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때쯤, 수연이는 희진이와 나를 새로 이사한 집에 초대했다. 집들이 겸해서 희진이와 나, 그리고 수연이와 수연이 남자 친구 이렇게 넷이서 저녁 식사나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에 내심 뿌듯했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중심과 변두리에 대한 본능적인 방위 감각, 일종의 후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표현은 좀 과할지 몰라도 개가 집요하게 배설물을 찾아내는 건 그 냄새가 좋기 때문이 아니다. 그 냄새가 흥미롭기 때문이다.
약속했던 토요일 저녁, 희진이와 함께 왕십리역에 내렸을 때는 이미 그을음 같은 어둠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전철역 입구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 주말을 맞아 외출하는 사람들로 붐볐고, 식당에서 풍겨 나오는 가을 전어 굽는 냄새가 온 거리에 진동을 했다.
식당이 즐비한 대로변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자 3, 4층짜리의 다세대 주택들과 빌라들이 바짝 들어차 있는 좁은 길이 나왔다. 그 길 위로는 새까만 전깃줄 뭉치들이 잡초 넝쿨처럼 얼기설기 얽혀있고, 그 사이로 열매처럼 매달린 노란색 가로등 불빛들이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푸르스름한 골목에 이미 짙은 어둠을 드리우고 있었다.
우리는 그 침침한 골목길을 한참이나 걸어 들어갔다. 몇 번 방향이 바뀌자 나는 곧 혼란해져서 내가 온 길로 되돌아가지도 못할 지경이었만 희진이는 똑같아 보이는 주택들 사이를 잘도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미 한두 번 와본 게 아닌 듯했다.
“저기야, 저기 초록색 아파트.”
희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빽빽한 주택가 안에 있기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작은 아파트 단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라고 해봐야 겨우 세 개의 동으로 이루어진 옛날식 소형 아파트였다. 꼭 시멘트 벽돌을 세로로 세워놓은 것처럼 푸석한 직육면체 모양에 빛이 바랠 대로 바랜 초록색 페인트는 군데군데 갈라지고 벗겨져 있었다. 그나마 집집마다 베란다에 널어놓은 가지각색의 빨래들이 그 누추함을 벌충해주고 있었다. 어느 5층 베란다에는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알 수 없는 태극기 한 개가 넝마처럼 꽂혀 있고, 또 다른 2층 집 유리창에는 ‘꿈꾸는 공부방’이라는 붉은색의 글자가 번들거리며 붙어 있고, 아파트 한쪽 구석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밑에는 버린 의자들을 여기저기서 주워 모아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는 대 여섯 명의 노인들이 있었다. 수연이 집은 B동 301호였다. 층계를 올라가 초인종을 누르자 곧바로 수연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야아, 어서 와. 민주도 잘 왔어. 자 자, 빨리 들어와.”
수연이는 치마 부분이 헐렁한 베이지색 실내복 차림에 한 손에는 뜨거운 냄비를 잡을 때 쓰는 두꺼운 장갑을 끼고 있었다. 화장기 없는 동그란 얼굴이었고 단발머리를 어린애처럼 양쪽으로 잡아맨 것이 재미있었다. 나는 희진이 뒤를 따라 조심조심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이 좁은데다가 가구며 물건들이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해서 거실은 어수선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책이며 짐 상자들도 여기저기 바닥에 쌓여 있었다. 거기다가 자줏빛 아네모네 조화가 가득 꽂혀 있는 아방가르드풍의 커다란 꽃병이라든지 파피루스 위에 이집트 벽화를 모사한 대형 그림이라든지, 아직 달지 못한 하늘색 샹들리에 같은 것들이 짐들 위에 무턱대고 놓여 있어서 더 어지러워 보였다.
“그래도 저번보다는 정리가 많이 됐네?”
희진이가 스스럼없이 식탁 앞에 앉으며 말했다. 식탁 위에는 벌써 매운탕과 여러 가지 야채며 반찬들이 차려져 있었다. 그제야 나는 집에 들어설 때부터 코를 찌르던 냄새가 매운탕 냄새라는 걸 알았다.
“배고프지? 거의 다 됐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수연이는 마저 식탁을 차리면서 희진이와 이런저런 소소한 얘기를 시작했고, 나는 그들만의 얘기에 끼지 못하고 (몇 발자국 되지도 않는) 거실을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내가 짐짓 텔레비전 위에 놓여 있던 사진 액자를 하나씩 들여다보고 있을 때, 갑자기 옆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짙은 곤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우리는 서로의 등장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대로 동작을 멈추고 상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 저, 안녕하세요.”
남자는 자못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를 향해 인사했다. 당황한 기색이었다.
“현기 씨, 집에 있었네요?”
희진이가 친근한 말투로 남자에게 말했다. 그 때서야 나는 이 남자가 수연이의 남자 친구라는 걸 알았다.
“아, 예. 오셨어요? 그런데 어쩌죠. 죄송하지만 전 지금 나가봐야 돼요. 급하게 상갓집에 갈 일이 생겨서요.”
그러면서 현기는 슬쩍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얼떨결에 수연이를 쳐다보았는데 대신 희진이가 재빨리 대꾸해주었다.
“현기 씨, 전에 얘기했죠? 얘가 민주예요.”
“아, 예. 안녕하세요. 최현기입니다.”
현기는 내게 다시 꾸벅 목 인사를 했다. 그는 전체적으로 몸집이 통통했고 넓적한 얼굴에 무난히 균형 잡힌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지만 태도는 어딘지 소심해 보이는 남자였다. 남자들은 보통 (자신의 본래 성격이 어떻든지 간에) 호탕하고 서글서글한 첫인상을 주고 싶어 하기 마련인데, 그는 무심한 건지 게으른 건지 딱히 그럴 마음이 없는 듯 했다. 그저 푸석한 표정으로 새까만 눈동자를 부지런히 굴리고만 있었다. 만약 그가 마른 사람이었다면 그런 행동이 섬세하고 예민한 느낌을 주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덩치 큰 남자의 그런 행동은 오히려 굼뜨고 둔해 보였다.
“아는 선배 어머니가 돌아가셨데.”
수연이가 현기의 넥타이를 바로 만져주며 말했다.
“예, 갑자기 그렇게 돼서요. 미안해요. 다음에 또 뵙죠.”
현기는 희진이에게 사과를 하고는, “그럼 놀다 가세요” 라며 내게도 정중하게 인사했다.
“아무래도 오늘 난 집에 못 들어올 거야. 그러니까 친구들하고 편하게 놀아.”
현기는 대문을 나서면서 또 한 번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도대체 몇 번이나 인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집들이 하는데 주인공인 현기 씨가 빠지면 어떡해? 재미없게.”
현기를 배웅하고 오는 수연이에게 희진이가 투덜거렸다.
“그러게 말이야. 대신 다음에 한 번 더 날 잡아서 모이자. 아니, 앞으로 자주 모이자. 같이 놀러도 가고.”
수연이가 노래하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근데, 남자 친구 인상이 좋더라. 점잖고 자상할 것 같은데?”
나는 현기의 첫인상에 대해 일단 언급하고 넘어가는 게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실 소심할 것 같다는 인상 외에는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지만 적당히 애매하고 듣기 좋은 말을 골라냈다.
“맞아. 좋은 사람이야. 잔소리가 많은 게 흠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해해야지 어쩌겠어. 학생들한테 잔소리 하는 게 직업인 사람인데. 일종의 직업병이려니 해야지. 거기다 남자들은 원래 자기들이 여자들의 선생님이라고 생각하잖아.”
“그리고 여자들을 자기들의 엄마라고 생각하지.”
희진이 말에 우리는 웃었다. 아들의 학생인 엄마. 엄마의 선생인 아들. 이보다 남녀 관계를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거라고 수연이는 인정했다.
“자, 이제 우리 저녁 먹을까? 오빠가 아까 우리 먹으라고 회 떠 왔어. 매운탕거리도 얻어 왔길래 매운탕도 끓여봤는데, 맛은 별로 장담 못하겠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수다를 떨었다. 의외로 우리 세 사람은 쿵짝이 잘 맞았다. 특별히 의견이 같거나 관심사가 비슷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고 여러 가지 상관없는 주제들이 산발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생선찌개 비린내 없애는 법부터, 인기 있는 드라마 줄거리, 연예인들의 이혼 얘기, 얼마 전 일본을 강타한 허리케인, 최근 개봉한 영화들, 요새 유행하는 숄더백 디자인,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대선 후보들에 대한 (그러나 세 사람 모두 정치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논쟁으로 번지지는 않는) 격식 없는 비난.
“위선도 10년 이상 되면 인성이 된다고들 하잖아. 사람의 가식이 바나나 껍질처럼 그렇게 호락호락 벗겨질 수 있다고 믿는 자체가 순진한 거지.”
희진이가 한 대선 후보를 향해, 하지만 다소 자조적인 말투로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되는대로 떠들고, 술도 여러 병 마시고, 발길에 차이는 대로 아무나 마음껏 흉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수연이가 희진이에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얘들아, 너희들 오늘 여기서 자고 가라. 오빠도 없는데 편하게 자고 가, 응? 나도 혼자 있기 무섭기도 하고.”
희진이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밤 10시 40분이었다. 마지막 전철을 타려면 곧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마음 편하게 노닥거리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