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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미 Aug 17. 2021

드디어 조곤조곤 식탁

  나는 아들만 둘이다.

  ‘아들 둘이면 목메달’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딸을 선호하는 요즘이지만 나는 자녀의 성별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오히려 무덤덤한 내 성향과 잘 맞아서 감사하게 여기는 편이다. 그러나 딱 하나, '조곤조곤 이야기하기'. 이것만은 참 아쉽다. 나는 가까운 지인들과 둘러앉아 하루에 있었던 일을 나누길 좋아하는데 여섯 살, 여덟 살 아들과는 이게 전혀 안 된다.



     

  일 년 전 일이었다. 친구 S와 그녀의 네 살 딸과 함께 소위 성 카페를 간 적이 있었다. 원래는 S와 이 가려고 했으나 이런저런 일이 생겨 S의 딸도 함께 하게 된 터였다. 갬성 카페에 어울리는 예쁜 옷을 입은 아이가 너무 귀여웠으나 혹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 앞다. 내 아들들은 이런 자리에 오면 10분도 되어 온몸을 비비 꼬며 지겨움을 표출하는 통에 를 즐긴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S의 딸은 우리 집 둘째보다 두 살이 어리니, 5분도 못 버티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친구 딸은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 케이크를 먹으며 우리의 이야기에 얌전히 귀 기울였다. 심지어는 우리가 대화하다가 웃으면 자기도 같이 깔깔거리고, 아기 발음으로 뭐라 뭐라 말하기도 했다. 고 작은 아이가 어엿한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수다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어찌나 놀랍던지. 딸은 엄마의 평생 친구가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한 가지 소망이 생겼다. 바로 아들들과도 식탁에 둘러앉아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는 것. 평소 ASMR 영상이라도 찍는 듯 먹는 것에만 집중하는 아들들을 보며, 아직 어리니 조금 더 크면 저절로 이루어지리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S의 딸을 보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엔 나이가 문제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피아노를 가르치고, 한글을 가르치듯 대화하는 방법도 알려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우선 식탁을 바꿨다. 기존에 쓰던 커다랗고 길쭉한 식탁을 치우고 아담한 크기의 원형 식탁을 구매했다. 아무래도 물리적 거리가 좁아지니 조금 더 친밀히 느껴졌다. 신랑에게도 나의 취지를 설명하며 식탁에서는 최대한 휴대전화를 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매끼 가족 구성원 모두가 좋아할 메뉴를 선정해 입과 눈이 행복한 풍성한 식사가 되도록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니?

  가장 재밌었던 일이 뭐야?

  어떤 친구랑 가장 이야기를 많이 했어?    

 

  다양한 방식으로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봐도 역시나 아이들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몰라요. 기억 안 나요.”


  그런데 그때의 표정이 오묘했다. 내 질문이 귀찮으니 대충 상황을 모면하겠다는 것이 아닌, 정말로 기억이 안 나는 눈치였다. 마치 내가 길을 걸을 때 누가 옆을 지나갔는지 일일이 알지 못하는 것처럼, 교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우리 집 아들들에게는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닌 듯했다. 친구들과의 상호작용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던 나로서는 아들들의 무관심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번은 첫째 아이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외쳤다.    

 

  “엄마가 궁금해하는 거 같길래, 오늘 있었던 일 머릿속에 꾹꾹 넣어왔어!”  

   

  드디어 나의 노력이 결실을 보는구나!   

  

  “엄마, 내 이야기 잘 들어봐. 차를 타고 어린이집에 갔어. 그리고 간식을 먹었어. 놀다가 영어 선생님 와서 영어 하고, 또 놀다가 손 씻고 밥을 먹고, 양치하고, 생각 나누기하고, 간식 먹고 왔어.”     


  아이는 뿌듯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엄마가 그토록 궁금해하는 나의 하루를 알려줬으니 빨리 칭찬해달라는 표정이었다.


  아이고, 아들아. 엄마가 원한 건 그런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런 사실의 나열은 주간 계획표에도 다 나와 있어. 엄마는 그 일들을 했을 때의 너의 소소한 감정을 알고 싶은 거라고. 딸 가진 엄마들은 누가 수업 시간에 무슨 말을 했고,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심지어는 누가 무슨 치마를 입었는지까지 말한다던데! 하도 말해서 귀가 아플 지경이라는데! 넌 어쩜 이리 주변에 무신경할 수 있니.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 환한 얼굴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었다. 나는 웃음을 지으며 아들을 향해 엄지 척을 해줬다. 그날 나는 우리 집 아들에게는 일상을 나누는 DNA가 없음을 인정하며, 내 인생에 조곤조곤 식탁은 없다 결론을 내렸다.     






  단념의 마음을 먹은 채로 일 년이 흘렀다. 아들 둘과 함께 스케이트 강습을 시작한 지 이 주째. 늦은 오후 수업이라 끝나고 집에 오면 저녁 먹을 시간이다. 나는 신발을 벗자마자 후다닥 식탁을 차렸다. 메인 요리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단출한 식사. 반찬 투정을 부릴법하지만 운동하고 와서인지 두 아들은 맛있게도 먹는다.    

  

  “아빠! 오늘 스케이트 수업 시간에 앞으로 가기를 배웠는데 어떤 거냐면….”

  “근데 있잖아. 쿠션 너무 힘들지 않아?”

  “엄마! 아까 넘어졌을 때 엄청 웃겼지?”


  아들들이 볼록한 입을 오물거리며 이야기를 쏟아낸다. 

  어? 이거…. 내가 그토록 원하던 모습 아닌가?

  나는 끊임없이 나불거리는 아이들의 입을 쳐다봤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억지로 묻지 않아도 저절로 말을 하는 저 입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더욱 감사한 것은 나도 그 경험을 함께해서 아이들이 대충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스케이트 용어를 두서없이 말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당황해하는 신랑에게 조금 더 정제된 언어로 추가해서 설명해 주면 아이도, 신랑도, 더불어 나도 모두가 만족스럽다. 세상에나. 우리 집 식탁에서 모두가 만족하는 조곤조곤 이야기가 펼쳐지다니!

    



  식탁에서 시작된 조곤조곤 대화는 밥을 먹고 난 이후 스케이트 동영상을 보며 따라 하는 것으로 확장되고, 또 침대에 누워 다음에는 어떤 걸 배울지 기대하며 잠자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물론 나도 안다. 이것은 감정까지 소상히 표현는 내밀한 대화까지는 아님을. 그래도 나는 온 가족이 무언가를 즐겁게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스케이트였는데, 예상치 못한 깜짝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스케이트도, 가족 일상 나눔도 이제 모두 첫발을 뗀 초보일 뿐이니 차근히 발전시켜나가 보자고 다짐한다.

      

  오른발, 왼발.

  한마디,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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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스케이트를 타게 됐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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