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오직 어둠. 안도 밖도 여기도 저기도 중심도 끝도 없는, 어둠. 아, 나는 지금 잠에서 깨어난 건가? 아니야, 실은 잠이든 적도 없었어. 그저 눈을 감고 있었을 뿐. 아니, 눈을 감고 있었던 것도 아니야. 그럼 눈을 뜨고 있었나? 모르겠어. 난 지금 내 눈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럼 난 뭘 하고 있었지? 글쎄, 기억나질 않아. 그냥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둠, 어둠뿐. 어둠 전에는? 아니, 어둠에게 전이란 없어. 어둠은 그냥 어둠이야. 빛이 생기기 이전의 어둠. 우주가 생기기 이전의 어둠. 완전하고 영원한 균일함. 아니, 아직은 아니야. 희미하게 무슨 소리가 들려. 그 소리에 어둠이 어둠 속으로 허물어져 내려. 어둠에 골과 깊이를 만들어 내는 전율. 규칙적이지만 동시에 변칙적인 압박. 물리를 타락시키는 생명의 고집. 아, 이건 코고는 소리인가? 그래, 갑자기 나는 높은 허공에서 내 침대 위로 번개처럼 떨어져 내린다. 내 목에 매달려 있는 쭈글쭈글한 육체가 어둠 속에서 단단하게 뭉치더니, 무겁다. 그제야 나는 육체가 내 목에 매달려있는 게 아니라 내가 육체의 목에 매달려 있음을 깨닫는다. 나는 몸을 뒤척인다. 몸이 움직인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쉰다. 숨이 쉬어 진다. 나는 이제 낯익은 어둠을 알아본다. 아니, 이것은 어둠이 아니다. 그저 어둠의 그림자일 뿐. 어둠 속에서도 나는 모든 게 훤히 보인다. 이곳은 국립암센터 9층의 1인실이다. 고급 주택 단지가 보이는 커다란 창문과 작은 화장실이 딸린 2평 남짓한 방 한가운데 놓인 철제 침대 위에 나는 누워있다. 히크만에 주렁주렁 연결된 수액 주머니들을 매달고, 빡빡 밀어버린 머리에는 하얀 두건을 쓰고서. 옆 보호자 침대에서는 아이가 자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는 아니다. 벌써 32살이나 되었으니까. 아이는 깊은 잠에 빠졌는지 숨소리가 규칙적이다. 처음에는 골똘히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더니 점차 거슬리기 시작한다.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함께 있는 것도 아닌 까마득하지만 분명한 거리감. 아이는 낮에는 출근을 하고 밤이면 내 병실에 와서 잠을 잔다. 이렇게 생활한지 어언 5개월이 되었다. 아이는 힘든 내색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기꺼이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당장에 닥친 일이니 하고 있는 것뿐이다. 나 역시 그렇다. 당장에 닥친 일들을 하고 있다. 치료와 감금과 불면증과 살아나가는 일들을 말이다. 그러다 죽음의 순간이 오면, 그것도 당장에 닥친 일이니 해야만 하겠지. 나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들은 내가 죽는다고 말한다. 아니, 아니야. ‘내’가 ‘죽는’ 건 불가능해. 그 누구라도,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조차도 마찬가지야. 나는 그저 살아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반드시 살아있을 뿐이니까. 그리고 내 생명이 멈추는 순간 죽음 역시도 사라지고 말지. 오직 생명이 존재하거나 부재할 뿐, 죽음은 존재하거나 부재할 수 없어. 그렇다면 애초에 ‘죽음’이란 없는 걸까. 정말 ‘나’는 ‘죽지’ 않는 걸까. 모르겠다. 나는 죽음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보고 싶지만 ‘죽음’이라는 단어가 죽음 앞을 가로막고서 나를 방해한다. 실상 ‘죽음’은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며 죽음에 관한 어떤 힌트도 주지 않는다. ‘죽음’이란 단어는 ‘죽음’을 틀어막는 코르크 마개다. ‘죽음’이란 단어는 ‘죽음’ 뿐만 아니라 ‘삶’까지도 틀어막는 코르크 마개다. ‘죽음’은 언어라기보다는 거의 그런 물리적인 용도로 쓰인다. 아닌 게 아니라 ‘죽음’이라는 단어를 말 할 때면 정말 입에서 싸구려 코르크를 씹는 맛이 나지 않는가. 죽음. 죽-음. 나는 있는 힘껏 큰 소리로 목청을 울리며 이 단어를 내질러보고 싶다. 이 단어가 풍선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도록 숨을 불어넣어서 산산조각으로 터트려 버리고 싶다. 애초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우리는 죽지 않았을지도 몰라. 모든 사물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모든 동물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최소한 죽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죽어간다’는 건 지극히 문법적인 개념이며 생명은 살아있는 한 언제나 100%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죽어가고 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어제 의사가 내게 오더니 3개월쯤 남았다고 말했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때 숫자가 가득한 결과지를 보여주며 머쓱한 얼굴로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라고, 그러나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치료해보자고, 백혈병이 뭔지도 몰랐던 나를 다정하게 다독였던 의사는 항암치료가 실패한 후에는 뻔뻔한 얼굴이 되어 냉정해졌다. 3개월쯤 남았습니다. 그 보다 더 짧을 수도 있고 더 길 수도 있지요. 어쨌든 더 이상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의사는 마치 법관처럼 단호했다. 마치 내가 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는 걸 깨닫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다면 죽음은 내가 저지른 범죄라는 것인가. 아니면 죽음은 나에게 내려진 처벌이라는 것인가. 나는 그 어느 쪽도 아니라고 분명하게 항변하지 못했다. 오히려 부끄러워져서 의사에게 묵묵히 머리를 조아렸다. 의사가 자리를 떠나자 옆에 있던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에게 당신이 곧 죽을 거라고 얘기하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마치 무당처럼 살아있는 내게서 이미 죽은 사람을 보는 듯 했다. 3개월 정도 남았다고 얘기하면서 마치 내가 30%정도만 살아있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나는 30%만 살아있는 사람일까? 아이에게도? 그건 아닐지라도 최소한 예전과는 30%만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건 일리가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기분이 드니까. 모든 주어가 지워지고, 모든 목소리가 침묵하고, 모든 그림자가 사라져 간다. 더 이상 원래의 모양이나 용도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낡고 부서진 유품 같은 것, 그것이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다. 아이는 슬슬 내 눈치를 본다. 한마디를 건넬 때도 긴장을 하고, 쭈뼛거리며 내 주위에서 멀찍이 겉돈다. 아이는 점점 더 내가 낯설어지다가 내가 죽는 순간에는 전혀 모르는 타인이 될 것이다. 내가 죽고 나면 차라리 안도하겠지. 그리고 진짜 나는 병원에 도착했던 그 순간 이미 죽어버린 거라고, 병원에서의 생활은 그저 유난히 긴 장례식일 뿐이었다고 스스로 납득하겠지. 말하자면, 나는 지금 유령인 셈이다. 아이의 눈에만 보이는 유령.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유령. 똥도 싸고 오줌도 싸고 밥도 먹어야 하는 유령. 산자와 죽은 자의 나쁜 점만 모두 모아놓은 이물덩어리. 아이는 점점 지쳐간다. 아무런 기대도 보상도 없이 매일 회사와 병원을 쳇바퀴 돌듯 도는 일상. 의사는 앞으로 3개월을 얘기했지만 이러다가 6개월이 될지 1년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한창 혈기와 의욕이 충만한 때에 이런 소모적인 시간 낭비는 진저리가 날만도 하다. 점점 나의 죽음 이후를 꿈꾸고 저절로 이것저것 계획도 세우겠지. 무리는 아니다. 나도 지쳐가니까.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피검사와 수혈과 엑스레이 촬영에 지쳐가는 게 아니다. 하루 세 번 고문에 가까운 병원 식사와 병실 밖도 마음대로 나갈 수도 없는 감금 생활에 지쳐가는 것도 아니다. 침대에 지리는 오줌과 설사, 턱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토사물에 지쳐가는 것도 아니다. 의사들의 텅 빈 냉담이나 간호사들의 텅 빈 친절에 지쳐가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이대로 내 배설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굶어죽고 말 거라는 무력감과 수치심에 지쳐가는 것도 아니다. 생각, 무용하지만 강렬한 생각들 때문에 나는 지쳐간다. 깨어서도 잠을 자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똥오줌을 싸면서도 생각들이 멈추지를 않는다. 눈을 한 번 깜빡이거나 숨이 가빠오거나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 순간에도 생각들이 멈추지를 않는다. 쏟아져 내리는 포탄처럼 생각들은 내 머리를 부수고 들어온다. 하지만 그게 뭔지 알기도 전에 감쪽같이 증발해 버리고 만다. 무너진 채 방치된 오래된 폐허처럼. 그래서 정작 나는 천치처럼 멍청하고 게으름뱅이처럼 피로하다. 어느새 창밖이 스물스물 밝아오기 시작한다. 나는 푸르스름한 옅은 회색빛 하늘을 신중하게 바라본다. 이 순간만큼은 나도 살아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실감이 난다. 어쨌거나 어젯밤은 무사히 넘겼다. 나에게는 다시 하루가 주어졌다. 어쩐지 훤한 대낮에는 죽을 것 같지가 않다. 햇빛 아래서 죽는 건 과격하고 천박하며 수치스러운 일처럼 느껴진다. 정말이지 그것만은 피하고 싶다. 벽으로부터 천천히 빛이 스며들면서 병실 안이 희미하게 밝아진다. 너무나 낯익은 병실 풍경에 나는 늘 그렇듯 조금 놀란다. 깜깜한 밤에도 혹은 눈을 감고 있어도 훤히 보이는 이 모습 그대로의 틀림없는 불변함이 내 신경에 충격을 준다. 24시간 같은 자리에 누워 같은 장면만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새 망막 안쪽에까지 새겨져버린 듯하다. 나는 오직 한 가지 정지 화면만이 보이는 일종의 장님이라도 된 기분이다. 만약 내가 죽어서 유령이 된다면 분명 이곳으로, 고향도 집도 내 무덤도 아닌 바로 이 병실로 돌아올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생각이 내게 위안을 준다. 아니, 은연중에 나는 죽은 후에 유령이 될 거라는 공상을 하고 있구나. 종교라고는 가져본 적도 없고 영혼조차 믿지 않으면서 은근슬쩍 그런 가정을 진통제처럼 삼키고 있구나. 어쩌면 나는 내 죽음에 대해 조금도 믿고 있지 않은 걸까. 하지만 종교도 가져본 적 없고 영혼조차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죽음에 대해서는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두 눈을 질끈 감는다. 그리고 온 몸의 힘을 쥐어짜내어 있는 힘껏 마음속으로 되뇌어 본다. 나는 죽는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맥이 탁 풀린다.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인 듯하다. 이제 병실 문 밖이 조곤조곤 발자국 소리들로 부산해지기 시작한다. 잠시 후면 간호사가 채혈을 하기 위해 내 병실 문을 열 것이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이런저런 숫자를 뽑아내고 이런저런 약을 처방해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