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런데, 그게 꼭 그럴까? 그는 지금도 자신이 모든 걸 철저하게 왕으로서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습게도 평생 그 어느 때보다 말이다. 그는 불꽃이 튀기는 기름 등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등불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마차 안에 빛과 그림자를 번갈아 드리우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이 저울추처럼 허공에 매달려 흔들렸다. 그는 왕궁을 나오면서 급하게 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던 과일사탕을 꺼내 아이에게 주었다. 만족스럽게 사탕을 빨아먹는 아이의 얼굴은 지극히 철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이 세상의 수많은 다른 어린아이들처럼 말이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이 아이는 촌뜨기 아이들보다도 영민함이 부족했다. 세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뒤집어 지는 요즘 같은 때에는 누구보다 아이들이 먼저 세상 이치에 밝아지기 마련인데, 아이는 무기를 들고 왕궁으로 쳐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사과를 하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애초에 왕의 자질 따위는 없는 아이였다. 그런데도 이 아이가 왕이 돼야 한단 말인가. 단지 왕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건 분명 불공평한 일이다. 부당한 일이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이다. 그는 마치 진정한 계몽주의자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계급은 사라지고 있다. 세습 역시 사라지고 있다. 완전히 사라질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도 이미 그 뿌리를 잃었다. 어쩌면 언젠가는 왕도 사라질지 모른다. 농담이 아니다. 그들이 진작에 그를 왕좌에서 끌어내지 않은 건 순전히 개인적이고 서민적인 향수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계몽주의자들은 그 향수마저 계몽하고 말 것이다. 이미 부끄러움 없이 적나라하게 왕의 퇴출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아니, 설마,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할까? 왕이 사라진다고? 다시 그의 안에서 왕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든다. 왕이 사라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왕이 없는 국가란 존재할 수 없다. 왕이야 말로 이 세계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절대 불가침인 왕 없이, 그런 멀고도 영원한 표상 없이, 백성들이 어떻게 단단히 땅을 딛고 서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같은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라면 어떻게 우리가 서로를 용서하고 어쨌거나 또 용서하며 다함께 살아갈 수 있겠는가. 아니, 잠깐, ‘절대 불가침’이라니? 그 말이 얼마나 구닥다리인지 그는 정녕 모르는 걸까. 오늘 날에는 신마저도 더 이상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지 못한다. 오직 ‘절대 불가침’이라는 단어 하나를 단죄하기 위해 사람들은 성서마저도 남김없이 불태울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그의 안에서 계몽주의자가 눈을 희번덕거리기 시작한다. 밤마다 그의 침실 창문을 기어오르며 외쳐대던 계몽주의자들과 비슷한 눈빛이다. 계몽주의자들은 선언한다. 더 이상 왕은 없다. 더 이상 백성도 없다. 우리는 모두 동등한 인민들이다. 거대한 행렬을 이룬 무리들이 깃발을 흔들며 행진하는 모습을 보라. 우레와 같은 그들의 외침이 왕의 피까지 끓어오르게 한다. 우리는 왕과 평등하다. 우리는 왕보다 정당하다. 우리는 왕만큼 자유롭다. 잠깐, 왕이 자유롭다고? 왕인 그가 불연 듯 정신을 차리며 반문한다. 그가 과연 자유로웠던가? 아, 그래. 그에게는 큰돈을 걸고 도박할 자유가 있었지. 또 진귀한 음식들을 실컷 먹을 자유가 있었고, 화려하게 옷을 차려입을 자유가 있었다. 그는 이것들을 순순히 인정했다. 하지만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달리 더 떠오르는 게 없었다. 물론 이만하면 한 인간으로서는 너무나 과분한 자유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중 한 가지 자유만이라도 마음껏 누리기를 소원하며 아낌없이 목숨을 내던질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이를 저 위대한 왕궁에 감금된 자유로운 도박꾼으로, 자유로운 식탐가로, 자유로운 사치꾼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왕궁에서 평생 동안 자유롭게 벽지 무늬를 새거나 자유롭게 수백 켤레의 비단 양말 중 하나를 고르며 살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는 차라리 이 아둔한 아이가 좀 더 비천하게, 그리고 좀 더 왕성하게 살아가기를 바랬다. 크게 웃고, 크게 화내고, 원한다면 여자에게 손찌검도 할 수 있는 거침없는 남자가 되었으면 했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고 미래를 향해 조금이라도 빨리 뛰어드는 경솔한 자들만이 결국 최후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줄의 맨 끝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이가 바로 그의 뒤에 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왕좌는 결국 이 아이의 무덤이 될 것이다. 산 채로 묻히든 죽은 채로 묻히든 미세한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 거대하고 무지막지한 궤도에서, 곧 산산조각날 이 궤도에서 아예 빼내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정답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실행하기란 막막한 일이었다. 그 자신조차도 궤도를 벗어나 본적이 없지 않은가. 왕이 아닌 자기 자신을 (그 왕이 아무리 비루할지언정)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과연 자신이 도박을 끊을 수 있을지 조차 불확실했다. 사실 도박은 그가 왕궁에서 한 일중 가장 남자다운 일이었다. 한 번에 20배나 판돈을 올리고서 커다란 마호가니 탁자 위로 주사위를 힘차게 내던지는 기분이란.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그도 이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전지전능한 왕이 아니라 구구한 생활 속으로 던져진 한 남자가 되어야 한다.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모든 변명과 핑계를 무너뜨리고 단순한 세상을 더 단순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그는 눈앞이 맑아지는 듯 했다.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이 탈출이 성공하기만 한다면, 그들이 국경을 넘어갈 수만 있으면, 그는 다시는 왕궁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아이를 왕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 때 별안간 그의 옆 창문에서 시커먼 얼굴이 불쑥 솟아올랐다. 처음에 그는 바람에 날려 온 천 조각이나 나뭇가지인 줄 알았다. 하지만 기름등불 불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눈의 하얀 흰자위가 마차 안을 재빨리 살피며 좌우로 움직이자 그는 펄쩍 뛰어올라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아내 역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고 아이도 날카롭게 울음을 터트렸다. 시커먼 얼굴은 어둠 속으로 슥 사라지는가 싶더니 곧 두 세 개의 얼굴들이 더 창문에 들러붙었다. 그 중 한 남자는 앞 이빨 두 개가 없었고, 또 다른 사람은 들창코를 가진 나이 많은 여자였다. 그들의 머리카락이 달리는 마차의 바람에 커다랗게 부풀어 올라 사방으로 휘날렸다. 마치 숲속 깊은 곳에서 산다는 나무인간들 같았다. 맨 처음 창문에 고개를 내밀었던 남자가 험악하게 유리창을 두드려댔다. 그는 두 손을 떨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무지막지한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낄낄 웃으며 외쳤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내가 바로 왕이야. 새로운 왕. 나도 왕이고, 당신도 왕이고, 우리 모두가 왕이야. 그러니까 우리의 말에 복종해라. 자기 자신에게 복종해.”
그는 멍해져서 두 눈을 꿈뻑거렸다. 마치 방금 전 자신이 내린 결론에 대한 대답인 것만 같아 어안이 벙벙했다. 어느새 똑같은 생각들이 모두의 꿈속으로 퍼져나갔단 말인가? 그렇지, 이제 그들이 왕이었다.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왕이었다. 혈통도, 재산도, 학식도 없는 그들이 왕이었다. 그들이 온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그리고 그도 그저 그들 중 한 명이 될 것이다. 그들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하지만 창문에 매달린 사람들이 한발 먼저 왁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은 마치 태어나서 처음 웃어보는 사람들처럼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초록색 이빨을 드러내며 웃어재꼈다. 그 때 마부석에 앉아있는 남자가 고개를 돌리더니 그들을 향해 긴 채찍을 휘둘렀다. 그들은 깔깔 거리며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누군가 발을 헛디딘 모양인지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 까마득히 멀어졌다. 마부가 외쳤다.
“걱정 마세요, 폐하. 동네 거렁뱅이들일 뿐입니다. 저렇게 지나가는 마차에 매달려 장난을 친답니다.”
아니다. 그들은 단순히 동네 거렁뱅이들이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다. 새로운 시대의 새복음을 세상 곳곳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말씀’이 중요하다. 말씀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나서 빛이 있을 것이다. 모든 일들이 그렇게 되어왔다. 그는 더러운 마차 바닥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매만졌다. 그의 아내는 놀란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그는 다시 주머니에서 과일 사탕을 꺼내어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곧 울음을 그치고 사탕의 단맛에 빠져들었다. 저 사탕만 있으면 아이는 걱정 없겠지. 어디를 가든지 사탕 정도는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무릎에 묻은 까만 흙먼지를 양손으로 문질렀다. 그래, 나는 이제 아무런 미련도 없다. 그들에게 직접 이 나라를 다스리라고 해라. 모든 인민들이 권력을 갈가리 찢어 가져라. 하찮은 권력의 조각을 기념품처럼 간직하고서 영광의 향수에 젖어봐라. 찢어진 조각들을 아무리 정교하게 갖다 붙인다 해도 완전한 하나의 조각이 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평등할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오직 그 뿐이니까. 천국도 지옥도 모두의 머리 위로 똑같이 떨어지는 것.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 받는 자가 같다는, 자위적이고 자폐적이며 자학적인 열정과 분노에 그들은 사로잡힐 것이다. 공석과 사석의 구분이 뒤섞이고, 진정한 의미의 익명성과 사생활은 사라질 것이다. 잠자리는 더 이상 은신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죄악도 책임도 무지도 공평하게 나누어 갖고서 서로를 심판하고 단죄하고 목 매달 것이다. 그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상대방의 발언을 묵살하고, 결국 상대방의 투표까지 갈취하려 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주장할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결정할 것이다. 결국 다수결이 절대 불가침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다수결이라는 기요틴에 대적할 수 있는 권위도 이론도 윤리도 결코 나오지 않을 것이다. 평등한 인간들은 결국 철저하게 밀리그램 단위까지 숫자와 통계로 매겨질 것이다. 그리하여 책임은 비인격적인 모습으로 평등의 강박증 밑에서 종잇장처럼 납작해 질 것이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고, 그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책임도 자유도 철저하게 탈색될 것이다. 모두들 죄인이 될 것이다. 모두의 목이 잘릴 것이다. 축하드립니다, 폐하 전하들. 당신들은 나라 전체를 왕궁으로 만들었습니다. 왕들만 있고 백성은 없는 곳이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폐하?”
그는 고개를 들었다. 아내가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국경이 가까워지고 있어요. 이제 모든 게 잘 될 거예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서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참 달콤하고도 씁쓸한 꿈이었어요. 두고두고 베갯머리의 이야깃거리가 될 거에요. 언젠가는 그곳이 그리워질지도 모르죠. 파티와, 정원과, 내 침실.”
그리고 애인. 그는 별다른 비난조 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아내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누구인지도 알았다. 남자는 잘생긴 외모에 좋은 가문, 거기다가 다정함과 예절을 갖추고 있었다. 그 남자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자신도 그 남자를 좋아했다. 남자는 그에게 전쟁과 살육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고, 그 때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자의 팔뚝을 손가락으로 두드려대며 마음을 졸였다. 남자는 때때로 오만하기도 했다. 이 세상에 자신이 모르는 건 없다는 듯이 굴었다. “폐하, 모든 게 복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언젠가 남자는 그에게 따끔하게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주제넘은 가르침과 충고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그를 용서했다. 더구나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그 역시 이 남자의 미소를 사랑했다. 그것은 왕은 절대로 가질 수가 없는 진실한 미소였다.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자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였고, 지금 시대에 그것은 매우 희귀해져 있었다. 그의 아내는 이 남자에게 푹 빠져있었다. 그는 금세 그것을 알아차렸다. 남자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은 장난기와 다정함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질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는 왕이었고, 어떤 남자도 왕과 연적이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왕궁을 떠나기 전 마지막 날, 그는 어쩌면 아내가 마차에 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법이 풀린 공주처럼 그녀는 자신의 왕자님을 따라 더 멀리 떠날 수도 있었다. 그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것처럼, 그녀 역시 그에게서 사라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곁에 남았다. 모든 걸 뒤로 하고 두 사람은 이렇게 마주앉아 어두운 밤길을 달리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