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니엄 (10)

by 곡도




이런, 제 말이 오히려 몇 몇 분들의 심경을 더 뒤집어 놓은 것 같군요. 네, 그럴 수 있죠. 배설에도 쾌감이 있고, 모든 쾌감은 순수하며, 아무리 사소한 쾌감이라도 포기하기란 어려운 일이니까요. 아니, 혹시 ‘배설’이라는 단어가 다른 어떤 것을 연상시키기라도 했나요? 아, 그렇군요. ‘배설’ 행위가 없다는 사실이 어떤 분들에게는 짓궂게 또 어떤 분들에게는 불길하게 다가왔나 봅니다. 자, 진정하시고 그냥 솔직하게 터놓고 말씀해보세요. 더 이상 서로 부끄러울 것도 없지 않습니까. 저에게, 엘리니엄에서, 성적인 행위가 가능한지 궁금하신 거죠? 그 간절함은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만, 죄송하게도 그리 영리한 질문 같지는 않네요. 말씀드렸다시피 있는 거라고는 제 두 손뿐인데 무슨 성적인 행위가 가능하겠어요. 기껏해야 두 손을 비비거나, 깍지를 끼거나, 박수를 칠 수 있을 뿐이죠. 하지만, 그런데, 어쨌건, 그래도, 혹시, 성욕이 있기는 하냐구요? 대단하네요. 여러분은 도대체가 포기를 모르시는 군요. 여러분이 뿜어내는 육체와 생명의 기운이 여기까지 느껴져서 멀미가 다 날 지경입니다. 제 글의 행간을 뚫고서 자꾸만 비집고 들어와요. 부지런히 타자를 쳐서 문자들로 그것들을 간신히 막아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성욕. 또 다른 구질구질함. 식욕, 배설욕, 성욕의 삼각형이야말로 한없이 질척거리는 우리의 연옥이죠. 하지만 엘리니엄은 습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곳입니다. 그러니 축축한 마찰의 소산인 성욕이 가능할 리 없죠. 아니, 잠시만요. 막상 말해놓고 보니 조금 자신이 없어지네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속세에서도 딱히 성욕이 넘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육체마저 사라진 이 마당에 저에게 성욕이 없는 것은 일면 타당해 보입니다만, 과연 이것이 모든 엘리들의 보편적인 특성일까요? 성욕이란 부풀어 오른 성기의 소산이 아니라 부풀어 오른 정신의 소산이라고 할 때, 그리고 언어처럼 선험적이고 본질적이라고 할 때, 어쩌면 엘리니엄에서도 왕성한 성욕을 끈질기게 유지하고 있는 엘리들이 있지는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성욕을 처리하는지 오히려 제가 더 궁금해지는군요. 음, 아무래도 유일한 육체인 손으로 무언가를 해야겠죠? 한쪽 손은 여자 역할을 맡고, 다른 손은 남자 역할을 맡는다던가 하는 방식으로요. 무언가 참신한 창의력이 필요해 보이네요.

하지만 저 역시도 가끔은 식도락 방송이나 포르노를 봅니다. 솔직히 꽤 즐겨보는 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욕망이 없다고 해서 욕망이라는 코드나 장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요. 사람들의 재능이 빛을 발하는 것도 특히 저 분야이고 말입니다. 사실 모든 농담의 90% 이상이 식욕이나 성욕과 관계가 있지요. 무엇보다 제가 한 때 팔팔하게 살아있었다는 걸 잊지 말아주세요. 저에게도 관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끈질긴 관성이 저를 여전히 인간으로 남아있게 합니다. 아, 혹시 그런 걸 보고나면 기분이 울적해지지는 않냐구요? 거식증에 걸린 사람이 식도락 방송을 보거나 성불구자가 포르노를 볼 때처럼 말이죠. (그들은 기분이 안 좋아진다고 하던가요?) 아니오, 저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기분이 유쾌해져요. 육체의 간섭이 없는 욕망의 순수한 순도와, 그것을 인격적으로 표출하는 전략과 기술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거든요. 사람은 익히 욕망으로 인해 몸이 뜨거워지기 때문에 당연히 욕망도 뜨거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욕망은 차가워요. 소름끼치도록 차갑습니다. 특히 그것이 언어화 되면 얼음덩어리처럼 냉동되지요. 그런데 그건 또 그 나름 혀 끝으로 살살 녹여먹는 맛이 있거든요. 아마도 흘러내리는 인격의 꼭대기 위에서 벌어지는 신들의 연회에서나 맛볼 수 있는 그런 맛일 겁니다. 욕망이 그토록 차가운데도 오히려 사람의 몸에서 열이 나는 건 일종의 면역반응일까요.

자, 이제 제가 어떤 상태인지 대충이나마 짐작이 가시겠죠. 이미 여러분의 상상력은 절대적 1인칭인 엘리니엄을 3인칭의 시선으로 샅샅이 훑고 계실테죠. 사실 가끔은 저도 제 모습이 궁금하긴 합니다. 거울을 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거울 속의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강제로 떠올리고 싶은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하지만 엘리니엄 안에는 거울이 없습니다. 금지된 건지 기술적 한계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울을 만들어 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구에 붙은 유리나 금속도 반사가 되지 않아요. 실망스럽긴 하지만 한 편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이해할 만한 일이죠. 엘리니엄이야 말로 거울 속 세상이고 저는 거울 그 자체니까요. 한 번 상상해 보세요. 마주 보고 있는 두개의 거울,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 있는 거울을 말입니다. 순식간에 영원히 복제되는 동시성과 동일성의 핵반응 속에서 모든 게 증발해 버리거나, - 더 나쁘게도 – 하나의 초점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영원히 마주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자신이 거울을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로요. 왜냐하면 그것은 더 이상 거울이 아니니까요. 어느 쪽이든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죠. 그것은 마법에 걸리는 순간이 아니라 마법이 깨지는 순간입니다. 자살의 원형 같은 것. 이제 저는 제 얼굴을 완전히 잊었습니다. 혹여 거울에 비친 사람이 낯선 누군가라고 해도 저는 그 사람이 제가 아니라는 걸 눈치 채지 못할 겁니다.

저런, 혹시 모두들 우울해지셨나요.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요. 하긴 적나라하게 사실들을 나열해놓으면 언제나 조금 음울해지기 마련이죠. 육체가 있는 여러분에게 육체가 없는 자기 자신을 상상하거나 심지어 긍정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몇 몇 신체 부위와 기능은 목숨과 맞바꾸어서라도 지키고 싶을 테지요. 물론 그게 진짜 여러분 자신의 뜻인지 육체의 뜻인지는 분명치 않지만요.

저로 말하면 육체가 없는 지금 상태에 저는 일면 만족하고 있습니다. 속세에서는 육체를 보호하고 육체의 수발을 들며 비위를 맞추느라 부단히 애를 써야 하잖아요. 평생 육체의 하수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물론 저 역시 심리적으로 육체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육체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거나, 육체가 저를 기만하고 있다거나, 음모를 꾸미고 있다거나, 심지어 저를 팔아넘기거나 산채로 잡아먹을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릴 염려는 없어졌습니다. 이제 저는 – 육체가 사라진 지금에야 - 조금쯤 육체와 동등하다는 기분이 듭니다.

그래요. 말이 나온 김에 육체가 없어서 좋은 점 몇 가지를 꼽아 볼까요? 그럼 여러분의 기분도 조금 나아질지 모르죠. 우선 당연하게도 육체가 없기 때문에 육체적인 불편과 고통 역시 없습니다. 하다못해 세수를 하거나, 몸을 씻거나, 머리카락, 수염, 코털을 다듬거나, 이빨을 닦거나, 손톱 발톱을 자를 일도 없구요, 춥거나, 덥거나, 감기가 들거나, 오한이 나거나, 소화불량에 걸리거나, 넘어지거나, 부러지거나, 관절염으로 고통 받거나, 사타구니가 가렵거나, 변비나 설사로 고생하거나,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눈이나 귀가 어두워지거나, 편두통, 치통, 생리통으로 괴로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게다가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먹는 것 하나 마시는 것 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가요. 유기농이니, 친환경이니, 신선도니, 유통 기한이니, 원산지니, 잔류 농약 검사, 중금속 검사, 방사능 수치 검사 등등. 거기에 감염에 대한 두려움, 신체 손상에 대한 두려움, 신체 절단에 대한 두려움, 마비에 대한 두려움, 불치병에 대한 두려움, 치매에 대한 두려움, 노화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말하자면 우리는 신경쇠약에 걸린 채로 태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죽어야만 끝나는 병이에요. 어쩌면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면서 생전 처음으로 마음이 편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장이 멈추는 순간 깊은 한숨을 천천히 내쉬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몸을 쭉 펴는 사람을 본적이 있나요.

저만해도 엘리니엄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심각한 건강염려증 환자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정도가 꽤나 심한 편이었죠. 증세가 있으면 있어서 걱정, 없으면 없어서 걱정이었습니다. 저는 늘 신경을 곤두세운 채 24시간 빈틈없이 제 몸을 의심하고 또 감시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평생의 소명이나 직업이라도 되는 것처럼요. 마치 그러려고 태어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다가 작은 증상이라도 발견할라 치면 놀라움 때문이 아니라 성취감 때문에 겁에 질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소화가 조금만 안 돼도 위암이라고 확신하며 전전긍긍했습니다. 가슴이 조금만 답답해도 곧바로 폐암이나 심장마비를 떠올렸구요. 불면증이 있을 때는 뇌종양을 의심했고, 어쩌다가 수혈을 한 뒤에 몸살감기에 걸렸을 때에는 에이즈에 감염된 줄 알고 한바탕 난리를 친 적도 있었습니다. 결벽증까지 있어서 늘 소독제를 달고 살았고, 모든 음식에 독약이라도 든 것처럼 까다로운 데다가, 모든 약을, 심지어 의사가 처방해주는 공인된 약조차 불신했습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자신이 뭔가를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어쨌거나, 어떻게든, 기준과 규칙을 세우고 고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고독한 서러움. 애초부터 나는 망가져 있었으며 망가진 줄을 뻔히 알면서도 나 자신을 수선하거나 새로 교체할 수 없다는 당황과 무력감이 평생토록 저를 갉아먹었습니다.

저에 대한 어떤 보편적이고 적대적이며 사악한 의지가 있다는 걸 저는 언제 처음 알게 되었을까요. 저는 살아있는 동안 내내 누군가에게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 뿐만 아니라 안면도 상관도 없는 낯선 누구라도 저를 죽이고야 말 거라구요. 반드시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저는 확신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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