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80, 불쾌한 젖 사출 반사(D-MER)
출산을 하고 이제 세 달째, 오체가 아니라 온몸이 불만족스럽다. 다들 겪는 관절의 통증과 장기의 염증들은 뭐 당연한 것이니 패스하고, 온리 나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자면 그건 바로 가슴과 뇌이다.
#1. 오 마이 가슴! 아니 젖!
나는 매번 아이에게 젖을 줄 때마다 기분이 매우 나쁘다. 요즘은 하루에 일곱 번 수유하기 때문에 일곱 번의 불쾌감을 느낀다. 이렇게 쓰니 사이코패스 계모가 따로 없다. 디테일하게 말하자면,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 어마어마하게 불안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무엇인가가 잘못된 것 같고, 내가 잘못한 것 같고, 세상이 잘못될 것 같은 불안한 감정이 올라온다. 약간은 슬프기도 한데 슬픔보다는 답답함이라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젖을 물릴 때 일부러 그 기분에 집중해하려 했으나 불쾌감이 더욱 증가했다. 이 표현할 수 없는 이 공허함과 우울함은 무엇인가.
불쾌한 젖 사출 반사(Discomfort During Milk Ejection Reflex, D-MER)이다.
모유수유 중에 젖이 나올 때 도파민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는 현상을 말한다. 오래가지는 않는다. 젖을 물리는 순간 1분 정도 기분이 지하로 내려가듯 훅다운된다. 그래서 불안한 기분을 없애기 위해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 다시 젖을 먹는 귀여운 아이가 눈에 보인다. 처음에는 계속 젖을 주다 보면 사라질 줄 알았다. 내일은 사라지겠지. 모레는 좀 더 괜찮겠지. 하지만 80일째. 기분은 똑같다. 이놈의 젖 사출 반사는 모유 수유를 하면 그냥 계속되는 거였다. 그렇게 즐거울 일도 없어서 도파민이 많지도 않은데 어디서 자꾸만 나오는 건가. 이제는 그냥 견뎌야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 수유 중에는 2L짜리 삼다수를 옆에 놓고 있다. 호르몬 장난질이 끝나기를 빌면서.
내 가슴은 저주받은 가슴 아니, 저주받은 젖이 된 것이다.
'가슴'은 에로스와 로맨스와 은밀함의 상징으로 매력을 뽐내거나(이건 불가능하다) 누군가와의 쾌락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 나에게 가슴은 없다. 음. 원래 없었지만 더 없다. '젖'만 있을 뿐. 출산을 하고 처음으로 내 수줍고 작은 가슴을 보여준 건 가슴마사지사였다. 애써 가운으로 가리며 옷을 갈아입고 마사지 베드에 누웠으나 어마어마한 마사지로 젖을 뿜어내고 아이가 먹기 좋은 젖을 만들어 낸 이후부터 내 가슴은 젖이 되었다. 하루에 젖이라는 말을 열 번도 넘게 쓴다. 젖을 언제 먹일까? 젖을 잘 안 먹네. 젖먹이고 있어 등
내 젖은 밥통이기 때문에 은밀함도 잊은 지 오래다. 우리 집에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은 내 젖을 볼 수 있다. 튼튼이가 하루에 7번 이상 밥을 먹으니 그때 오는 모든 사람들은 튼튼이의 먹방을 강제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산후관리사님부터 시작해서 진드기 제거를 위해 방문한 크린베베팀장님, 우리 엄마, 시어머니, 동아리 선배와 이웃집 후배의 와이프 그리고 새콤달콤에 영혼을 판 여인까지. 심지어 곧 출산을 하는 친한 동생에게 젖 먹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고 동영상까지 찍어서 보여줬다. 공공의 젖인가. 이 정도면 나는 '불쾌한 젖 노출 증후군'이다.
#2. 뇌, 눼에?
아이와 쌍둥이로 태어난 뇌는 도무지 다시 원래의 장소로 돌아갈 기미가 없다. 다들 아이를 낳으면 기억력이 낮아진다고 하는데 나는 지능이 낮아진 것 같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나 : 이제 60일 젖 먹였으니 1년 완모 할 거라 생각하면 1/7이야
남편 : 1/6이 아닐까?
...
나 : 남편아 그거 신청했어?
남편 : 탄산수?
...
남편과 나는 매일 가족오락관을 한다. 남편은 어거지로 숫자 퀴즈와 거시기 맞추기를 즐기고 있긴 하지만 이건 중증이다. 남편은 나에게 셈을 못하는 건 원래부터 그랬다고 한다. 그래 계산 못하는 건 차치하고. 구매와 신청을 구분하지 못하고 단어가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나를 어찌해야 하는가.
가슴과 뇌가 사라진 슬픈 인간이 여기에 있다.
이 정도면 시도 쓸 수 있겠다. 앗. 시를 쓸 가슴이 없다.
앗.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더 이상 쓸 수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