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찬 (2)

by 곡도




언어를 인간이 발명했다거나 혹은 언어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기대부터 버려야 합니다. 오히려 인간을 언어가 발명했다거나 인간이 언어를 위해 존재한다고 하는 편이 더 그럴듯하죠. 언어란 본질적으로 소통과 공감이 아닌 코딩을 위한 코드입니다. 언어는 실제적인 시공간을 배척하고, 엔트로피 증가 법칙을 거부하고, 실천적인 실존을 무력화시키면서 끝없는 자가생식과 교배, 증식을 위해 서로를 한없이 밀어내며 오로지 스스로의 생존과 진화와 번영에만 몰두합니다. 매 순간 언어는 조로증 환자처럼 태어나자마자 늙어버리고 조현병 환자처럼 뿌리 끝까지 시들지만 번식을 멈추지 않습니다. 필연적으로 타락하죠.


썩고, 가라앉고, 자라고, 넝쿨을 감고, 꽃을 피우고, 씨를 뿌리고, 시들고, 또다시 썩는 미적지근하고 광대한 수은의 늪지대 같은 언어 속을 무작정 헤매면서 우리의 눈, 눈꺼풀, 눈썹, 속눈썹, 코, 콧구멍, 콧대, 입, 입술, 입꼬리, 혀, 입천장, 이빨, 귀, 귓불, 귓바퀴, 이마, 정수리, 머리카락, 미간, 볼, 광대, 턱, 목, 뒷목, 목젖, 목구멍, 피부, 쇄골, 가슴, 어깨, 겨드랑이, 갈비뼈, 옆구리, 유방, 젖꼭지, 등, 허리, 척추, 배꼽, 팔뚝, 팔꿈치, 손, 손목, 손등, 손바닥, 손금, 손가락, 손가락 마디, 손가락 사이, 손톱, 엄지, 검지, 왼쪽 엄지, 허벅지, 종아리, 무릎, 오금, 발, 뒤꿈치, 발등, 발바닥, 발가락, 발톱, 엄지발가락, 발가락 사이, 배, 골반, 사타구니, 엉덩이, 엉덩이 사이, 체모, 성기, 회음부, 음경, 음낭, 음부, 음핵, 항문에서도 언어의 넝쿨이, 언어라는 넝쿨이 뻗어 나와 뒤덮습니다. 어디선가 출렁이는 소리, 중얼거림, 웅성거림, 고성과 침묵, 메아리, 메아리의 메아리, 메아리의 메아리의 메아리. 녹아내리고 부서지는 잡종과 혼종의 되울림. 메아리로 서로를 부르기. 훨씬 미리 혹은 훨씬 나중에 대답하기. 침묵하기. 침묵에 대해 침묵하기. 늪지대 바닥을 긁어 이름 건지기. 이름을 낚시 바늘에 걸기. 낚시 바늘을 이름에 걸기. 허우적대기. 잡초 줄기를 붙잡고 매달리기. 자욱한 물안개 사이로 문득 하늘 보기. 하늘의 색깔이 뭔지 떠올리기. 색깔이 뭔지 떠올리기. 뭔지 떠올리기. 떠올리기. 그렇게 썩고, 가라앉고, 자라고, 넝쿨을 감고, 꽃을 피우고, 씨를 뿌리고, 또다시 썩다가 두엄 위로 쓰러지면 우리의 주검 위에도 어느새 언어가 무성하게 우거집니다. 그럼 그 위를 또 다음 사람들이 짓밟고 헤매다가 쓰러지죠. 점점 더 우거지고, 점점 더 높아지고, 점점 더 넓어지는, 무차별적이고 난잡하고 금속적이고 기하학적이며 세균학적인 언어의 생식. 늪지대 표면이 반들반들하게 광이 나면 눈이 부신 우리는 그것을 진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반진보주의자나 반지성주의자, 반언어주의자인 건 아닙니다. 진보를 거슬러 퇴보하려는 것도, 미신이나 미개로 회기 하려는 것도 아니구요. 다만, 앞으로가 아니면 뒤로 라는, 위로가 아니면 아래로 라는 그런 선형적인 세계관이 우리의 목을 매달고 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세계를 1차원, 2차원, 3차원, 4차원, 10차원, 20차원, 100차원 등으로 난자하는 우스꽝스러운 만용을 우리는 멈추어야 해요. 세계에는, 우리에게는, 먼지 한 톨, 점 하나에게도, 깊이가 있습니다. 너머가 있고, 내면이 있고, 이면이 있으며, 어둠이 있어요. 빛의 그림자로서의 어둠이 아니라 빛의 기원인, 그러나 빛이 닿지 않는 어둠 말입니다. 빛은 하늘과 구름, 날씨와 파도, 그리고 수평선을 조망하지만 바닷속에 대해서는 한 없이 무력하죠.


우리는 질문과 답을, 선과 악을, 그러니까 언어를 정화하려는 게 아닙니다. 정화란 결국 공모자를 넘어 내부자가 되는 일이니까요. 우리는 그것들을 퇴마 하려는 거예요. 일시적으로나마 언어와의 모든 거래와 타협과 계약을 끊어내려는 겁니다. 악마가 우리의 영혼을 차지하려 할 때 이름을 부른다는 얘기 들어보셨나요? 누군가 우리의 이름을 부르면 우리는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의 질문과 하나의 대답이 사실상 단 하나의 명의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무게와 모양이 똑같은 두 개의 돌을 끈 양쪽에 매달은 하나의 투척기처럼 우리를 꼼짝 못 하게 옥죄어버립니다. 무덤 속에서도 우리의 목에는 그 투척기가 감겨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우리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질문할 수도, 질문을 받을 수도, 질문에 대답할 수도 없으며, 질문 자체를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건 더 이상 언어가 아닌, 그저 파도처럼 파편화된 소음일 뿐이니까요. 우리의 목에 걸려 있는 투척기는 동시에 부표이기도 합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우리는 부표에 매달려 파도에 휩쓸리며 물 위를 떠다니죠. 하지만 이제 우리는 부력을 잃고 늪지대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깊이, 더 깊이, 빛도, 시점도, 언어도 없는 곳. 바로 지금 여기입니다.


만찬은 언어가 실패한, 그러니까 언어가 성공한 적이 없는 그 자리에서 반언어를 통해 비언어적인 세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입니다. 그래서 만찬은 철저하게 침묵 속에서 진행됩니다. 사실 ‘침묵’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침묵’이란 본래 언어의 가장 강력한 표현 방식일 뿐이니까요. 우리는 단지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모든 언어를 비워내야 합니다. 할 말이 없는 것을 넘어 ‘말’ 자체를 잃어야 하죠. 우리는 언어가 없는 그곳에서도 여전히 우리가 인간이며, 심지어 더더욱 인간이며, 진정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빨간색’은 빨갛지 않고, ‘비린내’는 비리지 않고, ‘바람’은 불지 않고, ‘순간’은 일시적이지 않고, ‘가시’는 따갑지 않고, ‘용암’은 뜨겁지 않고, ‘비명’은 들리지 않고, ‘빛’은 밝지 않고, ‘유리’는 투명하지 않고, ‘사탕’은 달지 않고, ‘솜털’은 가볍지 않고, ‘똥’은 더럽지 않고, ‘눈물’은 흐르지 않고, ‘생명’은 살아있지 않고, ‘나’는 ‘너’ 만큼이나 모호합니다. 우리는 하얀색 종이 페이지마다 문자가 빽빽하게 인쇄되어 있는 책처럼, 먹거나 마시지 않아도 배고픔이나 갈증 없이 바스락거리며 무감각하게 혹은 순진무구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언어로 잔뜩 부풀었던 헛배가 꺼지고 나면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위장이 텅 비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제야 허기가 돌고 무언가 먹을 것을 찾게 되죠. 형태와 색을 보고, 냄새를 맡고, 맛보고, 씹고, 삼키고, 소화하고, 양분을 취하고, 배설할 수 있는 진짜 음식을요. 우리가 바라는 건 단지 그뿐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이토록 힘들다니요.


짐작건대, 아니, 확신하건대, 여러분이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단지 거부감이나 의심, 사회 통념을 극복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성찰과 의지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실 그것만으로도 큰일인데, 만찬을 차단하고 소탕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국가 조직이 총동원되고 있는 실정이니까요. 지원서 접수 전에 미리 여러분께 경고했다시피 체포될 경우 여러분은 중범죄자가 되어 십 수년에서 수 십 년의 높은 형량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반인륜범으로 낙인찍혀 평생 동안 정상적인 사회 활동이 불가능해질 겁니다. 법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모든 걸 잃게 될 거예요. 거기다 가족들의 충격과 실망, 원망은 또 어떻구요.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가해지는 가차 없는 혐오와 모욕을 어떻게 견디시겠어요? 아니, 그보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가해지는 사람들의 가차 없는 혐오와 모욕은 또 어떻게 감당한단 말입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여러분은,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만찬에 참가하고 있어요. 오늘만 해도 이 시각 다른 지역에서 2개의 만찬이 더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 달 전에는 5개의 만찬이 한 날에 성사되기도 했죠. 이상하지 않나요? 모든 언론들이 하나같이 우리를 광신도, 사이비, 패륜아, 악마주의자, 정신병자, 무정부주의자, 허무주의자, 테러리스트, 인간쓰레기로 몰아붙이고 있는 실정인데도 말입니다.


자, 여러분 보세요. 여러분 자신을 보세요. 우리를 보세요. 저를 보십시오. 우리가 정말 광신도, 사이비, 패륜아, 악마주의자, 정신병자, 무정부주의자, 허무주의자, 테러리스트, 인간쓰레기인가요? 정말 그래요? 아니죠. 우리는 결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선량한 보통 사람들이자 평범한 이웃이에요. 어떻게 아냐구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이나 저나 지금 이곳에 있지 못할 테니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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