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찬은 참가자를 아주 까다롭게 선별합니다. 신청자들 한 명 한 명을 몇 달에 걸쳐 합법적인 것뿐만 아니라 불법적인 방법까지 총 동원해서 면밀하게 파악하죠. 얼마나 이 잡듯이 샅샅이 뒤지는지, 얼마나 밑바닥까지 까발려지는지, 아신다면 꽤나 놀라실 겁니다. 그렇게 해서 64가지 조건을 모두 통과한 분에게만 최종 초청장이 발부됩니다. 예를 들어 굵직한 것 몇 가지만 말해볼까요. 우선 전과가 있거나 심각한 정신 병력이 있으면 안 됩니다. 폭력적인 성향이 있거나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도 안 돼요. 특별한 이유 없이 3년 이상 경제 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이나 완전히 파산한 사람도 제외됩니다. 너무 어리거나 너무 나이가 많은 사람은 자동으로 배제되지요. 우리는 재정상태, 세금 관계, 각종 벌금이나 범칙금뿐만 아니라 가정불화, 이혼 사유, 공적 사적인 인간관계까지 모두 들여다봅니다. 가장 결정적인 건 우리가 인터넷 계정을 해킹한다는 사실입니다. SNS와 유튜브 활동, 검색 내역, 가입한 카페, 운영 중인 블로그, 메일과 댓글, 시청한 영화나 영상들까지 모두 끄집어냅니다. 놀라셨나요? 불쾌한 분들도 있으시겠죠.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오늘날 사람들의 정수는, 그러니까 좀 더 고전적으로 표현하자면 영혼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에 있으니까요. 우리는 소위 코셰이의 달걀 속까지 들여보는 것도 마다치 않습니다. 결국 신청자 중 오직 극소수만이 최종적으로 만찬에 초대되죠. 하지만 초대받은 사람이 극소수인 이유는 만찬의 기준이 너무 높거나 까다로워서가 아니라 단지 우리 만찬이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기 때문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열심히 돈 벌고, 세금 잘 내고, 법을 준수하며, 누군가에게 결코 해를 끼친 적이 없는 선하고 평범한 보통 시민들이라는 겁니다. 평균과 상식이라는 판타지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죠.
그런데 그런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 걸까요? 왜 그토록 순하고 순종적인 사람들이 밝고 반듯한 길에서 벗어나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이 어둡고 막다른 곳까지 오게 되었을까요? 왜 우리가 광신도, 사이비, 패륜아, 악마주의자, 정신병자, 무정부주의자, 허무주의자, 테러리스트, 인간쓰레기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까? 사람들은 우리가 길을 잃었다고 말합니다. 그건 정말 예리한 지적이에요.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길이란 없으며 그저 모두가 앞사람의 뒤통수만 보면서 줄을 맞추어 걷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거죠. 눈을 치켜뜨고, 두리번거리면서, 비틀대다가, 결국 대열에서 벗어나 정처 없이 헤매던 끝에 이곳으로 흘러든 겁니다. 아니, 한 발자국도 뗄 수가 없어서 돌덩이처럼 꼼짝도 못 하고 있던 여러분에게 어느새 만찬이 흘러든 것일까요? 어느 쪽이든 여러분이 여기에 있는 건 단순한 우연도, 의지도, 운명도 아닙니다. 쟁취한 것도 내몰린 것도 아니죠.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그저 자연스러운 일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이 이곳에 있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네, 여러분의 눈이 빛나기 시작하는군요. 여러분의 눈빛은 예전의 저를 떠오르게 합니다. 저도 여러분이 직면해 있는 위기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어요. 깎아지른 뾰족한 모서리 끝에 두 발을 모으고 아슬아슬하게 서서 뭐라도 붙잡을 게 없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도 누구에게 입도 뻥긋할 수 없는 그 막막한 심정을요. 그냥 뛰어내려야 하나? 이 허공 아래에는 바닥이 있는 걸까? 바닥이 있으면 어쩌지? 바닥이 없으면 또 어쩌나? 어쩔 줄 몰라 그저 언제까지나 모서리에 악착같이 매달려 있어야 하는 당혹감. 영문을 알 수 없기에 절망할 수도, 슬퍼할 수도, 고통받을 수도 없는 고달픔. 여러분, 우리는 왜 여기에 있습니까. 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등지고 여기까지 왔습니까.
우리에게는 꿈도 희망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꿈에서 깨어났고 모든 희망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와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은 겁니다. 살아야 하는 이유도 죽어야 하는 이유도 없는 겁니다. 진정 살 수도 진정 죽을 수도 없는 거예요. 대체 이 유치한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내면 한없이 조잡하고 허황된 이 얘기를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요? 누가 이해해 줄까요?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어차피 살다가 어차피 죽는 거, 적당히 살다가 적당히 죽으라구요. 네, 지극히 옳은 말이죠. 그런데 여러분, 살아있는데 어떻게 적당히 살며, 죽어야만 하는데 어떻게 적당히 죽을 수 있을까요. 살아있는데 어떻게 적당히 죽으며, 죽어야만 하는데 어떻게 적당히 살 수 있단 말입니까. 사실 우리는, 우리 모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세상사람 모두가,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금껏 우리는 자신이 이미 죽었는지도 모른 채 같은 자리를 떠도는 지박령 같이, 지박령이 낳은 지박령 같이 살아왔습니다. 근원도 본질도 목적도 없이 삶에 내던져진 채 오로지 실존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죠. 시민권을 따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불법 이민자처럼, 존재를 연출하고, 믿음을 가장하고, 개성을 조립하고, 관계를 설계하고, 취향을 창작하고, 일상을 선전 선동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진정하세요. 그렇게 애쓰지 마세요. 안심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우리는 실존하지 않으니까요. 실존하지 못하거나 실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존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데 까마득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것은 일면 소위 지식인들이 온갖 재주로 거기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존적 인간만이 진정한 인간이라고 가스라이팅 하면서요. 그래서 우리는 그냥 인간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해 분투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늘 부족했죠. 그럴 수밖에요. 여러분, 눅눅한 돌 틈에 피어난 이끼도 우리만큼 실존해요.
사람은 누구나 더 실존할 수도 덜 실존할 수도 없을 만큼 이미 당연하고 충분하며 마땅히 실존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실존이란 그런 게 아니라고 항변할 겁니다. 뭐든 이쑤시개처럼 조각조각 쪼개서 잇 사이 하나하나를 낱낱이 쑤시고 싶어 하는 집착과 아집에 사로잡혀서요. 그들은 본질과 실존 사이를 냉담하게 갈라 쳤듯이 실존 역시도 끝없이 갈라 치는 데 골몰할 겁니다. 결국 모든 존재 개체 각자에게 철저하게 고유하고 완벽하게 고립된 실존이 부여될 때까지 말이죠.
그렇게 ‘실존’을 갈가리 찢어 무력화시켜 놓고서 그들은 뻔뻔하게도 그 명색뿐인 ‘실존’이라는 이름으로 또 모든 사람들을 규합하려 듭니다. 너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포함한다. 해방은 모두의 문제다.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지식인들은 정치 언어 비즈니스에 누구보다 전문가들이죠. 하긴 우리 모두 그들의 잔재주가 흥에 겨워 동전을 던지며 박수를 치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지식인들의 자아 과잉, 몰염치, 기만,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공격적인 선의에 진저리가 납니다. 그들의 성의는 사실상 지적 권력욕이자 탐욕스러운 식민주의의 전략일 뿐이에요. 그들은 계급을 정복하거나 계급을 평등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계급을 만듦으로써 다른 권력자들과 공생공존하려는 속셈입니다.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과 언론과 시민단체들과 유튜버들의 공생처럼요. 일종의 잘 짜인 무용극, 합창대, 혹은 약속대련이라고 할까요? 그냥 쉽게 말해서 나도 한 자리 해먹겠다 이거죠. 그것이 지식인들이 하는 일입니다. 없는 계급을 만들고, 없는 단어를 만들고, 없는 담론을 만들어서 자신만의 꼭대기에 앉아 뻔뻔하게 세상을 깔아보는 일. 손쉽게 신도들을 긁어모으는 사이비 교주들의 책략.
여담입니다만, 시지프 아시죠? 지식인들이 왜 시지프에게 끌렸는지 아세요? 왜 시지프를 그들의 전형이자 상징으로 내세웠는지 아시나요? 물론 명분이야 그럴듯하죠. 세계의 무의미와 부조리를 자각하면서도 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의 존재를 살아내는 영웅적 인간, 실존자의 원형이기 때문이라구요. 아뇨. 그건 그저 실존주의자들의 눈가림, 사람들로 하여금 시지프의 죄가 아닌 벌로 시선을 돌리게끔 하려는 수작, 악마들의 전문 분야인 지적 사기일 뿐입니다. 가장 먼저 자기 자신부터 속아 넘어가고 마는 그런 지적 기만 말이에요. 대체 시지프가 누구던가요? 시지프는 가장 비열하고 사악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손님들을 환대한 다음 잔혹하게 죽여버렸습니다. 최고 신의 비밀을 대가를 받고 팔아먹었어요.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자연 질서마저 교란했구요. 자신의 이익과 욕망, 권력을 위해 규칙이나 법을 마음대로 뒤틀고 짓밟았습니다. 기회주의자, 극렬분자, 선동자, 사기꾼, 범죄자, 살인자, 압제자, 착취자, 배교자. 그는 타락한 언어의 화신이고, 사적 욕망의 추종자이며, 오직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이기주의자였습니다. 자신의 그림자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의 원혼이 에코의 심연을 헤매다가 악령이 되어 부활한 자 말입니다. 그런 그를 실존주의자들이 영웅적 인간의 원형으로 탈바꿈시킨 겁니다. 본능적으로 끌렸을 테죠. 자신들과 너무나 닮았으니까요. 실존적으로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