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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Sep 28. 2024

2개월 예방접종을 다녀왔습니다.

D+64, 열나지 말아라 열나지 말아라

이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소아과 의사가 있다. 친절하고 꼼꼼하고 아이들을 부드럽게 대해주는데다가 무려 영유아 전문가라고 했다. 이분은 병원에 가서 줄서서 기다린다고 함부로 뵐 수가 없다. '예약'을 해야만 한다. 아침 8시 30분에 긴급한 환자 몇 명만 받는 네이버 톡톡을 통한 접수를 하거나 예방접종을 하는 이전 달 25일 12시에 접종 예약을 해야한다. 남편과 나는 예행 연습을 한답시고 몇 번을 눌러보고 아이의 주민번호를 복사해놓고 난리 부르스를 떨며 소케팅을 성공했다.


접종 당일 부푼 맘을 안고 병원을 갔다. 병원은 예약한 환자만 받는 터라 대기자가 많지 않았고 그래서 감염 위험도 적어 보였다. 두리번 거리며 앉아 있으니 간호사가 예방 주사를 뭘로 맞을지 물어봤다.


'펜탁심은 지금은 있지만 곧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구요, 그것에 대체하는 인판릭스라는것이 있어요. 테트락심은 뇌수막염은 따로 주사해야 해서 주사가 더 많아지구요 로타 바이러스는 세 번 먹는 약이랑 두 번 먹는 약이 있어요. 그리고 수막구균은 접종 하려면 2,4,6개월에 해야하고 매회당 15만원이고 총 160만원 생각하시면 되는데 외국나가거나 집단생활하면 맞는데 이건 검색해보시구요'


이게 대체 어느나라 무슨말이지 하는 혼란과 함께 듣기 평가를 하듯 모르는 단어들을 듣고 있었다. 듣기만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생각을 해서 지금 당장 결정 해야했다. '수급이 안정적이고, 주사를 덜 맞아야 하고, 먹는 횟수가 적어야 좋은 것이다' 라는 단순한 판단기준을 적용하여


'인판릭스하고 두 번 먹는 약 할게요. 다들 이렇게 하나요?' 이게 맞는건가 저게 맞는건가 하는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간호사에게 물었다.


간호사는 90프로가 이렇게 선택한다고 무심하게 말했다. 간호사는 나에게도, 이전 환자인 서율이 엄마에게도 어제 온 지환이 엄마에게도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국민 접종 주사같은건가?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육아용품에 국민템이 있는게 굉장히 웃기는 우리나라의 유행타는 습관같은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내가 막상 국민템들을, 예를 들면 타이니 모빌과 보니 스마트 침대와 2030센스 욕조 등을 써 보니 알게됐다. 아이를 키우면서 드는 감정의 절반 이상이 죄책감과 불안 또는 걱정인데,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그걸 쓴다는 생각을 하면 덜 불안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을 쉬니 돈이 부족하다. 가성비를 따져야 하고 그렇게 한정된 자원으로 선택에 실패하면 또 죄책감과 걱정과 후회가 밀려드니 다들 사는 국민템을 사면서 위안을 얻는다. 게다가 생각할 것도 너무 많은 엄마에게 판단을 빨리 하게 해주는 장점도 있다. 마지막으로 당근에 국민템들을 많이 팔아서 사기가 쉽고, 국민템이기 때문에 팔기도 쉽다.

국민템, 국민의사, 국민 주사, 또 뭐가 있으려나.


'튼튼이 들어오세요.'


드디어 국민 소아과 의사, 아니 이 지역 대표 소아과 의사를 만났다. 소문대로 친절하고 꼼꼼했다. 아기의 입, 귀, 콧구멍을 구석구석 봐 주고 숨소리도 확인하고 엉덩이와 다리도 들춰가며 이상이 있는지를 찾아봐줬다. 치명적인건 없었다. 황달,  갑상선은 두 달 뒤에 다시 검사. 사두와 사경은 약간 있는 것 같은데 이것도 두 달 뒤에 다시 검사. 아이의 볼따구에 있는 태열인지 아토피인지 알러지인지 모르는 뾰루지는 지금 스테로이드를 바를 수도 없고 보습을 해야지 별 수 없음.


얘기를 들어보니 신생아는 할 수있는게 없고 알아서 잘 크게 잘 먹이고 기저귀 갯수 잘 확인하고 잘 자게 하는게 최선이었다. 명의는 친절한 사람이라고 국민(지역)의사샘은 엄마의 물음에 답을 정성껏 해주고 걱정을 덜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걱정해봤자 할 수 있는 건 없고 열심히 젖 먹이고 스트레칭하고 잘 재우기만 하는 되는데도 불안한 마음이 계속되었다. 언제까지 이런 마음이 드나 싶어 튼튼이보다 230일 전에 태어난 현서의 엄마에게 물었다. 이제 돌을 바라보는 육아 선배로서 아가를 키우며 디폴트값이 된 이 전전긍긍한 마음은 이제 좀 없어졌냐고


'아니 현서 코로나로 열 40도까지 올라서 응급실 다녀왔잖아'


늘 얘기하는 레파토리인 '관 속에 묻힐 때까지 아이 걱정하며 살아야 한다'는 한탄과 함께 연락을 끝냈다.


아가에게 가장 치명적인 ‘열’도 걱정거리에 추가해야하는구나.


아이가 저녁에 수유를 한 후에 열이 38도까지 올라 접종열인가 했는데, 그냥 열심히 젖을 빨아서 열이 일시적으로 오른 것 뿐이었다. 이렇게 두달 째 예방 접종도 잘 끝냈다. 앞으로 4개월 6개월도 이렇게만 지나가자.


후우 2개월 보내기 정말 힘들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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