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왔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어느새 와있다. 언제나 침착한 얼굴이다. 의사도 간호사도 모두 하나같이 침착하다. 그 침착함이 나를 두렵게 한다. 이제 나는 번거롭지만 필요한 절차일 뿐이다. 어쩌면, 아니 분명, 그들은 빨리 죽는 게 내 자신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살아봤자 고생만 더 할 뿐이라고, 저건 살아도 산 게 아니라고. 그들은 너무 확신한 나머지 내게 직접 물어볼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아니. 여전히 나는 살아 있다고. 아니. 여전히 나는 살고 싶다고. 그런데 왜 누구도 내게 아무 것도 묻지 않는가. 아직도 밤은 오지를 않는다. 하늘은 점점 더 멀어진다. 낮은 밝다기 보다는 창백하다. 모든 게 색이 바래고 무채색이 되어간다. 시들어간다. 얇아진다. 이 세계도 마침내 나를 포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내게 무언가를 나눠주는 게 아까운 듯하다. 무리도 아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새 생명들이 바글바글 태어나고 있겠지. 필요 이상으로 자신들의 몫을 요구하면서. 가능한 모든 것을 요구하면서. 그게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라도 된다는 듯이. 애초에 생명에게는 아무런 권리도 없다는 걸 모르고. 그들에게 미리 경고라도 해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래도 그들은 믿지 않을 테지만. 괜찮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들도 누구보다 잘 알게 될 것이다. 모두가 전문가가 될 것이다. 죽어가는 데 선수들이 될 것이다. 모두가 져야하는 경기에서. 갑자기 병실 문이 벌컥 열린다. 사람들이 밀려들어온다. 작은 병실 안이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가득 찬다. 나는 어리둥절하고 두려워서 두 눈만 끔뻑인다. 아이 말로는 이 사람들이 내 친척들, 친구들, 이웃들이라고 한다. 내게 친척들, 친구들, 이웃들이 있었다니 금시초문이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그들의 눈이 너무 번쩍거려서 어지러울 지경이다. 숨소리와 신발 끄는 소리로 귀가 멀 것만 같다. 그들은 우르르 들어왔다가 우르르 빠져나가고는 다시 우르르 들어온다. 나는 어안이 벙벙하다. 내 인생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니 믿을 수가 없다. 나는 최대한 열심히 꾸역꾸역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그들은 웃고 또 운다. 그리고 돌아서서 자기들끼리 귓속말로 속닥거린다. 그들은 얼마나 순진하고 생기발랄한지. 그들은 타인의 죽음 앞에서도 겁을 먹지도 물러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생명력이 더 뜨겁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병원을 나서서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삶의 충만함에 새삼 감격할 것이다. 쌀과 고기로 거하게 저녁을 먹어치우면서 가족들에게 내 얘기를 반찬 삼아 신나게 떠들어 댈 것이다. 그리고는 돌연 욕정에 불타올라 잠자리를 설치겠지. 나는 그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단지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그런데 나는 문득 나를 둘러싸고 있는 친척들, 친구들, 이웃들 사이에 죽은 사람들도 껴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지만 모두 내가 아는 사람들이다. 나는 놀란다. 그러나 실은 별로 놀라지 않는다. 저들도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온 것뿐이다. 죽는다는 건 죽은 자들과도 이별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불현듯 병실을 빠져나가던 누구 하나가 와락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우리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하지 마. 나는 놀라서 두 눈을 부릅뜬다. 가슴을 얻어맞은 것처럼 숨이 턱 막힌다. 세상에, 내가 왜 그들을 걱정하겠는가. 그들이 더 이상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나는 그들을 병실에서 몰아내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낸다. 그저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한동안 웅성거리던 주변이 겨우 조용해진다. 다시 눈을 떠보니 어느새 내 입에는 산소마스크가 씌여져 있다. 아이가 옆에 있다가 얼른 뭐라고 말을 거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 손짓으로 산소마스크를 벗겨달라고 해보지만 아이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는 몇 번 손을 휘졌다가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 않는다. 그럴 기운도 판단도 없다.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린다. 허리가 부서질 듯이 아파서 머릿속이 새 하얗다. 나는 아이에게 진통제를 달라고 해본다. 평소에는 진통제에 거부감을 보이던 아이가 이번에는 얼른 간호사를 불러준다. 그게 순간 섬뜩하지만 일단 진통제를 맞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간호사가 와서 진통제 팩을 팔에 연결되어 있는 관에 꽂아주고 간다. 아이는 잠시 나를 바라보는가 싶더니 고개를 돌려 내 머리맡에 있는 기계를 오랫동안 들여다본다. 기계 화면에 몇 개의 숫자들이 깜박이는 게 보인다. 숫자, 저 망할 놈의 숫자. 이제 내 영혼은 저 기계 속에, 나의 인격은 저 숫자 속에 있다. 숫자가 내 병을 선고했던 것처럼 결국 숫자가 내 죽음도 선고할 것이다. 나는 안다. 이제 멀지 않았다. 죽음이 시침에서 분침으로 그리고 이제는 초침처럼 다가오고 있다. 그 초침이 빨라지거나 느려지기 시작하면 나는 겁이 날 것이다. 나는 겁이 날까봐 겁이 난다. 아니, 겁이 나지 않을까봐 겁이 난다. 아이가 문득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멍하니 하늘 어딘가를 바라본다. 저 창밖에는 삶이, 영원할 것 같은 삶이 펼쳐져 있다. 거대한 세상이 예상치 못한 사건과 갈등과 기쁨과 고통으로 부풀어 올라 폭죽처럼 터지며 넘쳐흐르고 있다. 산다는 건 얼마나 치열한 쾌락인가. 생명은 얼마나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가. 문득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내게는 한가해 보인다. 나는 내가 죽은 후에도 계속 살아갈 아이가 미워진다. 내일도 계속 살아갈 사람들이 미워진다. 영원히 계속 살아갈 이 세상이 미워진다. 나는 그들이 남긴 쓰레기처럼 이곳에 버려졌다. 죽어가기 때문에 버려진 것인지 버려졌기 때문에 죽어가는 것인지 더 이상 구별이 가지 않는다. 아직 자신의 병을 모르는 환자들. 아직 발표되지 않은 신곡들. 아직 보지 않은 책들.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들.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기술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천재들. 아직 쓰이지 않은 역사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치료약들. 억울하고 또 억울해. 나는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트린다. 그러나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다. 내게는 그것조차 남아있지 않다. 내게 유일하게 남은 건 이 충분하지 않은 생명뿐이다. 이제 밤뿐만 아니라 낮도 사라졌다. 세상은 흰색도 검은색도 아니고, 공간도 평면도 아니다. 축축하지만 아무런 온도가 없고 바스락거리지만 아무런 소리가 없다. 공간도, 시간도, 냄새도, 소리도 그저 희미하고 뿌옇기만 하다. 억만년 동안 쌓여온 먼지가 가라앉은 곳에 나도 가라앉아 있는 듯하다. 인간이니 나 자신이니 하는 건 모두 가소롭고 까마득한 얘기가 되어 버렸다. 이제 나는 모든 기능과 용도를 잃었다. 숨을 들이 쉴 때마다 폐 속에는 공기가 아니라 먼지가 가득 찬다. 더 이상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것도 마치 하늘 전체를 들어 올리는 것만 같다. 소변과 대변은 구멍에서 줄줄 새어나온다. 통증이 온몸을 짓누르지만 나는 물 위의 기름처럼 그 고통 위를 미끄러지며 떠돈다. 팔도, 손가락도, 다리도, 허리도, 머리도, 눈 코 입도, 내장들도, 생식기나 항문도 모두 점점 내게서 멀어져 간다. 먹는 것도, 싸는 것도, 눈을 뜨고 감는 것도, 침을 삼키는 것 마저 더 이상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육체가 내게서 떨어져 나간다. 인격이 내게서 떨어져 나간다. 고통이 내게서 떨어져 나간다. 생각이 내게서 떨어져 나간다. 어쩌면 나는 1시간에 한 문장씩을 겨우 떠올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 하루에 한 문장인지도 모른다. 문장과 문장 사이가 점점 벌어지다가 영원히 멀어지면 결국은 죽게 되는 걸까. 마지막 문장을 채 끝내지도 못하고.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그래, 죽는다는 건 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제 나는 어떤 의심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럼 어떻게 되느냔 말이다. 그걸 알아야 죽을 수 있을 게 아닌가. 그런데 왜 모두들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걸까. 누군가 나를 부른다.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다. 나는 대답한다. 나는 혼자다. 아무도 이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나는 혼자다. 나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유일한 의식이다. 나는 혼자다. 최초의 존재가 사라지려고 한다. 나는 비명을 지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숨을 삼킨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귀를 기울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귀를 기울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귀를 기울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귀를 기울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 어렴풋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어디선가, 아주 멀리, 누군가 울고 있다. 누가 울고 있지. 왜 울고 있을까. 이렇게 구슬프게. 대체 무슨 일일까. 궁금해진 나는 눈을 뜬다. 아이가 침대 맡에 엎드려 울고 있다. 왜 우냐고 물어보니 도무지 이상한 소리를 한다. 거대한 운석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곧 지구와 충돌해서 지구가 산산이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다. 지구의 모든 생명이 모조리 죽고 만다는 것이다. 나는 어이가 없고 당황해서 창밖을 바라본다. 정말 하늘 전체가 거대한 어둠 덩어리에 뒤덮여 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까만 까만색이다. 마치 새까맣게 다 타버린 태양이 지구로 떨어져 내리고 있는 것 같다. 하늘이 검게 쏟아지고 땅은 하얗게 가라앉는다. 대기가 일그러지고 대지가 요동친다. 이윽고 건물들이 나뭇가지처럼 휘청거리더니 하나 둘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병실의 창문과 벽도 떨어져나가고 발밑으로는 멀리 펼쳐진 지평선이 훤히 보인다. 나는 폭풍 같은 어둠이 지평선에 남은 가느다란 빛을 삼켜버리는 광경을 지켜본다. 마지막 빛이 사라지자 가라앉은 지평선으로 부터 어둠이 썰물처럼 밀려오기 시작한다. 마침내 병실이 무너져 내린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진다. 서러운 울음소리가 온 세상에 가득 찬다. 그러나 나는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혼자가 아니야. 혼자 죽는 것이 아니야. 뒤에 버려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모든 내일의 종말. 그래, 이것이야 말로 한 사람의 죽음에 걸맞는 결말이 아닌가.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죽는 사람도 기꺼이 죽을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웃는다. 아이는 운다. 어둠이 어둠을 덮는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