직 상승했다가 요란한 퇴보가 뒤따르고 질질 끌려가는가 싶더니 돌연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다가는 다시 퇴보가 뒤따른다. 상승의 꼭짓점에는 단 한 사람의 천재가, 그리고 퇴보의 질질 끌리는 끝자락에는 나 같은 인간들이 바글바글 매달려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천재라는 산과 산 사이의 그늘진 골짜기를 헤매고 다니는 열성적인 관광객들 중 한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끼를 파먹기 위해 쭈그리고 앉아 먼지 낀 돌 틈 사이사이를 들추어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만년설이 녹지 않는 새하얀 산봉우리들의 멀고 장대한 풍경을 올려다본다. 저곳은 땅보다 하늘에 더 가깝고 바람도 이유 없이 불지는 않겠지.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자의 시선은 이 건조하고 어두운 골짜기가 아니라 지평선 너머를, 내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눈부신 여명을 향해 있을 것이다.

뭐 굳이 독자들에게 내 신세한탄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나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단언컨대, 내가 건너온 계곡의 소소한 물빛도 꽤나 다채로웠으며, 골짜기의 짙은 그늘도 때로는 쾌적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천재의 비범한 고독만큼은 아닐지라도 나의 무차별적인 고독 역시 인내를 필요로 한다. 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인내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역시나 결코 천재가 아닌 당신들 독자들에게 깊은 친밀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말해두고 싶다. 감히 말하건대 우리는 천재들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 그리고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 그래서 세상은 여전히 비밀 투성이이며 우리는 그토록 잘 웃고 쉽게 용서하는 것이다. 그러니 독자들의 넓은 아량으로 나의 부족한 글도 용서해 주기를 바란다. 노력해도 늘 변변찮은 나 같은 인간은 죄를 짓기도 전에 먼저 용서부터 빌어야 한다. 자아, 쓸데없는 서론은 그만두고 이제 슬슬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자.

그건 황제의 명이었다.

그런데 어느 독자는 이 짧은 첫 문장에서부터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진정한 의미의 ‘황제’는 없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난 굳이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글을 쓸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왕 보다 더 큰 세계의 존재를, 강력한 절대자의 존재를 ‘황제’로 상정한 것뿐이다. 하지만 내 설명이 독자들을 만족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독자들은 굳이 우리에게 없었던 황제까지 들먹일 필요가 있느냐고 따지면서 나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역사의식이 부족하다고 비난할 것이다. 고작 첫 문장만 읽고서! 하지만 놀랍게도 독자들의 지적은 틀리지 않다. 때때로 독자들의 예감은 소름끼치도록 정확해서 첫 문장에서부터 모든 것을 알아차린다. 한국인으로서의 역사의식이야 말로 오랜 세월동안 내가 풀지 못한 숙제였다. 일흔이 넘은 지금까지 나는 그 숙제에 아예 손도 대지 못했다. 어찌된 일인지 역사니 한국이니 민족이니 하는 말들은 늘 나와는 어긋나곤 했다. ‘어긋나다’는 게 무슨 뜻이냐면, 길에서 만나도 서로 인사를 건네지 못할 만큼 대면대면한 사이라는 뜻이다. 그건 내가 소심하거나 수줍어서가 아니라 액면 그대로 우리가 서로 낯설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래, 이런 말을 하는 게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하건 데, 나는 우리나라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이 부끄럽다. 이건 진심이다. 이제 애국주의자들에 이어 자유주의자들에게도 비난을 받겠지만 나는 솔직하고자 한다. 나는 부끄럽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남자라는 사실을 평생 동안 부끄러워했지만 어쩔 수 없었던 것처럼 이 역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게도 핑계는 있다. 내가 태어나서 평생을 보낸 서울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다지 한국적이지 않은 도시였고, 사실 한국 자체가 이미 오래전부터 그다지 한국적이지 않은 나라였다. 이제는 피해의식과 위선만이 오롯이 유일하게 한국적인 듯하다. 아, 그리고 그 멀미나는 속도의 불균형. 그런데 놀랍게도 이 모든 게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조화로운지.

어쩌겠는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이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스웨덴 영화 [제 7의 봉인]이며, 한 때 이집트 오시리스 신화에 푹 빠져 있었고, 내 거실에는 콜롬비아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모나리자] 모작 그림이 걸려있고, 중국 여배우 장백지에게 아직도 가슴이 설레고, 일본 우키요에 부채를 수집하고, 세 끼 중에 한 끼는 베이글 빵으로 해결하고, 가끔 저녁에 혼자 막걸리를 마실 때면 아일랜드 가수 제임스 맥머로우의 노래를 듣고, 더 나이 들기 전에 터키 이스탄불에서 살아보는 게 꿈이고, 프랑스대혁명을 나 자신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어쩌겠는가. 내가 아기일 때 엄마가 불러줬던 노래는 모차르트의 자장가였다.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글 역시 애플 노트북으로 작성하고 있다. 아니, 문제는 내 노트북이 애플 제품이냐 삼성 제품이냐가 아니라 노트북이라는 것 자체가, 이 온갖 기술들이, 생활양식과 교육, 예술, 문화, 정치, 경제 체제의 바탕과 근원이 결코 한국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과연 내가 단 한 번이라도 한국인인 적이 있었을까? 나는 암스트롱이 최초로 달에 갔던 미국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마침내 인간이 달에 갔다고 말한다.

아이고, 나는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독자여러분, 나를 용서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쓸데없는 말장난을 잠깐 해본 것뿐이다. 조금 지면을 늘여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을 것이다. 내 글이 한국적이지 않다니 도대체가 말이 되는 소리인가. 내가 지금 어떤 언어로 글을 쓰고 있고 또 여러분이 지금 어떤 언어로 글을 읽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다 허튼 소리일 뿐이다. 한글이야 말로 절대적으로 한국적이지 않은가. 설사 아프리카 오지 한 부족의 저녁 식사 메뉴를 적는다 해도 한글로 쓴 글이 한국적이지 않은 건 불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나는 한국적이지 않다’라는 문장조차 두말 할 필요 없이 지극히 한국적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한국적이며, ‘투 비 오어 낫 투 비’ 역시 한국적일 뿐이다. 애초에 나는 한국적인 것 이상은 절대로 쓸 수 없는 지극히 한국적인 작가였던 것이다. 그러니 그런 나를 딱하게 여긴다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황제’ 문제는 이쯤에서 넘어가도록 하자.

그건 황제의 명이었다.

자비심이 넘치고 온화하며 과묵하기 그지없는 국왕. 머리가 비상하고 모르는 것이 없는 유식한 임금. 무차별적이고 독단적일 수록 사랑받는 전제군주.

그건 황제의 명이었다.

왜 갑자기 황제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위대한 머릿속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미천한 자들이 어찌 알겠는가? 그는 원래부터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었을까? 대체 언제부터? 아니면 가벼운 변덕에 불과한 건가? 죄의식이라도 느낀 걸까? 갑자기 이 모든 게 부당하다는 걸 깨달았을까? 벼락처럼 모든 부당함을 타파하고 싶었을까? 엄중한 교훈을 내리고 싶었던 걸까? 역할 놀이 중에 그만 무대 뒤편의 조악한 장치들이라도 보게 된 건가? 아니면 반대로 드넓은 무대 위에서 길을 잃었나? 아름답고 정교한 일상에 진절머리가 났을까? 좀 색다른 왕이 되어보고 싶었을까? 역사가들이나 호사가들을 의식한 걸까? 일종의 값비싼 유흥인가? 지독한 오만인가? 자기혐오에 빠진 걸까? 이제는 좀 더 가혹해져야할 때라고 판단한 걸까? 어쩌면 그 반대일까? 자신만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는 걸까? 아름다움에 대한 전복을 선언하고 싶었을까? 황제는 예술가인 걸까?

누구도 그 속을 알 수가 없었다. 황제는 그저 짧게 결론만 전달할 뿐, 설명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것은 법으로 금지된 일이기도 했다. 진실은 독소와 같아서 내성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왕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란 바로 그 독소들을 먹어 치우고, 백성들 앞에서 방구를 뀌고, 그렇게 사람들을 바보취급 하는 것이었다. 이건 정말이지 중요한 임무였다. 바보가 황제보다 행복하다는 건 천하의 바보라도 아는 일이니까. 독자들이 작가보다 행복하다는 사실이 천하에 자명한 것처럼 말이다. 내가 지금 작가를 황제에, 독자를 바보에 비유한 거냐고? 그럴 리가 있나.

황제에게 명을 받은 석공도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였다면 행복했을 것이다. 왕의 명을 받은 사람이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석공은 그저 왕을 찬양하고, 인생을 찬양하고, 금빛을 찬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내 자신이 아니었다면. 이거야 말로 우리가 밤마다 잠들기 전에 되뇌는 기도가 아닌가. 새로운 세상, 새로운 숙명, 새로운 젊음.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이미 나였다는 놀라운 사실이야말로 모든 소설의 영원한 주제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에서도 황제의 명을 받은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석공 그 자신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우물쭈물할 수도 없었다. 그의 앞에는 이미 황제의 엄중한 명이 도달해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자신이 받들어야 하는 임무를 올려다보았다. ‘고운’은 눈부신 황금빛을 사방에 뿌리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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