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문을 닫고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각이었다. 현태는 유리컵에 차가운 물을 가득 담아 들고 침실 창문 앞에 놓인 노란 의자에 앉았다. 그는 이미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고 어깨가 찌그러진 것처럼 뒷목이 무거웠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밤을 지새우는 것에 대한 불평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순순히 이 일을 마치고 어서 하루를 끝내고 싶을 뿐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길 건너 403동의 21층을 올려다보았다. 아파트에는 아직 불이 켜있는 집들이 많았지만 21층 창문은 어두웠다. 저 방은 불이 켜지는 시간도 꺼지는 시간도 매일매일 제각각이었다. 때로는 새벽 3시, 4시까지 불을 밝히고 있다가도 때로는 며칠 씩 불이 꺼져 있기도 했다. 과연 저 방의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현태는 그가 직업도, 사고방식도, 인생도 자유로운 사람일 거라고 상상해보곤 했다. 어쩌면 사진작가나, 화가, 작곡가 같은 예술가일지도 모른다. 현태는 예술가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무모하지만 진지했고 다른 사람들이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 공공연히 자아도취에 빠질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그들에게는 따로 출퇴근 시간이 없다는 점이었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스스로의 주체성을 상당히 회복할 것이다.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매일 12시간씩 쉬는 날도 없이 일해야 하는 현태에게는 그들이 마치 등 뒤에 커다란 날개라도 달려있는 멀고도 빛나는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다. 땅바닥에 착 달라붙어 하늘을 올려다 볼 일조차 없는 그의 눈에는 그들의 추락마저도 찬란해보일 것이다.
아쉽게도 현태에게는 예술적인 재능이 없었다. 아니, 예술적인 재능뿐만 아니라 그 무엇에도 재능이 없었다. 그 사실을 그는 자기비하나 열등감 없이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무엇 하나 특별히 잘하는 게 없었다. 공부만은 잘해서 대학은 제법 좋은 곳에 갔으나 죽자 사자 노력해서 시험을 잘 쳤던 것일 뿐 그것을 재능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학창시절에는 모범생에 과묵했던 덕에 주변 사람들에게 듬직한 인상을 주었지만 실은 자신에게 아무런 재능도, 매력도, 순발력도 없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애썼던 것뿐이었다. 어떤 분야에도 관심을 가져 본적이 없었던 그가 법대를 들어갔던 것도 그의 성적으로 욕심낼 수 있는 학과 중에 법대가 제일 그럴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법대와 의대 중 하나를 고르라고 으름장을 놓았고, 타인의 몸에 손을 대는 게 끔찍이도 싫었던 그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단번에 법대를 택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도 처음에는 법에 대한 막연한 동경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소위 법이란 정의에 도달하는 직행 차표는 아니더라도 정의를 낚는 낚싯대나 하다못해 미끼 정도는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법은 스도쿠 같은 것에 불과할 뿐 정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그가 대학에 들어가서 배운 것이라고는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주장하기보다 상대방의 틀린 점을 까발리거나, 질문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대답을 하고도 들키지 않는 방법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것은 오로지 말장난이었지만 문학성마저 발가벗겨진 그 적나라한 경박함을 법조인들은 어려운 전문 용어들을 기워서 간신히 가리고 있었다.
무언가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건, 그리고 그것을 공공연히 인정받는다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이며 어떤 존재가 되는 걸까 하고, 아무 재능도 없는 그는 가끔씩 상상해 보곤 했다. 그것은 얼마나 살아볼만한 인생일까. 살아볼만한 인생. 그리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 인생. 언젠가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한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가 늙어 꼬부라진 손가락으로 하늘을 수없이 찌르며 이렇게 말했다.
“그곳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있었어요. 생각해 보세요.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있었단 말입니다. 미래가 창창한 아이들이요. 죽은 아이들 중에는 지도자, 예술가, 정치인, 과학자, 의사, 변호사, 음악가의 재능을 가진 뛰어난 인재들도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을지도 모르죠. 그 아이들이 살아 있었다면 인류에게 얼마나 큰 이익이 되었을지 생각해 보세요. 이 얼마나 아깝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재능은 그 사람의 가치를 높인다. 재능이 있으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인간이 된다. 대놓고 인정하기는 불편하지만 사람에게, 사람의 값어치에 등급이 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누군가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 사람의 값어치를 수치화 시킬 수 있는 공식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낙제 점수를 받기 때문이다. 만약 다음 삶이란 게 있다면, 그리고 꼭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야만 한다면, 현태는 한 번쯤 천재로 태어나 보고 싶었다. 가끔 천재들을 반신(半神)처럼 조명한 글이나 영화, 다큐멘터리를 볼 때면 그는 황홀해지곤 했다. 하지만 그건 천재들이 이룩한 업적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엇갈리는 진술들, 그의 진심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 그의 행보에 대한 분분한 평가들이 그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 사람은 얼마나 불투명하고 또 입체적인 실재인가. 기름 종이처럼 얇게 흔들리다가 제풀에 스러지는 대부분의 희미한 사람들 속에서 천재들만이 대지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홀로 우뚝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때 찻길 한가운데를 버젓이 걸어가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한 현태는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딴 생각에 빠져 있느라 찻길로 들어서는 고양이를 미처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온통 검은색 털에 이마와 양쪽 뒷다리만 갈색 털로 덮여 있는 고양이는 경솔한 걸음을 종종거리며 아파트를 향해 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서 현관문으로 뛰쳐나갔다. 그 바람에 창틀에 걸쳐있던 유리컵이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깨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두 팔을 휘적이며 그가 밖으로 튕겨져 나왔을 때는 이미 고양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